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 직전에는 내신을 위한 기말고사가 있었다. 이미 자퇴나 전학을 결심한 나로서는 이곳에서의 마지막 시험이 될 것이다.
이 때부터 학교에서는 시험감독에 있어서 또 다른 변화가 생겼는데 시험을 볼 때 전학급이 다른 교실로 절반씩 반을 나눠서 들어가는 것이였다. 게다가 서로 한자리씩 건너 뛰어서 앉는 바람에 원천적으로 앞뒤 사람간에 컨닝이 불가능해졌다. 아마도 내신에 민감한 몇 명 학생들이 시험 감독에 대하여 불만을 제기하니까 학교에서 특단의 조치를 내린 듯 싶었다.
이 제도의 변경으로 제일 큰 혜택을 본 것은 다름 아닌 바로 나였다. 나는 민변구로부터 해방되어 편안한 마음으로 기말 시험을 볼 수 있었다. 어차피 그만둘 학교여서 시험도 대충 보긴 했지만.
기말고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서는 한동안 어머니 눈치를 봤다. 어머니는 주식 때문에 여전히 마음 고생이 심해서 며칠동안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많이 여읜 상태였다.
“저…엄마…”
“응…?”
나의 질문에 식탁의자에 앉아 멍하니 밖을 내다 보시던 어머니께서는 눈도 돌리지 않고 한숨을 내쉬며 건성으로 대답하셨다.
“저기 학교 학비가 어떻게 되요?”
“무슨…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 말이니?”
“네…꽤 많이 든다고 들었는데…”
“학교 뿐이겠니…
에휴…과외비며 행사비며…담임한테 들어가는 사례비며…”
어머니의 한숨이 깊어 지셨다. 나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운을 띄웠다.
“그래서 말인데 이 학교를 그만 두면 어떨까?”
잔잔하던 어머니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눈동자가 크게 커졌다. 그리고서는 어찌할 겨를도 없이 고함부터 치셨다.
“너 대체 뭐하는 거야!”
다짜고짜 고함부터 치는 통에 나는 나머지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어머니는 고함치듯이 계속 말씀하셨다.
“너 내가 그 학교에 널 보내느라 얼마나 고생 했는 줄 아니? 남들이 다 돈 많이 든다, 차별 받는다 별별 소리 다 하면서 말리는 걸 너 하나 잘되는 거 볼려고 무리해서라도 집어 넣은 거야!”
그렇다. 사실 난 이 학교를 내가 공부를 뛰어나게 잘해서 입학한 것이 아니였다. 어머니는 중학교때부터 날 이 학교에 보내기 위해 내 손을 잡아 끌고 여러 영어 학원을 전전하셨다. 그 덕분에 간신히 끄트머리라도 이 학교에 붙은 것이다.
“현아…이 학교가 전국에서 서울대 제일 많이 보내는거 알고 있지…제발 부탁이다…너는 왜 이렇게 엄마 마음을 몰라 주니…”
결국 어머니는 눈물을 터뜨리고야 마셨다. 일찍이 큰아들이 유괴당해 차디찬 시신으로 돌아온 걸 두 눈으로 확인해야만 했고 그 여파로 남편은 실종 사망하였으며 남은 유일한 자식인 나는 심장병으로 제대로 된 학교 생활조차 하지 못하다가 이제는 자퇴하겠다고 하니…나는 어머니의 찢어지는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지금 당장 내가 겪는 고통 보다도 눈 앞에 있는 어머니의 눈물을 나는 외면할 수 없었다.
“알았어요…어머니…그런 말씀 안드릴게요…”
나는 흐느껴우는 어머니를 눈앞에서 두고 볼 수 없어 쓸쓸하게 내 방 이층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아무것도 해결된 것은 없었다.
‘어떻게 V4들의 눈에 안띄고 조용히 졸업때까지 학교를 다닐 수 있을 것인가…’
어머니의 눈물 어린 기대와 나의 학교에서의 현실적 고통 속에서 난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하지만 언제가는 양자택일 할 수 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운명의 시간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
이 학교는 전통적으로 여름 방학을 시작하면서 축제를 했다. 그리고 올해도 마찬가지로 축제가 열린다.
축제라는 것이 나도 중학교 때도 해봐서 알지만 동아리별로 각자 발표하고 밴드공연하고 합창반이 노래 부르면서 끝나는 것이 일반적이였다. 하지만 이 학교는 그런 시시한 중학교 축제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우선 초대가수로 당시 최고의 인기 걸그룹이 온다고 했다.
