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눈썹 탈모증(madarosis)
그날 저녁, 나는 청명과 해산바닷가에서 만났다. 가발 앞머리를 눈썹까지 내려 쓴 채였다. 나는 반쯤 넋 잃은 목소리로 전신 탈모증으로 진행했다고 청명에게 털어놓았다. 온 몸의 모든 털이 빠져 버렸다는 비통한 고백에 청명은 잠자코 나를 안아주었다. 아무 말 없이, 청명은 나를 안아주었다. 석양이 빛나는 붉은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적막했고, 다만 갈매기 몇 마리가 저 멀리 날아가고 있었다.
백사장에 들어가니 늪지대에 빠진 것처럼 신발이 푹푹 가라앉는다. 쓸쓸한 파도소리와 엷은 바람만이 정처 없이 오가고 있다. 머리카락을 촘촘히 자른 듯이 얇은 모래알이 걸을 때마다 신발로 스며든다. 신발에 얹히는 가루의 무게를 느끼며 나는 무거운 발을 들어 올린다. 한 발자국씩 나아갈 때마다 발걸음이 둔해진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몸도, 마음도 무거워진다.
바다 고유의 짭조름한 냄새가 콧등을 스쳐간다. 미약한 해풍이지만 앞머리를 휘젓기엔 충분하다. 앞머리가 살짝 들리는 바람에 눈썹이, 아니 눈썹이 있어야 할 자리가 노출된다. 앞머리를 다시 내려서 나는 눈썹의 부재를 감춘다. 청명과 나는 백사장을 걷는다. 백사장을 횡으로 가로지르던 우리는 어느덧 끄트머리에 도달한다. 그사이 붉은 하늘은 거무스름하게 변질되고, 우리는 사람들로부터 멀어지다 못해 동떨어진다. 사람의 형체가 어렴풋한 윤곽으로 보이는 걸로 봐서 백 미터는 떨어진 듯싶다.
“청명아. 나 이제 어떻게 해야 해?” 쉰 목소리가 튀어나와서 나는 큼큼거리며 목청을 가다듬는다.
청명과 나는 같은 눈높이에서 서로를 마주본다. 정기를 잃은 내 눈동자를 은은한 눈빛으로 들여다보며 청명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한다.
“지현아. 많이 힘들지? 돌이켜보면 나도 그 때 정말 힘들었어. 네가 얼마나 힘들지 알기에 나는 너무 가슴이 아파.” 청명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다시 말을 잇는다.
“하지만 지현아, 아직 포기하긴 일러. 지금 많이 힘들겠지만 힘을 내서 꾸준히 치료를 받아 봐. 그리고 눈썹은 아이브로우 펜슬로 그린 뒤에 지금처럼 가발을 좀 더 앞당겨 써서 가리도록 해. 일단은 그 방법밖에 없어.” 누렇게 삭은 나뭇잎 같은 표정을 지으며 청명은 말을 마친다.
우리는 발자국을 따라서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간다. 돌아오는 내내 청명과 나 사이엔 대화가 오가지 않는다. 청명이라고 해서, 먼저 전신 탈모증을 경험했다고 해서 특별한 말을 해줄 수는 없다. 진정으로 끔찍한 충격은 원래 그런 법이다. 별다른 말은 없지만 할 수 있는 최선의 위로라는 걸 나는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 고요하지만 따뜻한 침묵 속에서, 청명과 나는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긴다.
4. 면역치료(topical immunotherapy)
전신 탈모증의 발병으로 다소 이질적인 일상이 시작되었다. 눈썹과 속눈썹마저 사라져 버리자 가상의 울타리들이 한 걸음씩 삶을 좁혀왔다. 10만 개의 머리카락이 가발이라는 굴레를 씌웠다면, 수백 올의 눈썹과 속눈썹은 부차적인 제약을 가했다.
눈썹마저 빠져 버리니 가발 쓰는 일은 더욱더 힘들어졌다. 처음엔 아이브로우 펜슬로 어떻게든 눈썹을 만들어보려 했다. 불가능한 건 없다는 말도 있지만 정말로 불가능했다. 눈썹이 한 올도 없는 사람에게 아이브로우 펜슬은 무용지물이었다. 아이브로우 펜슬은 기존의 눈썹을 꾸미는 도구지, 없는 눈썹을 창조하는 요술지팡이가 아니었다. 한 올, 한 올의 털이 옹기종기 모여 치밀하게 형성된 3차원의 눈썹은 2차원의 아이브로우 펜슬로 흉내 낼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청명의 조언을 따르기로 했다. 아이브로우 펜슬로 최대한 눈썹을 흉내 낸 다음, 가발을 눈썹까지 푹 눌러썼다.
눈썹까지 내려오는 가발 탓에 이제 학교에서 엎드려 잘 수 없었다. 엎드리면 가발 앞머리가 손목에 눌려 구겨지기 때문이었다. 앞머리를 들어올리고 엎드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하면 눈썹의 부재를 들킬 염려가 있었고, 또한 앞머리가 붕 떠버리는 바람에 화장실로 가서 한참 동안 가발을 손질해야 했다. 물론 가발을 쓰고 엎드리는 것 자체가 지독하게 불편한 일이었다. 청명에게 고충을 털어놓았지만 이렇다 할 방도는 없었다.
