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때처럼 조용히 지내면 된다는 나의 순진한 생각은 고등학교 입학 첫날 체육시간부터 커다란 암초를 만났다.
“환자 있으면 앞으로 나와”
체육선생이 이렇게 말하자 나는 앞으로 나가 당연한 듯 열외를 했다. 학교를 다니면서 단 한번도 체육활동을 해본 적이 없었다. 이전에는 옷도 갈아입지 않고 교실에서 그냥 책을 보게 해주었는데 고등학교에 와서는 무조건 체육시간에 체육복을 입고 운동장에 집합 하라고 했다. 덕분에 평생 단 한번도 사지도 입지도 않은 학교 체육복까지 사게 되었다.
‘젠장. 어차피 뛰지도 못할 거. 왜 운동장까지 나오라는 거야’
예상치 못한 번거로움에 나는 짜증이 났다. 아무래도 어머니께서 서둘러 1학기내에 학교를 방문해서 케익과 봉투를 전해 줘야만 할 듯싶었다. <케익과 봉투> 라……이 두가지만 있으면 학교생활은 언제나 무사 통과 였다. 선생들은 어머니가 전해주는 케익을 받으면 맨 밑바닥에 끼워져 있는 봉투만 슬쩍 챙기고는 케익은 경비아저씨나 행정과 사환 언니들에게 나눠주곤 했다.
어머니는 당시 아버지의 보험금과 국가에서 나오는 유가족 연금, 그리고 외할아버지의 도움으로 살림을 해오셨는데 워낙 외가 쪽이 재력이 있어서 인지 그다지 경제적으로 그다지 큰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의 비싼 사립 외국어학교 학비를 감당할 여력이 되었던 것이다.
나의 요구대로 어머니는 이튿날 학교를 찾아와 담임에게 케익과 봉투를 전달하셨다. 이제 그 봉투는 몇 조각으로 나눠져 담임,교감,체육선생이 서로 쩝쩝거리며 처먹게 될 것이다. 그런데 봉투를 얼어 보고 난 담임 선생이 얼굴 표정이 뜨악한 것이었다.
“네…일단 잘 알겠습니다. 현이가 그런 병이 있었군요.”
담임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의례적으로 알았다고 하였고 어머니는 그 말을 믿고 집으로 돌아갔다. 담임의 뜨악한 표정의 원인을 알아채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그 사립학교가 당시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집안의 아이들만 모인 소위 <명문 부자 학교>였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그 정도 봉투로는 별로 인사치레가 되지 않는 모양 이였다.
주위를 보면 항상 얘들이 서로 수군대고 있었다.
“어머! 쟤는 영화배우 홍구라 아들 아니야?”
“맞아. 지난번에 ‘황금 개싸가지’ 라는 예능에서 아버지랑 같이 나온 거 봤어”
“저기 쟤는 갈고리 그룹 손자 아니야?”
“맞다. 그리고 그 옆에 따라다니는 얘는 요번에 자기 할아버지가 총리가 됬다는데.”
“저기 눈이 파란 얘는 혼혈인가? 우와 여기는 외국인도 다니나….”
한마디로 내가 다니는 중학교와 레벨 자체가 틀렸던 것이다. 여기선 대다수가 한가닥씩 하는 잘나가는 집안의 자제들이었다. 나처럼 아버지가 없는 아이들은 찾아 보기 힘들었다. 750명 이나 되는 아이들은 항상 자신감이 넘쳐 있었고 매사에 거침이 없었다. 물론 나같이 아버지가 없는 한부모가정이나 다둥이, 다문화가정 같은 사회배려자전형으로 입학한 아이들은 제외하고는 말이다.
등하교때마다 교문 앞은 항상 고급승용차들로 북적 였는데 연식이 오래된 어머니의 그랜져가 그 중에서 유독 초라해보였다.
하지만 그런 일로 어머니한테 부담을 주거나 다투고 싶지는 않았다. 말만하면 차 정도는 바꿀 여력이 되었겠지만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았다. 중학교 때도 껄떡거리던 놈들과 흡혈귀 담임이 있었지만 잘 견뎌냈기 때문이였다.
그리고 당시 나는 사춘기를 통과 중이여서 자꾸만 내 일상에 간섭하는 어머니에 대하여 슬슬 싫증이 나기 시작하고 있었다. 어느 날은 학교에 데려다 주는 어머니와 머리를 깍는 문제로 다투고 나서 며칠동안 아무말도 안한 적도 있었다. 뭔지 모르게 자꾸만 간섭하는 어머니가 날 그만 좀 내버려 뒀으면 했다. 어떨때는 혼자된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내 자신이 한심스럽게 느껴지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성치 못한 심장을 준 부모님이 원망스럽기도 하였다.
