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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고독한 쥬뗌므
작가 : gloryr****
작품등록일 : 2019.10.26

우리는 저마다 어떤 사랑을 할까?

헌신적인 사랑을 믿는 리아
사랑에 의해 상처만 받는 고독한
사랑을 집착하고 소유하려는 로이
곁에서 바라만 봐도 행복한 민호
사랑을 투쟁으로 쟁취하려는 지민
제각기 다른 사랑을 믿는 이들이
만드는 동화 같은 이야기

멋진 공주와 예쁜 왕자 동화 속으로
​지금 당장 들어가볼까요?

 
5. 예쁜 왕자님... 내가 찾으러 왔어요...
작성일 : 19-10-26 11:24     조회 : 14     추천 : 0     분량 : 8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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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커튼 사이로 조막만한 빛이 비쳤다. 어두웠던 방이 서서히 밝아졌다.

 

  마구잡이로 흩어진 의류, 먹다 남긴 음식물, 여기저기 뿌려진 악보, 세월의 흔적이 가득한 통기타, 그리고 그 옆에서 침 흘리며 자는 청년. 아침의 고요함이 공기 중에 떠다녔다.

 

  아홉시다! 일어날 시간이다이가! 퍼뜩 안 일나고 뭐하노!

 

  핸드폰에서 구수한 사투리 알람이 울렸다.

 

  청년은 눈을 감은 채로 핸드폰을 찾아서 알람을 껐다. 그대로 다시 잠에 드는가 싶더니, 갑자기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아, 아."

 

  그는 일어나자마자 목소리를 냈다. 목에서 걸걸한 소리가 났다.

 

 "어제 좀 무리했나."

 

  청년은 물을 마시기 위해 거실로 나갔다. 자그마한 방에 비해 거실은 꽤 넓었다. 물을 마시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바닥에 편하게 앉아서 먼저 통기타를 잡았다.

 

  어제 풀어놨던 기타 줄을 조이며 음정을 맞췄다. 어느 정도 기타 음정을 맞추고 나자 기타 줄을 가볍게 튀겼다. 깊고, 맑은소리가 방에 울렸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래도 어제 반응은 좋았지. 혹시나 영상으로 올라온 거 아이가."

 

  그가 기대하며 핸드폰을 검색했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자 핸드폰을 내팽개쳤다.

 

 "치아라. 인기가 아니라 실력을 쌓아야지."

 

  방에 현란한 기타 소리가 울렸다. 가끔 목 푸는 소리도 났다.

 

  청년은 연습에 몰두하다가 시간을 확인하고는 헐레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클났다! 오늘도 지각하겠는데!"

 

  그가 빠르게 나갈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갔다. 현관문을 열자 바로 계단이 나왔다. 계단을 따라 한 층 내려가서 같은 건물에 있는 카페로 들어갔다.

 

 "형! 미안!"

 

  청년은 어설프게 서울말을 흉내 내면서 앞치마를 걸쳤다. 카페 안에는 손님이 꽉 차 있었다. 카페 점원으로 보이는 젊은 사내 혼자서 그 손님들을 모두 상대하고 있었다.

 

 "내 뭐할까. 빨리 말해도."

 

  청년은 사투리를 표준어 억양으로 말하는 이상한 말투를 선보이면서 젊은 사내를 도왔다. 젊은 점원은 청년에게 쌓인 영수증을 주면서 본인도 침착하게 하나씩 처리했다. 점심시간이 가도록 쉴 시간이 없었다.

 

  손님들은 차를 다 마시고도 카페에 남았다. 그들의 시선은 한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어쩜 남자가 저렇게 예쁠까."

 "커피 내릴 때, 옆태 좀 봐. 단돈 삼천 원에 저 아름다운 모습을 매일 볼 수 있다니."

 "시크한 표정이 마치 커피 같아. 마실수록 중독 되는."

 

  손님들은 황홀한 얼굴로 젊은 점원을 보며 감탄했다. 자리가 없어서 앉지 못한 손님들도 카페를 떠나지 않고 그를 감상했다.

