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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hair)헤어날 수 없는 탈모
작가 : 탈모인
작품등록일 : 2017.12.16

의대생 한지현은 탈모 강의를 듣고 7년 전을 떠올린다. 평범한 여중생이던 자신의 머리카락이 급작스레 빠지게 된,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탈모 병변은 돌연변이가 일어난 암세포처럼 분열하고... 결국 지현은 대학병원 피부과에 내원한다. 열일곱의 나이로 모든 머리카락을 잃게 된 지현은 대인기피증과 극심한 우울증에 빠지게 되는데...
여느 때처럼 모자를 눌러쓰고 진료를 받고 나온 지현은 '전신 탈모증'을 앓는 동갑내기 유청명을 만나게 된다. 자신의 아픔을 이해해 주고, 진심 어린 위로를 해주는 유일무이한 친구이다.
훗날 의대생이 된 지현은 자신의 힘으로 전신 탈모증을 치료하려 하는데...
가발부터 피부과, 동의보감, 심리상담까지 탈모의 모든 면을 다룬 메디컬 소설!

 
30장: 동의보감
작성일 : 17-12-16 17:27     조회 : 340     추천 : 0     분량 : 7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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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동의보감(donguibogam)

  2학기가 끝날 무렵이었다. 겨울 방학을 3주 앞둔 대학교 1학년 2학기의 겨울이었다. 늘 그렇듯 무력한 일상 속에 파묻힌, 다만 기말고사 공부를 시작해야 하던 어느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나는 강의실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수업을 듣는 것도, 그렇다고 딴 짓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빨리 원룸으로 돌아가 가발을 벗고 침대에 눕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던 와중이었다. 흐리멍덩하게 존재하던 뇌와 심장에 생기를 불어넣는 카톡 하나가 청명에게서 발신되었다. 심장을 시계처럼 째깍거리게 만드는 카톡을 확인한 나는 감전이라도 된 듯이 머릿속이 짜릿해졌다. 나는 수업을 듣다 말고 강의실을 뛰쳐나왔다. 곧바로 의대 옆 건물인 한의대로 직행했다. 청명을 따라 한의대 도서관으로 들어간 나는 청명이 말한 그 책을 보게 되었다.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나는 그 책을 읽어 내렸다. 조급한 심장 탓에, 집중력이 눈의 움직임을 따라오지 못했다. 읽었던 부분을 다시 읽어가며 나는 그 책을 끝까지 읽었다. 그러고 나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원형 탈모증은 21세기에 탄생한 질병이 아니었다. 스마트폰은 21세기에 개발되었지만 원형 탈모증은 수백 년 전에도 존재하던 병이었다. 일제강점기, 프랑스혁명은 물론 임진왜란 때도 원형 탈모증은 발생했다. 또 원형 탈모증은 사려 깊은 질병이 아니었다. 머리 자르는 걸 불효로 여겼던 조선시대라 해서 원형 탈모증이 사정을 헤아려줄 리는 없었다.

  역사가들이 굵직한 알맹이만을 선택적으로 취합하여 그들의 역사적 사실로 만들듯이 조선의 한의사 한 명도 원형 탈모증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동의보감 외형편 4권 모발문]에 그 기록이 새겨져 있었다. 저자는 허준이었다. 카톡에서 청명이 말했던 두 가지 사례가 단연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허준의 생애(1539-1615)를 고려했을 때, 400년도 더 된 사례였다.

 1. 어떤 젊은 남자가 머리털이 다 빠져서 육미지황환을 썼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털이 1치 정도 나왔다. 그리고 2달 만에는 완전히 이전과 같이 되었다.[회춘]

 2. 한 젊은 부인이 머리털이 한 올도 없이 다 빠졌는데 맥은 미현하면서 색하였다. 이것은 기름지고 맛좋은 음식을 먹은 것으로 말미암아 가슴에 열과 습담이 생겨서 훈증하는데 그것이 머리털뿌리까지 미치고 피가 점차 마르게 되어 빠진 것이다. 그리하여 방풍통성산에서 마초를 빼고 여기에 대황과 사물탕약재를 넣어 섞어서 1첩으로 하여 2달 동안 달여 먹였는데 습열이 점차 없어졌다. 그 후 약은 쓰지 않고 기름기가 없는 음식만 먹이면서 1년 동안 잘 조리시켰는데 이전과 같이 회복되었다.[단심]

