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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마지막 봄
작가 : 로리칼국수
작품등록일 : 2019.10.4

(정통소설/피폐)

전 세계의 질서가 무너져내린 이후 매서운 겨울이 찾아왔다.
남아있는 생존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흩어졌고, 얼어붙은 세상에 남은 마지막 불씨는 꺼져버렸다.

이 버려진 도시에 홀로 남겨진 소녀는 이제 잃어버린 가족들을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나야만 한다.

 
6화
작성일 : 19-10-09 21:00     조회 : 20     추천 : 0     분량 : 3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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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봄. 외자로 봄. 윤 봄이야.”

 

  “그렇구나.”

 

  소년의 호기심 가득 찬 눈동자가 하늘로 올라가더니 입술을 우물거렸다. 소녀가 알려 준 이름을 한참 동안 몇 번이고 곱씹어 보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볼일 없으면 간다.”

 

  “그러면, 누나.”

 

  더 이상 할 말이 없어 뒤돌아 가려는 봄이를 소년이 다시 불러 세웠다. 봄이에게 생소한 이 단어는 그녀의 귀에 굉장히 어색하게 들렸다.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기분 나쁜 호칭은 아니었다.

 

  “짜증나는 녀석이네. 용건이 있으면 빨리 말해.”

 

  “나도 같이 다니게 해 줘.”

 

  “뭐?”

 

  소년의 입술에서 툭 튀어나온 이 한 마디가 봄이를 엄청나게 많이 생각하게 만들었다. 봄이가 당황해서 말을 잇지 못하는 도중 소년이 끼어들었다.

 

  “누나는 귀가 안 좋은가 봐. 아까부터 계속 되묻기나 하고.”

 

  소년의 또렷한 목소리에는 솔직함이 묻어났다. 장난을 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소년의 말투와 눈동자만을 보자면 험난한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그야말로 완전히 세상 물정 모르는 순백한 어린애였다. 물론 생긴 걸로는 깨끗함과는 거리가 먼 것을 넘어 완전히 정반대였지만, 그렇기 때문에 애 보기에 익숙하지 않은 봄이가 상대하기 더욱 골치 아픈 상대였다.

 

  “같이 다니게 해 달라니, 나는 가진 것도 없고 잠잘 곳도 없어. 물론 같이 다니지도 않을 거지만 만약 너랑 같이 다닌다고 해도 나에게 득될 것도 없고 너한테도 딱히 도움은 안 될 거야.”

 

  소년이 싱긋 웃고는 대답했다.

 

  “잠잘 곳이라면 있어.”

 

  솔직히 말해서 봄이는 자꾸 귀찮게 달라붙는 소년을 한시라도 빨리 쫓아내고 싶었지만, 소년이 방금 꺼낸 말을 듣고 솔깃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봄이는 지금 자신이 처한 비참한 상황에 엄청나게 힘들어 하고 있었으니까.

 

  “잘 곳이 있다니, 어디에? 주차장, 지하철 역, 여관 이런 곳은 아니겠지. 그것도 아니면 혹시 너희 집이야?”

 

  “아니.”

 

  마구 궁금해진 봄이의 질문에 소년이 고개를 젓고는 대답했다.

 

  “우리 집이야.”

 

  봄이는 굉장한 것을 말하려다 타이밍을 놓쳐 버린 사람처럼 벙찐 얼굴로 소년을 쳐다보았다. 방금 전에 한 ‘너희 집이 아니냐’는 질문의 답에 태클을 걸까 생각했지만 그냥 놔두기로 했다. 어찌 되었든 간에 지금 봄이의 처량한 신세보단 훨씬 나은 곳일 가능성이 높았으니까.

 

  오늘 처음으로 만난 멍청한 꼬마의 말을 믿고 남의 집에 신세를 진다는 것이 봄이는 영 내키지 않았지만 이 소년을 잘 이용해먹으면 충분히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만약 꼬마의 부모님이 그녀에게 적대적이라고 해도 소년이 데려온 손님을 내쫓는 데에서 그치지 때려 죽이기야 하겠는가. 불순한 목적을 생각해 낸 봄이의 자신감이 커졌다. 봄이가 소년을 돌아보며 말했다.

 

  “좋아. 그러면 우선 그 집부터 좀 안내해 줘.”

 

  그 말을 들은 소년은 말없이 또 싱긋 웃고는 봄이를 앞질러 걸어갔다. 봄이도 곧장 소년의 뒤를 따랐다.

 

  눈이 쌓여서 소년이 걷기에 힘든 점이 많을 텐데도 소년의 속도는 이상할 정도로 상당히 빨랐다. 어쩔 때는 봄이가 눈이 한가득 쌓인 구덩이를 지나다가 낑낑거리며 뒤처지기도 했다. 소년도 이 사실을 모르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뒤 한 번 돌아보지 않는 거침없는 소년의 발걸음에 변화는 없었다. 봄이는 욕하고 싶은 감정을 억누르며 꿋꿋이 소년의 뒤를 따라갔다. 소년의 뒤를 정신없이 따라가느라 봄이가 그토록 보기 좋아하는 얼음 건물도 거의 볼 기회가 없었다.

 

  소년이 어떤 집 앞에서 걸음을 멈추자 열이 뻗칠 대로 뻗친 봄이도 씩씩거리며 멈췄다. 소년은 그런 봄이는 안중에도 없는 듯 여전히 웃으며 말했다.

