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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마물의 탑
작가 : NeLeeNo
작품등록일 : 2019.9.19

이 세계 중심에는 거대한 순백색 탑이 존재해. 얼마나 높던지 그 끝을 감히 확인할 수 없을 정도였지. 대륙의 중심에 우뚝 솟아 있는 마탑. 마탑의 존재는 인간들의 호기심을 유혹시키는, 또 궁금해지는 곳이야. 그래서 수많은 인간들이 강자들의 욕심에 의해 탑에 들어섰지. 하지만, 탑 안에는 마물이 존재했어. 탑에 들어가면 뒤틀려버리고 헤매게 돼. 낮선 풍경 안에서 막을 내릴 때까지 내릴 수 없는 무대에서 인간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002 하늘 위에 햇빛보다 온화했다
작성일 : 19-09-19 22:20     조회 : 212     추천 : 0     분량 : 5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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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테도스 제국.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것처럼 호화로운 제국이라 할지라도, 정작 시궁창 같은 뒷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행복한 삶을 누리지 못했다.

 

 가족 혹은 자신이 살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엇이든 해야만 하는 현실 속에 결국, 자신의 삶이 비참해져 모든 것을 놔버리는 사람들. 그런 그들을 ‘구제’라는 단어로 합리화하여 경매 상품이 될 것을 제안한다.

 

 나름 배려라면서 의식주에 문제없는 골드를 준다고 하지만, 그건 악마의 속삭임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이들은 가족을 위해 자신이 혹은 딸, 아들을 눈물을 삼키며 팔아넘긴다.

 

 운명이라는 것은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팔아넘기면서 얻은 골드는, 도둑들 혹은 주위 사람들로부터 갈취 당하게 된다. 제 아무리 피를 나눈 형제라 할지라도 금전적인 문제 앞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그것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슬픈 광경이다.

 

 매 달 마지막 날에 열리는 경매.

 

 귀족 혹은 중상층의 부자들이 찾아오는 곳. 단순히 유흥을 즐기는 것도 있지만, 인맥을 형상하기 위해 경매장에 방문하기도 한다. 제국 앞, 광장에서 시작되는 콘서트는 제국의 관리 아래 있기 때문에 사기는 물론, 조작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지금 경매가 시작되려고 한다.

 

 무대 단상 위에서 깔끔하게 차려 입은 한 남성이 음량증폭에 도움 되는 소라껍질을 들고 싱글벙글 웃으며 무대 앞의 관객들에게 신사처럼 인사를 한 다음 입을 열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오늘 이 자리를 빛내 주시는 귀빈 여러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저는 오늘 경매를 재밌고 흥미진진하게 진행해서 여러분들의 흥을 돋워 드릴 브렌트라고 합니다. 제가 오늘의 특별한 경매를 잘 진행할 수 있도록 뜨거운 박수와 함성으로 맞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브렌트는 제가 귀족이라도 된 양, 오른손을 제 심장이 위치한 왼쪽 가슴으로, 왼손은 등 뒤로 허리춤으로 보내며 허리를 숙였다. 전혀 귀족답지 않은 익살스러운 모습에도 박수소리와 함께 함성이 콘서트 안에 울려 퍼졌다.

 

 계단 형태의 객석의 양 가장자리에는 사람이 오갈 수 있는 작은 계단이 있고 과일과 와인이 올려 있는 테이블과 푹신푹신한 고급 소파가 나열되어 있으며 그 위에 앉아 경매를 바라보는 사람들.

 

 그러나 아무도 얼굴을 공개하기 싫은 듯,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그저, 눈동자만 비출 뿐. 개인적, 사회적 관계에서 공개하는 가면과는 또 다른 가면으로서 그들의 본질을 가려주는 탓이니까.

 

 평소 귀족이라면 고함을 지르며 모략이다, 뭐다 하면서 브렌트에게 손가락질과 야유를 쏟아냈을 텐데, 오늘만큼은 가면 뒤로 제 신분이 가려져 너그러운 생각을 갖고 있는 모양이다.

 

 “자, 오늘의 엄선하고 엄선한! 희귀하고 아름다운 상품들이 많습니다! 자, 시작해볼까요? 첫 번째 상품, 나와 주십시오!!”

 

 브렌트가 손짓을 하자, 한 여성이 무대 뒤에서 떠밀려 나왔다. 그녀는 윤기 넘치는 짙은 머리칼로 보는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지만, 시력을 잃은 듯 눈동자에 이채를 띄지 않았다. 게다가 눈 꼬리가 축 처져 순해 보이는데, 보이는 것과 같이 성격도 순해 보이는 그녀는 제 자신을 가격 매기기 위해 구석구석 훑어 내리는 가면 쓴 자들의 시선을 느끼지는 못하지만, 위화감을 느끼는지 사시나무 떨 듯 벌벌, 떨었다.

