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 좋아. 일단 시연의 고민은 대충 알겠다. 어째 사회생활에서 가끔 볼 수 있는 모습이 학교에서 보인다는 게 씁쓸하기도 하지만 이런 모습을 통해 학교가 작은 사회라는 말이 틀린 게 없다는 걸 알 수 있는 것 같다.
솔직히 이 고민은 시연이 오기 보단 시연의 이야기 안에 등장한 친구들이 와야 해결이 성립되기 쉽다. 시연으로선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봐도 될 정도다. 시연을 올려다보고 내가 생각한 그녀로서 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해결방법을 얘기했다.
“네가 전교 부회장을 그만두는 건?”
“그건 안 돼.”
그럴 줄 알았다. 하긴 그렇게 간단하게 해결될 일이라면 우리에게 올 일도 없었겠지.
자세를 고쳐 앉고 더 머리를 굴려봤다. 평소에 고민에 대한 생각을 할 때보다 더 깊고 넓게 생각해야 하는 고민이다.
시연이 고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부분은 ‘친구들이 자신의 앞에서 평등한 관계가 아닌 상하 관계를 구축하려고 한다.’라는 부분이다. 그리고 시연의 친구들이 그렇게 구는 데에는 아마 그녀가 가지고 있는 전교 부회장이라는 자격 때문일 거다. 실제로 선도부 같은 거나 문제 학생들을 교사진들에게 넘기는 일을 도맡아하고 있는 게 바로 우리 학교 학생회니까 말이다. 여기서부턴 개인적인 상상이 들어가 있다만, 아무리 제약이 많이 있어도 그녀의 친구들도 그들 나름대로 친구에겐 괜찮으나 어른에겐 불편한 비밀을 저질렀고 감추고 있을 거다. 예시로는 음주나 흡연, 폭력, 선생이나 선배, 혹은 친구에 대한 뒷담화 같은 것들이 있겠지. 그리고 문제는 바로 이 부분……. 그런 것들로 이야기 주제의 대부분을 채우는 친구들이라면 당연히 어른, 즉 교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학생회에 소속된 시연 앞에선 그런 이야기들을 뺄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대화의 주제가 줄고 검열되고 만다. 마치 조미료를 하나도 넣지 않은 싱거운 국물처럼. 그리고 어쩌다 실수로 그런 이야기가 나왔을 때 최대한 아부를 떨든가 비밀을 지켜달라고 말할 수 있기 위해 상하 관계를 직접 나서서 만들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면 대충 앞뒤가 맞아 떨어진다.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제일 편한 방법은 그녀가 전교 부회장직을 내려놓는 것이지만 그건 방금 전에 그녀가 부정했으니 그것을 제외하고 생각해보자. 이윽고 머릿속에서 몇 가지 정도를 생각해낼 수 있었고 그것들을 입 밖으로 꺼냈다.
“친구들이랑 연을 끊는 방법은 어때?”
“그런 극단적인 방법 말고.”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는 방법은?”
“2학기도 후반인데 이미 그룹이 다 정해지지 않았을까?”
앞서 발사한 총알들이 격추당했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결과였고 그렇기에 난 자연스럽게 힘없이 떨어지는 총알들 사이로 마지막 총알을 발사했다.
“그럼 결국 남은 마지막 방법은 이것뿐이야.”
“뭔데?”
“네 친구들에게 진실을 말하는 거지.”
“진실?”
시연의 되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내 끄덕임을 본 시연의 고개가 한쪽으로 기울었다. 무슨 진실이냐고 말하고 있는 표정으로 그녀는 나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고개를 살짝 저으며 시연의 표정을 통한 질문에 대답했다.
“네가 친구들에게 느끼고 있는 불편함이라는 진실을 그대로 말하라는 소리야.”
“그건…….”
“조용히 하고 내 말부터 들어. 듣고 어쩔지 선택해. 우선……. 그래, 여기서부터 이야기하자. 너는 네 친구들이 왜 그러는 것 같아?”
“흠, 글쎄……. 잘 모르겠는데? 부회장이라?”
“맞아. 아마 그것 때문일 거야. 네가 교사들이랑 밀접한 관계가 있는 학생회 소속의 전교 부회장이고 그렇기에 네 앞에서 학생에게 제한된 불법을 저지른 이야기에 대해 말을 못 하겠지.”
“엥? 아무리 그래도 얼마나 큰 불법을 저지르겠어.”
