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라는 캔버스 위에서 비행기라는 붓이 그림을 그리며 빠른 속도로 지나간다. 합이 어느 정도 맞춰지기 시작해서 그런지 처음과 비교하면 느슨한 연습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렇게 창가에 기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수 있다. 실력에 자신감이 붙어서 이러고 있는 거냐고 묻는다면 조금은 그렇다고 대답할지도 모르겠다. 하나도 몰랐던 처음에 비하면 실력은 확실히 늘었고 제각각 따로 놀던 우리의 합도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맞춰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이러고 있는 메인 이유는 따로 있다. 저번에 3학년 선배가 찾아왔을 때부터 느낀 미약한 열등감 때문이다. ‘여기에 과연 내가 어울릴까?’하는 그런 열등감. 당연히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아니, 말할 수 없었다. 언젠가 말해야하는 건 알고 있지만 그 시점이 지금은 아닌 것 같았다.
멍하니 턱을 괴고 밖을 쳐다보고 있는데 상문이 와서 어깨를 두드렸다. 고개만 살짝 돌려 상문을 바라보자 그녀가 이상한 걸 지켜보는 눈빛으로 나를 보며 얘기했다.
“왜 쓸데없이 폼을 잡고 있어?”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매점에서 뭐 사준다고 선배들이 말해서 너 뭐 먹을 거냐고 몇 번이나 불렀는데 대답이 없어서 뒤늦게 감성이 빗발치나 했지.”
“아, 그랬어?”
“그랬어.”
“난 피자빵으로 해줘.”
내 대답을 듣고 상문은 뒤를 돌아 선배들에게 “피자빵이라고 하네요!”라고 대답했고 이호 선배는 손짓으로 대답을 대신한 뒤 지민 선배와 함께 건물을 내려갔다.
‘선배들이 음료수도 같이 사준다면 금상첨화일 텐데.’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주윤과 상문이 내게 다가와 옆에 앉았다. 그리고는 당연하다는 듯 날아오는 질문 세례.
“너 요새 왜 그러냐?”
“좀 이상해~”
“사랑이라도 빠졌어?”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성적 고민이라도 해?”
단 하나도 정답과 근접한 질문이 없다. 그 모습에 조금은 안타까움까지 들어서 얕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어줬다. 역시나 다시 쏟아져 내리는 질문들.
“그럼 뭔데?”
“대체 뭐야?”
“좀 알려주면 안 돼?”
“그러니까 말이ㅇ…….”
도중에 말을 끊은 주윤을 한 번 봤더니 그는 말하던 그대로 입을 벌린 채 문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우고 그의 시선을 따라가 문 쪽을 바라봤더니 그 곳에 한 사람이 서있었다. 긴 머리를 앞으로 넘긴 채 가만히 있는 모습은 마치 어렸을 적 텔레비전에서 본 귀신을 연상시켰다. 천천히 앞으로 다가오고 있는 사람인지 귀신인지 모를 것을 주윤과 나는 비명도 못 지른 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고 옆에 있던 상문은 이미 고개를 뒤로 돌리고 부러트릴 기세로 내 팔을 꽉 잡고 있었다. 길게 내려오는 머리카락이 좌우로 흔들리는 것이 마치 최면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영향인 건지 내 안에서 엄청나게 많은 생각이 불규칙적인 원을 그리며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아니, 잠깐. 저거 진짜야? 실화야? 이거 동화 아니지. 꿈인가? 근데 꿈이라기엔 상문이 잡고 있는 내 팔이 너무 아픈데. 애초에 저게 귀신이야? 사람 아니야? 왜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거지? 낮인데 왜 나타났지? 귀신이 낮이랑 밤을 안 가리는 존재던가? 하긴 그들은 흡혈귀가 아니니 가릴 이유는 없을지도 몰라. 아니, 미친 이게 본론이 아니잖아. 그래서 결국 저 물체는 뭐야?
“당신 누구야?”
