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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그리고 그 후
작가 : 전Yeah
작품등록일 : 2019.10.7

2014년, 갑작스레 일어난 사태 이 후 인류는 멸망하였다. 그로부터 1년 후, 사태에서 살아남은 이설전은 변해버린 환경과 그것에 적응해가는 자신에게 회의감을 가지면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에 괴리감을 느끼기 시작하다 우연히 한 여자를 만나게 되는데... 이미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는 자들의 일상을 쓰는 아포칼립스 일상물.

 
16 - 다이나믹 듀오 (1)
작성일 : 19-10-31 22:46     조회 : 226     추천 : 0     분량 : 1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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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교도소를 떠났던 버스 중 한 대는 옆으로 뒤집어져 있다. 도착 지점까지 아직 한참이나 남았지만 도착해야 할 버스 세 대 중 한 대는 뒤집어진 채 이제 더 이상 달릴 수 없다. 처량하게 누운 버스는 달리지 못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듯 움직이지 않는다.

 

  버스의 깨진 창문으로 벌거벗은 남자가 튀어나온다. 그는 피투성이의 얼굴로 비명을 질러댄다. 그는 살려달라고 소리를 지른다. 눈에서 눈물이 흐르지만 피와 섞여 잘 보이지 않는다. 그의 거친 숨소리가 찢어지는 비명과 함께 입에서 뿜어져 나온다.

 

  그리고 그의 등 뒤 너머로 촉수 여러 다발이 솟아오른다. 솟아 오른 촉수들이 남자의 뒷목을 찌른다. 목을 찔린 남자가 숨이 멎는 소리를 낸다. 고통에 몸부림치던 남자가 창문 아래로 떨어진다. 그리고 그 안에서 괴물들로 변한 사람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괴물로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버스 주변, 자미라가 토막난 여자 시체를 들어 뜯어 먹고 있었으며 낫잡이들과 저글링들이 촉수로 사람들을 괴물로 변화시키고 있었다. 눈을 뒤집으며 거품을 문채 점점 변해가는 여자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저항하고 있었으나 허사였다.

 

  아수라장. 말 그대로였다. 버스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괴물들에게 습격당한 채 괴물로 변해가고 있다. 울부짖는 사람들의 포효가 끔찍한 상황을 요약해서 설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점차 비명소리가 점점 줄어들 때 즈음, 그곳에 사람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니까 종자혁명이야 말로 간담이 서늘 시리즈에서 최강이라니깐.”

 

  윤두호가 프라모델 박스 하나를 들며 말했다. 그러자 앞에 있던 이설전이 고개를 저었다. 그는 어쩔 수 없는 애송이를 상대하는 듯 여유롭게 다른 프라모델 박스를 들었다.

 

  “시리즈나 프라모델 모델링이나 최악이라는 평가를 듣는 종자혁명을 내밀다니. 아직 멀었군, 유두. 만약 프라모델을 내밀고 싶다면 이 날개 제로 가스통을 내밀었어야지.”

 

  “역시 다이답다. 안목도 다이스럽게 죽었어. 날개 시리즈는 멋있지만 한편, 거품이 너무 끼었다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프라모델의 색채감으론 종자혁명을 당해낼 수 없지.”

 

  “색채감? 색채감이라면 더블콩이야 말로 최고지! 너의 종자혁명 예찬은 시대에 뒤떨어졌어. 가서 락순이나 빨라고.”

 

  “락순이를 욕하지 마라. 넌 핑크빛 여자에게 한 번이라도 마음을 빼앗긴 적이 없었냐?”

 

  “사구라라는 캐릭터 때문에 핑크는 오로지 찰진 형님 밖에 생각이 안 난다.”

 

  둘은 한동안 프라모델 상자를 들고 옥신각신했다. 그러다 결국 마음에 드는 프라모델 상자를 하나씩 집어 밖에 세워둔 리어카에 담았다. 프라모델 가게에서 나온 둘은 뿌듯한 표정을 애써 감추며 흐뭇해하고 있었다.

