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이 들기 시작한다.
차가운 감촉이 느껴지고 익숙한 쇠 냄새가 난다.
"윽 여기가 어디지?"
이혁이 몸을 일으키며 중얼거린다.
주위는 밤처럼 까맣지만 그에겐 약간의 빛만 있다면 충분히 주위를 인식 할 수 있는 눈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이곳은 한줌의 빛도 없는 어둠...... 한치 앞도 구분이 되지 않았다.
"분명 기지가 폭파되는 장면을 본 것 같은데...... 난 아직 살아 있는 건가? 그나저나 여긴 왜 이렇게 어두운 거야?"
손을 뻗어 더듬대던 그의 손 끝에 무언가 닿는 게 느껴지고 그걸 조심스레 누르니 위이잉하는 기계음과 함께 한쪽 벽에 유리 막으로 된 창이 나타나며 빛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헉!! 저게 뭐야? 저건 지구인가? 여긴 우주이고? 그렇다면 나는 우주선 안에 있는 건가?"
눈앞에 펼쳐진 영상으로만 봐왔던 우주의 모습과 자신이 알고 있는 푸른빛이 아닌 회색 빛을 띠고 있는 지구의 모습이 낯선 이혁이었다.
"다음 목적지는 지구...... 지구 입니다."
우웅하고 울리는 기계음과 함께 알 수 없는 언어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이게 이 세계의 언어인가? 일단 조금 더 지켜보면서 동태를 살펴야겠군......"
이혁이 말했다.
"일단 가지고 있는 장비부터 정비를 해봐야겠어......"
그러고는 전투 배낭 안을 뒤져 물품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약간의 식량과 초 진동 나이프, EMP (Electro Magnetic Pulse)탄, 플라즈마건, 반물질 폭탄 6개...... 현재 내가 가진 화력은 이게 전부로군...... 휴우~ 이제부터 어떻게 한다.'
그는 긴장되는 마음을 억누르며 배낭을 고쳐 매고 한쪽 벽에 기대 앉아 휴식을 취하며 생각했다.
여기서 부 터는 어떠한 지시나 계획도 없는 무지의 세계...... 무엇 부 터 해나가야 할지 막막한 이혁이었다.
'그래 먼저 이곳에 대한 정보를 얻어야겠어. 우선 이 우주선에 대한 것 부 터 시작해 보자!'
그렇게 생각한 이혁은 먼저 이 우주선의 중앙 통제실을 찾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위이잉 철컥!"
버튼을 누르자 다음 칸과 이어진 길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공간은 넓지만 이곳의 구조는 딱히 복잡하지 않아 길을 찾긴 어렵진 않겠어...... 하지만 지금까지 개미새끼 하나 만나지 못한 건 뭔가 이상한데......'
그렇게 생각하며 계속해서 나아가던 중 그는 중앙 통제실로 추정되는 넓은 방에 다다르게 되었다.
'여기가 중앙 통제실인 것 같은데...... 이곳에도 아무도 없는 것인가?'
그때였다.
[안녕하십니까? 제 이름은 이그노스 입니다. 귀하의 방문을 환영하는 바입니다.]
방의 불빛이 점등하며 아까의 그 기계음이 다시금 들렸다.
[귀하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이그노스가 말했다.
'뭐라고 말하는 거지? 내가 알고 있는 어떠한 언어와도 다르군......'
"이봐!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여기 책임자와 얘기를 하고 싶다!"
이혁이 말을 했다.
[삐이-이익 사용자가 하는 말을 이해 할 수 없습니다. ...... 다른 행성의 언어로 대화를 시도 합니다.]
다시금 기계음이 대답을 했다.
그렇게 몇 차례 대화를 시도하던 이그노스는 이혁이 말하는 언어가 그 어떤 행성에도 속한 언어가 아닌 것을 확인 한 후 말했다.
[사용자의 언어를 해석할 수 없으므로 텔레파시 모드로 대화를 시도 합니다...... 삐- 귀하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이그노스가 물었다.
