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는 나갔다. 나갔다 오겠다고 했을 때 왜 나가냐고 물어봤더니 털을 청소할 수 있는 도구를 사러 가겠다고 했다. 그 도구가 향할 곳이라고 짐작되는 곳으로 시선을 던졌다. 내 시선 끝에 있던 고양이와 한 몸이 되고 싶은 건지 털들에 휩싸인 민서가 고개를 들어 나에게 물었다.
“어라, 이호는?”
“참 빨리도 알아차린다. 뭣 좀 사러 나갔어.”
“뭐 사러?”
“네 옷에 붙은 거 뗄 도구.”
그제야 민서는 자신의 옷을 휘휘 둘러보더니 손으로 대충 털을 털어냈다. 이호가 와야 훈련법이나 돈 분배 같은 세세한 것들을 정리할 수 있기 때문에 식탁 의자에 앉아 기다리기로 했다. 얼추 다 털었다고 판단한 건지 민서가 다가와 앞에 앉았다. 그녀의 어깨너머로 고양이들을 살펴봤더니 지들끼리 잘 놀고 있는 것 같아 그대로 두기로 했다.
컵에 물을 따르고 천천히 마시면서 고양이들이 입에 대면 안 되는 음식들을 어디에 둘지, 그냥 버려야 할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데 민서가 생각과 생각 사이에 난 작은 빈틈을 놓치지 않고 들어와 말을 걸었다. 이런 타이밍은 정말 잘 잰단 말이지.
“처음 여기서 살게 될 때부터 물어보려고 했던 건데 왜 혼자 살고 있는 거야?”
질문에 곧장 대답하지 않고 물을 일부러 천천히 마셨다. 그녀를 골탕 먹이려는 게 아니라 대답을 할 단어와 문장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건 조금 무거운 주제니까.
무거운 주제를 가벼운 대답으로 장식하고 싶지 않은 개인적인 욕심이다.
컵을 내려놓고 시선을 컵에 담긴 물에서부터 천천히 민서에게 옮기며 입을 열었다.
“글쎄. 보통 다른 또래들이 겪는 일이 싫었다고 해야 할까?”
“다른 애들이 겪는 일?”
“응. 흔한 일이지. 부모님과의 마찰이야. 우리 엄마는 초등학교 교사에 아빠는 회사원이거든? 그런데 두 분의 눈엔 음악에 흥미를 가지고 음악으로 가려는 내가 탐탁치 않으셨나봐. 뭐, 이해는 해. 돈도 많이 들고 미래도 두 분이 가지고 있는 직업에 비하면 불투명 하지. 하지만 미래라는 것 자체가 불투명한 거 아냐?”
“불투명하지.”
“고마워. 아무튼 그래서 부모님께 내가 말을 했지. 돈이 문제냐고. 그런 거라면 대학에 안 가겠다고, 독학으로 하다가 안 되겠다 싶으면 알바를 해서 학원비를 내가 부담하겠다고 했어. 그래도 안 된다는 거야. 그래서 뭐가 그렇게 걸리는 게 많기에 안 되는 거냐고 물어봤어.”
그 때의 감정이 역류하는 것 같아 남은 물을 단숨에 들이켰다. 물과 함께 감정들을 속으로 흘려보내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부모님은 그 때 그렇게 말씀했어. 아까 내가 한 번 언급했던 미래가 불투명한 점과 대학엔 가야한다는 것, 그리고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직업에 비하면 너무 초라한 것이 걸린다고 하더라고. 거기까진 들어줄만 했어. 그런데 그 후에 나한테 뭘 건넸는지 알아?”
“뭔데?”
“공무원 시험 참고서. 그걸 보고 느꼈지. 이 분들은 지금 내 꿈을 들을 생각이 없구나, 시간을 낭비했구나……. 같은? 그건 한마디로 줄이면 내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그들이 원하는 삶의 방향을 내게 강요하는 거잖아? 그 후엔 솔직히 크게 기억나는 건 없어. 아마 내가 먼저 감정적이게 나왔을 테고, 부모님도 따라서 같이 감정적이게 되었겠지. 그 후로 일주일 정도 냉전 체제를 유지하다가 8일 째 되는 날에 내가 집을 나가겠다고 그랬어. 부모님은 하루만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셨지. 그리고 그 생각의 결론은 네가 보는 대로야.”
