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전두 탈모증(alopecia totalis)
팽이처럼 빙글빙글 돌던 시계바늘은 1월 둘째 주 월요일에 멎어섰다. 대학병원서 진료 받은 지 일주일이 된 날이었다. 의사가 전문의 시험을 감독하러 간 바람에 진료가 하루 연기되었고, 덕분에 나는 하루 더 집에 처박혀 있었다.
그날 아침도 나는 두 개의 거울과 함께였다. 손거울의 각도를 미묘하게 틀어가며 머리를 관찰하는 중이었다. 거울 속의 민머리는 밀물처럼 다가와 내 눈을 살색으로 흠뻑 적셨다. 방향과 각도와 거리를 아무리 조절하여도 나는 민머리였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매 끼니마다 꼬박꼬박 알약을 챙겨 먹었지만 내 머리는 부메랑처럼 원위치였다.
힘없이 손거울을 내려놓으면서 나는 퍼뜩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를 빡빡 깎고 약을 복용한 지도 어느덧 2주째였다. 절반가량의 머리카락이 빠진 상태에서 나는 삭발을 했었다. 그러고 나서 2주가 지났는데 머리는 아직도 살색 민무늬 도자기였다. 머리카락이 정상적으로 자랐다면 지금쯤 짤막하게라도 돋아났어야 했다. 그리하여 살색 민무늬 두피에 자그마한 빗살무늬라도 새겨졌어야 했다. 하다못해 검은 점이라도 찍혀 있어야 했다. 그렇지 않다는 것은... 모든 머리카락이 박멸됐다는, 불길한 섬광 같은 기운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갔다.
첫 진료 때, 대학병원 의사가 말해 주었다. 머리카락이 다 빠지리라는 불길한 예측을, 나 역시 어느 정도 시인했었다. 분명히, 예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살색 민머리가 2주째 지속되자, 그것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자, 내 가슴은 불붙은 지푸라기처럼 활활 타올랐다. 아무것도 실존치 않는 내 머리를 나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뭐라도 존재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분명히 달랐다. 머리 위의 숫자 0은 묵직한 볼링공처럼 ‘쾅’소리를 내며 가슴속으로 굴러 떨어졌다. 좀 더 깊숙한 심연으로 향하는 관문이 활짝 열린 듯했다.
머리에서 가해진 소리 없는 폭격에 마음속은 풀 한 포기 안 자라는 척박한 땅이 되었다. 아무것도 존재치 않는 머리처럼 내면세계도 메마르고 황량해졌다. 허무하고 무가치하고 부질없는 기운으로 가득해졌다. 노른자가 터져버린 계란처럼 뭔가 핵심적인 알맹이를 소실한 공허한 느낌이었다. 그러면서 이제는 모든 것들이, 지난 몇 달 동안의 모든 일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10월, 11월, 12월, 1월. 불과 네 달 만에 일어난 변고였다. 이런 병이 있다는 것조차 몰랐는데 나한테 들이닥쳤다는 게, 나는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나는 이제 열일곱 살이었다. 머리카락이 없어서는 결코 안 될 나이였다. 반칙을 당한 기분이었다. 레드카드를 받아야 마땅한 끔찍한 반칙이지만 반칙을 가한 주체는 인간 세계에서 처벌 불가였고, 결국 휘슬소리도 울리지 않은 채 삶은 멀쩡히 진행되었다. 내 가슴속 세포들은 괴사되어 버릴 듯이 아팠지만 시계바늘은 기계적인 간격으로 째깍거릴 뿐이었다.
4개월. 어떤 사실을 납득하진 못하더라도 인지하는 데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잠에서 깨어나면 괜찮아지겠지, 라는 무책임한 생각은 더 이상 떠오르지 않았다. 백일몽이나 신기루치고는 혹은 단순 악몽이라기엔 너무나도 길었다. 지금 이 모든 게 현실이라는 걸 시인할 수밖에 없기에 가슴은 저릴 듯이 아파왔다.
