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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백색살인
작가 : BLED
작품등록일 : 2019.9.30

 
백색살인(9화)
작성일 : 19-10-05 22:32     조회 : 14     추천 : 0     분량 : 4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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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이른 아침 식사를 마친 뒤 김 대위는 다시 부대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위대가 틀어 놓은 확성기에서 똑같은 노래가 끊임없이 반복되어 들렸고, 최대한으로 높힌 볼륨은 귀를 따갑게 하고 있었다. 김 대위는 경계 근무를 서는 장병들에게 귀마개를 착용하도록 했지만 워낙 확성기 소리가 커서 별 효과는 없었다.

  계절은 겨울의 중심으로 향해 가고 있었고 불어오는 바람은 매섭기가 그지없었다. 각 초소를 순찰한 김 대위는 마지막으로 정문 초소로 들어갔다. 매서운 추위에도 거총을 하고 몸을 웅크린 채 시위대를 바라보고 있는 보초병의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다. 김 대위는 보초병들의 사기를 돋우기 위해 일부러 과장되게 초소의 위장막을 손으로 잡아 흔들었다.

  아침 10시가 조금 넘자 저 멀리에서 시위대들의 고함 같은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이 내지르는 함성과 노래 소리는 언제나 시위대보다 먼저 다가왔다. 그 함성과 노래 소리에는 시위대들의 분노와 폭력이 함께 석류알처럼 박혀 있었다. 김 대위는 방탄 헬멧을 쓰고 천천히 연병장으로 걸어 나갔다.

  부대 정문 앞에는 이중의 바리케이드가 쳐져있었고 그 앞에는 두툼한 방석복(防石服을) 입은 경찰 2개 중대 병력이 헬멧과 방패로 무장하고 열을 맞춰 서 있었다. 시위대의 걸음 속도는 아주 더뎠다. 어차피 목표물을 빼앗고자 하는 싸움이 아닌 터라 굳이 시간을 아껴 서두를 필요가 애당초 그들에게는 없었다.

  김 대위는 정문 초소에 서서 시위대의 행동을 눈여겨보았다. 11시쯤 되었을 때 시위대를 이끄는 ‘투쟁본부’의 위원장과 범시민단체장들이 부대 앞에 모여들었다. 그 뒤를 수백 명의 시위대가 열을 지어 모여들기 시작했고, 시위대들은 저마다 붉은 깃발들을 들고 있었다.

  그 깃발 중에는 저 멀리 전라도나 경상도 지명이 적혀 있는 것들도 있었다. 더 이상한 것은 이 동네와는 전혀 상관도 없을 것 같은 ‘방사능 폐기물 처리장 건설 절대 반대’나 ‘전국금속노조’라고 쓰인 깃발들이었다. 그런 깃발들일수록 더 사납게 바람에 펄럭거렸다.

  세찬 바람에 찢어질 것처럼 펄럭이는 깃발이 만들어 내는 아우성 같은 소리와 확성기에서 반복되어 쏟아져 나오는 투쟁가, 평생 불러 본적도 없었던 시위노래를 따라 부르는 사람들이 내는 소리가 어우러져 부대 앞은 마치 도떼기시장처럼 시끄럽고 번잡스러웠다. 시위대들은 그들이 만드는 소음 크기와 자신들의 투쟁 의지가 정비례한다고 믿는 것 같았다.

  시위대는 꽁꽁 얼어붙은 땅바닥에 미리 준비해 온 작은 스티로폼 깔판을 깔고 앉아 있었고, 시위를 주도하는 지도부 사람들과 외부 초청 인사들이 돌아가면서 거칠고 자극적인 언사로 시위를 독려했다. 그들의 독려가 끝날 때마다 선창자와 시위대가 악을 쓰듯이 째지는 목소리로 ‘물러가라’를 반복해 소리쳤다.