 

 "맨날 형 때문에 이게 뭐고. 진짜 점심 시간에는 시급 더 쳐줘야한다이까."

 "그럼 지금까지 지각한거 전부 월급에서 깔건데. 민호야."

 "아니, 시급을 올려달라는게 아니고. 그만큼 이 카페가 장사가 잘 된다는 거지. 한이 형."

 

  민호는 다급하게 태세를 바꾸며 그의 눈치를 살폈다.

 

  그가 고개를 돌리며 헝클어진 앞머리를 옆으로 넘겼다. 그의 모습에서 빛이 나는 듯 했다. 손님들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감탄사가 나왔다.

 

 "밀린 월세도 한 번 생각해봐야겠는데."

 "한이 형! 다시는 안 그럴게! 내가 죽일 놈이야! 감히 나 따위가 시급을 올려달라는 소리를 하다니! 제발, 고독한 형!"

 

  민호가 놀란 눈으로 고독한을 뜯어말렸다. 그가 다시 무심한 얼굴로 뒤돌아서서 말했다.

 

 "하는 거 봐서."

 

  민호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고독한이 말을 덧붙였다.

 

 "그런데 이번에 주말 알바생 그만둔다던데."

 "뭐! 언제? 또 그만둔다고?"

 "이번에도 좀 부탁할게. 나 올라간다."

 

  그는 앞치마를 내려놓고 카페를 나갔다.

 

  민호는 그를 붙잡으려다가 손으로 빈 공기를 움켜쥐었다.

 

 '왜 매번 알바생이 한 달을 넘기지 못하는 거냐고! 도대체 뭐가 문제길래 그러냐고!'

 

  차마 그에게 따지지 못하고 말을 삼켰다.

 

  고독한이 카페를 나가자 손님이 하나둘 자리를 떠났다. 늦은 오후에는 카페가 한적하다고 느낄 정도로 손님이 드물게 찾아왔다.

 

 "아메리카노 샷 추가요."

 "네? 네."

 

  민호는 반쯤 졸린 눈으로 앉아 있다가 허겁지겁 주문을 받았다.

 

  주문한 손님은 명품으로 차려입은 중년의 여성이었다. 그녀가 입은 패션 취향이 조금만 젊었더라도 이십 대로 오해할 만큼 어려 보이는 외모였다.

 

 "내가 단잠을 깨운 건가요?"

 "단잠이라니요. 잠 안 잤는데요. 아니, 안 잤어요."

 

  그가 급한 마음에 사투리로 대답했다가 어설프게 서울말로 고쳤다. 중년의 여성이 그 모습을 보더니 기품 있게 웃었다.

 

 "왜 안 어울리게 서울말 써요? 난 부산 남자가 멋있던데."

 

  그녀가 장지갑을 꺼내더니 카드를 건넸다. 곧바로 아메리카노 한 잔을 들고 카페를 나갔다.

 

 "매번 볼 때마다 이상해."

 

  민호는 잔뜩 움츠러든 어깨를 훌훌 털어냈다. 곧 저녁 시간이 다가왔다. 고독한이 출근 시간도 전인데 카페에 나왔다.

 

 "형! 왜 이렇게 빨리 나왔어."

 "뭔 상관인데."

 "당연히 상관이 있지! 봐!"

 

  말을 하기 무섭게 카페가 금세 손님들로 북적였다.

 

  그는 밀려드는 손님을 상대하면서 고독한에게 눈치를 줬다. 고독한은 그 마음도 모르고 앞치마를 입었다. 앞치마를 입는 그의 모습에 손님들이 감탄했다. 오늘도 그의 예쁜 외모가 누구보다 열일했다.

 

 "한이 형. 나 가볼게."

 "수고했어."

 

  민호가 기진맥진한 상태로 카페에서 나와 집으로 올라갔다. 방에 들어가서 이불 위에 눕자 졸음이 쏟아졌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통기타와 음향 장비를 챙겼다. 나갈 준비를 마치고, 방 문앞에 섰다.

