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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hair)헤어날 수 없는 탈모
작가 : 탈모인
작품등록일 : 2017.12.16

의대생 한지현은 탈모 강의를 듣고 7년 전을 떠올린다. 평범한 여중생이던 자신의 머리카락이 급작스레 빠지게 된,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탈모 병변은 돌연변이가 일어난 암세포처럼 분열하고... 결국 지현은 대학병원 피부과에 내원한다. 열일곱의 나이로 모든 머리카락을 잃게 된 지현은 대인기피증과 극심한 우울증에 빠지게 되는데...
여느 때처럼 모자를 눌러쓰고 진료를 받고 나온 지현은 '전신 탈모증'을 앓는 동갑내기 유청명을 만나게 된다. 자신의 아픔을 이해해 주고, 진심 어린 위로를 해주는 유일무이한 친구이다.
훗날 의대생이 된 지현은 자신의 힘으로 전신 탈모증을 치료하려 하는데...
가발부터 피부과, 동의보감, 심리상담까지 탈모의 모든 면을 다룬 메디컬 소설!

 
19장: 피해망상
작성일 : 17-12-16 17:12     조회 : 310     추천 : 0     분량 : 4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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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피해망상(paranoid)

  중학교 졸업식 날이었다. 대학교를 두 번 졸업하는 사람은 있어도 중학교를 두 번 졸업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터였다. 그리고 내 머리는 여전히 민머리였다. 책상에는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기는 시커먼 물체가 놓여 있었는데, 가발이었다. 어제 대학병원 여자화장실 변기칸에서 청명이 벗어 준 자신의 분신이었다. 교복을 입고 가발을 착용하고 나는 집을 나섰다. 운이 좋아서인지 어제 연습했을 때와는 달리 단 두 번 만에 착용할 수 있었다.

  유난히도 어두웠던 겨울을 보내서인지 바깥은 낯설 정도로 밝았다. 불순물 하나 없는 순결한 햇빛이 각막과 동공을 뚫고 머리 뒤편까지 파고들었다. 밝은 만큼 미시감이 들었다. 실눈을 뜨게 만드는 싱그러운 햇살도, 고개 숙이지 않고 들이마시는 상쾌한 공기도, 어깨를 펴고 쳐다보는 아침 하늘도, 마치 처음처럼 오랜만이었다. 흡사 인간의 세계를 잠시 떠났다가 지구로 귀환한 듯한 기분이었다. 겨울잠에서 깨어난 곰은 이런 기분-세상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기분-을 매년 맛보지 않을까 싶었다.

  두려워하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나는 교실로 들어갔다. 가발에 대한 반응은 양극단이었다. 일부는 별말 없이 나를 대해 주었고, 나머지는 능글거리는 눈빛으로 가발을 쓴 나에게 조소를 퍼부었다. 애국가로 시작된 졸업식은 중학교 교가로 막을 내렸다. 제법 푸른 하늘과 꽤 맑은 구름을 배경으로 사진을 촬영하며 나는 중학교를 비교적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다.

 "그러면 내일 오후 2시로 예약해 드릴게요."

  고등학교 입학식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날, E가발전문점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 다음 날 오후 나는 엄마와 함께 가발전문점으로 갔다. 공포영화에 나오는 처녀귀신처럼 가발은 옆머리, 앞머리, 뒷머리가 길게 늘어져 있었다. 최소 몇 년은 이발을 하지 않은 원시인의 머리를 보는 것 같았다.

  가발은 한번 잘못 자르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다. 머리카락과 달리 가발 모발은 자라지 않기 때문이다. 한 번의 실수가 비가역적인 손상이 될 수 있기에, 일반 미용실에서 가발을 커트하는 건 얼마간 찜찜한 일이었다. 가발전문점 내에는 다행히도 가발을 위한 미용실이 존재했다. 가발 미용실에는 마치 피부과 의원에 피부과 전문의가 있듯이 가발을 전문적으로 잘라 주는 미용사가 상주했다.

 “이쪽으로 들어오세요.”

