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같은 불경기에 손님이 있겠어? 겨우 임대료 낼 정도다. 너는 요즘 어떻게 지내?”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손때만 묻히고 앉아, 했던 말 또 하는 잔소리만 늘여놓고 있었다. 이때마다 애리는 두희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따옴표 하나 틀리지 않고, 어디서 주워담아온 명언들을 섞어 장사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등의 주절대는 말들은 모두 초지일관했다. 기억력 하나는 최고라는 찬사를 보내고 싶을 정도였다.

　아니면 그 나물의 그 밥들끼리 어울리다 보니 더 이상 사고의 발전은 없고 답보 상태가 아닐까?

　저렇게 늙어가는 모양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안타까워할 때도 있었다. 오늘도 불경기와 임대료란 주제를 먼저 던져 주었기 때문에, 먼저 건물주에게 요즘 같은 불경기에 임대료를 낮춰주지 않으면 옆 건물로 이사 간다는 협박으로 임대료를 낮추라는 말부터 시작해, 보세는 장사가 되지 않으니 조금 더 투자해서 유명 브랜드 골프 옷을 팔아라 등등.

　시내에서도 변두리에 속하는 여기서 골프 옷을 살 사람이 어디에 있다고 자기 생각만을 가지고 떠들고 있었다. 다행이 이번에는 시내로 나가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거기는 더 치열하다는 말을 이미 들어서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똑 같은 레퍼토리가 바뀔 때가 됐다는 애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튀어나온 말에 ‘또!’라는 느낌을 받았지만 애리 귀를 솔깃하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필드 한번 가자. 전액 공짜!”

　말이 전액이지 캐디와 밥값은 공짜가 아니란 것 정도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솔깃해서 물었다.

　“어디서 났는데?”

　“응! 병식이 오빠 알지? 그 오빠가 자기 회사 건물에 있는 한 층 전체를 스크린골프장으로 바꿨더라. 홍보도 할 겸해서 같이 가자고 하니까 부담 가지지 말고 다음주에 월요일에 시간 한번 내봐.”

　“글쎄! 공짜라고 하니 좋긴 한데 그날 후로 골프 채 잡지 않았으니 벌써 2년이 지난 것 같다. 쳐질까?”

　“오빠 스크린골프장에 연습장도 있으니 가기 전에 몇 번 연습하고 가면 되지. 사람들 끌려고 하는 상술이니까 눈 찔끔 감고 따라 갔다가 바빠서 못 간다고 해버리면 돼. 일단 같이 가는 걸로 한다.”

　백수가 더 바쁘다고 두희는 이 말만 하고 바쁘다면서 나가버렸다. 며칠이 지나고 애리는 두희가 알려준 허병식의 회사로 갔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거긴 천명구가 지은 주상복합아파트 바로 맞은 편에 있는 건물이었다. 허긴 거의 모르는 사람처럼 지냈으니 여기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도 당연한 것이었다. 천명구의 주상복합아파트는 어리어리했다.

　가끔 지나치다가 아는 사람이 저 건물 주인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가 곧 미친년이라 생각을 하면서 자신을 곱씹기도 했다. 가까이서 보니 더 어리어리해서 감상을 하듯이 뒷목이 꺾어질 정도로 꼭대기를 쳐다보고 있을 때, 빵빵거리는 소리에 놀라 한발 짝 뒤로 물러서 차를 쳐다봤다.

　창문이 스르르 내리면서 머리 하나가 밖으로 나왔다.

　“소 여사님! 여긴 어쩐 일로? 잘 냈어요?”

　천명구 사장이었다.

　“어! 안녕하세요. 사장님! 어머! 사장님! 저기 너무 멋져요!”

　애리가 시선을 주상복합아파트로 향하게 하고 호들갑을 떨었다.

　“자주 오세요. 지하에 스크린 골프장도 있으니까. 그러고 보니 병식한테 가는 모양이네요.”

　밖으로 끄집어 내놓은 골프 가방을 보고 물었다.

　“아! 예! 두희가 여기로 오라고 해서 왔어요. 사장님 연습장 그만둔 후로 오늘 처음으로 채 드는 날이에요. 호호호!”