속눈썹이 몽땅 빠진 눈꺼풀은 모나리자처럼 부자연스러웠다. 털 없는 눈으로 마주보기에 다른 사람들의 털이 있는 눈은 햇빛처럼 강렬했고, 나는 반사적으로 시선을 회피하게 되었다. 속눈썹이 빠진 사람은 극히 드물었기에 나는 모든 사람의 눈길이 불편해졌다. 눈썹까지 내려쓴 가발과 사라진 속눈썹의 조합은 아틀라스가 짊어진 하늘처럼 무거웠다. 아틀라스의 하늘을, 팔이 아니라 목으로 짊게 된 나는 추수 직전의 벼처럼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
12월 말이 되자 나는 오전 수업을 마치고 조퇴를 한 다음에 대학병원에 방문하였다. 여느 때처럼 진료를 받기 위해선 1시간 남짓 기다려야 했고 나는 폰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때웠다. 그러다 문득 작년 이맘때가 떠올랐다. 작년과 달리 가발을 착용했기에 고개를 수그리지 않고 기다릴 수 있었다.
“한지현. 1번 진료실로 들어오세요.” 기분 탓인지 의사의 목소리가 얼마간 무기력하게 들렸다.
진료실에 들어가자 의사는 간단한 안부를 물었다. 전채요리에 해당하는 짤막한 대화가 끝나자 의사는 가발을 벗으라고 말했다. 살색 머리와 살색 눈썹을 한번 쳐다본 뒤, 의사는 나를 내보냈다. 나는 진료실 앞에서 대기 중이던, 왼쪽 눈 밑에 왕점이 박힌 수련의를 따라 바로 옆의 1번 치료실로 들어갔다. 치료실에는 어디가 아픈지는 모르겠지만 머리카락이 빠지지는 않은, 다른 피부과 환자가 있었다. 그 옆 침대에 걸터앉으니 수련의는 하얀 커튼을 쳐주었다.
“약 발라야 하니까 가발 벗을래?” 수련의가 말했다.
수련의의 손에는 가운데 손가락만한 약통이 들려 있었고, 나는 가발을 벗었다. 수련의는 약이 든 병에다가 면봉을 담그더니 면봉의 하얀 부분을 통해서 약을 머리에 바르기 시작했다. 자극적인 약 냄새와 시원한 감촉이 머리에 와 닿았다. 소주를 머리에 바른다면 이 느낌과 상당히 유사할 것 같았다. 얼굴과 머리의 경계선이 사라진 바람에 약을 바르는 데는 얼마간의 집중력과 몇 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면봉이 몇 번이나 약통을 왕복하고서야 비로소 온 머리에 약이 발라졌다. 마지막으로 양 눈썹에다 약을 도포한 뒤에 수련의가 말했다.
“저번처럼 24시간 동안은 머리가 햇빛에 노출되면 안 돼. 이제 3번 치료실로 가서 머리에 자외선을 쪼이는 치료를 받자.”
머리에 약을 바르거나 자외선을 쪼이는, 오늘 같은 나날들이 마일리지처럼 차곡차곡 쌓여갔다. 한 달에 세 번은 아빠가 약을 발라주었고, 한 달에 한 번은 대학병원에서 수련의가 약을 도포하고 자외선을 쪼여주었다. 고1 가을부터 시작된 전신 탈모증 치료는 두 번의 봄을 거쳐 고3 여름까지, 약 2년간 계속되었다.
2년 동안 나에겐 몇 가지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났다. 첫 1년 동안에는 속눈썹이 자랐다. 오른쪽 위 속눈썹은 거의 다 자라났고, 왼쪽 위 속눈썹은 가운데 삼분의 일가량이 돋아났다. 왼쪽 아래 속눈썹은 아예 자라지 않았고, 오른쪽 아래 속눈썹은 드문드문하게 자랐다. 다행이었다. 비록 완전히 회복되진 않았지만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누군가가 대놓고 들여다보지 않는 한 그런대로 버틸 수 있는 정도였기에, 속눈썹의 성장을 확인한 나는 엷게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뱉을 수 있었다. 1년과 2년의 중간지점에서 나는 또 다른 변화들을 관찰할 수 있었다. 좌, 우 허벅지와 팔에서 털이 약간 자라난 것이다. 또 오른쪽 겨드랑이는 반응이 없었지만 왼쪽 겨드랑이에서는 정확히 두 가닥의 털이 솟아났다.
다만... 가장 중요한 머리카락과 눈썹은 거의 자라지 않았다. 머리엔 0.5센티미터도 안 되는 솜털만이 드문드문하게 자랐고, 눈썹은 거울이 코에 닿을 정도로 근접했을 때 마침표 비슷한 검은 흔적이 몇 개 보였다. 잃는 건 쉽지만 얻는 건 어렵다는 격언처럼, 머리카락이든 눈썹이든 체모든 겨드랑이털이든 수염이든 음모든, 빠지는 건 한 순간이었지만 나는 건...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마지막 진료를 받은 건 고등학교 3학년의 여름날이었다. 대학병원 의사는 지금 현재로서는 머리카락을 자라게 할 뚜렷한 방법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반쯤 체념한 상태였던 나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대학병원 방문을 중단했다. 2년 반이 넘는 대장정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