  김 대위는 그런 시위대를 아무 감정 없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이미 익숙해진 광경들이었다. 이제 정오쯤이 되면 시위대들의 무력 행동이 시작될 것이고, 경찰 병력은 이들을 몸으로 막아내겠지만 결국에는 시위대들에게 부대 정문 앞까지 내줄 것이다.

  이 모든 과정들이 어쩌면 암묵된 서로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부대 정문 앞까지 차지한 시위대는 한동안 그곳에서 농성을 벌이다가 오후 늦게 쯤 시위를 해산하고 돌아 갈 것이다. 김 대위는 불상사만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 대위의 바램 덕인지 오늘 시위는 예상보다 온건한 모습이었다. 그런 시위대를 보면서 김 대위는 다행이다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시위가 끝날 때까지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어 초소를 순찰하면서 부대 밖의 동향을 눈여겨 살폈다.

  그러나 오늘따라 시위대는 농성만 요란하게 할 뿐 별다른 과격한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시간은 정오가 다 되어 가는데도 평소처럼 부대 정문으로 진입을 시도하지도 않았다. 분명 예전과는 다른 양상이었다. 김 대위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별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

  부대 안에서는 시위대의 행동을 전부 파악할 수가 없었다. 그들의 움직임을 파악하려면 그들보다 높은 장소가 필요했지만 부대 내에는 그런 높은 곳이 없었다. 그래서 부대 안에서는 앞쪽에 몰려있는 시위대만 보일뿐 시위대의 뒤쪽에서 하는 행동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시위의 강도나 양태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시위대보다는 시위를 주도하는 지도부나 핵심 주동자들의 행동을 파악해야 했지만, 이들은 대개 시위대의 후면에서 눈에 띠지 않게 활동을 했다. 앞을 막고 있는 시위대는 뒤에서 꾸미고 있는 것을 가리기 위한 가름막 역할을 할 뿐이었다.

 

  그렇게 지루한 농성과 대치가 이어지고 있었다.

  이미 해는 중천을 넘어 오후로 접어들고 있었다. 김 대위는 먼저 부대원들을 교대로 점심을 먹게 한 뒤 시위대와 대치중인 경찰 병력도 부대안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게 했다. 점심 후에도 시위대에서는 별다른 움직임은 없었고 짧은 오후의 햇살이 뉘엿뉘엿 기울고 있었다.

  오늘은 별다른 움직임이나 불상사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김 대위는 사무실로 돌아와 잠시 휴식을 취했다. 의자에 몸을 뉘자 피로가 밀려왔다. 그러나 그 휴식은 금방 끝나고 말았다. 사무실의 문이 벌컥 열리며 최 중위가 사색이 되어 뛰어 들어왔다.

  “중대장님!!! 큰일 났습니다. 제가 일을 저지른 것 같습니다.”

  김 대위는 최 중위의 말이 무슨 뜻인지 곧바로 알아듣지 못했다. 조금 전까지 자신이 직접 일일이 주변의 움직임을 확인하고 돌아왔는데 그새 무슨 화급한 일이 발생했다는 것인가.

  그러나 예상치도 못했던 일들이 김 대위가 모르는 곳에서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었다. 김 대위는 손에 쥐고 있던 지휘봉으로 탁자를 내리치며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최 중위에게 소리쳤다.

  “최 중위!!! 무슨 일이야? 진정하고 차근차근 보고 해봐! 장교답지 않게 이게 뭔가!”

  김 대위의 호통에 마치 깊은 물속에서 자맥질을 하고 수면위로 올라 온 사람처럼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최 중위가 보고를 했다.

  “관측병들이 시위대에게 발각되어 지금 붙잡히기 직전입니다!”

  “관측병이라니?!…….”

  “중대장님. 죄송합니다.”

  “..........”

  순간 김 대위는 어제 했던 작전회의가 떠올랐다.

  “그럼 어제 최 중위가 제안했던 관측병들을 실제로 부대 밖으로 내보냈다는 거야?”

  “예……. 죄송합니다.”