  머리털이 다 빠졌다는 점에서 두 사례 모두 전두 탈모증 같았다. 동의보감에는 전두 탈모증이 아닌 다른 탈모증에 관한 증례도 있었고, 머리털이 빠지는 데 쓰이는 한약재의 이름도 수두룩했다. 자영산, 당귀, 삼성고, 이선환 등 낯선 한약재들의 명칭이 빼곡히 기록되어 있었다.

  개인적으로 적잖이 아쉬운 점도 있었다. 전신 탈모증에 대한 사례는 없었고, 전두 탈모증에 대한 사례도 앞서 살펴본 두 개에 불과했다. 또한 치료 성공률, 재발률, 부작용, 실패사례 등을 분석한 데이터도 없었다. 그렇지만 최소한의 요건은 갖춰져 있었다. 역시 중요한 건 치료약재가 상세하게 기입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비록 두 개의 사례였지만 기대와 희망의 불씨가 순수한 새싹처럼 피어나기엔 충분했다. 그날 저녁, 청명은 곧바로 해산시에서 가장 큰 한의원인 R한의원으로 향했고, 나는 다음 날에 예약을 잡아두었다. R한의원에 다녀온 청명은 나에게 카톡을 보냈다.

 ‘머리에 침을 맞았어. 그리고 한방샴푸랑 한약을 처방 받았어.’

  다음 날, 나는 아빠와 함께 R한의원으로 갔다. 어릴 적 방문했던 동네 한의원보다 몇 배는 더 넓은 곳이었다. 예약을 해두었기에 20분쯤 지나자 곧바로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진료실 문을 열자, 40고개 언저리의 파마머리 한의사가 맞아 주었다. 나는 책상 앞의 의자에 앉았고 아빠는 내 옆에 섰다. 왼손으로 검은색 뿔테 안경의 위치를 조정한 뒤에 한의사는 문진을 시작했다.

 “한의원에는 어떻게 오셨습니까?”

  같이 방문한 아빠가 대답했다.

 “우리 애 탈모 때문에 왔습니다. 어제 우리 애 친구가 여기 왔다던데 그 애랑 우리 애랑 증상이 똑같습니다. 머리털뿐만 아니라 온 몸의 털이란 털은 다 빠졌습니다. 동의보감에서 무슨 한약을 먹으면 머리카락이 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한 번 와봤습니다.”

 “아. 어제 그 분 말씀하시는군요. 맞습니다. 동의보감에 나온 방법에다가 몇 가지를 추가해서 저희는 탈모를 다루고 있습니다. 머리 한 번 봅시다.”

  겨울철이라 나는 헌 가발에다 비니와 외투 모자를 뒤집어쓴 상태였다. 허물을 벗는 매미처럼 나는 모자와 가발을 벗어 민머리와 민눈썹을 드러냈다. 족제비 같은 눈을 가늘게 찌푸리며 한의사는 내 얼굴과 머리를 살펴보았다.

 "흐음. 확실히 어제 그 분이랑 증상이 똑같네요. 증세가 정말 심각하네요. 눈썹도 빠졌고요. 머리카락 빠진 거는 언제부터였습니까?"

  이번에는 내가 대답했다. 탈모의 시작은 그때부터였다.

 "4년 2개월 되었어요. 온 몸의 털이 빠진 건 3년 2개월 전이었어요.“

 "그렇군요. 그 전에 피부과나 다른 데서 치료는 받으셨나요?"

 "네. 피부과랑 대학병원에서 3년가량 치료를 받다가 지난 1년 동안은 아무것도 안 했어요."

 “효과는 어땠나요?”