분명한 건 어머니의 품안에서 내가 자꾸만 빠져 나오려고 했다는 것이다. 내가 그럴수록 어머니는 더 불안해하면서 나에 대한 집착이 더욱 강해지셨다. 어느날에는 나한테 GPS가 붙은 송수신기 목걸이를 걸어주시기 까지 하셨다. 난 내가 무슨 강아지라도 된 듯 한 기분이 들어 목걸이를 벗어 책상 서랍에 넣어두고 다녔다. 아마 그 목걸이를 하고 다녔다면 학교에서 놀림이 배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어머니를 화나게 한 모양이였다.
학교를 마치고 교문근처에 기다리던 어머니의 차를 타니 대뜸 어머니깨서 화를 내셨다.
“현이 너 내가 분명히 목걸이 벗어 놓고 다니지 말랬지!”
“…”
“왜 말 안듣는거야? 한번 혼나봐야 정신 차리겠어? 너도 니 아버지처럼 갑자기 없어질거야?”
난 아버지란 말에 울컥했다.
“그만 좀 해요! 거기서 아버지 얘기가 왜 나와요. 그리고 요새 누가 그런 목걸이를 하고 다녀? 차라리 위치추적되는 핸드폰을 사줘요!”
“핸드폰은 공부에 방해된다고 대학가면 사준다고 엄마가 분명히 말했지!”
한바탕 차안에서 싸우고 집에 도착해서도 한마디 말을 안했다. 어머니는 학원도 또래끼리 어울려 담배나 피고 PC방에나 다닌다고 아예 대학생 형을 집안으로 불러다 과외를 시켰다.
담배라니…심장이 안좋아 달리지도 못하는 나에게 어머니는 별별 걱정을 다하면서 나의 숨통을 죄는 듯 했다. 하지만 나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어머니에게 순응하리라 수백번 다짐했다. 나의 어머니는 아들과 남편을 잃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여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곧 그 인내심도 슬슬 한계를 드러내기는 했지만…
학교는 한마디로 바다였다. 그만큼 평온했냐구? 천만의 말씀이다. 그런 사람은 바다를 잘못 알고 있는 거다. 바다는 바로 난폭함과 약육강식의 집합체이다. 작은 물고기는 큰 물고기에, 큰 물고기는 더 큰 물고기에 잡혀 먹힌다. 겉으로는 잠잠해보여도 안에는 태풍의 에너지가 꿈틀대며 커져 나간다. 그러다가 어느 임계점에 도달하면 미친 듯한 광풍과 함께 폭발하며 모든 것을 다 뒤엎어 버리는 것이다. 그게 바로 ‘바다’ 이다. 학교가 바로 그러했다. 철저한 약육강식과 폭력의 세계…
그리고 그것은 학교가 아무리 부자집 자제들이 다니는 <유명 사립 외국어 고등학교>여도 다를 바가 없었다. 아니 도리어 그들의 세계가 더욱 심했다.
“이봐. 심장!”
나를 부르는 소리다. 맨 처음 체육시간부터 열외 하기 시작한 나에게 붙여진 별명이다. 이 별명은 그 망할 놈의 체육선생이 나에게 붙인 별명이다. 그때부터 나는 학교에서 심장으로 불렸다. <산업계의 심장>, <두개의 심장> 그런 좋은 뜻이 아니라 그냥 심장이 안좋아서 심장으로 불렸다. 선생이 한번 그렇게 부르기 시작하니 학생들도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1학기가 지나가기도 전에 이미 내 이름 안현을 불러주는 사람보다 심장으로 부르는 사람이 대부분이 되었다.
“어이 심장. 체육시간에 과학실에 가서 교보재 좀 준비해 놔. 너 어차피 체육시간에 아무것도 안하잖아.”
‘왜 안해. 나도 그 시간에 책도 읽고 공부도 한단 말이야’
반장 녀석의 명령조 말투에 속에서 목구멍까지 이 소리가 기어 올라 왔지만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한채 그냥 삼켰다. 주위에 내 편을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맘껏 뛰어 놀지 못하는 것도 서러운데 반 전체가 나를 열외시키고 있었다. 특히 그 반장 녀석은 겉으로는 미소를 띄며 위해주는 척 하면서 나에게 온갖 굳은 일을 도맡아 시키고 있었다.
“환경미화 하는데 넌 어차피 체육 안하니까 체육시간에 남아서 게시판 좀 정리해라” 라든가 뻔히 학교에 도우미 아줌마가 있는데도 청소 도구함 정리를 나에게 맡긴 다든지 하는 것으로 나를 교묘히 괴롭혔다.
그 놈은 항상 자신을 포함해 4명이 어울려 다녔는데 지들 말로는 자칭 학교의 라고 떠벌리고 다녔다. 하지만 나는 그 놈들을 라고 불렀다. 빌런(VILLAIN)4, 네마리의 악당들이란 뜻이다.
정확히 말하자마녀 네명의 깡패들이라 해야겠지만 알아듣기 쉽게 그들이 자신의 입으로 널리 퍼뜨린 대로 빌런,악당이란 표현을 그대로 쓰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