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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내겐 너무 소중한 그대
작가 : 카렌
작품등록일 : 2017.10.30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마술사학교'의 최종우승자 마술소녀 윤제이. 한달 전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아빠의 죽음에 무언가 숨겨진 음모가 있는 게 분명하다며, 제이의 주변 사람들을 차례차례 의심하는 수상한 그놈이 나타났다. 그놈의 정체는 사생활이 철저하게 비밀에 휩싸여 있는 독일에 국민마트 CEO 강철수. #티격태격, #알콩달콩, #로맨틱코미디, #츤데레 남주, #당찬 여주 habilis21@naver.com

 
1.마술소녀 납치사건
작성일 : 17-10-30 17:28     조회 : 244     추천 : 1     분량 : 8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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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아, 하아, 하아."

 

 귀신이 튀어나올 것같이 으스스한 폐건물에서 한 여자의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맨발로 계단을 향해 뛰어가는 여자가 내려가면서 뒤를 돌아보니 다행히도 자신을 따라오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달빛에 비친 여자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설마 나한테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이야. '

 

 제이는 행복해야 하는 생일날에 괴한들에게 납치를 당했다.

 

 귀갓길에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자주 가던 길이었기에 그곳에서 수상한 남자들의 습격을 받을 것이라곤 상상도 못 했었다.

 

 이상한 외국인들이 골목길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누가 미리 알려줬더라면, 절대 그 시간에 그 거리를 지나가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지금은 후회보다 도망이 먼저였다.

 

 널브러진 유리 조각에 발바닥을 찔려서 피가 흘렀지만, 아무런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제이는 지금 당장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살려면 당장 이곳을 빠져나가야 해.

 

 한시라도 빨리 밖으로 나가야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은 제이는 계속해서 계단을 내려갔다.

 

 범인들이 술 먹느라 정신이 팔려있는 사이에 가지고 있던 핸드폰으로 몰래 구조 요청 메시지와 현재 위치를 보냈다.

 

  [저 지금 납치됐어요. 살려주세요.]

 

 영어로 떠들던 사내 둘은 제이의 납치 성공을 자축하면서 보드카를 마시다가 잠이 들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경찰차의 소리를 확인하고 방에서 빠져나온 제이는 건물 밖에 분명히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경찰차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아니, 꼭 경찰차가 있어야만 했다.

 

 엉성하게 묶여있는 밧줄을 풀고 얼른 밖으로 나왔지만, 범인들이 언제 다시 깨어나서 자신을 쫓아올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쿵쾅쿵쾅.

 

 갑자기 계단 위에서 요란한 발소리가 들렸다.

 

  “Hey! Asian bitch!”

 

 금발 머리 소년의 성난 표정을 보고 제이는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주저앉을 뻔했다.

 

  '왜 이렇게 일찍 깨어난 거야. 분명히 코를 골면서 죽은 듯이 잠들어 있었던 걸 봤는데……!'

 

 제이는 있는 힘껏 출입구 쪽을 향해 달려갔다.

 

  '여기서 잡히면 나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지도 몰라!'

 

 출입문에 드리워진 경찰의 실루엣을 보고 환해졌던 제이의 표정이 다시 어두워졌고, 생과 사를 넘나드는 달리기를 하던 제이의 다리가 물에 젖은 듯 점점 느려졌다.

 

  ‘잠깐 저 사람은……?’

 

 검은 그림자의 정체를 확인하고 제이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피터 블링켄베르! 저자가 여기엔 왜 온거지?'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가 제이의 입을 틀어막었다.

 

 그의 손은 여자 손처럼 부드러웠고, 희미한 담배 냄새와 오이 비누 향이 났다.

 

  “다, 당신은……!”

 

 

 

 ***

 

 

 

 석 달 전,

 

 열 명이 들어서면 가득 차는 작은 대기실에서 소박한 파티가 열렸다.

 

  "컴백 축하합니다. 컴백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윤제이. 컴백 축하합니다.“

 

 마술 단원들은 성공적으로 첫 공연을 마친 제이를 위해서, 한장 한장 얇은 크레이프를 우유 크림으로 겹겹이 쌓아올린 크레이프 케이크(CREPE CAKE)를 준비했다.

 

  "네가 자주 가는 카페의 메인 케이크야. 제이야, 뭐해? 어서 불어."

