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갈 힘이 없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스스로 삶을 포기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어느 정도 예상했다. 그건 옆에 있는 이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애써 외면하고 아닐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미 그것은 정답이 되었다. 심호흡을 한 번 작게 내쉬었다. 어렸을 적부터 긴장을 덜어내기 위해 길들여온 습관 중 하나다.
‘일단 지금을…… 지금만 생각하자. 내 감정은 그 뒤야.’
마음속으로 이 말을 다짐하며 나는 입을 열었다.
“선배. 일단 선배의 말은 알겠어요. 그럼 이제 제 차례인 걸로 알고 제 말을 시작하겠습니다. 우선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하고 싶은 일을 취미로도 하지 못 하는 인생은 그렇게까지 가치가 없진 않다는 거예요. 물론 그것이 평생에 걸쳐서 일어난다면 분명히 문제겠지만……. 선배는 그렇지 않아요. 지금 당장은 그런 삶일지라도 몇 개월 뒤에 수능이 끝난 뒤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잖아요?”
말하는 중간에 내 안의 구석에서 이건 모순적이라고 하는 의견이 튀어나왔다. 애써 그 의견을 눌러 터트리면서 말을 계속했다.
“그리고 우린 아직 젊잖아요. 백 살까지 산다고 가정했을 때 저흰 5분의 1도 아직 살지 못 했다고요. 남은 분량의 인생을 속단하고 버리기엔 너무 이른 것 같다고 생각하진 않습니까?”
눌려 터진 잔해가 스스로 뭉치더니 다시 한 번 의견을 발사했다. ‘지금도 이런데 남은 분량의 인생이라고 이러지 않을 것 같아? 사회인이라는 짐은 생각보다 무거워.’라고 말이다. 이번엔 그것을 난도질한 다음 말을 이었다.
“그리고 선배가 만약에…… 죽기라도 하면 선배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커다란 공백을 느낄 거예요. 선배의 자리라는 공백을요. 선배의 가족은 물론이고 친구, 저나 이호도 느낄 겁니다. 그리고 그건 매우 슬프겠죠.”
난도질을 당해 갈기갈기 흩어진 잔해가 또 다시 붙더니 이번엔 꽤나 묵직하게 내 말과 다른 의견을 내뱉었다. ‘닥쳐, 이지민. 더 이상 말하지 마. 너도 알잖아. 그런 말들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거.’라고.
그와 동시에 말이 끊기고 과거의 한 장면이 지나갔다. 그 장면의 시점은 작년. 공연 때문에 용산에 갔던 적이 있었다. 공연을 끝내고 나서 각자 2인 1조로 팀을 나눠 놀러 다니기로 했는데, 그 때 선배와 같이 다니게 되었었다. 여기저기 돌아다닌 뒤에 마지막으로 한강대교 위를 걸었는데 선배가 그곳에 적힌 자살방지 글귀를 가리키며, 어떻게 생각하냐고 질문 한 적이 있다. 등신 같았던 그 때의 나는 이렇게 대답했었다.
“글쎄요……. 분명히 누군가는 이걸 보고 위로를 받을 수도 있겠지만 모두가 위로를 받을 순 없겠죠. 자살을 하자고 마음을 먹은 사람은 그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생각들이 있어요. 그걸 몇 가지의 고정된 글귀만으로 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오산 아닐까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솔직히 그건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생각해보자면... 그런 사람들은 스스로가 극복하기 힘든 상황에 놓여있을 확률이 높겠죠? 물리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그 상황을 도와줄 수 있다면 베스트겠지만 그게 안 된다면 그 상황을 만들지 않게 최대한 신경을 써줘야 하지 않을까요?”
회상이 끝났다.
젠장……. 그래. 그 때의 내 말과 그 후에도 나눴던 선배와의 대화를 토대로 생각해보면 지금 상황에서 아까까지 내가 해왔던 말들은 모순적이다. 내가 지금 선배에게 해줘야 하는 것은 이런 입에 발린 위로가 아니다. 절대 아니다. 선배가 그렇게까지 생각하게 만든 이 상황을 어떻게 돌파할지에 대해서 같이 고민하고 돌파를 하며 나아갈 때 옆에 있어주는 게 제일 모순적이지 않은 언행이다. 그럼 여기서 새로운 문제가 탄생한다. 나는 왜 그렇게 하지 않는가? 애초에 몰랐다면 이야기는 별개다만 알면서도 하지 않는다는 건 큰 문제가 있는 거다.
내가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아마 같이 돌파해주고 고민해주는 일이 현재의 내게 어렵기 때문일 거다. 지금 내게 주어진 몇 가지의 일들이 없었다면 당연히 같이 해줄 수 있다. 왜냐하면 선배는 내게 있어 소중한 사람이고 잃고 싶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배만큼의 소중함을 가지고 있는 것들과 사람들이 있고, 그들을 먼저 챙기기로 정했다. 나는 내가 한 말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고 싶어 하는 성격이기에 어쩔 수 없이 선배를 돕는 게 어렵다.
내 안에서 다시 말이 튀어나왔다.
‘개소리 좀 집어치워.’
속에서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이건 개소리에 가깝다. 왜냐하면 앞서 말한 것들이 어느 정도 이유의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내가 외면해 온, 내 안에서는 정면으로 마주보고 있던 그것은 무엇인가.
내가 알고 있는 선배가 아닌 것 같다.
물론 판타지에서 나오는 또 하나의 선배 같은 개념은 아니다. 그냥 낯설다. 선배는 늘 앞에 서서 우리를 이끌어줬던 인물. 아무런 빛도 없던 우리에게도 빛을 선물해준 그런 밝은 사람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 앞에 있는 선배는…… 그런 과거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다. 그것에 적응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선배인 건 확실하다. 확실히 자각하자, 이지민. 시간의 변화에 따라 잠깐 변했을 뿐 이 사람은 선배야.
“……지민아?”
옆에서 이호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생각의 늪에서 빠져나왔다. 시간을 보니 5분이 지나있었다. 5분 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생각만 하고 있었다니. 고민을 가지고 온 사람이 다름 아닌 선배인데도…….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가다듬으며 선배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들 중 최선의 말을 했다.
“아까 앞서 한 이야기는 다 잊어주세요……. 다시 생각해보니 그 말들은 별로인 것 같아서요. 선배. 선배는 알고 있을 겁니다. 무엇이 선배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이에요. 그리고 그것을 할 용기가 부족하다고 선배 스스로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고작 1년이지만 선배를 가깝게 지켜봐온 사람으로서 감히 장담하죠. 그리고 하나 덧붙이자면……. 아까 한 말 중에 슬플 것 같다고 했던 말은 진심입니다.”
선배는 내 말을 듣고 즉각 반응하지 않은 채 나와 이호를 쭉 바라보고 있었다. 이호는 옆에서 내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선배를 바라봤다. 얼마 뒤 선배는 우리 둘의 머리에 손을 올리고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래…….”
엄습해온 약간의 불안감을 애써 떨쳐냈다. 나지막하게 선배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 동아리실 안을 가득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