 

 "댕기올게. 아부지."

 

  그는 매일 가는 공원으로 가서 버스킹 준비를 끝마쳤다. 평일 저녁 시간대라 공원에 지나다니는 사람이 몇 없었다.

 

 "확실히 어제보다 사람이 적네. 치아라. 중요한 건 실력이지."

 

  핸드폰으로 노래방 반주를 틀었다. 스피커에서 최근에 유행하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민호는 기타를 옆으로 둘러메고 노래에 집중했다. 사람들을 불러모으기에는 잔잔한 어쿠스틱 음악보다 귀에 익은 최신 노래가 좋았다. 허스키 하면서 기본기가 잘 잡힌 목소리가 공원에 울렸다.

 

 "뭐야. 여기서 버스킹 하나봐."

 "목소리 좋다. 이거 내가 좋아하는 노래인데."

 

  산책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대부분 무명 가수라는 걸 알자 떠났지만 몇몇은 벤치에 앉아서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버스킹 초반부에 최신 유행하는 노래로만 선곡했다. 그러다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분위기가 무르익자 핸드폰 반주를 끄고 통기타를 고쳐맸다. 기타 줄을 튕기자 통기타에서 깊은 소리가 났다.

 

  관중들은 익숙하지만 처음 들어보는 어쿠스틱 멜로디에 낯선 감동을 느꼈다.

 

 "이게 무슨 노래지? 왠지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아."

 "통기타 소리 정말 좋다. 어디서 많이 듣던 노래야."

 

  관중들은 익숙한 선율을 들으며 어떤 노래인지 떠올리려 했다. 스피커에서 그의 목소리가 나오자 무릎을 치며 웃었다. 누구라도 아는 대중적인 노래를 그만의 방식으로 편곡한 것이었다.

 

  관중은 몇 없었지만 그는 매순간 최선을 다했다.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연주에 빠져들었다. 마지막 곡을 부르고 나자 공원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벌써 시간이 이래 됐나."

 

  민호가 버스킹을 마치고, 뒷정리하려고 허리를 굽혔다. 그때 시야에 낯선 여자가 들어왔다. 그 여자가 얼굴을 들이밀며 눈을 반짝였다.

 

 "끝났어요? 한 곡만 더 들려줘요."

 

  그는 고개를 뒤로 빼며 낯선 여자를 살폈다.

 

  짧은 금발 머리, 이국적이지만 동양적인 얼굴, 멜빵 청반바지에 가슴까지 푹 파인 반팔티, 반팔티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친 선글라스까지. 허리를 숙인 그녀의 가슴이 살짝 보이는 듯했다. 순식간에 그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 여자는 흙이 묻은 돌난간에 앉으며 그의 연주를 기다렸다.

 

  민호는 오랜 연주로 느슨해진 기타 줄을 세게 조였다. 단 한 명뿐인 관중이었지만, 분명히 자신의 연주를 기다리고 있었다. 최고의 연주를 들려주기 위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아아, 무정한 사랑. 아아, 매정한 사랑. 떠나려면 떠나. 사나이가 한 입으로 두말 하나."

 

  통기타 소리와 허스키한 목소리가 밤하늘을 구슬프게 울렸다. 사투리가 섞인 억양이 노래와 잘 어울렸다.

 

 "앵두 같은 그 입술로 영원하다고 말했지. 말은 못 믿어도 그 입술은 믿었어. 어찌 떠난단 말이냐. 떠나려거든 그 입술을 놓고 가. 아아, 무정한 사랑. 아아, 매정한 사랑. 떠나려면 떠나. 사나이가 한 입으로 두말 하나."

 

  두 눈을 감고 노래를 부르는 그에게 달빛이 비스듬히 쏟아졌다. 그의 반곱슬머리, 계란형 얼굴, 큰 눈과 짙은 눈썹, 눈 밑 두툼한 애교살, 햇빛에 약간 그을린 피부가 은빛으로 물들었다.

