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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어서와, 우리의 동아리에
작가 : 쑤우
작품등록일 : 2018.11.1

학교에 있는 수많은 학생들, 그런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고민들. 그것을 해결해주는 밴드 동아리가 있다.

 
17.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해결
작성일 : 18-12-03 20:15     조회 : 367     추천 : 0     분량 : 3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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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현재 시각은 오후 4시. 연습을 끝낸 후 조금은 지친 몸을 이끌고 우린 정문으로 나와 있다. 보통 때라면 이 정문을 통과해 바로 집으로 직행했겠다만, 연습 도중에 들어와 자신의 고민 해결을 신청한 신지연의 일이 남아있는 관계로 대기 상태에 있는 중이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지민 선배는 아까부터 스마트폰 시계를 통해 계속해서 시간을 확인하고 있었다.

  “2분만 더 기다렸다가 안 오면 그냥 가자.”

  4시 8분, 지민 선배가 한마디를 흘리자마자 저 멀리서 주인공의 실루엣이 보였다. 우리를 확인한 실루엣이 이쪽으로 빠르게 뛰어왔다. 땀을 조금 흘렸지만 숨이 찬 기색은 없이 도착한 신지연이 고개를 꾸벅 숙이며 사과했다.

  “죄송해요, 반에서 잠깐 졸아버려서…….”

  “괜찮아. 넌 올 줄 알았거든.”

  지민 선배는 어딘가 확신에 찬 대답을 날리곤 살짝 고개를 뒤로 돌려 우리에게 눈짓했다. 아마 저 눈짓의 의미는 ‘이제부터 내 차례니까 가만히 있어.’일 것이다. 이호 선배가 우리 모두를 대표해 고개를 끄덕였고 지민 선배는 끄덕임을 보자마자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려 자신의 눈앞에 있는 고민의 주인공을 바라봤다.

  “우선 네가 가져온 고민을 살펴보자. ‘남들보다 뒤처지는 게 불안하다.’였지?”

  “맞아요.”

  “그리고 그것은 성적의 이야기였고 말이야. 대충 학교 홈페이지 게시판을 뒤져보니까 넌 성적이 꽤나 상위권에 있더라고? 그런 네가 왜 그런 고민을 가지고 있는 걸까? 너 정도 성적이면 좀 떨어진다고 해서 밑바닥으로 직행하지도 않을 텐데. 그걸 보고 나서 조금 더 생각을 해봤더니 결론이 나왔어. 넌 거짓말을 했다고 말이야.”

  거짓말.

  “거짓말이요? 설마요, 제가 어째서…….”

  “맞아. 고의적으로 나쁜 마음을 품고 말한 건 아닐 테지. 거짓말을 너 스스로 진실이라고 믿었을 뿐이야. 따지고 보면 넌 나쁜 것도, 잘못한 것도 없어. 자, 그럼 이제 본론이야. 그럼 넌 어떤 거짓말을 진실로 만든 걸까? 나는 얼마 안 가 그 말이 뭔지 바로 깨달았어. 그 정도로 매우 흔한 말이지만 헛소리인 말이 있지. 뭐일 것 같아?”

  지연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하긴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면 우리에게 올 이유가 없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배가 물어본 이유는 자신이 생각한 것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을 얻고 싶었기 때문일 거다.

  그리고 선배는 틀리지 않았다.

  “그건 바로 ‘지금’이 아니면 공부할 수 없다는 말이야. 뭐, 얼핏 보면 마치 진실 같으니 오해할 수도 있지만……. 그럼 이제 이 말이 왜 거짓말인지에 대해 지껄여볼게. 지금이 아니면 공부할 수 없다. 이건 공부라는 넓은 개념을 학교에서 교과서를 통해 배우는 국어, 영어, 수학 같은 과목으로 제한시켜버린 대표적인 어른의 헛소리지. 공부라는 것은 네가 무언가를 배우고 익히는 모든 활동을 뜻해. 즉, 우리의 이 대화도 어떤 의미론 공부인 거고. 그리고 학교 공부도 네가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어. 그래서 지금이 아니면 공부할 수 없다는 말은 거짓말인 거야.”

