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왔습니다.”
부모님이 맞벌이여서 아무도 없는 집 안에 대고 의미 없는 인사를 했다. 어렸을 적엔 혼자 있다는 게 무서워서 텔레비전의 볼륨을 크게 해놓거나 퇴근 시간까지 집에 안 들어오곤 했었는데 나도 그 때보단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홀로 남겨진 것에 대한 두려움은 어느 정도 사라졌다. 가방을 내려놓고 냉장고에서 고양이 전용 참치를 꺼냈다. 물론 내가 먹으려는 것은 아니다. 밖에서 자주 밥을 주고 있는 길고양이들을 위한 것이다.
사실 대략 작년 이 쯤부터 고민이 있다. 작년부터 같이 동아리를 운영해온 지민에게는 말했었던 고민인데 그건 바로 길고양이들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면 옆집 사람과 마찰이 생긴다는 것이다.
늘 주던 장소로 가서 먹이를 그릇과 함께 놓고 있는데 뒤에서 호통이 날아왔다.
“또 주고 있어?!”
신경을 있는 만큼 다 긁는 느낌의 굵직하고도 불쾌한 목소리가 귀에 울렸다. 뒤를 돌아보자 내 고민의 주인공이 그곳에 서있었다. 속으로 온갖 소리를 다 했지만 겉으론 웃으면서 아저씨에게 대응했다.
“또 주고 있어요.”
인상을 있는 대로 구기며 아저씨가 내 말에 대답했다.
“그게 할 말이야? 내가 주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잖아!”
“제가 그냥 저랑 고양이들을 가만히 두라고 말씀하신 만큼 말씀드렸는데요.”
“얘들이 네가 준 밥 때문에 여기저기에 똥이나 오줌을 싸고 다녀서 냄새 난다고!”
“글쎄요, 여기 주민들이 일주일에 버리는 쓰레기들보다 냄새가 덜 날 것 같은데요.”
“네가 그 똥이랑 오줌을 치워 줄 것도 아니잖아!”
“얘들이 굶어서 죽었을 때 그 몸을 아저씨가 치우실 것도 아니잖아요. 그리고 얘들이 배설을 하는 구역을 저번에 봤는데 풀밭이었어요. 거름이 되겠죠.”
문장의 순서나 단어만 조금씩 바뀔 뿐 핵심적인 것은 전혀 바뀌지 않는 무의미한 소모전을 마찰이 생긴 날부터 쭉 해오고 있다. 지치기만 하는 대화를 오늘 여기서 끝을 내야겠다고 생각하며 먹이를 꿋꿋하게 줬다. 머릿속에서는 무슨 행동을 해야 이런 대화가 끝날지에 대한 것들이 떠올랐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그 반복 속에서 떠오른 하나의 방법을 잡아 입을 통해 밖으로 나오게 했다.
“아저씨, 그럼 이렇게 해요.”
“뭘?”
“주민 분들에게 투표를 시키죠.”
“무슨 투표? 설마 고양이?”
“네. 다수결에 따르기로 합시다. 그리고 이건 일종의 내기니까 졌을 때의 벌칙도 정할까요?”
“아니, 애초에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저와 원하는 바가 다르니까요. 끝도 없이 갈등하고 언쟁만 할 바엔 이렇게 끝을 내는 게 옳다고 보는데요.”
“네가 안 주면 되잖아.”
“아저씨가 저를 그냥 두면 될 텐데요.”
그 말을 끝으로 우리는 서로를 조용히 노려봤다. 아저씨 쪽에서 먼저 한숨을 푹 쉬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애초에 너는 왜 고양이들에 그렇게 집착해?”
“힘들고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서요. 얘들은 말이죠, 사람이랑 달라요. 그저 종족의 차이를 말씀드리는 게 아닙니다. 얘들에겐 제 모든 이야기를 할 수 있어요. 그저 가만히 있어주거든요.”
“그게 뭐 그리 특별하다고…….”