 

  날씨가 제법 맑아졌다. 이틀 전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아직 곳곳에 물웅덩이가 비가 왔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었지만 하늘은 그런 일 모른다는 듯 맑고 화창했다. 어느새 바닥들도 제법 마르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장마기간이 끝난 것은 아니다. 언제 다시 하늘이 구름에 점령당할지 모른다. 비 폭탄이 다시금 대지에 투하될지 여부는 오로지 하늘만이 안다. 그렇기에 이 두 사람은 지금 비가 오지 않을 날씨에 리어카를 끌고 밖으로 나와 있다.

 

  “근데 다음 갈 곳에도 없으면 어떻게 하냐?”

 

  “어떡하긴. 그럼 진짜 군부대로 가야지.”

 

  두호의 말에 설전이 퉁명스레 대답한다. 두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부정한다. 그는 정말 그래야 되냐고 오히려 설전에게 반문한다.

 

  “그럼 어떡해. 철조망하면 떠오르는 곳이 철물점이랑 응? 군대. 여기 두 곳밖에 더 있냐? 다음 곳에도 없으면 군부대라도 가야지, 뭐.”

 

  “야, 좀 더 생각해봐. 진짜 그 두 곳밖에 없을까?”

 

  두호가 가기 싫다며 칭얼거렸다. 하지만 그런 두호의 태도를 설전은 단호하게 무시했다.

 

  “몰라. 다음 갈 철물점에도 없으면 진짜 훈련소로 가야 돼.”

 

  “거기도 없으면?”

 

  “그냥 집에 가는 거지.”

 

  “와. 이 고생을 했는데?”

 

  두호가 리어카를 가리키며 말했다. 프라모델 박스 두 개가 달랑 들어있는 리어카를 보며 설전이 한숨을 쉬었다. 그는 주머니에 넣어둔 초콜릿을 하나 꺼내어 깨물어 먹었다.

 

  “그래도 빈 리어카를 끌고 왔을 뿐이잖아. 그게 어디야.”

 

  “비어있으니까 짜증나지, 임마. 뭔가 들어있으면 무겁더라도 보람이 있을 거 아냐. 뭐 비어 있는 걸 끌어 봤자 무슨 힘이 나냐. 거기다가 저거 비어있어도 존나 무거워.”

 

  “새꺄, 난 너희 없었을 땐 저거 혼자서 끌고 댕겼어. 거 번데기 앞에서 주름 존나게 잡아대네. 그리고 임마 보람은 정제한테 있잖아.”

 

  설전이 지른 회심의 개그는 아쉽게도 두호에게 통하지 않았다. 두호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설전을 바라보며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설전도 개그가 통하지 않자 무안한 듯 고개를 떨궜다. 두 사람은 그대로 자리에 앉아 말없이 시간을 보냈다.

 

  이 두 사람이 이렇게 나와 있는 이유는 대범의 계획 때문이었다. 근래에 괴물들의 밀집도와 수가 급격하게 늘어났으며 출현빈도도 높아지자 대범은 방어를 좀 더 견고히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주변에 벽돌을 쌓아 올리자고 제안했으나 설전의 반대에 실패했다.

 

  아직 장마철이라 벽돌을 쌓는 것에 무리가 있으며 무엇보다 자재가 부족하기 때문에 거의 불가능하다는 게 이유였다. 그리고 마트 주변을 둘러서 쌓을 벽돌 양을 다시 조달하려고 한다면 또 그만큼 시간이 엄청나게 걸린다는 것. 설전의 반대는 타당했다.

 

  그러나 대범의 말에도 혹하는 것은 있었다. 괴물들이 여기로 접근해 오기 전에 벽이나 장애물들로 막아 두면 난간이나 옥상에서 장애물에 멈춘 괴물들을 향해 대응사격을 하기 좋다. 꼭 벽돌이 아니어도 장애물 설치는 꽤나 매력적인 이야기였다.

 

  그래서 설전은 타협안을 제시했다. 벽이 아닌 장애물로써 쓸만한 것을 쌓아두자는 것이었다. 벽돌이 아니더라도 주변에 널려있는 것을 이용해서 괴물들을 멈출 수 있는 장애물을 만들자는 아이디어였다. 설전의 제안에 대범은 납득했으나 바로 난관에 봉착했다.