  갈색으로 염색한 두발을 포니테일로 질끈 묶은, 40고개 언저리로 보이는 아주머니였다. 눈웃음을 지으며 포니테일 미용사는 엄마와 나를 가발 미용실로 안내했다. 미용실 문을 열자 특유의 화학적인 냄새가 콧속으로 가득 밀려들었다. 다섯 달 만에 맡아보는 냄새였다. 나는 외투 모자와 비니와 청명이 나에게 준 낡삭은 가발을 벗고 미용실 의자에 걸터앉았다. 다섯 달 동안 망각하고 있던 광경에 머릿속이 다소 어수선했다.

 "잠시 앉아서 기다려 주세요. 가발은 자르기 전에 먼저 한 번 씻어야 하거든요."

  미용사는 어깨에 수건을 둘러준 뒤에 미용실을 나갔고, 나는 내부를 둘러보며 향수 비슷한 감정에 잠겼다. 미용사가 돌아온 건 10분 뒤였다. 가발을 씻고 말려 온 포니테일 미용사는 이번엔 양면테이프를 자르기 시작했다. 가로 5cm, 세로 2cm 크기의 양면테이프가 다섯 개 만들어졌다. 가발을 젖히고 양면테이프를 안쪽에다 붙이며 미용사는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사유는 뻔했다. 커트할 때 흔들리지 않기 위해 가발을 머리에 단단히 고정시키기 위해서였다. 양면테이프는 전두부에 하나, 측두부 양쪽에 하나씩, 후두부 양쪽에 하나씩, 총 다섯 개가 소모되었다. 미용사가 양면테이프의 하얀 껍데기를 떼자 투명한 접착 부분이 드러났다. 내 머리에 착 달라붙어야 할 부위였다.

 “이제 다 준비되었습니다. 똑바로 앉아 주세요.”

  나는 자세를 바로 하며 정면을 응시했다. 눈앞의 거울을 통해, 가발을 씌워 주려는 미용사의 손을 볼 수 있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끈적거리는 감촉이 전두부에 와 닿더니, 곧 머리와 가발은 양면테이프를 매개로 끈끈하게 합체되었다.

 “스타일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호주머니를 뒤적거려 나는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뒷머리가 목의 절반까지 내려오고 앞머리는 이마 중간 부분까지 내려오는 어느 모델의 사진이었다.

 “가발 자를 때 조금만 잘라 주세요. 다음에 한 번 더 와서 자를게요.”

  청명의 조언이었다. 어젯밤, 가발을 자른다고 하니 청명은 자신의 사례를 들려주었다. 예전에 미용사가 가발을 이상하게 자르는 바람에 기묘한 헤어스타일로 여섯 달을 버텼다는, 피부가 오그라드는 경험담이었다. 그 이후로 청명은 가발을 두 번에 걸쳐서 자른다고 말했다.

 “그러시겠어요? 좋은 생각이에요. 다음에 무료로 해드릴 테니까 언제든지 오세요.”

  미용사는 본격적으로 가위를 놀리기 시작했다. 초조했다. 싹둑거리는 소리 한 번마다 심장이 안으로 우그러드는 듯 했다. 가발을 조금 덜 잘라 달라고는 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마음이 놓이진않았다. 여태까지 수십 번도 넘게 머리를 잘라 봤지만 지금처럼 긴장되는 순간은 단언컨대 처음이었다. 제발 무사히 잘라 달라고 나는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혹시 항암치료 받으셨나요? 머리카락이 전혀 없으시네요.”

  예기치 못한 질문이었고, 나는 말문이 막혔다. 대답을 한 건 옆에 앉아 있던 엄마였다. 얼마간 떨떠름한 목소리였다.

 “아니요. 원형 탈모증이에요.”

 “아, 그런가요. 원형 탈모증이 좀 많이 심하네요.”