4. 첫 눈(first snow)
밤은 자정의 문턱을 넘어 새벽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지난 며칠처럼 또다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요즘 들어 부쩍 잠 못 드는 나날이 잦아졌다. 햇빛을 쐬지 못해서인지, 아니면 약을 먹어선지 생체 리듬이 마치 피사의 사탑처럼 균형을 잃은 듯했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잠이 오지 않으리라는 걸 직감한 나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뜻 없이 창가로 다가갔다.
나는 커튼을 조심스레 걷어 보았다. 얼굴만 빼꼼 내밀어 맞은편 빌라를 건너다보니 거실의 백열등이 아직 꺼지지 않은 상태였다. 각도를 고려하여 나는 두 개의 창문 중에서 하나를 커튼으로 덮었다. 혹시나 저편에서 나를 바라보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러고 나서 나는 커튼에 덮이지 않은 창문 너머를 건너다보았다.
캄캄한 하늘과 원형의 달이 한 폭의 그림처럼 창문틀 속에 담겨 있었다. 항상 있었기에 인지하지 못하던 풍경에 나는 서서히 빨려들었다. 한참 동안 멍하니, 달과 어둠 외엔 아무것도 존재치 않는 밤하늘을 나는 지긋이 올려다보았다. 밤하늘의 어둠은 찬찬히 눈에 담기었고, 나는 머릿속 블랙홀로 하염없이 빨려 들어갔다.
저 하늘의 신이 나를 버리지 않았나 싶었다. 세상에서 나 혼자만 이런 게 아닐까 싶었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이 아닐까 싶었다. 내가 뭔가 잘못한 일이라도 있어서 그것의 대가로 머리카락이 빠지지 않았을까 싶었다. 지금의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면 전생의 내가 범죄자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시커먼 생각들은, 점이 모여 선이 되듯이 망상의 실을 형성하였다. DNA의 이중나선처럼 얽히고설킨 망상의 실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없이 이어졌다. 거대한 지진 같은 우울함이 머릿속을 덮치고 나서야 망령의 쇠사슬은 갈기갈기 찢어졌다.
그때였다. 무언가 밝은 기운이 어둠 속에서 꽃을 피우며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창문 밖 검은 하늘에는 하얀 점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실로 오랜만의 전경이었다. 몇 년에 한 번 눈이 내리는 해산시에서 내리는 첫 눈이었다. 구슬처럼 고이 내리던 눈은 점점 거세지더니 이내 폭발적으로 쏟아졌다. 눈은 폭포수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역동적으로 꿈틀거렸다. 나는 홀린 듯이 하늘을 수놓는 눈을 쳐다보았다.
다음 날 아침, 창밖을 바라보니 눈의 향연이었다. 새벽부터 내리던 눈은 지금도 그저 내리고 있었다. 소복소복 쌓인 눈을 나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던 와중에 한 가지 생각이 두서없이 머릿속에 밀려왔다. 오늘이 대학병원 가는 날이라는,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사실을 나는 바깥을 바라보며 뜻 없이 지각하였다. 그러자 병원 가는 날 특유의 불편한 기분이 머릿속을 사로잡았다. 병원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서야 하는 오후 1시는 불특정한 간격으로 머릿속에서 째깍거렸다. 폰 게임을 하면서도, 공부를 하면서도 불현듯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병원에 안 가는 날이면 밖에 나가고 싶었지만 막상 병원 가는 날이 되자 집을 떠나기 싫었다. 외출이야 하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대학병원에 가고 싶은 건 아니었다.
머릿속 스톱워치가 멈추는 오후 1시가 되자 나는 께름칙한 기분으로 준비를 했다. 지난주처럼 세 개의 모자를 쓴 뒤에 탈옥수처럼 고개를 숙이고 종종걸음으로 5분 거리 골목을 내려가서 버스를 탔다.
