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다.
현재 시간을 보니 새벽 2시를 지나치고 있었다. 게임을 하느라 지금까지 자지 않고 있던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학업에 열중하느라 잠을 무시하고 있던 것은 더더욱 아니다. 소설은…… 읽고 있었긴 했다. 새벽 2시까지 읽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왜 이 늦은 시간까지 깨어있는가? 소설에서 나온 내용에 대해 곱씹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의 내용을 대충 요약하면 이러하다. 주인공인 중학생은 택시운전사가 꿈이다. 그녀가 택시운전사로 진로를 생각하는 제일 큰 이유는 차를 타고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다는 것에 있다. 평범한 직업으론 차를 타고 출장을 나갔으면 나갔지, 가고 싶은 곳을 갈 일은 적기 때문에 차를 모는 것이 직업인 택시운전사를 생각하게 된 것이다. 차를 살 돈을 모을 방법은 대학에 가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으로 계획을 잡고 있다. 면허도 물론 따고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그녀의 부모님이 등장한다. 부모님은 ‘굳이 그 직업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자유롭게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다.’라고 하면서 여러 가지 방안을 제시한다. 주인공의 장래희망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은은하게 깔면서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재미있는 건 주인공은 이 직업의 장단점을 아주 잘 알고 있고 부모님의 의견이 헛소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는 거다. 그녀의 생각은 이렇다.
‘가고 싶은 곳을 간다는 것은 시간적 여유와 목적지를 갈 수단의 유무, 가고자 하는 마음이 전부 맞물렸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이 직업 이외엔 항상 세 가지 중 하나가 빠져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 부모님의 저 소리는 그저 내가 원하는 직업에서 등을 돌리길 바라기에 하는 말에 불과하다. 거기엔 나의 의중 따위 들어있지 않다.’
여기까지 읽었을 때가 대략 0시 20분 정도. 1시간 40분 동안 이 구절에서부터 흘러나온 고민에 대한 생각을 쭉 하고 있었다. 고민의 내용은 이러하다.
어째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직업의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가.
요즘은 부모님 같은 우리의 윗세대들만 존중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우리 나이대의 몇 친구들도…… 아니, 대다수의 친구들도 자연스럽게 윗세대들이 존중하지 않은, 흔한 말로 ‘비주류’직업에 대해 거부감과 혐오감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사태다. 윗세대들이 만들어낸 직업의 귀천이라는 틀린 가치관을 거르지 않고 받아들였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래서는 대물림 될 뿐이다. 우리들이 받은 고통을 우리의 다음 세대도 그대로 겪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다음 세대들이 진로에 관한 것으로 반항을 하면 우리는 이렇게 말하겠지. “우리도 다 그렇게 꿈을 포기했어! 꿈은 꿈일 뿐이야, 현실이 아니라고.”라고.
비겁하다.
그 꿈을 위해서, 그 꿈을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가. 시간을 들여가면서 몇 달이든 몇 년이든 버텨봤는가? 그러고 나서 정말 낭떠러지까지 몰렸을 때 포기하는 거라면 할 말은 없다. 허나 그런 노력도 없이 현실과 타협하고, 조금만 경험해보고 일찍이 포기하고. 그래놓고 남에게 포기를 강요하다니, 얼마나 모순적인가. 자신의 ‘꿈을 포기한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몸부림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한심해…….
생각을 잠시 멈추고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가 얼마 뒤에 들려온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맞춰 침대에서 일어나 방 밖을 나섰다. 머리를 좀 식히기 위해 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멀쩡히 깨어있는데 부모님의 귀가에 인사를 드리지 않는 건 예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늦은 시간에 들어온 인물은 나의 아빠. 형사라는 직업 때문인지 아니면 본인의 성격 때문인지 귀가 시간이 들쑥날쑥하다.
아빠와 눈이 마주쳤다.
“아직까지 안 잤니. 학교는 어쩌려고?”
주방에서 컵에 물을 따르며 질문에 대답했다.
“주말인데요, 아빠.”
“아, 그렇게 됐나? 시간이 참 빠르네.”
“뭐, 경우에 따라서 그렇기도 하죠.”
아빠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옷을 벗어 세탁기에 넣으셨다. 그리곤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내 옆에서 컵에 따르면서 말을 거셨다.
“뭘 하고 먹고 살지는 정했니?”
물을 조금만 남겨둔 채로 컵을 내려놓고 아빠의 말에 나만의 대답을 내놨다.
“아직이요. 그래도 몇 가지 생각해둔 건 있습니다.”
“그래. 신중한 건 좋은 거니까 말이다. 마음 가는 진로를 잡거라.”
그 말을 듣고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평소에 엄마가 내게 하던 말이랑은 많이 달라서다. 물론 진로에 관한 내용도 있지만 아빠에 관한 내용도 조금은 달랐다. 무뚝뚝하고 생각이 조금 짧고 행동성이 높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지금 내가 보는 아빠의 모습에선 무뚝뚝함은 있을지 몰라도 생각의 짧음은 없는 것 같았다.
생각이 짧은 사람의 눈동자가 저렇게 밝을 리 없어……. 엄마와 비슷한 레벨의 밝기다.
시선을 아빠의 눈에 고정한 채 말을 건넸다.
“아빠는 엄마랑 좀 다르네요.”
“하하하, 글쎄? 집에 안 들어와도 연이가 내 몫까지 너에게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 걸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평소에 A쪽 의견을 들었을 테니 난 반대인 Z의 의견을 말해주는 게 균형에 맞잖니.”
아빠가 맥주를 한 번에 들이켜는 것을 보고 나도 남은 물을 전부 마셨다. 생각해보면 아빠는 늘 엄마에 대해 나에게 이야기할 때 '너희 엄마'가 아니라 엄마의 이름으로 부르신다. 저번에 엄마에게 이것에 대해 물어보니 웃으시면서 “그렇게 하고 싶다고 해서 그냥 뒀어.”라고 대답하셨다.
컵을 내려놓자 아빠의 손이 내 머리 위에 얹어졌다.
“널 위해서 하는 말이란 거엔 변함없어. 너와 의견이 맞지 않으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 된단다. 굳이 싸울 필요는 없다고 아빠는 생각해. 싸워봤자 싸운 사람만 힘드니까 말이야.”
내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며 아빠는 말을 끝맺었다.
“결국 어떤 선택을 하던 네 옆에 있을 사람은 있어주니까 걱정은 크게 안 해도 된단다.”
그래. 저 말을 들었다면, 그리고 저 말을 진심으로 했다면 꿈을 포기한 사람이 없진 않아도 지금보단 적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