 

 진한 무대 화장을 한 지우는 제이의 친한 언니이자, 1년 동안 함께 무대에서 호흡을 맞춰온 마술 도우미였다.

 

  "후우,"

 

  "야, 신기범! 네가 불면 어떡해."

 

  "아무나 불면 돼지. 그게 무슨 상관이야. 그치 제이야?"

 

 제이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남들보다 일찍 진로를 정해서 학교 친구가 없었던 제이에게 기범은 마술 학원에서 만난 유일한 친구이자, '마술사학교'에 출연해 누나 팬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한 소년이었다.

 

 누나 팬들이 왜 기범이를 좋아하는지, 제이에게는 죽을 때까지 알 수 없는 미스터리였다.

 

  "제이야, 오늘 공연 진짜 좋았어."

 

 무대 연출가 시윤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자, 제이는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 아주 시윤이가 제이한테 눈을 못 떼더라."

 

  "아, 뭐, 지우 누나,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요. 내가 언제."

 

 시윤의 귀가 빨갛게 달아오른 걸 보고, 기범은 때를 놓치지 않았다.

 

  "얼레리 꼴레리, 얼레리 꼴래리. 시윤이 형 얼굴 빨개졌대요. 얼레리 꼴레리."

 

  "이 자식이 형을 놀려?!"

 

  "으악, 살려줘!“

 

 언제나 묵묵히 무대 뒤에서 서포트 해주는 무대 감독 종환이 기범의 목에 헤드락을 하는 시윤을 보며 난감해하는 제이에게 따스한 미소를 보내왔다.

 

 시끌벅적한 분위기에도 사람들 사이에 따뜻한 공기가 흐르고 있는 이유는 모두 제이를 위해서 한 달 전에 일어났던 ‘그 사건’에 대해 침묵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사건’을 입에 올리지 않는 건 제이를 향한 암묵적인 배려였다.

 

 벌컥.

 

 짙은 눈썹에 코가 긴 중년의 남성이 대기실 문을 무례하게 열었다.

 

  "제이야!"

 

  "아, 아저씨?"

 

 뒤따라서 모델처럼 키가 크고 늘씬한 연주가 들어왔다.

 

 뚜렷한 이목구비에 서구적인 얼굴의 연주는 지금은 마술사지만 과거 인기 프로그램 PD 출신으로 방송국 스태프들과 친분이 돈독한 종석의 딸이었다.

 

  "자자, 잠깐 촬영할 거니까 다 나와요.“

 

 종석이 마술 단원들을 모두 밖으로 내쫓고, 카메라와 마이크를 든 방송 스태프들이 대기실 안으로 마음대로 들어와서, 순식간에 낯선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제이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사람들에게 마술을 보여주는 건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었지만 언론의 과도한 관심은 진심으로 사양이었다.

 

 연주는 대중의 관심을 받는 걸 즐기는 것 같았지만, 제이는 자신을 향한 스포트라이트가 불편하고 어색하기만 했다.

 

  "제이야,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으, 응."

 

 카메라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연주를 보고 제이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연주가 흘리는 눈물은 온전히 자신을 위해 흘리는 눈물이 아니었다.

 

  ㅡ 대국민 오디션 프로그램 '마술사학교' 최종 우승자는 ……윤.제.이!

 

 사회자가 제이의 이름을 부르자 축포가 터지면서, 무대 위로 색색의 종이가루가 떨어졌다.

 

 국민의 선택을 받았다는 게 너무나도 기뻤지만, 제이는 마음껏 기뻐하지도 못하고 슬쩍 연주의 눈치를 봤다.

 

  ㅡ 괜찮아, 제이야. 순위 같은 거에 연연하지 마. 오디션에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거야.

 

 사실 연주가 화려한 외모로 방송 초반에 대중들의 관심을 사로잡았던 때까지만 해도, 제이와 연주의 사이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처음엔 제이에게 힘내라고 응원까지 해줬던 연주는 점점 대중들의 관심이 제이에게 쏠리자, 제이를 대하는 태도가 확 바뀌었다.

 

  ㅡ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 인사까지 안 받아주다니.

 

 환한 미소를 지으며 제이와 다정하게 어깨동무를 한 사진을 연주가 자신의 SNS에 올리자, 그녀의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서 댓글을 달았다.