“요즘 사람들은 그 특별하지 않은 일도 못 하거든요. 안 하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친구, 심지어 가족조차 주변인들의 힘듦을 외면해요. 그 미래라는 허상과도 같은 것 때문에 어디에서든 자신의 긍정적인 부분만을 보여줘야 하는, 그런 힘들고 각박한 상황에서 얘들은 일종의 희망이죠. 적어도 제게는…… 그러니까 이제 그만 싸우자는 뜻에서 하자는 겁니다, 투표.”
“……내가 지면 뭘 해줘야 하지?”
“이 아이들에게 하루에 한 번씩 반드시 먹을 것을 줄 것. 장소는 여기에요.”
“네가 진다면 넌 뭘 할 생각이지?”
“아저씨가 원하는 것을 해드리죠.”
“밥 주지 말거라.”
“좋아요.”
“사람의 구역에서 왜 이런 투표를 하는지…….”
“원래였으면 여긴 얘들의 구역이었죠.”
대화는 거기서 끝났고 난 집으로 곧장 가, 투표용지를 만들어 각 집 앞에 붙였다. 기간은 이틀 후까지로 정했다. 충분히 생각할 수 있길, 생각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간을 넉넉히 정한 것이다. 물론 아저씨의 시선이 없는 이른 새벽이나 늦은 밤에 먹을 것은 계속 가져다 줬다. 그리고 거의 하루 종일 혹시나 모를 상황, 즉 투표에서 지는 상황에 대한 대책을 생각해내기 위해 머리를 많이 굴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투표는 내가 패배했다. 적어도 이 동네의 사람들은 학생의 말보단 조금 더 나이가 있는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 같다. 그것이 나쁜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아마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반드시 다를 거다. 그렇기에 현재의 상황에 대한 내 의견은 비밀로 하도록 하겠다.
아저씨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목소리에 잔뜩 힘을 줘 “봤지?”라고 말했고 나는 그에 대해 웃음으로 대답했다. 다행히 그 전에 생각해낸 대책이 있기 때문이었다.
임시 집으로 만든 커다란 박스에 고양이 가족들을 태우고 지민의 집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 민서의 사건 때 그녀는 부모님에게 허락을 맡았다곤 했지만 사실 딱히 허락이랄 것도 없었다. 전화로 “당분간 친구랑 같이 살게.”라고 말한 게 끝이다.
지민은 현재 자취 중이다.
왜 지민이 흔치 않게 고등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자취를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그녀만의 이유가 있겠지만 굳이 캐물을 생각은 없다. A라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A만이 가지고 있는 이유는 본인이 말해줄 때까지 질문하지 않는 게 옳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처음에는 민서도 당황했지만 곧이어 “역시 재밌네.”라고 대답하고 아무렇지 않게 지금까지 같이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지민의 집인 한숨 빌라라는 5층짜리의 건물로 들어가 20B호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지민과 민서가 현관 앞에 서있었다. 내가 들고 온 박스의 안을 보더니 조심스럽게 한 마리씩 들어 올려 바닥에 내려놓았다.
“고마워. 무리한 부탁인데 들어줘서.”
“이 집에는 다른 잡다한 전선이 없어서 상관없어. 애초에 너도 시간이 날 때마다 여기에 와서 같이 돌보겠다면서.”
“그렇지.”
“그럼 된 거야.”
어느새 샀는지 캣타워와 고양이 가족들의 집이 준비되어 있었다. 민서는 벌써 바닥에 앉아 고양이들에게 이름을 정해주기 시작했고 고양이 가족들은 그런 민서를 아무 말 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투표는 어땠어?”
라고 지민이 묻자 간략하게 결과를 말했더니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어리다고 무시하는 사람들이야 잡초마냥 널렸으니깐. 현실적인 것을 떠나서 생각할 수 있기에 어쩔 땐 더욱 옳은 곳으로 향할 수 있는 게 어린 애들인데 말이지.”
라고 대답했고 난 그 의견에 동의했다. 민서와 고양이 가족이 함께 뒹구는 모습을 지켜보며 털을 청소할 수 있는 걸 사와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