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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뭐 하는 거야?"
" 뭘 뭐 하는 거야. 차 안에서 쉬라는 거지. 혹시 다른걸 기대한 거야? 미안 지금은 좀 사람들이 많다."
" 무.......무슨 소리야! 누가 뭘 기대했다고. 그리고 율이 옆에 있는 게 더 편해. 비켜."
" 율이 알아서 잘해. 그리고 나도 옆에 있고. 토끼 눈이 돼선 괜찮긴 뭐가 괜찮아."
" 은석아. 제발 이러지 마......... 나 좋아해 주고 챙겨주는 거 너무 고맙고 솔직히 흔들리는 거 사실이야."
" 그럼 됐어. 그거면 돼. 다른 생각하지 마."
" 그럴 수 없단 거 너도 잘 알잖아. 지금 너한테 누군가가 생겨도 난리일 판에 하물며 나는.......... 이건 너한테도 그리고 나한테도 또 율이한테도 독이 될 뿐이야. 네가 뭐가 아쉬워서 나 같은 여자를 만나. 정신 차려."
" 누나 같은 여자가 뭐? 내가 분명히 말했지. 그 정도 각오 없이 내가 누나 붙잡았을 것 같아? 나한테 이제 누나, 율이 말고 더 이상 중요한 건 없어. 만약 모든 걸 내려놓아야 한다면 그럴 생각이고."
" 미쳤어? 지금까지 네가 이뤄 논게 어느 정돈지 감이 안 와? 근데 한낱 여자 때문에 그 모든 걸 버린다는 게 말이 돼? 난 그런 거 바라지 않아."
" 그러니까 내 말이 그 말이야. 내가 어느 정도인지 감이 잘 안 서는 거 같으니 말해줄게. 나는 말이야. 어마어마한 슈퍼 초특급 배우라고 누나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더 대단한 인물이지. 그 말인즉슨 이 정도로 무너질 애송이가 아니란 말이기도 해. 제발 그 조그만 머리에 넘쳐날 정도로 걱정 좀 그만해. 그리고 하나 더! 날 좋아한다니 축하해. 누나는 엄청난 사람한테 미치게 사랑받게 될 테니. 후후후"
" 어떻게 그런 말을 자기 입으로 하니. (절레절레)"
" 누나가 둔해서 모르는 거 같아 이제는 하나하나 다 말해주려고. 그리고 그런 수고스러운 일을 했으니 잠깐 에너지 충전!"
은석은 기회를 놓칠세라 수현에게 재빨리 입맞춤한다.
" 너.......너....."
" 지금은 이 정도만 아쉬워도 조금만 참아. 훗"
은석은 수현의 머리를 쓰다듬고 빠르게 차에서 내린다. 촬영장으로 향하는 은석의 뒷모습을 수현은 멍하니 쳐다본다. 반짝반짝 빛나는 저 아이가 다름 아닌 자신을 사랑한다니. 꿈이라면 깨고 싶지 않은 꿈 아닌가.
' 나도 은석아 널 좋아해.'
들리지 않는 말을 가슴으로 삼키며 수현은 생각한다. 단 한 번의 용기. 인생에 단 한 번 용기를 내야 한다면 지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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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남의 호텔 스위트룸-
" 회장님 오랜만에 안부 인사 올립니다. 요즘 너무 바쁘세요. 뵙기가 하늘의 별 따깁니다. 하하하"
" 기업을 이끌어 가는 사람은 항상 시간이 부족해야 해. 그게 성공하고 있다는 증거지. 그래 오늘 보자고 한 이유가 뭐야? 새로 들어가는 영화 있나? 투자문제? 아~이번에 노감독 작품에 애란 이가 들어간다지?"
" 그게 어쩌다 보니 무산됐습니다."
" 그래? 아쉽군."
" 실은......."
" 회장님 왜 이렇게 오랜만이세요."
문이 열리고 들어온 건 다름아닌 애란 이었다.
" 후후 그래 오랜만이군. 잘 있었나"
" 잘 있긴요. 요즘 회장님이 찾아주지 않으셔서 너무 속상했어요. 가뜩이나 작품에서도 밀리고."
" 밀려? 누구한테"
" 서주현 아시죠?"
" 주현이? 이번에 주현이가 여주로 들어간 건가?"
" 백호에서 투자했다는데 모르셨어요?"
" 그런 자잘한 푼돈에 일일이 신경 쓸 정도로 한가하지 않아."
" 어머 그럼 투자는 뭐 하러 하셨어요?"
" 돈이 문제가 아니야. 그리고 이번에 리안? 그 아이가 남주라더군. 백호 기업의 글로벌한 이미지에 더없이 좋은 기회니 당연한 일이지."
" 그러니까요. 그 좋은 기회를........ 저 속 쓰려 죽겠어요."
애란은 권 회장의 옆으로 다가간다. 최대한 자신의 몸을 밀착하며 권 회장의 가슴을 어루만진다.
" 그래서 말인데 저 그 작품에 어떻게 안 될까요?"
" 이미 남주 여주 정해졌는데 뭐하러."
" 서브라도 좋아요. 저도 백호 기업 메인 모델인데 그래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요. 생각해 보세요. 리안과 저. 그리고 제가 밀린 것도 리안쪽에이전시에서 손을 써서 그렇지 원래는 저한테 캐스팅 제의가 먼저 들어왔다고요. 제가 그래도 백호 기업 모델인데. 저를 밀어버린 건 솔직히 백호를 무시한 거나 다름없는 거죠. 안 그래요?"
" ............."
" 회장님이 그런 가소로운 일에 신경 안 쓰시 는거 아는데 이번엔 손 좀 써주세요. 서브라도 기업을 생각하면 제가 나가는 게 맞는 거 같다는 거죠."
" 리안쪽에서 힘을 실었다.......... 흠. 김 비서 불러."
애란은 권 회장과 리안쪽의 이간질을 노리며 교묘하게 파고 들어갔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권 회장의 독선적인 성격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애란에게 그런 일쯤은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었다. 이제 남은 건 권회장 과의 깊은 관계를 유지하는 일.
" 회장님 오늘 그냥 가시는 거 아니죠? 저 그럼 정말 속상해요."
애란이 권 회장의 술잔에 가뜩 양주를 부으며 은밀하게 권 회장의 사타구니를 어루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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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감독 스튜디오 -
" 네? 이미 촬영도 들어갔는데 갑자기. 아 네 그렇죠. 알겠습니다. 일간 찾아뵙죠. 네"
" 무슨 일이에요?"
" 하........송애란 서브 자리라도 만들어야 할 판이야."
" 네? 하지만 이미 대본에도 남주 여주 투톱으로 스토리라인이 다 나온 판에 갑자기 서브라뇨?"
" 투자자 쪽에서 압력행사 시네. 나 참. 정말 송애란이 거물을 물긴 물었군."
" 어느 투자자기에 이제 와서 밀어 넣는데요?"
" 백호"
" 백호 기업이면 이번 영화 최대 투자기업이잖아요!"
" 그러니까. 일이 피곤하게 생겼어. 일단 안 작가한테 전화 넣어. 하...... 갑자기 대본 수정이라니 리안쪽에서도 가만 안 있을 텐데."
" 그래도 어쩌겠어요. 영화는 일단 찍고 봐야죠."
갑작스러운 애란의 등장으로 노감독은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다. 최대 투자자의 심기를 거스른다면 영화가 산으로 가는 문제가 아니라 당장 엎어질 수도 있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하는 수 없이 노감독은 전화를 든다.
지금은 최대한 대본수정을 최소화하며 영화 내용의 변화를 줄이는 게 최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