 

  [내 마음속에 우승자는 바로 너야. 우리 연주 너무 예쁨♥]

 

  [내 주변 사람들은 전부 다 연주에게 투표했는데 우승자 투표에 무슨 비리가 있는 듯.]

 

  [연주가 훨씬 예쁜데 왜 윤제이가 우승했지?]

 

  [아, 오른쪽 보기 싫어. 오른쪽 사진 찢어 버려야지.]

 

 오른쪽에는 제이가 해맑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ㅡ ……내 사진을 찢어버리고 싶다니.

 

 마지막 댓글을 읽은 제이의 손이 수전증에 걸린 것처럼 부들부들 떨렸다.

 

 그런데 더 충격적이었던 건, 자신의 사진을 찢어버리겠다는 댓글에 대한 연주의 반응이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NICE!]

 

 제이는 고개를 좌우로 내저었다. 이제 그 일에 대해서 더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고, 생각해봤자 머리만 지끈지끈 아파왔다.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었지만, 방송 스태프들이 그녀를 가로막고 있어서, 제이는 어색하게 표정을 굳혔다.

 

  “자자, 촬영 시작합니다.”

 

 옆에 있던 AD(Assistant Director : 프로그램 관련 잡무를 처리하는 사람)가 손뼉을 치며 촬영 시작을 알리자, 바로 카메라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생생한 연예 프로 한밤의 정우민입니다."

 

 웃자, 웃어. 오늘 한 번만 더 웃자.

 

  "오늘은 '마술사학교' 우승자 윤제이 씨의 마술 공연장을 찾았는데요. 안녕하세요, 윤제이 씨."

 

 제이는 억지로 입술을 위로 끌어올리며 인터뷰에 응했다.

 

  "안녕하세요. 마술사 윤제이입니다.“

 

 제이는 6개월 동안 진행된 오디션 프로그램 덕분에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이 익숙했다.

 

  "공연장에 많은 분이 찾아오셨어요."

 

  "네, 오늘 날씨가 좋지 않은데도 많은 관객분이 찾아주셔서 너무 기뻤어요."

 

  "모두 제이 씨를 응원하려고 찾아오셨나 봐요."

 

  "네,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찾아오신 분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공연했습니다."

 

 다행히도 인터뷰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는데, 앞에 있던 카메라 감독이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고, AD도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대놓고 팔짱을 꼈다.

 

  '뭐지? 갑자기 왜 이러지?'

 

 옆에 있던 연주가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작은 마이크를 들고, 종석과 무언가 눈짓을 주고받으며, 능글맞게 웃는 우민과 눈을 마주치는 게 불편해서 제이는 얼른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무슨 질문을 하려는 걸까.

 대체 무슨 질문을 하려고 하길래…….

 

 제이의 입안이 바짝 말라왔다.

 

  "한 달 전에 아버지 돌아가셨잖아요,“

 

  "……네?”

 

  "어땠어요?"

 

 우민의 어이없는 질문에 제이는 목이 콱 메어왔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게,

 

  “……어, 어땠냐고요?”

 

 아직 다 아물지 않은 상처를 칼로 후벼 파는 질문에 제이의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히자, 카메라 감독은 그녀의 눈에 고여 있는 눈물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제이의 얼굴 가까이에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제이의 기분 따윈 요만큼도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들에게는 오직 눈물을 흘리는 제이의 표정을 카메라에 담는 것이 더 중요해 보였다.

 

 그게 시청률에 도움이 되니까.

 

 방송국 사람들은 원래 시청률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니까.

 

 시청률이 바로 돈이니까.

 

 잘 알고 있었지만 여기까지 찾아와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어땠냐고 물어보는 건 정말 너무하다 싶었다.

 

 여기까지 와서 그럴 필요는 없잖아요.

 

 내가 유일하게 쉬면서 안락함과 편안함을 느끼는 곳.

 

 내 소중한 사람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던 이 순간에 갑자기 찾아와서……!

 

 절대 울고 싶지 않았던 제이는 잘근 입술을 깨물었지만, 한번 터진 슬픔은 사그라지지 않고, 결국 제이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넘치게 했다.

 

  "이제 그만 하시죠."

 

 인터뷰를 방해하는 중저음 목소리에 우민은 잔뜩 인상을 구기고 낮게 읊조렸다.