 

 "아아, 무정한 사랑. 아아, 매정한 사랑. 사나이는 말이 없다. 떠나려면 떠나. 사나이가 한 입으로 두말 하나."

 

  민호가 마지막으로 기타 줄을 튕기며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여운이 밤공기 속으로 스며들었다.

 

 "우와!"

 

  낯선 여자는 놀란 얼굴로 마구 손뼉을 쳤다.

 

 "가수예요? 진짜 너무 너무 너무 너무 좋았어요!"

 

  그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에게 한달음에 다가갔다. 그는 쑥스러운 듯 어색하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 아니요. 아직 가수는 아니고."

 "방금 그 곡 뭐예요? 직접 작곡한 거예요?"

 "아, 모르는구나. 이 곡이 원래 트로트 곡인데 내가 리메이크 한 건데."

 

  민호는 조금 경직된 얼굴로 기타를 매만졌다. 낯선 여자는 여전히 흥분이 가시지 않은 듯 제자리에서 방방 뛰며 감탄했다.

 

 "어떻게 그렇게 잘 불러요. 처음 듣는데 노래가 정말 좋아요!"

 "글쵸? 그기 울 아부지 곡이라이까요."

 "아부지? 아하! 아버지! 아버지가 가수에요? 우와! 아버지도 가수, 아들도 가수. 정말 대단해요!"

 "에이, 그 정도는 아닌데. 다른 곡도 있는데 함 들어볼래요?"

 "네! 네! 또 해줘요!"

 

  그녀가 주먹을 꽉 쥐고 열광했다. 그는 덩달아 즐거워 하며 연주를 시작했다.

 

  공원에 신나는 노랫소리가 울려퍼졌다. 달빛은 그들을 비추는 조명이고, 별들은 그들을 지켜보는 관중이었다. 그들은 통기타 소리에 맞춰 함께 춤추고, 노래하며 즐겁게 놀았다. 공연은 자정이 넘어서까지 이어졌다.

 

  민호는 더이상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놀다가 돌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서늘한 밤바람에 땀이 식으면서 시원해졌다.

 

 "집에 안 가요? 많이 늦었을걸요."

 "어차피 멀어서 못가요. 지쳤어요?"

 

  그녀가 그를 따라서 돌바닥에 편하게 앉았다. 그녀의 얼굴에 아직도 활기가 넘쳐 흘렀다. 그는 헛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때리 죽여도 더는 못 해요."

 

  그가 아예 바닥에 드러누워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에 벤치 옆에 세워진 민트색 캐리어가 보였다.

 

 "여행 왔어요? 얼마나 멀길래 집을 못 간대요?"

 "프랑스요."

 

  낯선 여자가 웃으며 말했다. 민호가 벌떡 일어나며 경악했다.

 

 "프랑스요? 그럼 외국인!"

 "외국인은 맞아요. 그런데 나도 한국인이에요. 어렸을 때 프랑스에 입양됐거든요. 내 이름은 지수에요. 그쪽은요?"

 

  지수는 엄청난 일을 아무렇지 않게 설명했다.

 

  민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녀를 봤다. 한 번에 많은 정보가 들어와서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녀의 순진무구한 얼굴이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어... 우민호에요."

 "민호 씨구나! 반가워요! 오늘 한국에 처음 와서 길도 헤매고, 배도 고팠는데. 이렇게 민호 씨를 만나고 최고예요! 좋은 음악을 들려줘서 감사합니다!"

 

  그녀가 앉은 채로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는 얼떨결에 같이 고개를 숙였다. 그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오, 오늘 한국에 왔다고요?"

 "네. 오전에 인천 공항에 도착했어요."

 "공항에 도착해서 뭐 했는데요?"

 "택시 타고 바로 서울에 왔어요. 택시 아저씨한테 서울 아무 곳이나 내려달라고 해서 막 걷다 보니까 이렇게 민호 씨를 만나게 됐어요. 정말 행운이에요."

 

  지수는 밝게 웃으며 진심으로 기뻐했다. 민호는 순간 그녀를 보고 말문이 막혔다. 더는 물어보기가 겁날 정도였다.

