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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어서와, 우리의 동아리에
작가 : 쑤우
작품등록일 : 2018.11.1

학교에 있는 수많은 학생들, 그런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고민들. 그것을 해결해주는 밴드 동아리가 있다.

 
12. 친구의 커밍아웃
작성일 : 18-11-12 21:44     조회 : 364     추천 : 0     분량 : 3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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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퍽-.

  둔탁하게 무언가를 때릴 때 나는 소리가 동아리실에 퍼졌다. 얼얼한 통증이 내 볼을 천천히 지배해 나갔고 그 지배를 걷어낼 틈도 없이 내 몸은 중심을 잃고 흔들렸다. 옆에 있는 책상을 급하게 잡고 애써 중심을 되찾으려고 노력하며 앞을 바라봤다. 아니, 노려봤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주위에 있는 부원들, 특히 박주윤이 크게 벌어진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고 내 앞에는 주먹을 꽉 쥔 채로 잔뜩 분노에 지배된 우리 학교 학생이 서있었다. 이름은 홍수영. 그가 내게 왜 주먹을 날리게 되었는지 알아보려면 대략 30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오늘은 여름방학식이 있는 날이다. 말이 좋아 방학이지 실상을 들여다보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학원이네 뭐네 하면서 제대로 쉬질 못 한다. 방학이 오히려 더 바빠서 방학이 안 왔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주위에 생길 정도니 말은 다 했지.

  여름방학식을 끝내고 동아리실로 올라갔다. 우리 학교는 방학 때에도 교문을 자유롭게 열어두는데 이것은 동아리 활동에 자율성을 주기 위해서라고 전에 들은 바 있다. 즉, 신기하게도 학원을 다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우리 동아리는 방학 때에도 늘 만날 수 있단 소리다. 나쁘진 않다. 오히려 좋다고도 할 수 있다. 별 다른 특별함도 없이 시간을 죽이던 이전의 방학보다 훨씬 알찰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먼저 와있었는지 두 선배가 가볍게 인사했다. 나도 비슷한 무게로 인사를 건넨 뒤에 늘 앉던 곳에 앉으며 선배들에게 말을 걸었다.

  “엄청 빨리 끝나셨네요?”

  “담임이 공부하라고 먼저 보냈어.”

  “이번 고2들은 전부 먼저 보낸 느낌이던데? 내가 교실 문을 나섰을 때 방송이 시작했거든.”

  “가서 공부나 하라는 소리지. 하긴 대학 입시까지 1년 반 정도 남았으니까 선생들이나 학생들이나 급한 건 매한가지인가?”

  이지민 선배와 서이호 선배의 대화를 들으며 새삼 시간의 흐름을 느꼈다. 선배들보단 늦다지만 그래봐야 고작 1년 차이.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넘어갈 땐 멀게만 느껴졌던 대학에 대한 이야기가 얼마 안 있으면 코앞에 놓이게 된다. 아니, 이미 놓였을지도 모르겠다. 내년이 되면 부모님이 학원에 다니라고 할까?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멍하니 있는데 문이 열리면서 박주윤이 안으로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박주윤 이외의 누군가가 그의 뒤에 서있었다.

  “다들 빨리 끝났나 보네…….”

  주윤이 입을 열며 현재 모여 있는 사람들의 중앙에 위치한 곳으로 걸어갔다. 자연스레 그의 뒤에 있었던 누군가…… 아마 박주윤의 지인 또한 그를 따라 중앙으로 걸어갔다. 뮤지컬에서 주연 배우가 중앙으로 걸어와 과장되고 화려한 자신의 솔로 무대를 하는 듯이 주윤은 팔을 양옆으로 쫙 벌리며 우리에게 말했다. 그의 걸음걸이 때문에 눈치 채지 못 했지만 어느새 들어온 김상문이 그 행동을 보고 소리를 죽여 웃는 모습을 주윤은 절대 볼 수 없었을 테다.

  “여기 제 뒤에 있는 이 친구! 이름은 홍수영인데요, 고민이 있다고 해서 제가 데리고 왔습니다.”

  요란한 인사에 걸맞지 않게 정작 고민의 주인공인 홍수영의 표정은 요란하지 못 하다. 요란하다는 표현을 빼고 봐도 그의 표정에서 활기를 찾아볼 수 없다. 긴장한 탓인지, 스스로 고민하고 있는 문제에 대한 스트레스인지는 이제부터 알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자세를 고쳐 앉았다. 내 모습을 확인이라도 하고 있었는지 딱 그 타이밍에 이어지는 지민 선배의 질문.

  “그래서 고민은 뭔데?”

  “저, 그게…….”

  홍수영이 머뭇거리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이호 선배가 다정하게 한마디를 보탰다.

  “원래 좀 사나운 말투니까 걱정하지 마.”