 

  아무것이나 쌓아서 장애물을 만들 수 있을 거라 여겼지만 실제론 굉장히 어려운 여건이었다. 당장 괴물들을 막을만한 장애물들에 대해서 이야기가 오고갔다. 마트 내 쓸모없는 진열대부터 시작해서 자동차까지 다양한 물품들이 거론되었으나 그렇게 납득할 만한 제안은 나오지 않았다.

 

  결국 대범이 철조망과 철망, 가시철망 등을 제안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기에 동의했다. 결국 철조망치기가 최종판정으로 내려졌다. 그 후 다음 날, 설전과 두호가 철망을 가져오는 정찰대로 뽑혀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냥 차 끌고 오지 왜 리어카냐.”

 

  두호가 불평을 늘어놓았다. 일어서서 리어카를 몇 번 발로 차던 그는 리어카 안으로 들어갔다. 설전이 일어나 리어카를 끄는 손잡이 부근까지 와서 말했다.

 

  “차 운전이 편하긴 한데. 놈들은 은근히 차 소리에 민감하더라고. 차 한번 끌고 가기만해도 100% 나와. 현재까진 그랬어. 그래서 무거운 거 옮기거나 먼 곳으로만 이동할 경우에만 차를 쓰고.”

 

  “철조망 무거워. 왜 차를 이용 안 하는 거야.”

 

  “가까운데 가니까 쓸 필요 없다고 생각해서 그랬지. 만약 이번 철물점에도 없으면 그냥 차타고 군부대로 가자.”

 

  “하아... 왜 하필 너랑 되가지고.”

 

  “내가 할 말이다. 영혜랑 같이 왔으면 좀 좋아.”

 

  “여친을 이런 사지에 같이 오고 싶냐. 말하는 본새가 아주 싸가지가 없어.”

 

  “서로 어려운 역경을 뚫고 나가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사랑이지. 아직 뭘 모르는군.”

 

  설전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설전의 너털웃음에 두호는 감정이 상한 듯 얼른 출발하자고 재촉했다. 설전이 두호를 향해 내리라고 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설전은 그럼 사랑의 힘을 잘 보라며 두호를 태운 채 리어카를 끌기 시작했다. 리어카는 의외로 쉽게 잘 나아갔다.

 

  몇 분이 지났을까? 두호가 나는 관대하다며 뒤에서 이상한 행동을 하고 설전이 그런 두호를 무시하면서 다음 철물점으로 가는 도중이었다. 이제 막 골목 밖을 벗어나 대로에 나가기 직전 설전이 리어카를 멈추자 리어카 위에 서서 I am kind라고 헛소리를 지껄이던 두호가 휘청하더니 리어카에서 떨어져 곤두박질쳤다.

 

  두호가 짐에게 죽고 싶은게냐 라며 계속 헛소리 컨셉을 유지했지만 설전이 두호의 입을 막으며 검지를 들어 자신의 입에 댔다. 두호가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때 두호의 시야에 어떤 존재가 눈에 들어왔다.

 

  “저건...”

 

  “응. 낫잡이야.”

 

  설전이 낮고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두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멀리서 낫잡이 하나가 6차선 도로 한 가운데를 걷고 있었다. 설전이 괴물을 잘 살펴보더니 말한다.

 

  “보아하니 괴물이 된지 얼마 안 된 모양인데?”

 

  “응? 왜? 그런 게 보여?”

 

  “옷을 봐. 피가 덕지덕지 묻어 있잖아. 굳은 게 아니라 젖어있어. 잘 보면 붉은 피는 저 괴물에게서 나오고 있는 거고. 사람에게 당한 상처로는 보기 힘들지.”

 

  설전이 가리킨 곳에 낫잡이가 입은 옷에 붉은 피가 보인다. 두호가 감탄을 하더니 설전에게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다. 설전이 잠시 생각을 하더니 일단은 지켜보자는 대답을 한다.

 

  “저 녀석이 스스로 괴물이 되었을 리 없잖아. 분명 저 녀석을 괴물로 만든 괴물들이 다수 존재할거야. 함부로 움직여선 안 돼.”

 

  “근데, 저 녀석. 왠지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데?”

 

  두호의 말에 설전이 낫잡이를 바라보았다. 낫잡이는 괴로운 듯 비틀거리며 6차선 도로를 배회했다. 낫잡이는 마치 무언가에 저항하는 것처럼 보였다. 다르게는 부품이 잘못 연결된 로봇 같아 보이기도 했다.