 

 "혹시... 오늘 잘 곳은 있어요?"

 

  그가 설마 하는 심정으로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몰라요. 아직 생각 안 해봤어요."

 "그, 그럼 어떻게 할라고요?"

 "민호 씨 가면 나도 잘 곳을 찾아봐야죠. 아니면 공원 벤치에서 자도 되고요."

 

  그녀가 쾌활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오히려 상대방이 놀라서 소리쳤다.

 

 "무슨 가시나가 공원에서 혼자 잔다고!"

 "가시나? 가시나가 무슨 뜻이에요?"

 "아, 아니...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여자 혼자서 공원에서 막 자고 그라면 큰일나요!"

 "괜찮아요. 나 태권도 검은띠에요. 나쁜 놈들 오면 다 날려버릴 수 있어요."

 

  지수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앞차기, 옆차기를 선보였다. 그녀의 튼실한 다리가 밤공기를 갈랐다.

 

  민호는 태권도 시범을 보이는 그녀를 보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이렇게 겁도 없고, 순진무구한 여자는 처음이었다. 이대로 그녀와 헤어지기가 아쉬웠다.

 

 "우리집에 갈래요? 우리집 거실이 음층나게 넓은데 거실에서 자면... 그쪽을 거실에서 재우겠다는게 아니라, 내가 거실에서 자고 그쪽이 내 방에서 자고. 방에서 문 잠구면 걱정 하나도 할 거 없으이까. 그기 정 잘 곳이 없으면..."

 "진짜요? 민호 씨. 고마워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반짝였다. 그는 전혀 의심 않는 그녀를 보며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그럼 정리하고 바로 가요. 여기서 가까우니까 걸어서 이십 분만 가면 돼요."

 

  그들은 각자 음향 장비와 캐리어를 들고 공원을 나갔다.

 

  한밤중이라 날씨가 서늘했다. 거리는 휑 하고, 도로에도 차가 가끔씩 지나갈 뿐이었다.

 

 "그런데 왜 한국에 왔어요?"

 

  민호가 옆에서 잘 따라오는 지수를 보며 물었다. 지수는 여전히 기운이 넘쳐 보였다.

 

 "낳아준 엄마를 찾으러 왔어요."

 

  그녀가 말을 뜸 들였다. 멀리서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리고 내 첫사랑도."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상처가 없을 것 같은 그녀가 왠지 누구보다 아파하고, 슬퍼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녀에게 어떤 위로의 말이라도 해주고 싶었다. 그때 그녀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낳아준 엄마에 관한 건 사진 한 장밖에 없어요. 첫사랑은 이름밖에 모르고. 앞으로 어떻게 찾을지 조금 걱정이긴 해요."

 

  지수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앞날을 걱정했다.

 

  민호는 그녀의 대책 없는 말에 현기증이 났다. 잠시나마 그녀에게 건네려 했던 위로의 말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그녀에게 필요한 건 분명 위로가 아니었다.

 

  그들은 일 층에 카페가 보이는 삼 층짜리 빌라 앞에 섰다. 그가 집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그녀에게 당부했다.

 

 "지수 씨. 평소에 부모님이 걱정 많이 하시죠?"

 "네? 조, 조금이요?"

 "조금이 아니라 엄청나게 걱정할 걸요. 내야 지수 씨한테 나쁜 맴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래도. 다른 놈이 이렇게 집에 오라고 한다고 아무나 막 따라가면 안 돼요. 절대."

 "에이. 내가 어린애도 아니고. 아무나 막 안 따라가요."

 

  그녀가 손사래를 치며 호언장담했다. 그녀의 얼굴에 경계심이 일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건물로 들어갔다.

 

  둘은 계단을 타고 이 층으로 올라갔다. 민호가 현관문 앞에서 잠시 주의사항을 말했다.

 

 "집 안에 들어가면 조용히 해야 해요. 혼자 사는 게 아니라 같이 사는 형이 있어서."

 

  지수는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집으로 들어가자 어두워서 실내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신음과 함께 우당탕탕 소리가 울렸다.