  지난 몇 년간의 내 머리 상태가 머릿속 새하얀 공간에 생생하게 그려졌다. 살색 바탕에 거무스름한 빗살무늬가 옅게 새겨졌다 다시 사라진 씁쓰레한 도자기였다. 효과가 거의 없었다, 라고 나는 대답했다.

 “그렇군요. 잠시 맥 좀 짚어보겠습니다."

  진맥 외에도 한의사는 다양한 신체검사를 했다. 배를 타진하기도, 손톱을 눌러 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한의사는 계속해서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평소 몇 시에 자서 몇 시에 일어나는지, 아침에 일어났을 때 피곤한지, 침대에 누우면 잠은 곧바로 오는지, 가슴이 답답한지, 얼굴이 자주 상기되지 않는지, 손발이 찬지, 추위를 잘 타는지, 물은 하루에 얼마나 마시는지, 밥은 꼬박꼬박 먹는지, 즐겨 먹는 음식이 뭔지, 운동은 하는 게 있는지, 잡생각이 많은 편인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인지, 월경은 규칙적인지를 꼬치꼬치 캐물었다. 마지막 질문은 배변이었다.

 “배변은 일주일에 몇 번 하십니까?”

  잠시 뜸을 들이다가 나는 대답했다.

 “1주일에 한두 번 정도 하는 것 같아요.”

 “좀 적군요. 대변은 무슨 색깔입니까?”

  나는 잠시 생각에 잠기었다. 습관적으로 변기 레버를 내렸기에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글쎄요. 갈색이었던 같은데 확실하지는 않아요.”

 “그렇군요.” 말을 마친 한의사는 잠시 키보드를 두드렸다. 키보드를 두들긴 후에 한의사는 나를 흘끗 보더니 아빠를 쳐다보며 말했다.

 “머리카락은 단순히 피부의 부속물처럼 보이지만, 실은 오장육부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머리카락과 체모가 빠지는 것은 자율신경과 면역계가 혼란을 일으켰기 때문인데, 그것의 근본적인 원인은 오장육부의 평형이 깨졌기 때문입니다.”

  몇 초의 뜸을 들이다 한의사는 다시 말을 이었다.

 “육부에 속하는 소장과 대장의 경우 음식물을 빨리 흡수하고 빨리 내보내는 게 이치에 맞습니다. 그런데 따님의 경우 장이 허하기 때문에 소화과정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고, 그렇다 보니 영양분이 머리카락으로 충실하게 공급되지 못하는 것이지요. 또 머리에 열이 많고 손발이 차다는 점에서 수승화강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하는 걸로 생각됩니다. 뿐만 아니라 아침에 일어났을 때 피곤하다는 점과 잡생각이 많다는 점에서 정기가 사기에 짓눌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빠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의사는 계속 말을 이었다.

 "치료에 대해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우선 무엇보다도 장을 건강하게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유산균을 통해서 장내세균총을 개선시키고, 배에 뜸을 놓아 장의 환경을 안정적으로 만들어 줄 계획입니다. 또한 침을 놓아서 울혈을 해소하고 배에 좋은 기가 전달되도록 할 계획인데, 침은 배뿐만 아니라 머리에도 놓을 겁니다. 이는 머리카락으로의 혈류 순환을 촉진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가슴에 쌓인 화와 부족한 진액은 탕약을 통해 해결할 것입니다. 그리고 샴푸도 하나 처방해 드리겠습니다. 약산성 천연샴푸인데 두피의 환경을 최적화시키는 데 도움을 줄 겁니다. 요약하자면, 유산균과 탕약과 침과 뜸, 샴푸를 통해서 탈모를 치료할 계획입니다.”

  아직 의대 1학년이다 보니 상세하게는 모르겠으나 꽤나 그럴싸하게 들렸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이론이나 과정이 아니라 오로지 결과였다. 다시 말해서 머리카락과 눈썹이었다.

 "머리카락이랑 눈썹은 다 날 수 있을까요?"