  선배는 잠깐 말을 끊고 지연을 바라봤다. 지연은 한 눈에 봐도 느낄 정도로 진지하게 선배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고 그 태도가 만족스러웠는지 지민 선배는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그럼 왜 이런 말들을 너에게 한 걸까? 아마 너의 승부욕을 자극시키면서 동시에 지금 너에게 부여된 학생이라는 직책의 책임을 다하게 하려는 의도였을 거야. 하지만 방향이 틀려먹은 거지, 잘 들어.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뒤처지는 것을 불안해하는 건 나쁜 게 아니야. 우린 과거나 미래에 사는 사람이 아닌 현재에 사는 사람이니까 자연스러운 거지. 다만 네가 할 수 있는 것이 학교 공부에 한정되어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건 잘못된 거야. 그래서 방향이 틀려먹었단 거고. 사람들은 누구나 각자의 재능이 있어. 그리고 그건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 찾으려고 하면 할수록 찾을 수 있을 정도로 무수히 많지. 무한한 자원이 바로 사람이란 존재고 사람인 너도 그런 존재야. 찾으려고 하면 반드시 있어. 네가 학교 성적이 만약 뒤로 밀려나도 그 외의 부분에서 잘하면 된다는 이야기야. 결론적으론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거지. 밀려나는 것도,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도, 어른들의 쓸데없는 말과 기대도.”

  언제나처럼 찾아온 정적. 귀담아 듣던 지연은 이야기가 끝난 뒤로 쭉 무언가를 혼자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이 굴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글쎄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네가 진실로서 결론을 내리고 믿어버린 거짓말을 알려주는 것 정도야. 앞으로 어떻게 할지에 대해선 네가 생각하고 행동해. 넌 할 수 있을 테니깐.”

  지연은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며 지민 선배에게 물었다.

  “아까도 그렇고, 왜 그렇게 저의 행동에 대해 확신에 차있으세요?”

  지민 선배는 어깨를 으쓱이면서 물음에 답했다.

  “넌 자신의 문제를 똑바로 마주보고 있었고 몇 시간 뒤에 오라는 말에 처음엔 학원이라는 핑계를 대며 망설이다가 이내 오겠다고 얘기했어. 그 때 느꼈지. ‘진심이구나. 뭐가 우선시되어야 하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구나.’하고. 조언을 구할 마음, 조언을 들을 마음이 있다면 조언을 행할 마음 또한 분명히 있을 테니까. 조언을 구해놓고 행하지 않는, 아니 조언을 구하려고 하지도 않고 포기해버리는 흔해 빠진 애들과는 달라. 그러니까 확신에 차있는 거야. 그래서 난 네가 마음에 들어.”

  그러면서 지민 선배는 지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처음엔 놀란 듯 눈을 휘둥그레 뜬 지연은 이내 크게 떠진 자신의 눈을 감으며 선배의 쓰다듬을 자연스럽게 받았다. 조용히 선배는 이야기를 끝맺기 위해 입을 열었다.

  “1년이나 2년…… 설령 10년을 무언가에 몰두한다고 쳐보자. 그거에 대고 늦는다고 누군가 말해도 흔들리지 마. 넌 너만의 경주를 펼쳐나가면 돼. 같이 달려주는 사람, 물을 주는 사람은 곁에 두고 장애물을 두는 사람, 욕하는 사람은 무시해버려. 그게 인생이니까.”

  지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눈가가 촉촉한 채로 지민 선배를 보고 웃었고 지민 선배 또한 지연을 보고 웃었다.

  이미 해는 떨어져서 어둑한 거리를 다섯이서 걸었다. 다섯 째 횡단보도를 건너갈 때 옆에 있는 지민 선배에게 조용히 아까의 일에 관한 내 의문을 얘기했다.

  “선배가 아까 한 말로 승부욕을 잃진 않겠죠?”

  “누구.”

  “신지연이요.”

  “어. 그럴 거야.”

  “그럼 다행이고요……. 승부욕은 살아가는 데에 반드시 필요하니까요. 아까 선배가 말한 것처럼 방향이 틀렸다면 문제겠지만 없는 것도 문제잖아요. 안 그래도 우리나라는 경쟁 사회고 말이죠…….”

  “전쟁 사회 아니냐?”

  “네?”

  “경쟁은 아무리 해도 죽는 사람이 나오지는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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