‘집에 참 오랜만에 오네…’
현아가 그만둔 이후…
꽤 오랜만에 집에 왔다
방 문에 붙어있는 또봇 반창고도 그대로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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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연차라고 하지만 특별히 할 일은 없다…
술을 마신다거나…특별히 외출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외국어 공부하고 중국 드라마나 일본 드라마 보는 것이 전부…
요즘엔 병원에서 주는 앰플도 더 이상 그 효과를 보지못하는 상황이라 끊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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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단지…
혼자만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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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이이이이이이잉]
‘응?? 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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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외출을 하지 않기 때문에 집에만 있을 때는 사실 달력을 보지않으면
날짜에 대한 감각이 많이 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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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내가 연차를 쓴지도 벌써 2틀이나 지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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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결이네?’
“응 결아”
“애인 샘 잘 쉬고 계세요?”
“모 쉬는게 다 똑같지 그나저나 어쩐 일이야”
“………………….”
“모야 무슨 일 있어?”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아 답답해 임마 빨리 말해”
“애인 샘 저 오늘 놀러가도 되요?”
“오늘?? 갑자기??”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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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이는 이 병원에 입사한지 이제 3년차가 되어가는 친구로 유미와 마찬가지로 학교 동기이자 이 곳이 첫 직장이다…
유미가 맨 처음 입사했을 때와 똑같이 더 좋은 곳으로 가기를 권유했지만..
어쨌거나 끈기있게 버텨준 아주 고마운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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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언짢은 일이 있어도 내색하지 않던 녀석인데…..’
“결아 집 주소 찍어줄 테니까 택시타고 와서 연락해”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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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아 여기야”
병원과 집은 거리가 그리 멀지 않기 때문에
결이가 집에 오는데는 2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무슨 급한 일이길래…이렇게 갑자기…”
“근데 애인 샘 오늘 술 드셔도 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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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마 그래도 결이가 왔는데 오늘은 한 잔해야지….빨리 이야기해봐 무슨 일이야? 뭔일있어?”
“……………………”
“………………………”
“………………………………..”
“애인 샘…..저…그만둬요…”
“………………………”
“……………………….”
사실 결이는 5년을 넘게 사귄 여자친구와의 결혼 문제로 이전에도 비슷한 고민을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모 결국 돈문제이긴 하지만…
근데 때마침 더 높은 연봉의 제안을 받고 학교 선배가 근무하는 병원으로 옮기게 되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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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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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난 결이를 놓히고 싶지 않았다…
비록 나에겐 아무 힘이 없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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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일단 갑자기 놀러오겠다는 이유가 확실히 있었구나?”
“죄송해요…”
“모가 죄송해….저번에 이야기했던 그 선배 병원에 가는거지?”
“네…”
“혹시 돈 때문에 그러는거야?”
“………………….”
“나한테는 그냥 솔직하게 말해도되 그렇다고 내가 월급 올려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래도 월급이 큰 이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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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해를 안 할래야 안 할수 없는 부분이였다…
나조차도 이 병원에서 6년간 일하면서 겨우 15만원 올랐으니까….
차라리 일이라도 편하던가…
방사선사 본연의 업무 외에 이거 좀만 해달라 저거 좀만 해달라…
그저 말 뿐인 고마움
그들에게 양심 따위는 없었다…
‘나쁜 새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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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결이를 잡고 싶었다…
내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아니 희생을 치러서라도 모든 걸 바로 잡을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그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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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아….”
“………………..”
“그냥 길게 이야기안하고 바로 본론만 이야기할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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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 않은 시간동안 내가 생각해왔던 그 이야기들….
늘 이건 이래서 안되 저건 저래서 안되라는 자신들만의 합리화를 앞세워
그렇게 언제나 묵살되어왔지만 이번만큼은 절대 그럴 수가 없었다….
“그거 아직 완전히 결정된거 아니지?”
“네 그렇긴 해도….아마 특별히 바뀌는건 없지 않을까요?”
“월급 때문에 그러는거면 이번에 나 분명 연봉 인상 관련 이야기있을거야….그거 너 가져가…..”
“…………………….”
“그리고 너 이제 4년차로 올라가는데 내가 원장이랑 과장한테 항상 이야기했었거든…월급올려주는 부분에 대해서 동의하기가 어렵다면 적어도 4년차 기준으로 해당직원들에게 반차씩 더 주라고.
나한테 오는 반차랑 너한테 가는 반차 합치면 결이 너 주 3~4일만 일하면 되…”
“애인 샘 왜 그렇게까지해서…”
“나 진짜로 너 잡고 싶어서 그러는거야..근데 난 거짓말하기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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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과 과장은 모른다….
밑의 아이들이 얼마나 환자들로부터 하등취급을 받으며 일을 하는지….
그러면서 자신들은 이미 잘해주고 있다라는 자기중심적 합리화…
빈번한 직원들의 교체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안정화되었다는……그 무슨 말도 안되는 개소리….
누군가는 그렇게 말을 한다…
흰 가운입고 선생님 소리 들어가면서 아주 배부른 소리들 하고 있다고…
글쎄……..
책임감이라는 것은 대개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 짊어지는 경우가 많다…
집이 어렵다던지…
나이가 있어서 재취업을 하기에 어려움이 있다던지…
아내와 자식과 같은 부양 가족이 있다던지…등등
보통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한 이유들로….. 더 이상 본인의 삶을 살아갈 수 없도록 그렇게 강요받는다
하지만 나와 함께하는 아이들은 그런 사람들이 아니였고…
그래서 지키고 싶었다…
자신들의 한창인 20대를 이곳에 받친 그런 훌륭한 아이들이였다
그리고 이렇게 하는 것이 내가 적어도 내 동료들에게 할 수 있는 나의 최소한의 책임감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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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애인 샘이 말하는 그 계획이 실현 가능성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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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몰라…하지만 원장이 고생한 직원들에게 돈과 같은 그 어떤 대가를 주기 원치 않는다면
근무에 지장이 없는 선에서 원장의 주머니에서 지출이 없도록 방법을 찾아야지…
그 또한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고..그리고 지금 내가 한 이야기들이 바로 그거야….
내가 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고서부터 지속적으로 주장해왔었지만…
무슨 위화감이 조성된다는 둥…시덥잖은 소리해대면서 계속 까였었거든….
근데 이젠 진짜 부딪혀봐야지….안되면 진짜 답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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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평소에 거의 끊었다시피했던 소주를 마시며 아주 오랜만에 즐겁게 취했다…
결이가 언제 돌아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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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의 짧은 연차는 어느새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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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 샘 연차 잘 쉬셨어요?”
“똑같지…그래도 쉬니까 좀 낫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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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님 출근했죠?”
난 출근하자마자 바로 과장방으로 향했다…..
‘이제는 진짜………….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