나도 모르게 말을 내뱉고 숨을 헉 하고 삼켰다. 생각의 소용돌이에서 도출된 결론은 일단 말을 걸자는 것이었고 그렇기에 말을 내뱉은 것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왜 갑자기 숨을 삼켰냐고? 이 말을 듣자마자 천천히 다가오던 물체가 우뚝 멈춰 섰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앞에 있는 물체는 웃음소리와 함께 커튼이라도 걷어내는 것처럼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 확실히 사람이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정신 차리라는 뜻으로 상문을 토닥였다. 천천히 그녀를 바라보며 정체를 파악했다.
“……전교 부회장인 주시연, 맞지?”
3학년은 대학에 관련된 문제 때문에 동아리만이 아니라 다른 것들에서도 참여가 제한된다. 학교 축제나 학생회 활동이 대표적이며 이런 이유로 전교 회장은 2학년, 전교 부회장은 1학년이 맡게 된다. 그리고 이번 년도 전교 부회장은 눈앞에 있는 바로 이 사람이다.
“맞아. 미안해, 놀랐어?”
“여름이었다면 모를까……. 겨울이 다 왔는데 그런 장난은 사양이야.”
“다음부턴 신경 쓸게. 알지 모르겠지만 내 동아리가 오컬트 동아리잖아. 그래서 한 번 해본 거야.”
“전교 부회장이면 학생회 소속 아니야?”
“학생회 소속이여도 동아리는 자유롭게 들 수 있어. 안 들어도 되고.”
가끔 생각해보면 우리 학교의 시스템은 다른 학교와는 좀 다른 것 같단 말이지.
하여간에 전교 부회장인 주시연이 이곳까지 왔다는 사실이 중심적인 사실이다. 그녀가 이곳에 온 이유를 세 가지 정도 추측할 수 있는데 하나는 그녀가 말한 오컬트 동아리에서 밴드 동아리로 동아리를 옮기는 것, 하나는 학생회의 입장에서 우리 동아리가 문제가 되었다는 것, 나머지 하나는 고민의 해결을 요청하러 온 것. 오래 생각할 것도 없이 어느 이유가 맞는지 단박에 생각해냈고 시연 또한 말을 꺼냈다.
“여기에 온 이유는 포스터를 봤기 때문이야. 알다시피 학교 게시판에 동아리 홍보 같은 걸 붙이는 건 너희들이지만 그걸 관리하는 건 우리잖아? 그래서 관리를 하다 보니 알게 됐지. ‘우리 학교 밴드 동아리는 고민 해결도 해주네?’ 하고 말이야.”
“그렇다면 이야기의 흐름 상 넌 고민을 가지고 왔단 거구나.”
“맞아. 그다지 심각한 건 아니지만.”
“심각한 게 아니면 고민을 할 필요도 없겠지.”
“너 되게 말 잘한다.”
“그런 소리 가끔 들어. 아무튼 원래 주제로 돌아가서 고민이 뭔데?”
고개를 끄덕인 시연은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곤 이야기를 시작했다.
“흠……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교우 관계의 문제야. 아까 전에도 잠깐 언급했던 것처럼 난 전교 부회장이잖아? 그래서 그런지 친구들이 내 앞에서 뭐랄까……. 올바른 아이인 것 같이 행동한다고 해야 하나?”
“좋은 거 아냐?”
주윤이 손을 들고 질문하자 시연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과 함께 말을 이었다.
“뭐, 나쁘지 않을 수도 있지. 욕도 별로 안 나오고 안 싸우고……. 하지만 그게 가식으로 느껴진다면 어떨 것 같아? 내 앞에서 다들 가면을 쓰고 헤실헤실 웃고 있을 뿐이야. 그건 그다지 좋지 않다고. 헛구역질이 나오려고 할 때가 있을 정도면 말 다 했지.”
뭐, 하긴 그 정도면 말 다 하긴 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난 그런 게 불편해. 친구 사이란 게 그런 건 아니잖아? 친구, 연인, 가족이란 그룹은 상하관계가 아니라 평등한 관계여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그런 네 생각과는 다른 상태라 이거구나.”
“그렇지.”
고개를 끄덕이며 상문이 질문했다.
“그럼 네 고민을 한 줄로 요약해본다면?”
상문의 질문에 시연은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친구들과 평등한 관계가 되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