 

 “시력을 잃어 앞을 볼 수는 없지만, 순한 성격에 말 잘 듣는 노예가 필요하시는 분이라면 이 상품을 적극! 추천 드립니다. 이렇게 달달한 여인네가 처음부터 나오면 우리 형님들 흥분하실 텐데 말이죠! 자아, 100만 골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이런 귀여운 미인은 흔치 않습니다?”

 

 브렌트가 상품에 대한 설명이 끝남과 동시에 한 남성이 느긋하게 손가락 세 개를 들어올렸다.

 

 “예! 세 배, 300만 골드가 나왔습니다. 어!? 이번엔 두 배네요. 600만 골드! 오우, 무려 네 배! 2400만 골드!!”

 

 경매장의 모든 사람들은 소유욕의 열기가 정말 뜨겁다.

 

 * * *

 

 사회자 브렌트의 조리 있는 진행으로 경매장은 열기가 뜨거워지다 못해 이글거렸다. 독주를 마신 귀족들이 여기저기서 나뒹굴고 있다. 더 이상의 진행은 어려워보였으나, 브렌트는 오히려 언성을 높이며 경매를 진행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오늘의 마지막 상품이 남아 있지 않습니까? 기대 되시지요?”

 

 익살스런 목소리로 묻는 사회자의 말에 귀족들은 함성을 질렀다. 언제나 브렌트의 경매의 마지막 특별 상품은 상상을 초월했다. 사회자의 목소리에 맞추어 경매 상품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관리를 안 해, 10년 이상 객지 생활을 지낸 것 같은 뻣뻣하고 짙은 털과 두 눈을 가린 두건, 아직은 작지만 날카로운 송곳니를 지닌 늑대인간이었다.

 

 어떤 상품이든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는 법. 특별 상품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몇 명의 관객들은 자리를 떠났다. 어차피 마지막 상품이니 그들을 막아 세우지 않는 브렌트는 아직 떠나지 않은 관객들에게 상품에 대해 설명했다.

 

 “흔치 않은 생명체인 늑대인간입니다. 말길은 알아먹지만 아쉽게도 말은 좀 어눌합니다. 하지만! 아직 각인이 안 된 상태이므로 낙찰해 가신다면 분명, 주인을 잘 따를 겁니다. 자신을 위해 목숨도 바칠 수 있는 늑대인간! 과연, 주인은 어떤 분이 되실까요!!”

 

 늑대인간이라는 신비한 존재 그리고 목숨도 바칠 수 있다는 말에 흥미를 갖는 이들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예, 낙찰 금액이 올라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네요! 자, 그럼 1000만 골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낙찰 당첨이 되실 분은 아무리 비싼 가격에 구매하시더라도 분명 만족하실 겁니다!!”

 

 브렌트가 어떻게든 분위기를 띄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는 모양이다. 이미 손을 번쩍, 든 채 상품에 혈안 되어 있는 관객들의 수가 상당했으니까. 그렇게 점점 가격이 오르고 오르며 또 올라갔다.

 

 “네, 8300만 골드. 더 있으십니까?”

 

 브렌트가 질문을 던졌다. 손들어 가격을 제시했던 관객의 수가 줄어들었으니까.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으려는 모양이다.

 

 “1억 골드.”

 

 넓은 어깨와 굵은 목소리로 조용히 말한 고급스러운 차림의 남성이 제시한 금액에, 브렌트는 당황한 모양인지 그를 바라보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 지금 1억이 나왔습니다. 더 있으십니까? 없으시다면 카운트 하겠습니다!!”

 

 더 비싼 가격을 제시할 사람이 있냐는 질문에 시끄러웠던 경매장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늘씬한 다리를 비롯해 오염한 몸매의 여성이 가격을 제시하기 전까지는.

 

 “3억.”

 

 3억 골드라는 말에 관객들 모두가 술렁거렸다. 엄청난 가격이었다. 아무리 신비한 생명체고 각인이 안됐다 하더라도 3억이라는 가격은 너무나 비쌌다. 제시한 가격을 납득할 수 없었는지 가면을 쓴 남성이 질문을 던졌다.

 

 “마을 하나 의식주를 책임질 수 있는 정도의 가격을 제시하신거 보니 상당히 부자이신 모양인데, 그 제시한 골드를 내놓으실 수 있습니까? 어디 제국의 사람이신지는 몰라도 그 정도의 자금이라면 증명할 수 있는지 의문을 품고 싶습니다.”