  그 대화를 마지막으로 싹둑거리는 가위 소리와 돌처럼 무거운 공기만이 미용실을 부유했다. 원래라면 10분이면 끝날 단순 커트가, 가발이다 보니 40분이나 걸렸다. 노심초사하며 가발을 자르다 보니, 온 몸의 세포들이 피로를 호소했다. 소파에 앉아 있던 엄마도 고개를 까닥거리며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나는 가발 씻는 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엄마와 함께 가발전문점을 빠져나왔다. 머리 위의 낯선 이물감을 느끼며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고등학교 입학식 하루 전날에 나는 다시 E가발전문점을 방문하여 가발을 자르고 왔다. 그러고 나서 나는 청명과 통화를 했다. 우리는 내일부터 시작될 고등학교 생활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통화는 곧 시들시들해졌다. 새로운 시작에 대한 설렘은 그리 크지 않았고, 그저 갑갑하고 막막할 뿐이었다. 대화의 화제는 곧 가발로 넘어갔고, 청명과 나는 은밀한 대화를 시작했다. 첫 번째 화제는 양면테이프였다. E가발전문점에서는, 양면테이프를 붙여서 가발을 써야 하고 전두부에 하나, 측두부에 두 개, 후두부에 두 개의 양면테이프를 붙여야 한다, 라고 말해 주었다. 청명의 견해는 달랐다. 9년째 가발을 써 온 청명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양면테이프는 붙이지 마, 지현아. 그거 안 붙여도 괜찮아. 나도 처음 가발 샀을 때 2년 반 동안 붙이고 다녔는데 엄청 불편했어. 너도 가발 자를 때 붙여 봤으니까 알잖아. 얼마나 거슬리는지.”

  비록 가발을 자르고 집으로 돌아오는 잠깐 동안이었지만, 양면테이프를 붙인 가발을 착용하는 건 지독하게 불편한 일이었다. 귀와 눈과 입과 코를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곧바로 양면테이프의 존재감이 느껴졌고, 그때마다 온 신경이 머리에다 쏠렸다. 가발을 착용하는 내내 무표정을 유지하지 않고서는 양면테이프의 영향에서 탈피할 수 없을 듯했다.

 “바람이 세게 불면 가발이 날리지 않을까? 그리고 만약 다른 애가 가발을 벗기면 어떻게 해?” 나는 그 거슬리는 물체를 굳이 붙이는 이유를 청명에게 상기시켜 주었다. 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는 청명의 대답은 차분했다.

 “나도 처음 가발을 쓸 때는 걱정을 많이 했어. 왠지 모르게, 다른 애들이 가발을 휙 벗기리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지. 그런 망상 때문에 나는 첫 2년 반 동안 양면테이프를 붙인 가발을 써야 했어. 그런데 실제로 그런 일은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어. 더군다나 고등학생 중에서, 하물며 여고에서 그런 짓을 하는 애는 아마도 없을 거야. 그리고 맞춤형 가발이니까 바람은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웬만큼 강한 바람에도 가발은 날리지 않으니 양면테이프는 붙이지 않아도 돼.”

  가발전문점 직원이라 해서 가발을 착용하는 건 아니었다. 반면 청명은 오랫동안 가발을 써 온 경험자였고, 갈팡질팡하던 머릿속 시소는 종내 청명 쪽으로 기울었다. 나는 곧바로 다음 질문을 던졌다.

 “혹시 옆에 앉은 애들이나 뒤에 앉은 애들에게 가발 쓴 게 들키지는 않을까? 옆자리나 뒷자리에서 쳐다볼 때 가발의 머리카락 틈 사이로 머리가 엿보이지는 않을까? 요새 그게 너무 걱정돼.”

  청명은 유순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부드러움과 단단함은 거의 반반씩 배합되었고, 낮과 밤처럼 번갈아가며 나타났다.

 “지현아, 나도 처음 가발 쓸 때는 그 걱정한다고 수업에 집중하지도 못했어. 하지만 가발이 오래되거나 손상되지 않는 이상은 엿보이지 않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처음이라 불안하겠지만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해봐, 지현아. 만약 가발 쓴 게 티가 난다면 누가 가발을 쓰겠어. 의심되면 거울로 한번 살펴보렴.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절대로 안 들키니까 걱정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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