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너의 친구의 종교가 무엇인지를 생각하다가 도중에 그런 것에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달아서 종교 자체에 대해 생각을 해봤어. 종교라는 것은 왜 존재하게 된 걸까? 실제로 각 종교에서 말하는 신이 있었기에 존재했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그게 아니라면 종교는 왜 존재할까? 그 생각을 한지 몇 분, 나는 하나의 답에 도달했어.”
일부러 뜸을 들였다. 이런 식으로 뜸을 들였을 때 상대방의 반응을 보고 상대방의 나의 이야기에 대한 집중도를 알아볼 수 있다고 생각한, 옛날부터 가지고 온 나의 버릇 중 하나다. 다행이라면 다행이고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김상문은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뒷말을 재촉했다.
“그래서? 그 답은 뭔데?”
“정신적인 편안함을 얻을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라 그래. 육체적인 편안함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현실에서의 여러 문제들이나 스트레스들을 어느 정도 덜어줄 수도 있고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도 있는 그런 것이 종교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어. 그렇다면 종교에 대한 권유나 강요를 어째서 싫어할까? 그건 아마 그런 편안함이 이미 있는 상태거나 그런 편안함을 찾을 수 있는 각자만의 방법이 있어서인 것이 아닐까?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불필요한 것을 좋아하지 않잖아. 그런 상태인 사람들은 종교가 불필요하니까 좋아하지 않는 거고, 그건 너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어.”
약간의 씁쓸함이 존재하는 웃음을 지으며 그녀는 대화를 이었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 난 지금 살고 있는 환경이 나쁘지 않거든. 그렇다고 해서 돈이 많다는 건 아니지만…….”
“돈이 많고 적음을 떠나서 어쨌든 현재의 너에게 종교는 불필요하다는 거잖아? 하지만 너의 친구는 앞으로 오랜 기간 동안 너에게…… 그러니까 너의 표현을 빌리자면 강요를 할 것 같아.”
“그건 어째서?”
“너도 그럴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는 걸 알기에 여기에 온 거 아냐?”
내 말을 들은 상문은 두 손을 살짝 위로 치켜들었다. 거기까지 알아내다니 대단하네, 같은 느낌일 거라고 지레짐작했다.
“그 후엔 ‘너는 왜 그걸 고민이라 생각하고 여기에 온 걸까?’에 대해 생각했지. 싫다면 딱 잘라 거절하면 되고 사람이 싫으면 연을 끊으면 될 거고 좋다면 이미 친구를 따라갔을 텐데. 친구의 말을 강요로 인식했다면 어느 정도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다는 소리라고 판단했어.”
거기까지 말하고 숨을 한 번 크게 쉬었다 내뱉었다. 할 말이 있으면 하라는 의미로 그녀를 한 번 지긋이 바라봤지만 상문은 고개를 좌우로 가볍게 흔들며 조용히 나를 바라봤다. 나는 고개를 위아래로 한 차례 흔든 다음 말을 맺었다.
“친구가 종교를 강요한다는 건 페이크. 아니지, 페이크는 잘못된 표현이네. 애피타이저가 어울리겠다. 메인 요리는 거절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 아냐?”
상문은 내 말이 끝나자 박수를 가볍고 간단하게 쳤다. 그리고 이어지는 감탄사.
“대단해! 탐정 같은데?”
언젠가 선배들에게 탐정 같다고 말했던 내 말이 머릿속에서 기포처럼 올라왔다. 난 그 때 서이호 선배가 한 말을 그대로 재현했다.
“탐정들이 들으면 화내겠다.”
“화를 내건 어쩌건 방금 과정들이 대단한 건 변하지 않아. 그러면 당연히 그 다음도 있겠지?”
상문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와 나의 사이에 있는 식탁에 메인 요리를 차렸다.
“네가 그런 것에, 즉 거절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 고민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너의 친구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지?”
“그렇지.”
“그런데 보통 거절은 상대방의 권유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행동이야. 이 말이 뭔지 알아?”
“어쩔 수 없이 대부분은 상처를 받는다고?”