이혁은 순간 깜짝 놀랐다. 머릿속으로 들어온 음성은 생소하지만 그가 인식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내...... 내 이름은 이혁...... 난 지구에서 왔어.. 여...... 여긴 어디지? 그리고 너는 누구야?"
그가 당황해 하며 소리쳤다.
[제 이름은 이그노스 입니다. 이곳은 행성 엘베스에서 지구로 가는 우주 이민선 안이고 저는 이혁님께 텔레파시로 대화 하고 있습니다.]
"테......텔레파시? 우주 이민선??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 거야?"
이그노스의 설명은 그로부터 한참 동안 이어졌다. 현재 시기는 우주력 2086년 이고 이 함선은 우주 이민자를 싣고 지구로 귀환하는 임무를 맡은 무인 함선임을 밝혔다.
이 세계는 이혁이 살던 세계와는 달리 과학 문명이 극도로 발달된 세계로 우주 개척이 진행중인 시대였으며, 현재 지구는 우주 연합 지구 연방에 소속되어 통치 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그노스! 이게 이민선이라면 이곳 사람들은 모두 어디에 있지?"
[이혁님을 제외한 다른 분들은 모두 가수면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군...... 이곳 사람들을 만나 먼저 여기에 적응을 하는 게 우선인데......'
'그렇다면 이 세계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무엇이지? 그걸 내가 배울 수 있을까?"
이혁이 말했다.
[언어의 문제는 제가 해결해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언어 기억 전송에 동의 하시겠습니까?]
"언어 기억 전송?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 수락하겠어."
그러자 이혁의 머리 위로 헬멧 같은 것이 내려오더니 머리에 전자 자극을 가하기 시작했다.
"헉! 이게 뭐야? 이그노스!! 이거 당장 멈춰!"
[기억 전송 중에는 취소 할 수가 없습니다. 완료 될 때까지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이혁은 정신이 없었다. 머릿속에 스파크 처럼 튀기 시작하면서 느껴지는 고통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기억 전송이 완료 되었습니다. 사용자의 뇌의 수용치를 감안하여 행성 언어 13종과 우주력 2086년에서 100년 가량의 근대 역사 지식에 대한 주입이 완료 됐습니다.]
"허억......허억...... 비...... 빌어먹을......"
끔찍한 두통에 이혁은 기절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라인포스테란의 초인적인 능력으로 정신을 잃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사실 라인포스테란의 능력이 아니었다면, 이혁은 기억 전송을 받다가 뇌가 버티지 못하고 터져버렸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혁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자신의 머릿속에 각인된 기억들을 하나하나 되짚어 보기 시작했다.
'윽 이곳 사람들은 전기나 핵 에너지가 아닌 에테르 라는 에너지를 사용하는 구나.'
'음.. 그 에테르 에너지를 발전시켜 개개인 별로 싸이킥이라는 특성을 갖고 있고...... 흥미로운 곳이군......'
"이그노스! 이 에테르를 구하기 위해선 어디로 가야 하지?"
[에테르는 모든 생명의 근원의 에너지...... 어디에나 존재 하고 있습니다. 다만 인류는 에테르 크리스털에 에테르를 충전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위치는 지구 연방 사령부입니다.]
"그래? 그렇담 사이킥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제 보안 등급이 낮아 거기까진 알 수 없습니다.]
'흐음...... 그래도 목적이 생긴 것 같군...... 이 에테르와 사이킥을 얻어 귀환한다면 외계인 놈들을 상대하기 수월 할 수 있을지도 몰라.'
이혁은 생각했다.
"그럼 마지막으로 차원이동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있어? 알 수 있는 방법이라도?"
[저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지구 연방 슈퍼 컴퓨터 몰페우스라면 방법을 알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좋아! 그렇다면 우선 몰페우스 부 터 만나러 지구 연방으로 가봐야 겠군......'
그렇게 정보를 얻어낸 이혁은 지구로 가는 내내 주입 받은 기억을 정리하고 이그노스에게 이것저것을 물으며 이 세계에 적응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몇 달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