“그럼 전기세나 수도세 같은 건?”
“내가 알바로 벌겠다고 했는데 부모님이 끝까지 그건 자신들이 내겠다고 하시는 바람에 부모님이 주시는 돈으로 지내고 있어. 용돈은 당일치기 알바 같은 걸로 충당하고 있고.”
민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컵을 가져와 물을 따라 마셨다. 민서 본인이 어떠한 방향으로든 납득한 모양이기에 나도 입을 닫았다. 왜인지 모르게 목이 타 비어버린 컵에 다시 물을 채워 넣었다.
반강제적으로 끌어올려진 구석에 넣어둔 기억을 오랜만에 꺼냈더니 먼지가 수북이 쌓인 채 멈춰있던 그 일에 대한 사고회로가 다시 발동되었다.
확실히 조금은 과했을지도 모른다. 부모와 자식 간의 트러블은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고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에서 어느 한 쪽이 목숨을 다 할 때까지 늘 마주치는 문제다. 누군가가 내 이런 모습에 대해 현실도피라고 명명한다면 그건 또 그것대로 맞을지 모른다.
하지만 난 이렇게 생각한다. 가끔 적당한 도피는 필수라고 말이다.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문제들이 우리 앞을 기다리고 있겠는가. 그것들을 언제나 직면하고 몸으로 받아낸다면 결국 먼저 부서지는 쪽은 우리의 몸이다. 가끔은 피하고 넘기지 않으면 육체든 정신이든 먼저 무너지는 쪽은 우리라는 소리다. 뭐, 이런 말도 현실도피자의 자기방어라고 말한다면 할 말이 없긴 하다. 그렇게 믿고 싶다는데 내가 뭐라고 한들 듣지 않을 테니 말이다.
아무튼 현재로서의 나는 이것이 현실도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을 직시했기에 할 수 있었던 결단이었다고 생각한다.
부모님들은 내 꿈에 대해 그저 어린 시절의 만용으로 보고 있으셨고, 내 꿈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으며 가질 시간조차 없으셨다. 말싸움을 한다고 하면 2대1이다. 당연히 내가 질 거고 그렇다면 난 억지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러 다녔겠지. 우리 나이대의 학생들에게 현실이란 공무원 같은 것인 건가?
언제부터 우린 미래라는 불확실한 것을 위해 과거와 현재라는 확실한 것을 외면하고 희생하게 되었는가?
이것은 부모님과 싸우기 훨씬 예전부터…… 아마도 중학교 입학 때일 것이다. 대학교에 가야하니 공부에 집중하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가지고 온 풀리지 않는 고민이다.
고민거리를 던져준 어른 이외의 어른에게 물어보고 조언을 구해봤지만 열의 일곱은 미래를 위해서라고 대답해왔고 둘은 어린애는 몰라도 된다는 말을, 하나는 지금 밖에 때가 없기 때문이라는 말을 했다.
같은 고민거리를 안고 있을 법한 주위의 동갑, 동생, 오빠, 언니들에게 물어봤지만 절반은 관심이 없이 놀고 있고 절반은 순종하며 살고 있었다.
대학을 목표 삼아 학교 공부만을 가르치는 게 초등학교부터 시작해서 12년. 그 후에 대학의 학과를 쓰거나 대학에 안 가는 학생들에게 직업의 폭은 매우 넓고 다양하니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한다. 배운 거라곤 수학 공식이나 영어 문법 같은 것 밖에 없는데 말이다. 참 웃긴 세상이야.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어느새 고양이들이 식탁의 밑에서 뒹굴고 있었다. 오랜만에 작동해서 그런지 과부하가 올 것 같은 과거의 사고회로를 강제종료 시키고 멍하니 그 모습을 보며 시간을 죽이고 있는데 민서가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졌다. 아까 한 질문과는 근본부터 다른 질문이었다.
“너 이호랑 사귀어?”
그 질문을 받고 머릿속에서 돌고 있던 현재의 사고회로가 잠시 정지했다. 헛기침을 하고 나는 다시 되물었다.
“그건 무슨 뜻이야?”