 

  “한창 인터뷰하고 있는데, 누가 끼어드는 거야.”

 

 우민은 후우, 하고 한숨을 푹 내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누구야.“

 

 무섭게 인상을 구긴 우민이 낮은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갑자기 나타나서 촬영을 중지시키는 간 큰 놈이 누군지 면상 한번 보자"

 

 머리끝까지 화가 나 보이는 우민은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몸통을 돌렸다.

 

 문에 기대선 남자는 쌍꺼풀 없이 가로로 긴 눈매에 베일 듯이 오뚝하고 날카로운 콧날을 자랑하는 조각같이 생긴 미남이었다.

 

 금방이라도 소리를 지를 것처럼 분위기를 잡던 우민은 재빨리 들고 있던 마이크를 입에서 떼었고, 카메라 감독도 제이를 비추고 있던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일사불란하게 촬영을 멈추는 사람들을 보고, 제이는 혹시 저 남자가 지금 찍고 있는 TV 프로그램에 PD인가, 했다.

 

 남자의 눈치만 보고 있는 스태프들 사이에는 아까 전까지 오만하게 고개를 치켜들고 있었던 우민도 껴있었다.

 

 그가 나타나자마자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 비굴한 웃음을 흘리는 우민을 보고 제이는 기가 막혔다.

 

  '어떻게 단 1초 만에 사람이 저렇게 변할 수 있을까. 정말 이 시대 최고의 연기자다.'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지만 제이는 그저 지긋이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터벅터벅.

 

 남자가 우민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당신 이름이 뭡니까?”

 

  “……네?”

 

 아까까지만 해도 잘난 듯이 떠들고 있던 우민은 수업 중에 쓸데없는 소리 하다가 교무실에 끌려온 학생처럼 고개를 아래로 푹 숙이고 있었다.

 

 우민의 이마에 송골송골 식은땀이 맺혀있었다.

 

  “저, 저는…… 정우민이라고 합니다.”

 

  “……그래요, 뭐,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죠.”

 

 흐흡, 하마터면 입 밖으로 웃음이 튀어나올 뻔해서 제이는 세게 입술을 깨물었다.

 

 고개를 아래로 푹 숙이고 땀을 비 오듯 흘리는 우민이 어쩐지 불쌍하고 가련해 보이기도 했다.

 

  “아무리 시청률이 중요해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질문을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네, 네! 그, 그렇습니다!”

 

 장군에게 복종하는 일병처럼 두 손을 옆에 딱 붙이고 차렷 자세로 우렁차게 대답하는 우민이 커다란 목소리에 고막이 크게 울린 제이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인터뷰 한지 얼마나 됐습니까?”

 

  “시. 십 년 됐습니다.”

 

 인터뷰 한지 십 년이나 된 사람이 그런 식으로 질문을 하다니.

 

 십 년이라는 세월 동안 많은 사람을 인터뷰했으면 나한테 그런 식의 질문밖에 할 수 없었던 건가.

 

 살짝 아랫입술을 내민 제이는 우민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그저 고개만 옆으로 돌려버렸다.

 

  “십 년 동안 많은 사람을 인터뷰했으면서 그 정도의 질문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겁니까?”

 

 마치 제이의 마음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우민에게 핵심을 찌르는 질문을 하는 허스키한 목소리에 제이는 고개를 번쩍 들어 물끄러미 철수를 바라봤다.

 

 그에게서 부드러우면서 부담스럽지 않은 시원한 향수 냄새가 났다.

 

 마음까지 편해지면서 가슴이 청하해지는 향기였다.

 

 우민은 철수를 향해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저한테 죄송할 일은 아니죠."

 

  "네?"

 

  "사과는 이분께 해야죠."

 

 철수의 시선이 구석에 가만히 서 있던 제이에게 닿자, 대기실 안에 있는 사람들이 제이를 바라봤다.

 

 쏠리는 시선에 난감해진 제이가 눈꺼풀을 빠르게 깜박거렸다.

 

  "정우민 씨, 당장 이분께 사과하시죠."

 

  "죄, 죄송합니다. 윤제이 씨."

 

 우민은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제이에게 고개를 숙였다.

 

 90도 인사가 아니라 180도 인사였다.

