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빛의 단정한 머리칼과 에메랄드를 연상케 하는 눈동자를 지닌, 10대 초반으로 보이는 루는 미소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예언자님, 예언자님!! 저, 안 보고 싶었나요?”
루의 질문에, 리사나 역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물론, 보고 싶었지. 그보다, 오겠다고 통보도 해주면서까지 어쩐 일이야?”
곧바로 본론에 들어가자, 루는 웃음기를 빼고는 무거운 분위기를 내뿜었다.
“길잡이님이 예언자님을 믿으셔서요. 혹시, 찾으셨나요?”
루의 질문에 리사나 역시 웃음기 빼며 질문에 답했다.
“역시 길잡이야. 같은 여자지만 정말 직감 한번 대단하네. 소름이 돋을 지경이야. 응, 찾았어. 아직 새싹에 불과하지만.”
그 말에 루가 앉았던 의자에서 일어서며 방긋, 미소를 지었다.
“대~박! 정말요? 지금 이 저택에 있나요?”
루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가디언의 자리를 채울 이를 보고 싶어 했다. 새싹에 불과하다 했음에도 보고 싶은 모양이다. 루는 궁금한 게 있다면 무조건 해결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다. 그런 루의 성격을 리사나는 잘 알고 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보여주는 거야, 상관없지만... 실망해선 안 돼. 알았지?”
리사나의 말에 루는 오른손을 제 심장이 있는 가슴위에 올리면서 말했다. 그것은 곧 맹세였다.
“물론이죠! 실망하는 일 따위 절대 없을 거예요! 장담할게요!!”
루는 실망한 대상에게 절대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래서 리사나는 조금 걱정됐다. 혹여, 루가 실망이라도 할까봐. 그래도 론을 보여줄 생각인지 리사나는 문을 열고 집무실을 나섰다. 그 뒤를 따르는 루.
대련이 끝나고 론에게 방에서 쉬라고 했으니 아마 방에 있을 터. 걸음을 옮겨 문 앞에 도착했을 때, 리사나는 긴 숨을 뱉고는 다시금 물어봤다.
“정말 후회 안 할 자신 있지?”
“아이~참! 예언자님, 왜 이렇게 뜸 드리시는 거예요?”
뜸 드리는 리사나의 모습에, 루가 답답함을 느끼는 모양이다. 정말 보여줘도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안 보여 줄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리사나는 문고리를 내려 문을 열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보고 싶었는지 리사나를 앞질러 방 안으로 들어간 루는 론을 보더니 놀란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루는 가디언이 될 론을 보고 어떤 감정이 떠올랐을까? 긴장된 리사나는 마른 침을 삼켰다.
“예언자님, 늑대인간... 맞죠?”
론은 루를 보자, 재빠르게 방 구석지로 몸을 움직이더니 날카로운 앞니를 들이밀었다. 금방이라도 땅을 박차고 돌진할 기세였지만, 루는 겁먹기는커녕, 더 자세히 살펴보고 있었다.
“응... 혹시 실망했어?”
조금은 걱정된 마음으로 물어본 리사나. 과연 루는 어떤 대답을 할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설마, 실망한 걸까? 리사나의 온 신경이 루에게로 향했다.
“아뇨. 마음에 쏙 들어요.”
루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마음에 들다니 정말 다행이다. 리사나는 안도의 한숨을 뱉었다.
“그런데, 예언자님? 가을 안으로 가능할까요?”
겨울이 오기 전에 파티원들은 탑에 들어갈 계획을 꾸미고 있다. 가디언의 자리를 채울 이를 구했다고 하지만, 제 역할을 못하면 무용지물. 루는 예언자에게 진실 되게 물었다. 론이 겨울이 오기 전에 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모든 건 자기 자신에게 달렸어. 루, 네가 볼 땐 어때?”
“전 벌써부터 기대되는데요? 가디언의 활약을.”
“그래?”
루는 라르크가 해낼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이다.
“자, 그럼 소식을 전해드리도록 할까요?”
루는 걸음을 옮겨 창문을 활짝, 열더니 제 바지주머니에서 3마리의 파란 새를 꺼내고는 하늘 높이 던졌다. 그러자, 새들은 훨훨, 날아 저택을 빠져 날아갔다. 도대체 저런 주머니에서 새가 나온 게 신기할 따름이다.
