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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에밀
작가 : 어이비
작품등록일 : 2016.8.22

어머니의 첫사랑과 만난 나는
그에게서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독특함을 느꼈다.
이제 나와 그, 어머니는 어떤 선택을 하게될까?

 
제3부 인간존엄의 시작 - 출산(2)
작성일 : 16-09-02 13:14     조회 : 498     추천 : 0     분량 : 5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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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산에 대한 관점은 다양할 수 있지만, 주객이 전도되어서는 안된다.

  여러 가지 다른 이유로 출산을 선택하는 것은 비극의 시작이다.”

 

 

  - 팀장님, 점심 드시러 가시죠.

  - 아, 미리 말 못해서 미안해요. 오늘 약속이 있어요. 다들 식사하세요.

  승희는 서둘러 외출 할 채비를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팀원들은 삼삼오오 구내 식당으로 가거나 외부의 식당가로 가기위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승희는 팀원들과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빛나와 만나기로 한 식당은 걸어갈 수도 있었지만 점심시간의 약속이라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자동차로 5분 남짓 걸렸지만 걸어서 가기에는 애매했다. 확실히 지방의 혁신도시로 새롭게 조성된 곳이어서 모든 것이 밀집되어 있는 서울과는 달리 여유가 있었다. 주차 공간도 많았지만 도로가에 자동차를 주차하는 것도 가능했다. 공공기관인 승희의 직장이 이전하고 승희도 이 곳 A시로 내려왔다. 산을 깎아 만든 신도시 지역의 풍광은 전국의 어디든 다 비슷비슷했다.

 

  승희가 고등학교 동창 빛나를 만난 건 지난 주 세종시에서 였다. 승희의 팀이 맡고 있는 프로젝트와 관련한 교육부 주재의 회의에 참석했다가 프로젝트 관련 TF팀에 초등 교사로 참석한 빛나가 승희를 알아보고 먼저 말을 걸어왔다. 회의 전, 회의 자료에서 참석자 명단을 살펴보다가 빛나의 이름을 보고 설마했던 승희였다. 승희와 빛나는 어색하게 인사하고 간단하게 안부를 주고 받았다. 승희의 직장이 혁신도시 사업으로 서울에서 A시로 이전을 했고 승희도 A시에서 지내고 있다는 사실에 빛나는 바로 다음 주에 승희의 직장으로 점심을 먹으러 오겠다고 했고, 승희도 반가운 마음으로 이에 응했다. 그날은 서로의 연락처를 주고 받으면서 헤어졌다. 물론 그녀는 그 다음 주 전화를 걸어왔고 약속한 날이 오늘이었다.

 

  빛나는 식당에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메뉴는 한정식이었다. 한정식이라도 주문 방식이나 서빙 형태, 인테리어는 패밀리 레스토랑과 유사했다. 주변을 돌아보니 30대 이상의 여성 고객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올라오면서 보니 건물에 유기농 베이커리, 디저트 까페, 한정식 식당, 퓨전 포차가 각 층에 입점해 있었고 건물 중앙을 분수대로 관통해 동일한 형태로 인테리어 되어 있었다. 건물 전체를 여자들의 취향에 맞춘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빛나가 미리 주문을 해둔 탓인지 승희가 앉자마자 테이블은 바로 셋팅되었다.

  - 진짜 오랜만이다. 졸업하고 처음이다, 그치? 이렇게 만나는구나.

  - 어, 잘지냈지?

  이십년만에 만나는 고등학교 동창은 십대 시절의 쾌활함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고등학생이던 시절, 이년이나 같은 반이었는데 그 시절이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특별히 친한 그룹에 있었던 친구는 아니었다. 승희 기준에서는 본인 보다는 레벨이 낮은 그룹에 속한 터였다. 그러나 성격이 유쾌하고 붙임성이 좋아서 주변 학교 남학생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린 탓에 학교에서 늘 튀는 타입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반장이었던 걸로 기억하고 있다. 그녀는 마흔이 된 지금도 밝은 표정이었고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 네가 일하는 데가 A시 혁신도시에 내려온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네가 여기서 일하는 줄은 몰랐어. 이렇게 만날 줄이야. 이십년만에 고향에 내려온 기분이 어떠니?