 

  어쨌든 낫잡이의 상태는 무척 안 좋아보였다. 낫잡이는 몇 번이고 이상한 울음소리를 내며 무언가를 버티고 있었다. 낫잡이가 자리를 빙글빙글 돌더니 이내 그 자리에 바로 쓰러졌다. 낫잡이는 다시 구슬픈 비명 소리를 내질렀다.

 

  “끔찍하군. 뭐야 저 소리는. 인간이 내는 소리가 아니잖아.”

 

  “인간이 아니라 괴물이니까. 근데 아무래도 저 녀석. 수명이 다 한 것처럼 보이는군.”

 

  “뭐? 수명?”

 

  “응. 수명.”

 

  “괴물에게도 수명이 있어?”

 

  두호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말한다. 설전은 그런 두호를 향해 오히려 이상한 듯 물었다. 수명이 다해서 죽는 괴물을 본 적 없냐고. 그러자 두호가 그런 괴물을 어디서 보냐며 오히려 반문했다. 설전이 신기한 듯 말했다.

 

  “여태까지 그럼 괴물들이 수명을 다해서 죽는 걸 본 적 없단 말이야?”

 

  “그래, 우릴 쫓아오는 괴물들 피해서 숨어 지내는데 괴물들 관찰할 그럴 시간이 어딨냐.”

 

  “허 참. 1년을 허투루 보냈구만 이자식.”

 

  “네가 이상한거야 미친놈아.”

 

  두호가 침을 삼키더니 말을 이었다.

 

  “근데 수명이라니. 정말로 수명이 있는 거야?”

 

  “응. 수명이라기보다 뭐랄까. 몸이 버티지 못한다고 해야 할까?”

 

  “몸이 버티지 못해?”

 

  “응. 잘 봐, 저 낫잡이를.”

 

  설전이 손가락으로 낫잡이를 가리켰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낫잡이의 옷. 붉은 피가 묻어 있는 그 옷을 가만히 보니 흐르는 피가 멈추지 않고 있었다. 두호가 왜 저러냐며 묻자 설전이 잘 알아두라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뭐랄까. 괴물이 되려고 하는데 상처가 너무 심해서 괴물이 될 수 없는 상황이랄까? 몸에 너무 심한 상처를 입어서 감염이 된 이후 괴물이 되어가지만 상처가 치료가 되지 않아 괴물화가 더 이상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거지.”

 

  “뭐야, 네 말은 그럼 지금 저 녀석, 반 괴물이라.. 뭐 그런 상태란 거냐?”

 

  “응. 몸은 괴물이 되어가는 데 머리는 괴물과 사람 중간 즈음에 있다고 할까.”

 

  “괴물과 사람의 중간? 그럼 반 정도는 사람으로서 의식이 있다는 거... 설마 너.. 그 말...?”

 

  소름이 끼쳤다. 두호는 설전이 대답을 해주지 않았으면 했다. 궁금했지만 답을 듣고 싶지 않았다. 왠지 들어버리면 공포스러워 잠을 못 이룰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설전은 그런 두호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 반 정도는 이성이 남아있어. 당연히 자기가 괴물이라는 것도. 그리고 곧 죽는 다는 것도 알지.”

 

  “X발.”

 

  두호가 거칠게 욕설을 내뱉었다. 의도하지 않게 큰소리가 났다. 설전이 뒤늦게 목소리를 낮추라고 타박을 줬지만 두호는 개의치 않았다. 끔찍한 사실을 들었으니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두호가 믿을 수 없다는 듯 거친 숨을 내쉬었다.

 

  “진짜냐?”

 

  두호의 질문에 설전은 망설이는 듯 했으나 어차피 알게 된 거 다 말하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는지 입을 열었다.

 

  “예전에 낫잡이 하나 저렇게 쓰러지더라. 뭔가 공격을 당해서 죽어가나 싶어 확실히 숨통을 끊어 놔야 겠다는 생각에 머리를 겨냥하는데 저쪽에서 이미 나를 눈치를 챘더라고. 재빨리 방아쇠를 당기려는데. 저기서 뭔가 입을 뻐끔뻐끔하는 거야.”