“어떤 소식?”
리사나의 물음에 루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좋은 소식이요.”
좋은 소식이라 하면, 다른 사람이 들을 때 그 좋은 소식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추궁하겠지만, 리사나는 생각을 읽을 수 있기에 곧바로 무슨 뜻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보다 루, 다음 접선은 언제야?”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날지는 루가 정한다. 그렇기에 리사나는 이번 회의에선 참석하지 못했지만, 다음 회의에는 참석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했다. 하지만, 루는 굉장히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물음에 답했다.
“죄송하지만, 요즘 루카스 수색대의 움직임이 수상해서요. 당분간의 접선은 없을 것 같아요.”
리사나는 루카스 수색대라는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잠깐, 그럼 이렇게 나한테 찾아온 거... 위험한 거 아니야?”
혹여 뒤를 밟혔다면, 곤란해지니까. 리사나의 질문에 루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예언자님은 언제까지 저를 얘 취급하시는 거예요? 저도 다~ 생각이 있다구요!”
루의 당당한 말에 더 이상의 잔소리는 안 하려는 모양인지 리사나는 대화의 주제를 바꿨다.
“암튼, 차라도 한 잔 마시면서 얘기할까? 론은 방금 나랑 대련을 해서 많이 지쳤거든. 쉬게 해주고 싶어.”
“아! 가디언의 이름이 론이군요! 네, 그럴게요. 그럼, 론. 나중에 봐요~”
루는 론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고는 리사나의 뒤를 따라 방을 나섰다. 두 사람이 완전히 방을 나가고 문이 굳게 닫히자, 그제야 론은 신경을 가라앉혔다.
* * *
저택을 빠져나와 정원으로 들어온 리사나와 루는 곧바로 테이블에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루가 저택에 찾아온 건 굉장히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었기에, 본론으로 들어가 최대한 시간을 줄이고 싶었으니까.
“루, 보다시피 론은 아직 많이 부족해. 너무 기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가디언의 자리를 채웠지만, 완전히 채운 건 아니니까.”
론은 아직 많이 부족하다. 게다가 어리다. 전에 가디언의 자리를 지켰던 이보다 그 이상을 지금의 상황에서는 바랄 수 없다. 그렇기에 리사나는 미리 선전포고를 했다.
“네, 그래서 제가 생각해봤는데요! 다음에 만날 때는 론을 위해 여러 가지 보조 무기를 만들어 볼 생각이에요. 물론, 완전히 가디언의 자리를 채울 수는 없겠지만, 제 몫은 단단히 할 수 있도록 서포터 해줄 생각이거든요! 히히.”
“그래? 그래도, 루가 마음에 든다고 하니 다행이네.”
리사나는 테이블에 놓인 홍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다시 찻잔에 내려놓았다. 따스한 홍차가 붕, 떠올랐던 마음을 가라앉혀주었다.
“길잡이를 비롯해 다른 멤버들은 잘 지내고 있어?”
“네. 다들 잘 지내고 있어요. 가을이 오기 전, 적절한 시기에 장소를 선정해 초대하도록 할게요.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보다, 이 쿠키 엄청 맛있네요? 헤헷.”
주스를 마시고 있는 루는 쿠키를 베어 먹고는 감상을 표현했다. 그 모습에 리사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럴 때 보면 정말 영락없는 순진한 소년 같은데, 가끔 보면, 또라이 같아.”
“또, 또라이라뇨?! 예언자님, 말이 좀 심하네요! 정정해주세요.”
루가 두 볼을 부풀리며 화가 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리사나의 두 눈에는 마냥, 귀여운 꼬마 소년이다. 그래도 상대방이 기분이 나쁘다면 사과를 해줘야 하는 법.
“장난이야. 기분 나빴다면 사과할게.”
리사나의 사과에 금방 화가 풀린 루는 미소를 지으며 다시금 쿠키를 먹었다. 리사나는 등을 기대고는 고개를 들어 푸른 하늘을 바라봤다. 찬란한 햇빛아래 떠있는 새하얀 구름들을 보며 중얼거린다.
“정말, 이번만큼은 꼭 최상층에 도달해보자.”
“네, 그래야죠. 전에는 어쩔 수 없었지만, 이번만큼은 꼭, 성공할거예요.”
