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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hair)헤어날 수 없는 탈모
작가 : 탈모인
작품등록일 : 2017.12.16

의대생 한지현은 탈모 강의를 듣고 7년 전을 떠올린다. 평범한 여중생이던 자신의 머리카락이 급작스레 빠지게 된,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탈모 병변은 돌연변이가 일어난 암세포처럼 분열하고... 결국 지현은 대학병원 피부과에 내원한다. 열일곱의 나이로 모든 머리카락을 잃게 된 지현은 대인기피증과 극심한 우울증에 빠지게 되는데...
여느 때처럼 모자를 눌러쓰고 진료를 받고 나온 지현은 '전신 탈모증'을 앓는 동갑내기 유청명을 만나게 된다. 자신의 아픔을 이해해 주고, 진심 어린 위로를 해주는 유일무이한 친구이다.
훗날 의대생이 된 지현은 자신의 힘으로 전신 탈모증을 치료하려 하는데...
가발부터 피부과, 동의보감, 심리상담까지 탈모의 모든 면을 다룬 메디컬 소설!

 
16장: 첫 만남
작성일 : 17-12-16 17:09     조회 : 319     추천 : 0     분량 : 4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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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첫 만남(first meet)

  나를 부른 건 여자애였다. 바깥의 눈처럼 새하얀 외투를 입은 여자애였다. 그리고 이 애가 아까 나를 쳐다보던 누군가라는 걸, 나는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여자애한테서 아까 맡았던 기분 좋은 향기가 났기 때문이다. 길게 늘어뜨린 까만 생머리가 쇄골까지 내려오는, 앞머리가 눈썹을 살포시 가린, 눈이 동글동글한 어여쁜 여자애였다. 잡티 하나 없는 새하얀 피부로 보아 나보다 한두 살쯤 어린 것 같았다. 비니와 챙 모자, 그리고 외투 모자로 삼중무장을 한 나는 슬며시 고개를 들어 그 아이를 바라보았다.

 “네? 왜 그러세요?”라고 대답하며 민머리의 나는 그 아이와 마주쳤던 눈을 다시 내리깔았다.

 “잠시 대화 좀 나눌 수 있을까요?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다소 조심스럽게 여자애는 말을 꺼내었다.

 “무슨 말씀인가요?” 내리깔았던 눈을 들어올리며 내가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뭔가 모호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적확히 표현하자면 이상하게 편안하다는 느낌이었다. 일말의 기시감이 들 정도로 이 아이에게선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여자애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더니 약간 망설이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서 말하긴 좀 곤란한데 1층 카페에서 얘기하면 안 될까요?”

  얼떨결에 나는 여자애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여자애의 새까만 뒤통수를 쳐다보면서 머릿속에선 추측과 의문의 소용돌이가 거세게 일어났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부터 시작해서 종국엔 ‘혹시 함정은 아닐까.’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여자애와 나는 1층 카페의 원형 테이블로 갔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충분히 떨어진 구석진 곳이었다. 여자애는 바로 옆의 자판기에서 따뜻한 코코아 두 잔을 뽑더니 나에게 하나를 건네주었다. 어리둥절한 심정으로 코코아를 받아들며 나는 ‘도대체 무슨 속셈으로 이러는 걸까.’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퍼뜩 여기가 병원이라는 사실이, 그것도 대학병원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또한 이 여자애는 분명 피부과 진료를 보고 나왔었다. 그러자 ‘얘는 도대체 무슨 일로 피부과를 다닐까.’라는 생각이 연쇄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용건에 대하여 내가 물으려 할 때 여자애가 먼저 입을 열었다. 서론을 생략하고 여자애는 곧바로 깊숙한 핵심을 찔렀다.

 “혹시 원형 탈모증 때문에 병원에 오셨나요? 저도 원형 탈모증을 앓고 있는데 잠시 이야기 좀 나누고 싶어서요.”

  당돌한 여자애였다. ‘원형 탈모증’이라는 말에 나는 눈앞이 흐려지면서 머릿속이 멍멍해졌다. 흡사 젖은 솜으로 머릿속이 가득 찬 기분이었다. 잠시 동안 나는 하마처럼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지금 내 앞에 앉은 여자애의 머리는 온전했다. 앞머리도, 옆머리에도 전혀 이상이 없었고 아까 뒤따라올 때 쳐다본 뒤통수도 분명히 멀쩡했다. 원형 탈모증으로 인해 머리카락이 빠진 곳이라곤 도저히 찾아볼 수 없었다. 의아하다는 생각이 고개를 내밀 무렵에 여자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제 이름은 유청명이구요. 나이는 열여덟 살이에요. 혹시 몇 살이세요?”

  나보다 한두 살 어려 보였는데 오히려 한 살 많다는 말에 내심 놀라며 나는 열일곱 살이라고 대답하였다. 덧붙여서 이름도 말해 주었다. 내 대답을 들은 여자애의 까맣고 맑은 눈동자는 부레옥잠처럼 부풀어 올랐다.

 “열일곱 살이면 이제 고등학교 1학년이지? 난 생일이 1월 달이어서 빠른 열여덟 살인데 사정이 있어서 올해 고등학교에 진학해. 그러니까 우리 그냥 말 놓자.”