 

  설전이 6차선 도로 위에서 죽어가는 낫잡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낫잡이는 이제 움직이기 힘든 듯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비명소리를 계속 질렀지만 힘이 다해가는지 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다.

 

  “근데 자세히 보니 괴물이 살고 싶어서 거친 숨을 몰아 내쉬는. 그런 모습은 아니더라고. 뭐라고 할까. 분명히 뭐라고 말하고 있는 듯한. 그래.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었지. 뭔가 말을 하는 입모양이었어.”

 

  도로 위 쓰러진 낫잡이의 소리가 점점 줄어든다. 낫잡이는 끄어어어 하는 소리를 길게 냈다. 마치 어딘가로 가라앉는 듯. 무겁고 낮게 꼬르륵 거리는 소리였다.

 

  “그래서 그럴 리 없겠지만, 혹시나 싶어서 뭐라고 말하는지 유추해봤지. 일그러진 입술 모양으로. 나름 열심히 추리를 해봤단 말이야. 그런데 자세히 보니 나한테 하는 부탁이더라고. 그래. 부탁이었어.”

 

  이제 낫잡이는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천천히 움직이던 손도 더 이상 흔들거리지 않았다. 가라앉는 소리도 이제 꺼져갔다. 멀리 떠나가는 차 소리가 그렇듯. 괴물의 소리도 어디론가 멀리 떠나버리며 멀어져 갔다.

 

  “무슨 부탁이었을 것 같냐.”

 

  죽어버린 낫잡이에게 시선을 떼고 설전이 두호를 향해 묻는다. 설전의 질문에 두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생각하고 싶지 않았기에 대답하지 않았다. 설전은 쓰러진 낫잡이를 살펴보았다. 낫잡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죽었는지 아닌지는 확인할 방도가 없었다.

 

  확인하고 싶어도 죽은 것으로 보이는 낫잡이가 왔던 방향에 다수의 낫잡이와 자미라가 포착되어 그럴 여유가 없었다. 괴물이 죽었는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설전이 괴물들이 등장했음을 알리고 두호에게 건물 옥상으로 대피할 것을 제안했다. 두호도 그 의견에 찬성하고 리어카를 놔둔 채 바로 옆 건물로 걸음을 재촉했다.

 

  건물 현관에 들어서고 계단을 올라가는 도중 두호가 물었다. 그건 아까 설전이 한 질문에 대한 것이었다. 부탁을 받은 너는 어떻게 행동했냐고. 두호의 짧은 질문이 끝났지만 설전은 말없이 계단을 올라갔다. 그리고 옥상 문을 열기 직전 두호를 향해 말했다.

 

  “방아쇠를 당겼어.”

 

 

 

  건물 위로 올라간 두호가 옥상 난간에서 헛웃음을 웃는다. 그는 고개를 흔들더니 난간에 기댄 채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설전의 어깨를 쳤다. 두호가 설전보고 옥상 난간 너머 아래를 가리켰지만 설전은 고개를 저었다.

 

  보기 싫다는 표현에 두호는 왜 안보냐고 닥달했다. 설전이 그런 거 봐서 기 빨리고 싶지 않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두호가 그래도 어차피 싸우게 될지도 모르는데 미리 봐두는 게 좋지 않냐고 하자 그제야 설전이 난간 너머, 옥상 아래의 도로를 바라보았다.

 

  도로 위에 자미라 3마리, 그리고 낫잡이와 저글링이 다수 있었다. 꽤 큰 규모의 무리였다. 얼추 세어보지 않아도 20은 족히 되어 보였다. 두호에겐 낯선 숫자지만 얼마 전 전투를 통해 설전에겐 그나마 익숙한 규모였다. 그래도 상황이 좋지 않은 건 똑같았지만.

 

  “어쩌냐. 존나 많다.”

 

  “나도 알아. 봤어.”

 

  “안 떨리냐?”

 

  “저럴 땐 우리 발견 못한 것에 감사히 여기면서 그냥 지나가길 빌면 돼. 떨릴 게 뭐가 있어.”

 

  “오호. 그냥 지나가는 경우도 있구나.”

 

  “뭐, 어떻게든 낌새를 눈치 채고 귀신같이 올라오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뭐야, 그럼 들키면 어떡해.”