 

  그가 깜짝 놀라서 뒤돌아봤다.

 

 "미안해요..."

 

  그녀는 깨금발을 든 채로 떨어진 커피 분쇄기를 주워 들었다.

 

  그는 침착하게 커피 분쇄기를 내려놓으라고 손동작 했다. 그녀가 커피 분쇄기를 제자리에 내려놓는 것을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그러다 갑자기 본인의 방 상태가 기억난듯 그녀를 급하게 소파에 앉혔다.

 

 "잠만요! 잠만 소파에 앉아 있을래요. 방이 지저분해서 좀만 치우게요."

 "괜찮은데."

 "좀만 있어요. 금방 올게요."

 

  그가 허겁지겁 방으로 달려갔다. 방은 오전에 급하게 나왔던 상태 그대로였다. 빠르게 방을 정리하고, 거실로 나갔다. 거실 소파에는 그녀가 앉은 채로 미동이 없었다.

 

 "뭐고. 마이 피곤했나보네."

 

  지수는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곤히 잠들어 있었다. 시종일관 밝은 표정만 짓던 그녀의 잠든 얼굴을 보니 이상하게 가슴이 아렸다. 그녀의 진짜 얼굴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민호는 잠든 그녀를 소파에 조심히 눕혔다. 방에서 긴 담요를 들고 와서 그녀의 몸에 덮어줬다. 그녀의 쌔근거리는 숨소리가 거실에 울렸다.

 

  새벽은 느리게 찾아왔다. 그녀는 좋은 꿈이라도 꾸는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

 

  동화 속 공주는 항상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깊은 숲속에 살고 있다. 그곳에서 일곱 난장이와 아기 새, 귀여운 다람쥐와 함께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며 백마탄 왕자가 나타나길 기다리는 것이 흔한 동화 공주 이야기이다.

 

  그러나 내 꿈 속에 나오는 공주는 그 반대다. 멋진 공주가 예쁜 왕자를 구출해내는 팜프파탈의 주인공! 그게 바로 나!

 

  성 안에 마녀에게 사로잡힌 예쁜 왕자가 보인다. 커다란 검을 들고, 마녀의 성으로 멋지게 돌진한다.

 

 "예쁜 왕자님... 내가 찾으러 왔어요... 왕자님!"

 

  번쩍 눈을 떴다. 꿈속에 나왔던 예쁜 왕자가 사라졌다.

 

  안 돼! 나의 예쁜 왕자, 고독한 씨!

 

  다시 꿈을 꾸기 위해 필사적으로 잠을 자려 했다. 햇살이 감은 눈 위로 쏟아졌다. 밝은 빛 때문에 그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다.

 

 "으으. 너무 밝아."

 

  눈을 비비며 상체를 일으켰다. 조금씩 정신이 들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현대식 주방과 거실이 훤히 보였다.

 

 "어제 깜빡 잠들었구나."

 

  소파에서 일어나서 거실을 돌아다녔다. 거실은 혼자서 살기에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컸다. 그러나 크기에 비해 놓여진 소품과 가전 제품은 적었다.

 

  방이 엄청 깔끔하잖아. 아무도 살지 않는 것 같아.

 

 "민호씨? 민호씨."

 

  작은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집은 이른 새벽의 거리처럼 조용했다. 그때 위층에서 무슨 소리가 났다. 누군가의 발소리가 거실에 울렸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시선이 돌아갔다. 그곳에는 집 안에 위층으로 연결된 계단이 있었다.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민호 씨에요?"

 

  계단을 내려오는 누군가의 다리가 보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가 한 계단씩 내려왔다. 누군가의 몸이 반정도 내려오자 그의 목에 메인 스카프가 보였다. 서서히 그의 얼굴이 나타났다.

 

  그를 보자 놀라서 입이 벌어졌다. 그도 내 눈을 마주보며 눈을 크게 떴다. 우리는 동시에 소리쳤다.

 

 "고독한 씨!"

 "쿠키 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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