“요즘 학생이 얼마나 불법들을 많이 저지르는지 모르는구나. 난 그걸 바로 옆에서 지켜봐온 애니까 믿어도 돼.”
“왜 그걸 안 말렸어?”
손을 좌우로 저으며 그녀의 질문 겸 질책에 짧게 반문하고 말을 이었다.
“말린다고 들을 애였으면 애초에 거기에 빠지지도 않았어. 뭐, 아무튼 원점으로 되돌아가서 이야기를 해보자고. 이런 상황에서 네가 자격을 내려놓는 경우를 빼면 결국 남는 건 사실대로 말하는 것 밖에 없어. ‘너희가 이렇게 행동하는 게 불편하다, 바꿔줬음 좋겠다.’ 같은 식으로.”
시연은 내 말을 듣고 어딘가 망설이는 행동을 보였다. 그 행동이 의미하는 바를 나는 곧바로 알아낼 수 있었다. 그녀의 현재 상태는 무언가 고민을 안고 있는 인물이 열 명 정도 있다고 가정했을 때, 셋 정도가 포함되는 경우다.
“너, 이미 알고 있었구나?”
내 물음에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시연은 대꾸했다.
“ㅇ, 응? 알다니 뭘?”
“내가 말한 해결 방안을 넌 알고 있었어. 그렇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여기에 온 이유는 그 방법 이외의 방법을 찾고 싶었거나 네가 생각한 것에 확신을 얻기 위해서고. 아냐?”
시연은 조금씩 흔들리는 동공으로 나를 가만히 응시하다가 눈을 감아버리고 얕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녀를 따라 고개를 끄덕여주며 질문을 던졌다.
“질문 하나만 할게. 왜 진심을 말하는 걸 꺼려해?”
“그야…… 조금 오글거린다고 할까, 해 본 적이 별로 없기도 하고…….”
예상된 답변에 준비된 반박을 꺼낸다.
“뭐, 그럴지도 모르는 일이지. 하지만 가끔은 진심을 말하기도 하고 진지해지기도 해야 돼. 그거에 대해 오글거린다거나 하는 생각이 들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거야. 왜냐고? 친구를 비롯한 인간관계에서 진심이 빠진다면 남는 게 없는 거나 마찬가지거든. 팥 없는 단팥빵이랄까……. 네가 이번 일 이상으로 힘들 때나 네 친구들이 힘들 때 서로에게 아무런 조언도 구할 수 없게 되는 거야.”
시연은 내 말을 천천히 곱씹었다. 정확히는 그렇게 보였다. 아까 전의 등장이나 오컬트 동아리라는 것, 말투 등을 생각해보면 그녀는 그다지 학생회 같은 딱딱한 곳이랑 어울리진 않는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든지 시연은 학생회에 들어갔고 거기에서 나오는 딱딱함에 대한 스트레스를 풀 곳은 친구들과 동아리 정도였을 거다.
내 앞에 있는 부회장은 내가 말한 방안을 수용할 거라 생각한다. 내 말이 완벽하다고 말하고 싶은 거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아니다. 누군가는 내 의견에 반박을 내놓을 수 있을 거다. 그 정도의 허술함이 있을 거고, 있기에 완벽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이건 그녀 자신 또한 한 차례 이상 생각했던 방안이다. 그리고 그 방안을 내가 한 차례 더 반복해 말해줬다. 당연히 받아들이겠지.
이윽고 시연은 생각을 끝마친 듯 우리 쪽에 신경도 쓰지 않고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대로 가려는지 등을 돌렸다가 고개만 다시 살짝 돌려 작게 한마디를 던졌다.
“고마워…….”
진심을 전한다는 게 서툴러도 시연은 잘할 수 있을 거다. 사람은 그렇게 설계 되었으니까.
그렇게 전교 부회장이 우리 동아리실을 빠져 나간 뒤, 양옆에 있던 주윤과 상문이 다시 질문을 퍼부었다.
“네가 차기 부장인 것 같다, 야. 그렇지 않아?”
“그나저나 무슨 고민인데? 응?”
“친구 사이에서 진심을 빼면 안 된다면서~”
자세를 풀고 의자에 기대 늘어지며 천장을 바라봤다. 자는 척을 해볼까라는 생각을 해봤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혼잣말이라도 하는 것처럼 한숨과 함께 섞어 대답했다.
“때 되면 말해줄게, 때 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