 

  “뭘 어떡해야. 오는 놈들에게 총질하다 못 막으면 뒤지는 거지.”

 

  “아... 하필 뒤질 때 옆에 있는 게 거무튀튀한 남정네라니.”

 

  두호가 혀를 차며 아쉬워한다. 설전이 뭐 이런 놈이 다 있냐며 쳐다봤지만 두호는 그런 설전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내미는 것으로 대답했다. 설전이 나도 너 같은 놈이랑 같이 죽는 건 사양이다 라고 했지만 두호는 늬예늬예 어련하시게쪄여 하며 대충 대답했다.

 

  “빨리 지나가라...”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설전. 그런데 순간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뭐지? 수군수군한 그 소리는 처음엔 옆에서 두호가 또 혼자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두호도 설전과 마찬가지로 이상한 소리가 들리자 소리의 근원지를 찾으러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설전은 두호가 낸 소리가 아니란 걸 알아채자 눈을 빠르게 굴렸다. 옥상 주변을 살피던 그는 어떤 것도 시야에 보이지 않자 이번엔 옥상 문으로 다가갔다. 옥상 문에 귀를 대고 집중해서 들었지만 소리의 근원지는 계단 아래에서 들려오고 있지 않았다.

 

  그때 두호가 다급하게 낮은 목소리로 설전을 불렀다. 설전이 뒤를 돌아보며 왜 그러냐고 묻자 두호의 손가락이 건너편 건물 옥상을 가리키고 있었다. 설전의 시선이 두호가 가리킨 쪽으로 옮겨졌다. 거기엔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무리지어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기서 그 중 한 남자가 작은 목소리로 계속 그 둘을 부르고 있었다. 설전은 도로 쪽 난간과 자신의 거리를 재 본 뒤 상체를 낮추고 사람들이 있는 난간으로 향했다. 난간에 도착하자 건너편 건물 옥상에 벌거벗은 사람들이 설전을 바라보고 있었다.

 

  건너편 건물은 설전이 있는 건물과 높이가 똑같았다. 그러나 두 건물 사이에는 어림잡아도 3m는 족히 되는 거리가 벌어져 있었다. 덕분에 괴물에게 들키지 않으려 작은 소리로 불러도 설전 일행을 불렀어도 그 목소리가 제대로 닫지 않고 있었다. 다행히 설전과 두호가 소리의 근원지를 찾으려 해서 겨우 발견된 것이다.

 

  “당신들은...?”

 

  설전은 말을 흐렸다. 행색을 보아하니 뭔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벌거벗은 채 발견된 사람들. 설전은 익숙한 모습으로 처음 봤던 한 여자를 떠올렸다. 벌거벗은 사람들 무리 중 계속해서 자신들을 부르던 어려보이는 한 남자가 설전을 향해 말했다.

 

  “저희 좀 살려주세요.”

 

  남자가 다급하게 말했다. 살려달라니? 처음엔 설전은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옆 건물에 인육사냥꾼들이 있고 이들은 여기에 잡히게 됐으니 놈들을 처리하고 살려달라는 소리로 이해했다. 하지만 곧 그들의 부탁은 그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저 괴물들 좀 처리해 달라 구요.”

 

  “엉?”

 

  다짜고짜 괴물들을 처리해달라니. 설전은 뭔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눈앞에 처음 본, 그것도 총까지 매고 있는 남자에게 겁도 없이 말을 걸더니 괴물까지 처리하라고? 설전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뒤에서 두호가 나타났다.

 

  “뭔데? 저 사람들이 뭐래?”

 

  “어...야... 어... 너 ...”

 

  “왜? 뭔데 그래?”

 

  “너.. 처음 본 사람이 총을 들고 있는데 다짜고짜 괴물들을 없애고 구해달라고 어.. 할 수 있겠냐?”

 

  “엉? 무슨 헛소리야? 지금 저기 있는 저 사람들이 그랬다고? 거참 배짱 두둑한 놈들일세.”

 

  두호가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설전이 한숨을 내쉬더니 소수를 센 다음, 괴물을 퇴치해달라고 부탁한 남자에게 말했다.