그러자 민서는 뭘 당연한 걸 묻느냐는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이쪽을 바라보다가 놀림거리를 발견한 초등학생처럼 씩 웃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고는 의자 등받이에 기대면서 말했다.
“무슨 뜻이긴? 말 그대로의 뜻인데?”
그렇게 말하곤 다시 상체를 앞으로 내밀어 턱을 괸 채로 나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엄청나게 부담스럽지만 우선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해야 하기에 간신히 시선을 맞추고 입을 열었다.
“안 사귀어. 뭐, 곧잘 다들 오해하는 것 같긴 하지만.”
“오해하지, 당연히. 너희 학교에서 모습에 자각은 있어?”
“무슨 모습?”
“맨날 둘이 붙어 있잖아. 체육 때도 그렇고 동아리도 그렇고 심지어 옆자리잖아.”
“그게…… 오해할 만한 재료가 될 수 있는 거야?”
“그렇다니까 그러네.”
한숨을 깊고 진하게 내쉬었다. 가끔씩 날아오는 질문이었기에 이참에 질문 발생의 근원이 무엇인지 궁금해 물어봤더니 그런 가벼운 이유였다니. 하여간 요즘 애들은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너무 가볍게 여긴다. 뭐, 이런 내 말을 들으면 젊은 꼰대냐면서 한마디 할지도 모르지만.
민서가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저번에 내 고민을 해결해준 그 날. 카페에서 둘이 눈짓으로 의견을 교환했다고 했잖아. 그게 가능한지에 대한 여부를 떠나서 보통의 관계에서 그런 게 성립이 될 수가 없지 않아? 가족끼리도 힘들지 않을까, 그거.”
덧붙인 민서의 이 말은 그녀가 그런 오해를 할 수 밖에 없었다고 나를 인정하게 만들었다. 그건 아마 그녀가 그런 오해를 가지게 된 결정적인 원인이었을 것이다. 앞서 말한 것들은 다른 애들의 오해 근원을 설명한 것일 뿐이었을 테지.
다행히 내 앞에 있는 애는 그렇게 가벼운 애가 아니라는 생각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그녀의 의문에 대답했다.
“작년 3월부터 시작해서 이번 년도 2월까지? 그 때까지만 해도 선배들이 아직 동아리에 있었고 그래서 인원도 많았잖아. 선배들이 되게 열정적이고 무대 위에서 즐기는 걸 좋아했거든. 우리도 그랬고. 아무튼 그래서 교내 공연도 엄청나게 했었고 학교만이 아니라 고아원이나 양로원 같은 곳에서도 몇 번 공연을 했었어. 1년 동안 연습으로 인해서 걔랑 엄청나게 마주쳤는데 그 만남들 중에서 우연히 나온 아이디어야. 무대 위에서 말로 주고받을 수 없으니까 눈짓으로 서로 말을 하는 걸 연습한 거야. 무대 위에서 눈짓으로 말실수를 할 일도 없게끔 일상에서도 썼고.”
“흐음. 대단하네.”
이제부터 민서가 믿을지 안 믿을지는 자유다. 그건 나랑은 상관이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녀가 믿던 안 믿던 이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가만히 혼자 생각을 하는 것 같았던 민서가 조용하게 말을 던졌다.
“그럼 이호를 어떻게 생각해?”
찾아온 정적.
대답하기 애매한 질문이다.
물론 내가 이호를 연애 감정으로 바라보고 있기에 애매한 것은 아니다. 그런 것을 숨기는 성격이 아니라는 건 다른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다. 내게 그런 마음이 있었다면 진즉에 고백을 했겠지.
그렇다면 왜 애매한가. 사랑이라기 보단 믿음의 영역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종교에서 말하는 믿음은 절대 아니다. 이 애와 함께 어떠한 일을…… 그래, 예를 들어 밴드를 하면 즐겁고 재밌을 거라는 믿음이다. 돈이 벌리던 벌리지 않던 말이다.
그래서 난 다른 애들에게 늘 하던 대답으로 질문을 맞받아쳤다. 언젠가 이 애매함이 확실하게 자리를 잡으면 제대로 된 대답을 들려줄 거라고 마음을 먹으면서.
“노코멘트 할게.”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호가 도착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