  - 대학 때문에 서울에 가고 이십년만에 내려왔어. 내가 이십년이나 살았던 곳인데 너무 많이 변해서 아직도 어색해.

  - 그렇지? 나도 놀랄 때 많아. 그래, 어떻게 지냈니? 아, 일단 먹자.

  A시는 승희의 고향이었다. 그러나 승희는 A시의 혁신도시와는 전혀 반대의 지역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고등학생이던 시절까지 지금의 혁신도시 지역에는 근처도 와 본적이 없었다. 부모님이 계시는 곳도 승희와 거리가 있는 곳에 살고 계신다.

 

  특별히 친하지 않았던 고등학교 동창과 이십년만에 만나서 주고 받는 대화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서로 안부를 주고 받은 다음 표면적인 자신의 상황들을 대략 브리핑하면, 고등학생이었던 시절 함께 알고 있는 사람들의 뒷담화로 옮겨가기 마련이다. 고등학교 은사를 이혼시킨 동창이 은사와 딸 하나를 낳고 결국은 이혼했다는 것, 인근 고등학교 남학생과 죽고 못살았던 커플들 중에 실제로 결혼까지 간 애들은 단 하나도 없다는 것, 공부 제일 못하고 놀기만 좋아하던 동창이 시집을 잘 가서 외제차를 몰고 아이들을 유학보냈다는 것 등, 이야기의 주인공이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어야 특별하고 재미있게 느껴지는 대화가 계속됐다. A시 토박이로 A시에서 고등학교 동창들과 연락하며 살아온 빛나가 전해주는 고등학교 동창들의 소식은 점심시간으로 확실히 부족했다. 점심시간이 아니었다면 밤을 새울 기세였다. 승희에게 주어진 점심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 나 때문에 일부러 여기까지 온거지? 점심시간이 다 돼서 너무 미안하다.

  - 아니야. 나 여기서 멀지 않은데 살아. 그리고 여기 근처에 병원 다니거든.

  - 어디 아프니?

  - 아니야. 아픈건 아니고 시험관 시술 받으러 다니거든.

  - 어? 아기? 너 초등학생이랑 유치원생 두명 있다고 하지 않았니?

  - 어. 셋째 가질려고. 자연적으로 노력해 봤는데 안되더라고. 벌써 마흔인데 더 늦기 전에 빨리 가지려고 병원다녀.

  - 셋째?

  - 우리 애들이 둘 다 아들이라서, 꼭 딸 낳고 싶어서. 딸이라면 쌍둥이라도 좋고.

  - 나는 한명 키우는 것도 너무 힘들었는데. 너 정말 대단하다. 나는 아이라면 다시 낳고 싶지 않은데.

  - 애 낳아놓으면 금방 커. 키우는거야 우리 시어머니가 잘 키워주실거고. 우리 애들 둘도 시어머님께서 많이 봐주셨거든. 친정어머니도 계시고. 그리고 생각보다 애들이 금방 커. 난 벌써 우리 애들이 너무 큰거 같아서 슬플 때도 있어.

  - 그건 그렇지만, 어쨌든 대단하다. 요즘말로 애국자야, 너.

  - 그런데 시험관 시술이 생각보다 너무 까다롭고 돈도 많이 들더라. 지원을 받아도 거기에 추가로 나가는 돈이 너무 많아. 돈 생각하면 낳지 말까 싶기도 한데 나중에 정말 후회할까봐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지.

  - 리 직원 중에 아직 30대 초반인데 난임이어서 시험관 시술하러 다니는데 정말 스트레스 많이 받는거 같던데. 너는 괜찮니?

  - 난 그래도 이미 둘이 있으니까 스트레스까지랄 것은 없는데, 그래도 맘먹은대로 안되니까 짜증은 나지. 그래도 어차피 확률 싸움이니까 일단 많이 하는거지, 뭐.

  - 너, 아이를 정말 좋아하나보다.

  - 그런 얘기 많이 들어. 요즘 다산이 미덕아니니.

  이런 대화를 하고 있을거라고는 그녀들이 고등학생이던 시절, 상상이나 했을까.