 

  “어이, 너. 내가 누군지 알고 저 괴물들을 퇴치해 달라 마라야.”

 

  “네? 그거야...”

 

  “상식적으로 총을 들고 있는 상대가 위험해 보이지 않냐? 도대체 무슨 정신머리로 우리한테 구해 달라 마라 하는 거냐.”

 

  설전이 머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남자는 기분이 상한 듯 거칠게 설전에게 따졌다.

 

  “얼마나 괴물들이 무서웠으면 이랬겠어요! 당신들이 누군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괴물들이 더 무서우니 이렇게 부탁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런 식으로 말할 거 까지...”

 

  “그런 식이고 나발이고 우리도 저 괴물들 처리할 능력이 안 되니까 여기 올라온 거야. 상식적으로 두 명이서 어떻게 저 수를 감당 하냐.”

 

  “그.. 그래도...”

 

  “잘 들어둬. 어차피 저 괴물들은 우릴 발견하지 못했어. 그냥 가만히 있으..”

 

  “구해주자.”

 

  “그래, 구해주.. 뭐?”

 

  설전이 두호를 바라보았다. 두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들을 돕자며 설전을 설득했다. 그의 태세변환에 설전은 적응이 안 되었다. 갑자기 무슨 일이지? 녀석이 왜 이럴까 하고 구해달라는 사람들과 두호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던 그는 이내 그 이유를 알아차렸다.

 

  긴 생머리에 섹시하고 관능적인 외모. 잘 못 먹었는지 말랐지만 선천적인 볼륨은 어디 안 간다고 들어갈 곳은 들어가고 나올 곳은 나온 몸매. 애써 가리고 있지만 예쁜 몸매라인과 함께 거칠지만 하얀 피부가 인상적인 여성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설전은 설마 했다. 하지만 설마는 언제나 사람을 잡아먹는 법. 두호는 그 여자에게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설전이 두호보고 정신을 차리라고 했지만 두호는 뭐 어떠냐면서 따졌다.

 

  “얌마, 어차피 가만 놔두면 지나간다며. 다 지나간 다음 우리가 저기로 올라가서 저 사람들을 구해주면 되는 거지.”

 

  “새꺄. 제정신이냐? 우리가 자선사업가야? 저 사람들을 다 데리고 가자고?”

 

  “임마, 안될 거 뭐야? 동료가 많으면 많을수록 방어하기도 좋고 같이 북적북적해서 살맛도 나는 거지.”

 

  “너 진심이냐? 정말 저 사람들을 데리고 가겠다고? 식량이나 그런 거 다 계산해가며 사는 와중에 갑자기 떨거지들을 데리고 오자 이 말이야?”

 

  설전과 두호가 낮은 목소리로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설전은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지 말라며 두호를 나무랐지만 오히려 두호는 사람들을 구하는 것에 계산을 재려하는 설전을 탓했다. 두 사람이 진지하게 투닥거리는 도중 갑자기 큰 소리가 두 사람의 다툼을 멈췄다.

 

  “뭐하는 거야! 구해달라고 하잖아! 사람이 말을 하면 들어 쳐먹어! 같은 사람끼리 왜 구하려고 하지 않는데! 빨리 구해달라고!”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에 설전의 동공이 커지면서 건너편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어떻게든 괴물 눈에 안 띠려고 자세와 고개를 낮추며 조심하고 있었지만 그들 중 배가 나오고 머리가 벗겨진 중년 남성 한명이 씩씩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이봐.. 무슨 짓이야?”

 

  “무슨 짓?! 네들이야 말로 무슨 짓인데! 엉? 새꺄! 내가 임마. 누군지 알어? 내가 임마 왕년에...”

 

  “X발...”

 

  설전이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었다. 그는 중년남자의 말을 무시하고 고개를 낮춘 채 재빠르게 도로 쪽 난간으로 향했다. 그는 난간 밖으로 고개를 살짝 내밀었다. 그는 부디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최악의 사태가 일어나질 않길 바랐다. 그러나 설마는 역시 사람을 잡아먹는다.

 

  “X발. 망할 새끼가...”

 

  설전의 욕설이 튀어나왔다. 그의 시야에는 사람들이 있는 건물을 향해 달려가는 저글링들의 모습이 포착되었다.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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