 

 잠시 망설이던 제이는 머리를 바닥에 폭 처박고 고개를 들지 못하는 우민을 보니, 마음이 약해져서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이제 다들 여기서 나가시죠."

 

 남자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해일처럼 마술 단원들을 밀어내고 대기실로 들어왔던 방송 스태프들이 우수수 떨어져나가기 시작했다.

 

 이제 대기실에는 제이와 남자 단둘이 남아 있었다.

 누군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것이 당연한 도리인 것 같아서, 제이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제가 이런 건 미리 신경 써야 하는 건데."

 

 남자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진걸 보니, 그는 프로그램에 책임감을 가진 훌륭한 PD인 것 같았다.

 

 그동안 만났던 PD와는 좀 다른 것 같아서, 그녀는 입가에 생긋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요. 정말 괜찮아요."

 

  "저기……."

 

  "……?"

 

 남자가 뒤에 따라붙어 있던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에게 눈짓했다.

 

 제이는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프로그램에 FD(방송 연출 보조원)인가? '

 

 PD의 손과 발이 되어주는 FD는 보통 현장에서 깔끔한 양복 대신 등산복같이 야외촬영을 하는 데 유용한 기능성 아웃도어를 즐겨 입었다.

 

 그러고 보니 TV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TV에 나오는 사람처럼 근사한 남자는 다른 PD와 달리 깔끔하게 떨어지는 정장 바지에 흰 와이셔츠를 입고 있었다.

 

 남자의 지시를 받고 꽃다발을 가져온 사내가 제이에게 꽃다발을 내밀었다.

 

  '이게 웬 꽃다발?'

 

 어느새 자신의 품에 안겨있는 꽃다발을 보고 제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꽃을 별로 안 좋아하시나요?"

 

  "아니, 아니에요."

 

 제이가 가장 좋아하는 꽃, 수국이 고급스러운 포장지에 예쁘게 싸여있었다.

 

 갑작스러운 꽃 선물에 당황하긴 했지만, 그에 대한 감사의 표현은 제대로 해야 할 것 같아서, 제이는 다시 한 번 미소를 지었다.

 

  "감사해요. 꽃이 정말 예뻐요."

 

 하지만 확실히 조금 전에 지었던 미소보다는 어색한 미소였다.

 

 

 

 ***

 

 

 

 집에 들어서자마자 제이는 침대에 풀썩 몸을 던졌다.

 

  "우와, 내 침대다!"

 

 가방과 외투는 어지럽게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외출복을 입고 침대에 누운 게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잠시나마 편안한 자유를 만끽하고 싶었던 제이는 몸에 긴장을 풀었다.

 

  "휴우, 이제 살 것 같아. 아! 맞다. 꽃."

 

 식탁 위에 올려놓은 예쁜 수국을 보니 다시금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기분이었다.

 

 수국에 코를 가만히 가져다 대니 신선한 생화 냄새와 함께 남자에게 맡았던 시원한 향수 냄새가 났다.

 신기한 사람이었다.

 

 깔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PD라니.

 

  "정말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왠지 평범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아.

 

 웃음을 머금은 제이가 꽃다발에 꽂혀있는 한 장의 카드를 발견했다.

 

 카드? ……뭐라고 쓰여 있을까.

 

 제이는 설레는 마음으로 카드를 열었다.

 

 

 

 

 

  [윤백룡 씨에 죽음의 비밀을 알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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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이브 17-12-24 13:45
 
뭐 재밌는 거 있나 해서 돌아다니다 들어왔는데, 오 뭔가 있는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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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44.나중에는 내가 너 구해줄게. 2017 / 11 / 24 259 0 8193   
43 43.제이가 내 사무실에는 어떻게……? 2017 / 11 / 24 257 0 8265   
42 42.미래의 남편이요? 2017 / 11 / 22 250 0 8823   
41 41.짝사랑하는 여자의 속마음을 알아보는 법 2017 / 11 / 20 260 0 8481   
40 40.제이 씨, 우리 형이랑 사귀어요? 2017 / 11 / 17 238 0 8478   
39 39.품에 안긴 가녀린 몸 2017 / 11 / 16 238 0 7984   
38 38.내가 철수 씨를 좋아한다고? 2017 / 11 / 15 269 0 7784   
37 37.대표님, 제이 씨랑 데이트하세요. 2017 / 11 / 14 235 0 7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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