  염려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아빠가 말했다. 아빠의 목소리는 소나기에 젖은 풀잎처럼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전부 다는 안 날 겁니다. 머리카락뿐만 아니라 체모도 빠졌기 때문에 치료가 쉽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한방치료를 받아서 발모를 위한 최적의 환경을 만든다면 꽤 많이 날 수는 있을 겁니다.” 다소 무거운 목소리로 한의사가 말했다.

  머리카락이 꽤 많이 날 수도 있다는 말에 나는 깊은 우물 같은 생각에 잠겼다. 아빠도 한의사도 잠시 침묵에 잠겼다.

 “치료기간은 얼마나 될까요?” 그리 길지 않은 정적을 조심스레 깨뜨리며 아빠가 말했다.

  아빠의 말을 들은 한의사는 앞머리를 왼손으로 쓸어 넘기며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지었다.

 “효과를 보려면 1년에서 1년 반은 치료를 받으셔야 할 겁니다."

  한의사를 따라 나는 곧바로 치료실로 이동했다. 의료용 침대에 누우니 하얀 커튼이 쳐졌다. 한의사의 지시대로 엎드려 누우니 하나 둘씩 머리에 침이 꽂히기 시작했다. 침을 몇 개 꽂아준 다음 한의사는 한숨 자라고 말했다.

  머리에 침이 여러 개 꽂힌 바람에 눕는 건 불가능했고, 나는 엎드린 자세를 유지한 채 눈만 감았다. 잠이 오지 않았다. 같은 자세로 한참 동안 엎드려 있는데 잠이 올 리 만무했다. 대신에 잡생각이 몰려왔다. 1년 동안 한방치료를 받아 최적의 두피 환경을 만든다면 '꽤 많이' 날 수도 있다는 한의사의 말이 계속해서 귓가를 아른거렸다. '꽤 많이'는 도대체 어느 정도일까 싶었다. '꽤 많이'라는 말을 나는 나름 긍정적으로 해석하여 60퍼센트로 치환해 보았다. 지난 4년 2개월 동안 머리카락은 거의 자라지 않았다. 가장 많이 자랐을 때도 채 15퍼센트가 되지 않았다. 60퍼센트면 제법 획기적인 변화였다.

  동시에 60퍼센트의 머리카락으로 도대체 뭘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밀려왔다. 머리카락은, 60퍼센트여도 멀쩡히 작동하는 휴대폰 배터리가 아니었다. 머리카락은 100퍼센트에 근접하지 않으면, 원자력 발전소의 안전장치처럼 완전무결하지 않으면 실효성이 낮았다.

  하지만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비록 가발을 벗을 수 없는 불충분한 수치였지만 그래도 일단은 한번 해 볼 수밖에 없었다. 다른 선택지가 전무하니 말이다. 그저 ‘꽤 많이’라는 예상이 머리를 뚫고 올라와, 두피를 가득 메울 정도로 광활한 흑빛 벌판으로 성장하길 바랄 뿐이었다.

  침을 맞은 나는 한약과 유산균과 한방샴푸를 처방 받았다. 한약은 하루에 한 번, 유산균은 하루에 세 번이었다. 약산성 천연한방샴푸는 아침저녁으로 두 번을 이용했다. 한약값은 한 달에 40만 원을 상회할 정도로 많이 비쌌지만 아버지는 별다른 내색 없이 카드를 내밀었다. 단순히 한약을 복용하는 것 외에 한의사는 식단 조절을 주문했다. 치킨, 피자, 햄버거, 아이스크림, 과자, 빵 같은 음식은 물론 우유와 된장도 먹지 말라고 했다. 먹어야 할 음식으로는 현미, 무, 숙주나물을 추천해 주었는데, 내 체질에는 무가 최고라고 덧붙여 주었다.

  스무 살의 겨울, R한의원에서의 새로운 여정이 닻을 올렸다. 비록 대다모에서는 한의원 치료에 실패한 사람들이 즐비했지만 그래도 나한테는 효험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침도 맞고, 뜸도 놓고, 한약도 먹고, 식단 조절도 철저히 한다면 어떻게든 머리카락이 자라지 않을까 싶었다. 탈모 치료가 아무리 어려울지라도 1년에서 1년 반이라는 기간은 뭔가 넉넉하게 느껴졌다. 그 시간이라면 어떻게든 전신 탈모증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청명과 나의 마음은 산타클로스를 기다리는 일곱 살 아이처럼 순수했다.