  말이 끝나자마자 지민 선배가 이호 선배를 매섭게 노려봤다. 이호 선배는 빙그레 웃으며 입모양으로 “한 번만 봐줘.”라고 말했고 그러거나 말거나 홍수영은 결심이라도 한 것처럼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 입을 열었다.

  “친구가 제게 커밍아웃을 했어요.”

  이곳에 있는 모두 그 말을 듣고 즉각 반응하지 못 했다. 물론 그 이유는 ‘커밍아웃’이라는 단어에 있다. 단어의 의미를 모르는 것은 아닐 거다. 적어도 나는 의미를 몰라서 반응하지 못 한 것이 아니다. 의미는 알고 있으나 내 실생활에 자주 등장하지 않는, 거의 등장한 적이 없는 단어였기에 반응할 수 없었던 것이다.

  어색한 정적이 휩쓸고 지나간 후에 이호 선배가 기침을 두어 번 하고 홍수영에게 말을 건넸다.

  “조금만 더 자세히 설명해줄래?”

  그 후에 이어지는 홍수영의 설명을 요약하면 대략 이렇다.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있다고 한다. 고등학교에 올라와서 만난 친구가 아니라 중학교 2학년부터 쭉 같이 지내온 친구인데 엊그제 하교 도중에 갑자기 카페로 가자고 했다고 한다. 평소에 카페나 커피와는 인연이 전혀 없던 친구였기에 무슨 일이라도 있나 싶어 일단은 따라 들어갔다고 한다. 심지어 안에 들어가서도 커피까지 사주기에 ‘아, 어지간히 큰일인가 보구나.’싶었고 커피를 가지고 좌석에 앉은 후에도 조금 긴장한 표정이기에 먼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랬더니 우물쭈물 하며 말을 제대로 못 꺼내서 괜찮으니까 어서 말해보라고 했더니 커밍아웃을 했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에 대해 다 듣고 난 뒤, 우리 중 그 누구도 섣불리 입을 열지 않았다. 애초에 선배들의 해결은 하교 때이기에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있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어색한 침묵을 견디지 못 하겠는지 얼마 안 가 홍수영이 입을 열었다.

  “저…….”

  “응?”

  홍수영의 입에서 나온 불특정 다수를 지목하는 말에 우리 다섯은 정말 신기하게도 거의 동시에 대답했다. 그도 놀랐는지 “아니, 아니에요.”라고 말하면서 입을 꾹 닫았다.

  “잠깐 시간 좀 줄래? 어차피 오늘은 방학식이니까 시간은 있지?”

  상문의 말에 홍수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움직임을 보고 난 후에 곧바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여태까지 굴리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그 때와 지금의 다른 점이라면 지금은 모든 정신을 머리에 집중하고 있다는 거다. 최대출력이라고 하면 될까?

  커밍아웃. 그렇다. 주윤의 친구가 오늘 가지고 온 고민은 바로 이것이다. 그는 그의 친구와 친밀감이 꽤나 쌓여있을 것이다. 애초에 친밀감이 별로 없거나 그다지 친한 관계가 아니라면 무시하면 될 일이니까 말이다. 친한 사이이기에 고민을 한다는 거다.

  잠깐만.

  고민이 뭐라고?

  “저기.”

  내가 손을 들고 홍수영한테 시선과 말을 던졌다. 내 시선이 꽂힌 본인을 비롯하여 이곳에 있는 전원이 내 쪽으로 시야를 돌렸다. 동아리원의 시선을 무시하면서 나와 눈을 맞추고 있는 홍수영 본인에게만 집중했다.

  “그래서 고민이 뭐야?”

  가까운 친구의 커밍아웃은 고민이라기 보단 고민의 시작점에 가까운 일이다. 그렇다면 그가 가지고 있는 고민은 아직 말을 하지 않은 셈이다.

  내 예상이 맞았는지 홍수영은 입을 살짝 벌린 채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말을 했다.

  “어떻게 거절할지가 고민이야.”

  그 말을 듣고 다른 사람은 어땠을지 모르지만 나는 어이가 없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니, 어이가 없어졌다.

  거절을 한다고? 대체 무엇을? 친구의 커밍아웃을?

  저절로 내 입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 웃음은 평소에 내가 짓는 웃음이 아니었다.

  헛웃음.

  헛웃음이 진심으로 흘러나왔다.

  그렇게 단 몇 초 동안 고개를 숙이고 작게 웃은 뒤, 정색을 하고 고개를 들었다. 무시하고 있던 동아리원들의 시선들에서 나의 고의적인 무시를 뚫고 어떠한 감정이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걱정이었다. 지금 당장 걱정할 것 없다고 말해주고 싶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먼저 말해야 할 것이 있다.

  그리고 홍수영을 향해 먼저 말해야 할 것을 내뱉었다.

  “지랄하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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