탑에 들어갔지만, 완전히 공략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다르다. 만반의 준비를 끝냈고 모든 게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으니까. 굳이 문제점을 집어보라고 한다면, 아직은 많이 부족한 론이 아닐까?
“그보다, 왜 그렇게 비싸게 구매하신 거예요? 3억 골드를 주셨다면서요? 예언자님의 자존심은 정말이지 대단한 것 같아요.”
루의 질문에 리사나가 볼을 긁으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어, 어떻게 알았어?”
“제가 모르는 게 어디 있겠어요? 게다가 그렇게 비싸게 낙찰하셨는데, 소문이 파다하더라고요. 예언자님에게 보이신 거죠? 론이 가디언의 자리를 채울 수 있다는 가능성을.”
그 말에 리사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응. 그보다, 이번 안건에서도 다 퇴짜였던 모양이네? 네가 이렇게 날 찾아온 것을 보면? 이번에도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구나?”
가디언의 자리를 채울 이의 명단은 매일 회의를 진행할 때마다 올라왔지만, 매번 길잡이의 판단에 의해 선택된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이번 회의에서도 선택된 이가 없었던 모양이다.
“네. 길잡이님의 눈은 확실하니까요. 그리고 예언자님도 알다시피 아무나 채운다 한들 의미 없다는 거, 다 아시잖아요?”
길잡이는 길을 볼 수 있으며, 동시에 미래도 볼 수 있다. 어떤 길을 선택하는 가에 따라 달라질 미래. 그래서 가디언의 자리를 채울 이의 명단을 여러 명 봤음에도 선택하지 못하는 것은, 미래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길잡이의 눈에 론이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네, 보일까? 미래가.”
“마지막에 길잡이님이 예언자님을 믿을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신 걸 보면, 이런 일을 예측하신 게 아닐까요? 저도 예언자님을 뵈러 오기 전부터, 뭔가 확신이 들었어요. 가디언의 자리를 채울 이를 구했다는 확신이요. 그리고 이렇게 떡, 하니 구했으니 아주 좋아요!”
“그래?”
그 말에 기분이 좋아진 리사나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을 갖게 해주었으니까. 하지만, 제 속마음을 너무 드러낸 것 같아 부끄러웠는지, 곧바로 헛기침을 뱉으며 무표정으로 돌아갔다.
그 사이, 루는 마지막 남은 쿠키를 다 먹고 주스를 다 마시고는 의자에서 내려왔다. 이만, 가려는 모양이다.
“이만 가봐야겠어요.”
역시 예감이 틀리지 않는다.
“벌써?”
리사나의 표정에는 아쉬움이 묻어났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벌써 가야된다고 하니까. 하지만, 붙잡을 생각은 없다.
“네, 괜히 여기 있다는 걸 ‘강자’들이 알게 되면 일이 꼬이니까요.”
“그래. 그보다, 어떻게 갈 생각이야?”
들어올 땐 쉽게 들어와도, 나갈 때는 신중해야만 했다. 다행히 루는 계획이 있는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물음에 답했다.
“게이트로요. 최근에 만든 작품인데, 일회용이라 조금 아쉽지만!”
리사나의 질문에 루가 왼쪽 주머니에서 자그마한 큐브를 꺼내들었다. 그것은 차원을 이동시켜주는 아이템이었다. 이런 아이템을 만들 수 있는 건, 오직 루뿐이니까. 그래서 타깃이다. 모두가 원하는 걸 갖고 있는 존재니까.
"실패작...아니지?"
조심스러운 리사나의 질문에, 루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네! 걱정 마세요~ 자, 그럼, 가볼게요! 예언자님, 건강하게 잘 지내세요. 아, 그리고 론을 꼭, 가디언의 이름에 걸 맞는 멋진 남자로 성장시켜주세요. 알겠죠?"
“그래. 내 걱정하지 말고, 몸조리나 잘해.”
“네~그럼 가볼게요!”
인사를 끝으로 루가 큐브를 바닥에 던졌고 동시에 점프해서 큐브를 밟아 부신 순간, 루의 모습은 사라졌다.
리사나는 루가 사라진 자리를 바라본다. 그 자리에는 조각이 되어버린 큐브가 나뒹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