  우리 둘 다 온 몸의 털이 빠진 동일한 증상을 나타냈지만, 한의원에서 받는 치료는 완전히 똑같지는 않았다. 배가 차가운 나와 달리 청명은 신이 허하다는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침을 놓는 위치도, 사용하는 한약도 조금씩 달랐고 쑥뜸은 나만 했다. 청명과 나에게 번갈아 침을 놓으면서, 한의사는 이런저런 말들을 해주었다.

 “식물이 자라나는 데 영양분이 필요하듯이 머리카락도 마찬가지야. 청명이는 신의 기가 부족해서 머리카락이 충분한 영양분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어. 반면에 지현이는 장이 약해서 영양분을 흡수하는 능력이 감소되어 있고. 두 사람은 공통적으로 손발이 차고 머리가 뜨거운 편이야. 스트레스는 화를 유발하는데, 화가 가슴에 쌓이면 얼굴로 올라오게 되고 최종적으로 두피가 뜨거워지게 돼. 비옥한 땅에서 꽃과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듯이 두피의 환경도 머리카락이 자라는 데 중요해. 가슴과 머리에 쌓인 열을 내리고 약산성 천연샴푸를 사용해서 두피를 최적의 컨디션으로 만들어야 해. 그리고 두 사람 다 해의 움직임에 따라 잠자리에 드는 시간을 조절해. 여름철에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겨울철에는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도록 해. 하루에 8시간 정도를 자는 게 좋고, 낮잠은 오래 자지 말고 10분가량 짧게 자는 게 좋아. 저번에 말했듯이 나물을 많이 섭취하고 운동도 꾸준히 하는 게 좋은데, 유산소 운동이 특히 좋아.”

  한의사는 자정과 정오를 몇 번이고 강조했다. 아무리 늦어도 자정 전에 자고, 정오 이전에 일어날 것을 주문했다. 또한 손바닥으로 귀를 감싼 뒤에 손가락으로 머리 뒷부분을 누르는 두피 자극 요법을 알려주었다. 운동은 유산소 운동을 추천해 주어서 청명과 나는 주말이면 대학교 운동장에서 조깅을 했다.

  한방치료를 시작한 겨울 방학이 끝나자 우리는 대학교 2학년이 되었다. 미지근했던 일상에는 적지 않은 균열이 생겼다. 화요일, 목요일이면 청명과 함께 R한의원에 가야 했다. 대학교 강의가 끝나면 버스로 30분 거리의 R한의원으로 가서 침과 쑥뜸 시술을 받았다. 식단도 바꿨다. 기존의 고기반찬 도시락 대신 비빔밥 위주로 사 먹었다. 물론 과자, 빵, 탄산음료, 치킨, 피자, 라면 같은 음식은 거의 먹지 않았다. 두피의 pH를 5.5로 맞춰 준다는 천연샴푸를 사용했고, 유산균과 탕약도 부지런히 먹었다. 시험기간 등 특별한 사유가 있지 않고서는 11시가 되면 침대에 누웠다. 헌 가발과 후드 모자를 쓰면서까지 산책과 달리기도 꾸준히 했다.

  R한의원으로의 여정도 대학병원과 비슷했다. 버스를 타고 가서, 진료대기석에서 기다리고, 머리에 무언가 자극을 가하고, 돈을 내고 병원을 나온다는 점에서 대학병원을 다닐 때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그 모든 과정이 청명과 함께였다. 병원에 가기 위해 원룸을 나설 때에도, 버스 안에서 보내는 30분도, 진료대기석에서 기다릴 때도, 머리에 침을 맞고 엎드려 누워 있을 때도 옆에는 청명이 있었다. 두 개의 점이 하나의 선분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작지만 유의미한 차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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