　굳이 해도 되지 않을 말을 했다는 마음이 들면서 애리는 머쓱한 표정을 지었고 천명구도 머쓱하게 웃으면서 손을 흔들고 자기 건물로 가고 있었다. 건물만큼이나 어리어리한 차 꽁무니를 보고, 왜 죄지은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왜 들까?

　스크린골프장 한번 이용하는데 요즘 얼마지?

　주제넘은 생각을 해서인지 자칫하면 코딱지가 튀어나올 정도로 헛웃음을 치며 건물로 들어갔다. 여기도 어마어마하긴 마찬가지였다.

　호텔처럼 프런트도 있었다.

　대형 거울이 없어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한눈에도 위축감을 들게 하는 앳되고 호리호리한 아가씨가 방으로 안내를 했다. 불과 2년 사이에 세상이 이렇게 바뀌었나?

　신문지를 깔고 쪼그려 앉아 울고불고 하던 때가 역사책에 나오지도 않을 까마득한 옛 시절의 설화였는가? 들어왔던 출입문으로 고개를 돌려 다시 쳐다봤다.

　이렇게들 어리어리하게 살고 있는데 초상을 치르는 것처럼 울고불고했던 사람들은 전부 돈 주고 사온 그날 행사용 인력들이었나?

　그럼 내겐 왜 주지 않았지? 아차! 온다 간다 말도 없이 나왔지.

　천명구 연습장이 초가삼간이라면 여긴 한번도 가보지 못한, TV에서만 보는 오성 급 호텔이었다. 앳된 아가씨가 문을 열어주었다. 삐쭉 턱부터 넣었다.

　이런 젠장!

　입에서 바로 튀어나오려고 했지만 처음 보는 남정네가 있어 뻘쭉하게 눈인사만 하고 들어갔다. 어두컴컴한 방. 실제 골프장 같은 화면만 없었다면, 지금 이 분위기는 천명구 연습장에서 신문지를 깔고 좌판을 벌인 그때보다 훨씬 못한, 음탕한 상상을 유도하는 그런 방이었다.

　탁 터인 좌판에 검은 천막을 덮은듯한 분위기. 스크린골프장이란 이름만 없었다면 말로만 듣던 영락없는 섹시들과 같이 술 마시고 음란 행위도 하는 불법 술집이나 마찬가지였다.

　“어! 애리 왔어! 어서 와.”

　허병식이었다. 저 새끼가 언제 봤다고 반말? 제법 술에 취해 있었다. 아무런 표정도 없이 고개도 숙일 둥 말 둥 하면서 눈치만 살피고 있을 때, 이거 뭐야? 내가 지금 간택해 줄 놈을 기다리고 있는가? 남자라고 해봐야 두 놈밖에 없는데. 역겨운 생각도 같이 들고 있었다. 그렇다고 나갈 수도 없었다. 두희가 벌써 팔짱을 끼 채워 한 놈을 옆에 앉혔다.

　“오빠! 내 꼬치 친구! 애리! 예쁘지?”

　야! 이년아! 우리가 보지지 꼬치가 어디에 있나? 보지던 꼬치던 성기를 가지고 아무런 거리낌없이 말하는 두희와 같은 년으로 취급하지 않는가?

　걱정부터 된 애리는 무표정하게 고개만 까닥했다. 남정네도 마찬가지였다. 고개만 까닥하고 웃는 둥 마는 둥 입 꼬리만 올렸다 내리고 술부터 들이켰다. 두희가 이름도 말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아 다시 물어보려고 했지만 왠지 무시당하는 그런 기분을 들게 하는 그런 뻣뻣한 남정네였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가? 가슴이 조여왔다.

　“애리야! 연습 안 했다며. 앉아있지 말고 연습 좀 해. 그래야 산에 가서 산에 간 맛을 즐기지.”

　말끝이 너무 짧다는 생각은 했지만 차마 꼬집어 말조심하라고 경고도 하지 못하고 분위기에 휩쓸려 벌써 게임에 들어가고 있었다. 타수는 말 그대로 개판이었다.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을 때 천명구가 불쑥 들어와 음탕한 눈으로 힐끗 거리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