 

  “다 왔어. 여기야.”

 

  봄이는 힘겹게 신경을 누그러뜨리고 소년이 가리키는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예전 세상에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아파트는 아니었지만 봄이가 사냥꾼들에게 쫓겨 나와 버리고 도망칠 수밖에 없었던 1층짜리 단독주택과 비슷한 2층 주택이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어딘가 그리운 느낌이 나는 집이기도 했다.

 

  “여기가 우리 집이야.”

 

  소년은 한결같이 웃는 얼굴로 봄이를 대하고 있었지만 봄이는 무언가 이 집에서 풍기는 이상한 기운을 느꼈다. 봄이 자신도 잘 몰랐지만 이 허름한 2층짜리 집을 쳐다보기만 해도 눈앞이 어질어질하고 두통이 몰려오는 것 같았다. 봄이는 그저 피곤함과 스트레스가 누적되어 쌓인 결과물이라고 생각하고 애써 이겨냈다. 이런 봄이와는 달리 지저분한 소년은 눈이 오는 날 산책 나온 개처럼 마냥 기분 좋은 모양이었다.

 

  “들어가자.”

 

  소년이 말하고 재빨리 대문으로 달려가 온통 하얀 세상과는 달리 유일하게 구릿빛으로 빛나고 있던 문의 비밀번호를 누르지도 않고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봄이도 지끈거리는 머리를 가까스로 부여잡고 소년을 따라 허름하고 보잘것없는 2층 단독주택 안으로 들어갔다.

 

  소년이 열었던 문이 닫히고 나서 봄이는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 집은 사람이 살 수 있을 만한 곳이 아니었다. 바깥에서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 이상할 만큼 집 안 내부 상황은 처참했다. 신발장에는 낡은 신발들 대신 무엇인가에 마루가 긁힌 것 같은 날카로운 자국과 흙자국이 남아 있었고, 집 안 신발장으로부터 이어지는 갖가지 화장실이나 방들에까지 누군가가 진흙탕에서 구른 다음 집 안으로 들어와 아무렇게나 뛰어다닌 것 같은 발자국들이 미세하게 남아 있었다.

 

  1층 창가의 베란다에는 식물 화초가 많이 놓여 있었지만 화분의 반이 부숴지거나 조각나 있었고, 그 처참함을 설명하기라도 하듯 화초장과 베란다 바닥 사이에는 화분에서 흐른 것 같은 흙줄기들이 선명하고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무엇보다 심각했던 것은 화초장이 있는 창가의 유리창 전부가 불규칙적이긴 해도 성인 남자들이 출입할 수 있을 만큼 완전히 깨져 있었다. 날카롭고 치명적인 유리 조각들이 아이들의 장난감처럼 집 안으로 아기자기하게 흩어져 있었다. 마치 밖에서 누군가가 깨고 들어왔던 것 같았다. 뿐만 아니라 집 안 여기저기에 미미하게 남아 있는 핏자국들도 예사롭지 않았다. 큰 싸움이 일어났던 곳 같았다.

 

  봄이는 이 광경을 보자 머리가 정신을 잃을 정도로 띵하게 울렸다. 마치 머릿속이 깊이도 없고 끝도 없는 심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아까부터 자꾸 봄이가 눈을 찡그리며 머리를 만져대자 소년이 여전히 반짝이는 눈빛으로 물음표를 띄우고 봄이에게 물었다.

 

  “누나, 왜 그래. 어디 아파?”

 

  “너, 이런 데서 사는 거야? 부모님은 어디 가셨어?”

 

  “그런 사람들은 없어. 다 돌아가셨어.”

 

  봄이의 눈동자가 커졌지만 소년만은 절대로 미소를 잃지 않았다. 봄이는 이 짧은 순간동안만은 그렇게 슬픈 일을 아무런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소년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전부 돌아가셨다고?”

 

  “응.”

 

  뭐가 그렇게 기분 좋은 건지 소년이 다시 실실 웃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멍한 눈으로 소년을 바라보던 봄이의 시선이 점점 경멸적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런 끔찍한 일을 당했는데도 웃음이 나와?”

 

  금방이라도 떨려서 주저앉을 것 같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봄이의 시선을 의식한 후 소년이 다시 약간의 간격을 두고 말했다.

 

  “잘 모르겠는걸.”

 

  소년의 양 어깨를 단단히 붙잡고 소년의 눈을 경멸적으로 쳐다보던 봄이의 눈빛이 점점 강해지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눈에 힘이 풀려 버렸다.

 

  “뭐, 좋아. 내가 신경 쓸 일도 아니니까.”

 

  그러면서 봄이는 소년의 어깨를 놔주었다. 소년의 잘못이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지금은 새끼 고라니만큼 멍청한 꼬마를 상대하는 데에 쓸 기운 따위는 남아 있지 않았다. 이미 아까부터 극심한 현기증과 두통을 느끼며 봄이의 몸과 마음은 지쳐 있었다.

 

  “좀 쉬어야겠어. 그런데 아무래도 여기서는 편히 못 쉴 것 같은데.”

 

 “1층이 마음에 안 든다면 2층도 있어. 안내해줄까?”

 

 “됐어. 내가 알아서 할게.”

 

  변함없이 활기찬 얼굴을 하고 있는 소년을 뒤로하고 봄이는 천천히 2층으로 통하는 계단을 올랐다.

 

 
작가의 말
 

 감사합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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