막힘없는 그녀의 대답에 내심 속으로 감탄했다. 여러 가지 대화를 더 같이 하다보면 공통된 주제가 많을 것 같은, 근거 같은 건 하나도 없는 상상이 머릿속에서 피어났다 시들었다.
“맞아. 그래서 내가 제시하는 방법은 거절이라는 병을 주면서 바로 연이어 약을 주는 거야.”
“예를 들어?”
“네가 권유하고 있는 종교는 내게 큰 의미가 없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와 함께하는 다른 행동들이 의미가 없다는 건 아니야. 같은 느낌으로?”
“흐음. 괜찮네.”
팔짱을 끼고 내 말에 대해 생각하며 어떻게 답할지 고민하는 상문을 보면서 나는 뒷머리를 긁적이다가 한숨을 쉬었다. 앞에 있는 상문에게 한숨이 닿았는지 그녀가 나를 지그시 봤다. 나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 혼잣말을 하듯이 내가 제일로 하고 싶던 말을 흘렸다.
“사람에겐 수많은 구성 요소가 있어.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말이야. 근데 그 중에 하나를 거절당했다고, 혹은 거절했다고 해서 모든 구성 요소를 싫어하는 건 아니잖아? 하지만 만약에 네 친구가 너의 거절을 듣고 뭐랄까……. 하아, 그래. 극단적으로 말해서 절교를 선언하면 쿨하게 헤어져. 앞으로 쭉 너 혼자 맞춰주는 경우가 많을 거니까.”
상문은 내 말을 잠자코 들어준 뒤에도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몇 초 정도 뒤, 내가 먼저 “자, 이제 이걸로 끝. 앞으로 어쩔 거야? 선배들을 기다릴래?”라고 묻자 그제야 입을 열었다.
“아니. 난 이걸로 만족해.”
“나름 다행이네……. 아, 맞다. 만족스럽게 고민을 해결해주면 우리 동아리 강제 가입이야.”
“응? 나 이미 동아리 있는데?”
그녀의 마지막 질문에 나는 말문이 막혔는데 밖에서부터 안으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박주윤이다.
“우리 학교엔 딱 한 번 동아리를 옮길 기회가 1년마다 주어지니까 괜찮을 거야. 실제로 나도 그 기회를 써서 여기에 온 거니까.”
주윤의 말로 짐작컨대, 그는 아마 모든 대화 내용을 들었을 것이다. 아마도 악의는 없었을 테지만. 짧은 기간 동안 내가 주윤의 여태까지의 언행을 재료로 판단한 그의 성격으로 미루어 보아 그가 중간에 들어오지 않은 것은 대화의 흐름을 끊게 될 것 같기 때문일 것이다.
“흐음. 그럼 뭐, 옮겨야겠네.”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이제 선배들을 기다리자고 생각하면서 가만히 있는데 과거로부터의 의문이 돌연 날아들었다. 과거라고 해봤자 그렇게까지 먼 과거는 아니다. 단 몇 분 전인 과거. 이 의문을 풀어줄 수 있는 사람을 향해 질문을 날렸다.
“아, 맞아. 아까 얘기 도중에 내가 무교라고 말했는데 그건 어떻게 알아낸 거야?”
내 이야기를 듣고 상문은 웃으며 답변했다.
“종교를 가진 사람 중에 평균 이상의 수는 자신의 종교와 관련된 무언가가 겉으로 드러나게 되거든. 그것이 책일 수도 있고 장신구일 수도 있고 이름이나 말투, 행동일 수도 있지만 말이야. 하지만 너한텐 전혀 그런 게 느껴지지 않았거든.”
그녀의 답변을 듣다가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다시 질문했다.
“넌 근데 내 이름을 모르잖아.”
“이름표를 볼 정도의 시력은 있거든.”
그녀의 명쾌한 대답에 절로 입이 ‘아하’라고 모양을 지었다. 누가 누구보고 탐정 같다는 건지 모르겠다. 관찰력 면에서 따지고 보면 상문이 나보다 훨씬 높은 스탯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저 멀리서 두 사람의 발소리가 들린다. 곧이어 들리는 목소리로 판단하건데 아마 두 선배겠지.
선배들이 들어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상문에게 짧게 말을 건넸다.
“어서와, 우리의 동아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