  최 중위의 말을 들은 김 대위는 불현듯 뱀의 꼬리를 밟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정말 사나운 독사에게 발목을 물린 것처럼 따끔함이 느껴졌다. 이제 독사의 이빨에서 나온 독은 자신의 핏줄을 타고 온 몸을 돌다가 심장을 물어뜯을 것만 같았다. 가슴이 터져 버릴 것처럼 뻐근해져 왔다.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니다…….’

 

  격렬한 시위는 삼 개월째로 접어들었지만 조금도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부대 이전 계획도 차일피일 미루어졌고, 하고 있던 공사도 중단되어 버렸다.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는 김 대위의 중대만 어정쩡한 상태로 계속 그곳에 머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오랫동안 이어지는 시위와 언제 부대 이전 계획이 완료될지도 모르는 불안감 속에서 부대원들의 피로감은 날이 갈수록 쌓여만 갔고, 부대원들의 사기는 말이 아니었다. 이제는 정말 자신들이 시위대의 주장처럼 청산되어야 할 나쁜 군인들일지도 모른다는 자괴감마저 들 정도였다. 더 이상 그들에게 어깨와 가슴에 달린 부대 마크와 휘장이 자랑스러움이 아니었다.

  언제 어디에서 터질지 모르는 폭탄처럼 부대는 팽팽한 긴장감으로 일촉즉발의 분위기였다. 그렇다고 경계를 소홀히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상급부대에서는 불상사만 나지 않도록 김 대위가 알아서 처리해 줄 것만 요구할 뿐 아무런 지원도 하지 않았다.

  매일 아침 김 대위의 사무실에서 열리는 작전회의도 무력감에 빠져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시위대에 대한 뾰족한 대책이 없는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불상사만 생기지 않도록 병사들에게 정신 교육을 강화하자는 말밖에 없었다.

  회의 말미에 작전 장교인 최 중위가 관측병을 운영하자는 제안을 했다. 부대 우측에 있는 600고지 능선에 관측병을 매복하면 시위대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의견이었다.

  그러면 시위대의 움직임을 한 눈에 알 수가 있고, 그들의 움직임을 미리 알 수 있다면 지금처럼 모든 부대원이 밤낮으로 경계 업무에 매달리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최 중위의 제안은 그런대로 괜찮은 묘안일 것 같았다.

  관측병이 정확한 정보를 보내온다면 시위대의 움직임을 미리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대처할 수 있기에 부대원들은 다소나마 여유를 가지고 휴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2소대장인 박 중위도 좋은 생각이라면서 찬성을 했다.

  그러나 김 대위는 섣불리 그들의 의견에 찬성을 할 수가 없었다. 최 중위의 의견이 군작전상으로는 타당하고 적절한 의견이었지만, 민간인들을 대상으로는 해서는 안 될 행위라는 판단이 들었다.

  잘못하면 군인이 민간인을 사찰하고, 민간인들의 시위에 군대가 개입했다는 더 큰 문제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다분했다. 그것은 군인이라면 반드시 피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었다.

  회의는 그렇게 끝났다. 김 대위는 최 중위의 의견이 타당하지만 실행할 수 없다는 지시를 분명히 내렸다. 그때 최 중위도 분명히 자신의 지시를 받아들였다. 당연히 관측병의 매복 의견도 없었던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 최 중위의 보고로는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김 대위는 한숨을 내쉬었다.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지금은 어떤 행동이 올바른지 판단할 여유가 없었다. 그렇다고 그냥 있을 수만도 없는 일이었다.

  김 대위는 또 한 번 마음속에 좌절감이 드는 것을 느꼈다. 운명은 한 번도 자기를 그냥 내버려두질 않았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운명은 자기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 도도한 운명이란 물줄기 속에서 자신은 그저 작은 나무토막처럼 운명이 흘러가는 대로, 이끄는 대로 떠내려갈 뿐이었다. 운명은 그렇게 자기를 알 수 없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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