  내 생일은 3월 달이었다. 그러니 실제 나이차는 두 달에 불과했다. 여자애, 아니 청명의 제안을 나는 흔쾌히 수락했다. 청명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한층 진지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방금 내가 원형 탈모증을 앓고 있다고 말했는데, 머리카락이 빠진 곳이 어딘지 모르겠지? 나는 원형 탈모증이 많이 악화된 상태라 지금 가발을 쓰고 있어. 눈썹도 아이브로우 펜슬로 그린 상태야. 나는 5살 때 처음으로 원형 탈모증이 발병했어. 치료를 받으니 머리카락이 다시 났지만 4년 뒤인 9살 때 원형 탈모증이 재발했어. 그러면서 머리카락은 물론 온 몸의 털이 빠지는 전신 탈모증으로 악화되었어. 1년 넘게 치료를 받아서 머리카락이 어느 정도 자랐지만 가발을 벗을 만큼 나지는 않았어. 하물며 그것도 2년이 안 되서 다시 빠져 버렸고, 결국 나는 9년째 가발을 착용하고 있어. 지금은 원형 탈모증이 네 번째로 재발해서 2개월째 치료를 받고 있고, 머리카락은 아주 조금 자란 상태야.”

  동갑인 여자애가 태연하게 내뱉은 전신 탈모증이라는 말에, 원형 탈모증이 네 차례나 재발했다는 말에, 무엇보다 9년째 가발을 쓰고 있다는 말에 내 머릿속 사고회로는 작동을 멈췄다. 흡사 누전된 백열등처럼 나는 한참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전류가 가동된 건 수십 초의 시간이 흘러서였다. 나는 고개를 들어 청명의 눈썹을, 아니 눈썹이 있어야 하는 자리를 바라보았다. 청명이 말한 그대로였다. 눈썹이 있어야 할 자리엔 눈썹 대신, 앞머리로 교묘하게 가린 작위적인 검은 흔적이 그려져 있었다. 나는 시선을 살짝 내려 청명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나도 모르게 가슴이 벌벌 떨리면서 눈물이 고였다.

 “...정말 힘들었겠다. 괜찮니?”

  청명은 가느다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낯빛처럼 비교적 덤덤한 어조였다.

 “가끔가다 나 자신이 낯설 때가 있어. 하염없이 거울을 들여다볼 때면 나 자신이 원래 이랬나 싶기도 해. 하지만 적어도 9살 때처럼, 머리카락과 체모가 깡그리 빠질 때처럼 나 자신이 지워지는 듯한 기분이 들지는 않아.”

  무거운 뜸을 들이다 청명은 다시 말을 이었다.

 “지현이 너는 지금 어떤 상태야?”

  짧지도 길지도 않다고 생각되는 적당한 시간 동안, 우리는 같은 수평선상에서 눈을 마주했다. 그러고 보니 처음이었다. 삭발한 이후 처음으로 나는 다른 사람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었다. 어떠한 긴장감도 불안함도 느껴지지 않았고, 되레 몸은 이완되기 시작했다. 어깨부터 허리를 지나 다리까지 온 몸의 세포들이 편안해졌다. 그러면서 나는 말 못할 비밀을 사뭇 털어놓았다.

 “나는 머리카락이 너무 많이 빠져서 아예 머리를 삭발했어.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한 건 지난해 10월인데 불과 네 달 만에...”

  말을 매조지하지 못하고 나는 울먹거렸다. 그러다 결국 눈물을 터뜨렸다. 원형 테이블 맞은편의 청명은 의자에서 일어나 나에게 다가왔다. 그러더니 보드라운 손으로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외투를 입고 있어 체온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손길은 더없이 따뜻했다.

 “많이 힘들었지? 4개월 만에 그렇게 되었으니 지금 정말 힘들겠구나. 돌이켜보면 나도 머리카락이 처음 빠질 때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 진심어린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며 청명이 말했다.

  청명의 목소리는, 작지만 깊은 메아리였다. 성량은 작았지만 그 안에는 격이 다른 깊은 울림이 담겨 있었다. 밤하늘 은은한 달빛이 진득한 어둠 속으로 울려 퍼지듯 포근한 목소리는 나비처럼 나풀거리며 내 마음속 가장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었다. 따스한 목소리는 호수 표면에 떨어뜨린 물방울처럼 거대한 파장을 일으켰다. 가슴속 파동은 중력을 거슬러 올라 눈물샘을 자극했다. 나는 어깨를 들썩거리며 투명한 액체를 쏟아 냈다.

  내밀한 대화를 이만 마치고 우리는 평범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청명은 나긋한 목소리로 자신에 대해서 말해 주었다. 해산바닷가 근처에 살고, 독서와 음악 감상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나는 원산 근처에 살고 취미는 폰 게임이라고 말했다. 청명과 내가 나이에 걸맞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창밖의 햇빛은 달빛으로 노래졌다.

  휴대폰 번호를 교환한 뒤에 청명과 나는 병원을 빠져나왔다. 눈은 연기처럼 사라진 뒤였고, 동그란 달빛을 둘러싼 하늘은 거무스름했다. 청명과 나는 약국에서 약을 구입한 뒤에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방향이 같았기에 우리는 같은 버스에 탑승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어둠의 밀도는 점점 더 높아졌고 이내 이슥한 밤이 되었다. 어둠을 가로지르는 버스 안에서 우리는 1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 주에도 병원에 오니?”

  곧 청명이 내릴 차례였다. 휴대폰 번호를 교환했지만 혹시라도 다시는 못 볼까봐 나는 적잖이 두려웠다. 때문에 나는 청명과 나를 이어주는 동아줄을 다시 한 번 당겨보았다.

 “응. 다음 주 화요일에 봐.” 청명은 눈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잠시 뒤, 청명은 해산바닷가에 이르기 직전 정류장에서 내렸다. 그로부터 15분 뒤에 버스는 해산바닷가-해산바닷가는 청명이 내린 지점과 내가 내릴 지점의 중점에 위치했다-를 지나갔다. 해산바다의 물결은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나마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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