“행사비만 해도 최소한 수천만원 일텐데…”
이 방면에 빠삭한 맹기남이 알켜 줬다. 내가 낸 학비가 천만원이니 나 같은 놈 서너명 일년치 학비가 한방에 날라가는 셈이였다.
“잘됐네. 신나게 함 놀아봐야지!”
돈이야기를 하던 맹기남은 바로 기분이 바뀌어 신이 나 들떠 있었다. 기말고사도 개판을 친 주제에 뭘 믿고 저리 신이 났는지 알 수 없었다. 하긴 나에게는 이나저나 별 상관 없는 일이였다.
“댄스는 뭐 할거냐?”
“댄스? 댄스라니? 그런 거 들어 본 적 없는데?”
“헐~멍청하긴…넌 일학년은 축제때 무조건 댄스 공연 한가지 이상 참가해야 한다는 것도 모르냐?”
그런가? 그런데 무조건 댄스를 한가지 이상 참가하라니?
난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빠져야 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가만있자…인디언댄스…플라멩고,캉캉춤…젠장 할만한게 없네...힙합 없냐…힙합!”
교실 뒤 벽면 게시판에 붙은 댄스 지원자 명단을 보면서 맹기남은 투덜거렸다
“그래! 이거 좋네…재즈 댄스!…이걸로 해야 겠다. 지원자가 누구냐…누구…누구…”
흘려 듣던 맹기남의 말 속에 익숙한 이름 하나가 들려 왔다. 난 맹기남을 제치고 게시판의 댄스 지원자 명단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 해보았다.
<장선영>
있었다. 그녀가.
바로 재즈 댄스 지원자 명단에.
‘재즈 댄스라…대체 뭐하는 춤이지…음악은 들어 봤지만 춤이라니…’
사실 난 재즈 댄스뿐만 아니라 춤에 대해서는 전혀 아무 것도 몰랐다. 심하게 몸을 쓰는 활동은 아예 할 줄 아는게 없다고 보면 된다. 당장 시청각실에 가서 인터넷에서 재즈 댄스를 찾아 보았다.
‘흠…저렇게 하면 된단 말이지…웨이브를 했다가 손뼉 치고 머리 돌리고…’
한번 보니까 얼추 할 수도 있을 거도 같았다. 무엇보다도 한 학기가 다 가도록 난 선영이에게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다. 이대로 가다가 이학년때 반이 바뀌기라도 하면 그대로 이별할 것만 같았다.
더구나 나는 아직도 학교를 자퇴하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서있었다. 비록 어머니의 눈물 앞에 잠시 잠복하고 있었지만 당장 내일이라도 학교를 때려 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만일 그렇다면 그녀에게 고백할 시간 여유가 거의 없었다.
어머니의 소원이 서울대라면 집에서 홈스쿨링을 해서라도 갈 자신이 있었다. 물론 수시가 아닌 정시나 다른 방법이여야 하겠지만.
더 이상 아이들한테 <심장> 이라고 놀림 받는 것도 이제는 지겨웠다. 나는 고교에 입학한 이후로는 왕따를 넘어서 항상 개무시를 당했다. 이젠 아이들도 나를 투명인간으로 생각하는지 학급 토론시간에 내 발표순서를 일부러 건너 뛰고 진행하는 경우도 많았다. 만일 맹기남이 없었다면 난 한 학기 내내 혼자 밥을 먹었어야 했을 것이다.
선생들은 아버지가 없는 나를 노골적으로 무시했다. 만일 외할어버지께서 전직 사립대 총장이 아니셨다면 나는 아마 사람 취급도 못 받았을 것이다. 입시 공부를 혼자서도 할 수 있다면 친구도 없고 비싼 학비에 나를 멸시하는 이 학교를 더 이상 다닐 이유가 없다. 때가 되면 아무리 어머니가 눈물로 호소를 해도 난 반드시 결단할 것이다.
그러나 나의 결심을 주저하게 만드는 다른 이유가 하나 있었다. 바로 그녀였다. 그녀에게 내 진심을 고백하지 못하고 떠난다면 난 죽는 그날까지도 후회할 것만 같았다.
내 심장이 힘에 겨워서 터지더라도 잠시만이라도 그녀 곁에서 춤을 추고 싶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순수한 나의 진심을 말할 것이다. 그런 후에 나는 아무 미련없이 떠나겠다. 나를 투명인간 깍두기 취급하는 이 학교를 말이다. 그녀가 나를 받아주던지 아니던지 말이다.
난 갑자기 내가 <노트르담의 꼽추>의 <콰지모도>가 된 기분이였다. 그리고 그녀는 나의 <에스메랄다>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