 

 “자, 그럼 자금을 증명하시기 전에! 3억 골드 이상을 제시하실 분계십니까?”

 

 브렌트가 관객석을 살피며 질문했고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그러자, 3억 골드를 제시한 그녀는 옆에 서있는 보조 남성에게 자신의 친필 사인이 담긴 수표를 건넸다. 보조 남성은 사회자에게 수표를 전해주었고 브렌트는 손을 내밀어 수표를 받아 보더니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맙소사! 바테카이토 은행의 수표임을 확인했습니다! 정말 어떤 분이신지는 모르겠지만, 대단한 권력을 지닌 분이신건 확실하네요! 네! 축하드립니다. 3억 골드로 낙찰 받으셨습니다!!”

 

 브렌트의 눈동자가 번뜩거렸다. 엄청난 금액에 낙찰됐는데 기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신이 난 그는 늑대소년의 손목에 묶인 밧줄을 보조 남성의 손에 직접 쥐어주었다. 받은 걸 확인한 그녀는 소파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따라와.”

 

 여성은 여파가 가시지 않는 경매장의 후끈한 분위기를 뒤로하고 콘서트를 빠져나왔다. 저 멀리 고급 마차가 상점가의 거리에 서있었다.

 

 마치 태양처럼 빛을 발하고 있는 마차를, 사람들은 혹시나 피해를 입힐까 두려워 피해 다녔다. 이내 마차에 도착한 여성은 마부가 문을 열어줌과 동시에 탑승했고 보조 남성은 마부 옆에 늑대소년을 탑승시키려 했다.

 

 “어디로 데려가는 거야?”

 

 보조 남성이 눈을 마주치고 이내 그녀가 탑승한 마차 안으로 늑대소년을 조심히 들여앉혔다. 많이 두려운지 오들오들 떨고 있는 소년을 본 그녀는 보조남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수고했어. 이만 가봐.”

 

 보조남성은 그녀의 말에 마차의 문을 닫고는 고개 숙여 인사했다. 마차의 문이 닫힌 것을 확인한 마부는 채찍질을 했고 그러자, 마차가 서서히 앞으로 나아갔다. 둘이 마주 앉게 된 상황에서 그녀는 쓰고 있던 가면을 벗고는 소년에게 질문을 던졌다.

 

 “네 이름이 뭐지?”

 

 “......”

 

 여성의 질문에 대답할 생각이 없는 모양인지, 아무 대답이 없는 늑대소년은 조개처럼 입을 꾹 다물었다. 답장 없는 소년의 침묵에 진절머리가 났는지, 그녀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을 속셈인가?”

 

 말하고 싶지 않은 모양인지 소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그녀가 먼저 자기소개를 했다.

 

 “말귀는 알아먹는 모양이네. 내 이름은 리사나. 오늘부터 네 모든 것을 소유한 주인이라는 점을 잊지 말도록 해.”

 

 간결한 리사나의 소개 이후에 짧은 정적이 내려앉았다. 리사나는 손을 뻗어 소년의 눈을 가린 두건을 걷어냈다. 그러자, 루비를 연상케 하는 눈동자가 이채를 띄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소년.

 

 “알다시피 마을 하나를 거뜬히 먹여 살릴 수 있는 골드를 너 하나를 위해 썼다는 점을 자각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감사히 여겨.”

 

 소년은 여전히 침묵했다. 일부로 말을 안 하는 것인지, 말을 못하는 것인지 그건 소년 외 그 누구도 알 길이 없다.

 

 “왜? 실망이라도 했어? 거기에 있던 술에 찌든 기름 덩어리들이랑 같은 속물이라?”

 

 날카로운 말을 쏟아낸 리사나의 눈동자가 순간, 씁쓸한 그늘이 졌다.

 

 “그래도, 그것들처럼 성적관계와 화려함 때문에 널 낙찰한 건 아니지.”

 

 소년은 그 말에 고개를 들어 리사나를 바라봤다. 눈처럼 새하얀 단발머리와 사파이어를 연상케 하는 눈동자를 지닌 미인이었다. 리사나는 소년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난, 네 눈동자에서 봤어. 그 고결함을 말이야.”

 

 소년의 눈이 번뜩이며, 리사나의 용모와 목소리를 기억한다. 바로, 각인이 되는 순간이었다.

 

 소년의 눈에 비친 그녀의 미소는, 하늘 위에 햇빛보다 온화했다. 날개가 있다고 모든 존재가 천사가 아니라고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모든 것이 천사로 보이는 착각에 빠지는 순간이었다.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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