버스에서의 한 시간 반은 효율성이 극도로 낮았다. 차멀미를 하는 바람에 폰 게임을 할 수도, 비록 종점 가까이서 내리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잠을 청할 수도 없었다. 때문에 나는 맨 뒷자리 구석에서 비스듬한 햇빛을 맞으며 하릴없이 바깥만 내려다보았다. 이따금씩 마치 보석처럼 눈은 절묘한 각도에서 빛을 반사했다. 일주일 만에 맞보는 햇빛은 증류수처럼 맑고 선명하게 눈으로 스며들었다. 바깥 풍경이 낯설어질수록 눈의 기세는 수그러들었다. 그러다 대학병원이 나타날 무렵엔 완전히 사그라졌다.
누군가 눈을 치워 놓아 대학병원 계단에는 미끈한 흔적만이 남아 있었다. 외투를 걸친 환자들 틈에 섞여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올라갔다. 4층에서 내린 건 나 혼자였다. 5초가량 앞으로 걷다가 오른쪽으로 꺾으니 대기석에 앉아 있는 수십 명의 옆모습이 나타났다. 복도 양옆으로 길게 놓인 스무 개 남짓한 의자는 간호사 접수대로 이어졌다. 접수증을 내밀고 나는 바로 앞의 의자에 걸터앉았다. 늘 그랬듯 고개를 수그리며 휴대폰으로 게임을 했다. 게임을 하면서도 나는 곤충의 더듬이처럼 신경을 곤두세웠다. 세 개의 모자로 민머리는 감출 수 있지만, 머리카락이 없다는 사실은 숨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전과 달리 나는 20분도 안 되어 첫 번째 대기자가 되었다. 월요일이 아닌 화요일이라 그렇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휴대폰 슬라이드를 닫으며 나는 곧 다가올 진료를 기다렸다. 머리카락이 없다는 비밀을 최대한 감추기 위해 고개를 숙인 상태였다.
그때였다. 진료실 혹은 치료실에서 빠져나온 누군가가 내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나에게서 2미터가량 떨어진 지점이었으나 내 시야에는 잡히지 않았다. 고개를 푹 숙인 내 눈은 바닥만 주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우두커니 멈춰 선 그 누군가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예민한 더듬이로 감지할 수 있었다. 그 누군가에게선 향기가 흘러나왔다. 향수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체취 같았는데, 왠지 모르게 가슴이 평온해졌다.
“한지현, 1번 진료실로 들어오세요.”
진료실에서 흘러나온 의사의 목소리는 통로를 거쳐 나에게로 전달되었다. 나는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나 누군가의 시선을 뒤로한 채 통로를 지나 1번 진료실로 들어갔다. 모종의 역설적인 감정에 사로잡힌 채였다.
“머리 한번 보자.”
의사의 생기 없는 목소리는 진료실의 기운처럼 무거웠다. 나는 마치 투구처럼 머리에 끼얹은 세 개의 모자를 차례대로 벗었다. 나의 보잘 것 없는 민머리를 흘긋 보더니 의사는 중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 약효가 안 나타나네. 그럼 다음 주에도 계속 화요일에 보자.”
세 마디를 듣고 나서 나는 다시 세 개의 모자를 착용했다. 진료실을 나오면서 가슴에서 목구멍으로 쓰라린 허탈감이 역류했다. 접수대 간호사에게 다음 주 예약을 확인하고 나는 복도를 걸어갔다. 양옆의 의자에서는 호기심 어린 눈빛이 솟아올라 내 머리에 불편하게 꽂혔다. 시선의 밀도에 비례하여 내 고개는 아래로 기울어졌다. 다른 환자들의 눈길에서 완전히 벗어났을 때에는 발치를 쳐다보기에 이르렀다. 터벅터벅 복도를 지나온 나는 계단으로 내려가려 했다. 내가 계단을 두 칸째 내려갔을 때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저기 잠깐만요.” 라는 말에 나는 등 뒤를 돌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