  - 승희 너도 평생 혼자살 것도 아니잖아. 애가 중학생이면 그래도 거의 다 키운건데 능력되면 애하나 임신해서 총각 시집이라도 다시 가야하지 않겠니? 아무래도 애가 있으면 총각을 만나도 누가 뭐라고 하겠니?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이다. 결혼 생활 유지를 위해 아이를 가진다는 것. 사실 승희도 생각해보지 않은 일은 아니었다. 마음먹는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나 준우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 봤을 때 그 시절을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 자식은 준우 하나로 충분하다. 이제 겨우 키워놨는데, 지금의 생활에 균열이 가는 것은 사양한다. 승희는 그저 웃었다. 빛나는 A시에 있던 교육대학으로 진학을 했고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일반 기업체에 다니는 남자와 적절한 시기에 결혼하고 적절하게 아들 둘을 낳았다. 양육은 직장 생활을 하는 빛나를 대신해 시댁에서 도맡아 주었고 지금 셋째를 가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니까 빛나에게 육아는 크게 힘들지 않은 일종의 또 다른 업무였다.

  - 이제는 여기 내려왔으니까 종종 연락하고 지내자. 내가 좋은 남자 있으면 꼭 소개시켜줄게. 애가 벌써 중학생이라니 부럽다.

  - 그래. 또 연락하자.

 

  승희는 빛나와 헤어지고 사무실로 돌아와서 오후 업무를 처리했다. 승희는 빛나와의 대화들을 곱씹었다. 셋째를 가지기 위해 시험관 아기 시술이라니. 빛나를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하긴 시댁에서 양육을 도맡아 주었다면 한편으로는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했다. 준우가 어렸던 시절, 승희의 어머니가 준우를 잠시 맡아 준적도 있었다. 그때는 그런 도움마저 없었다면 승희는 아마 모든 것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지금 만나고 있는 남자가 있기는 하다. 일곱살 연하의 팀원이다. 그와 결혼은 생각도 해본 적도 없다. 당연히 아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사실 그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도 전혀 신경쓰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승희도 그 동안 남자 몇 몇을 만나면서 출산에 대해 어렴풋이 신경을 쓴 적은 있다. 이십대의 연애가 아름답게 마무리 되는 가장 좋은 예가 ‘결혼’이다. ‘결혼’에는 ‘영원’과 ‘자녀’가 함께 따라다닌다. 승희는 ‘영원’은 실패했지만 ‘자녀’가 남았다.

 

  어머니는 이십년 만에 만나는 고등학교 동창과의 만남에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나도 어머니도 내 동생이 될 ‘아이를 가지는 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눈 적은 없었다. 어머니는 나를 양육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일방적인 희생이 바탕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나는 어쩌면 모험이 될지도 모르는 동생을 가지는 것에 대한 욕심이 크지 않았다.

  내 어머니는 나쁜 어머니는 아니었지만 훌륭한 어머니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십년 만에 만난 동창은 어머니들이었지만 그녀들이 경험한 출산과 양육은 서로가 달랐다. 아이가 너무 예뻐서 셋째를 낳기 위해 시험관 시술을 한다는 어머니의 고등학교 동창에게 출산과 양육은 어떤 의미일까? 나를 출산하고 양육하면서 어머니는 어떤 경험들을 했기에 출산과 양육에 대해서 부정적일까. 두명의 고등학교 동창은 출산과 양육에 대해 어쩌면 죽는 그 순간까지도 서로를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아이를 갖거나 가지지 않는 것은 각자의 욕망에 따라 판단할 문제이므로 누군가가 대신 결정해줄 수는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이다. 그러나 주객이 전도되어서는 안된다. 결혼을 위해 출산을 선택하는 것은 분명히 비극의 시작이다. 또한 양육에 대한 진실성 없는 출산도 마땅히 배척되어야 한다. 어떤 아이든 결국은 출산하여 세상과 만났다면 아이에게는 축복이 따라야 하고 우리는 좋은 부모 혹은 보호자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세상의 빛을 본 아이는 누구나 소중하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는 따뜻한 돌봄과 지속적인 교육이 제공되어야 한다. 그것은 인간존엄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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