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머리카락이라는, 개인적이면서도 지극히 공적인 물체는 한 인간의 정체성을 반영한다. -로즈 웨이츠(Rose Weitz, 사회학자) (출처-5)
1. 털(hair)
“Te conoci un dia de enero
(1월의 어느 날, 나는 너를 만났어.)
Y como vi que eras sincero, En tus ojos me perdi”
(그리고 너의 눈에서 진심을 보았지, 너의 눈에서 나를 잃어버렸어.)
망고처럼 감미로운 샤키라의 목소리가 귓바퀴를 돌아들어와 고막을 노크했다. 알람을 맞춰 놓지 않았으니 전화였다. 화장실을 빠져나와 휴대폰을 집어 드니 청명의 연락이었다. 7시에 오페라가 시작하니 6시에 만나자, 가 통화의 핵심적인 내용이었다.
전화를 끊은 나는 잠옷 바지를 청바지로 갈아입었다. 화장을 하고 눈썹을 그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발을 써야 했다. 나는 가발 거치대에서 가발을 집어 들고 화장실로 갔다. 부분 가발을 쓰는 탈모인들은 착용 시 그리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 않겠지만, 나의 경우는 얘기가 달랐다.
전체 가발을 쓰기 위해선 우선 가발을 뒤집어야 했다. 가발의 겉 부분이 아닌 안쪽 부분이 두피와 접해야 하니까 말이다. 그러고 나서 가발의 안쪽 부분을 두피의 전두부에서 후두부 방향으로 씌워서 마지막에 내리까는 방식으로 착용해야 했다. 좌우 대칭과 앞머리 길이를 맞추기 위해 화장실 거울을 보고 써야 했고 소요 시간은 항상 예측불가였다.
원룸에서 의대 강의실은 15분 거리지만 나는 항상 강의가 시작하기 1시간 50분 전에 일어났다. 가발을 쓰는 행위가 커다란 변수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처음처럼 1시간 넘게 걸리지는 않았다. 드물게는 단 10분만에도 착용했지만 대개 30~40분씩 걸렸으며, 이따금씩, 특히 무더운 여름날이면 50~60분씩 걸리기도 했다. 가발을 쓰는 건 기술보다는 감각의 영역이기에 소요 시간의 스펙트럼이 넓었고, 아직도 몇 번의 시도 끝에야 성공할 수 있었다. 때문에 오전 8시 30분에 시작하는 1교시 강의를 위해 6시 40분에 일어나면, 채 7시 40분도 안 되어 강의실에 도착하기도, 한 학기에 한두 번은 아슬아슬하게 8시 30분에 도착하기도 했다. 1시간 50분이라는 시간은 최악의 경우를 고려해도 지각하지 않을 수 있는, 일종의 안전 시간이었다.
아침과 달리 지금은 가발이 잘 안 써졌다. 마치 몇 시간 만에 머리뼈가 변형이라도 된 듯 가발을 씌울 때마다 미묘하게 어긋났다. 살짝 앞으로 치우쳐서 앞머리가 눈을 찌르기도 했고, 왼쪽으로 쏠렸다가, 반대로 오른쪽으로 비뚤어지기도 했다. 부착했다 다시 탈착하는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 나는 점점 최적의 좌표에 근접해갔다. 시각과 촉각을 극도로 활용하는 단순 반복 작업을 통해 가발은 비로소 머리와 혼연일체가 되었다. 물론 아직 끝난 게 아니지만 팔부능선을 넘은 셈이었다.
다음은 분무기였다. 나는 검지와 중지로 분무기 손잡이를 눌러서 물방울 입자들을 일그러진 머릿결로 방사했다. 전체 가발이다 보니 착용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머릿결이 구겨졌다. 때문에 가발을 쓰고 나서 물을 뿌리고 빗으로 다듬어야 자연스러운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었다. 빗과 손을 동원하여 머릿결을 단정하게 매만진 후, 나는 손거울을 통해서 화장실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거울 밖의 나는 잠시 동안 빛의 반사를 이용해서 거울 안의 내 뒤통수를 살펴보았다.
아무래도 1년 가까이 착용한 가발이다 보니 머릿결이 많이 손상된 상태였다. 혹시 가발 틈새로 살색 두피가 엿보이지는 않을까, 나는 유심히 살펴보았다. 과연 후두부 중앙의 머릿결이 위에서 아래로 갈라져 있었고, 그 사이로 살색 두피가 세로로 엿보였다. 피부색과 머리카락색의 대조가 워낙 뚜렷하다 보니 상당히 부자연스러웠다. 백인이었다면 색채의 대비는 더욱 컸을 것이고, 흑인이었다면 상대적으로 작았을 것이다. 양 옆의 머릿결을 가운데로 빗어 틈새를 가리고 나서 나는 거울로 점검해 보았다. 가발은 안전했고 그제야 나는 외투를 걸쳐 입고 원룸을 나섰다.
머리카락처럼 가느다란 빗방울이 힘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빗물은 강도뿐만 아니라 밀도도 많이 감소한 상태였다. 나는 대학교와 원룸촌을 가로지르는 8차선 횡단보도에 이르렀다.
샤키라의 [Dia de enero]는 몇 번의 징검다리를 건너 알게 된 노래였다. 내가 처음 들은 샤키라의 노래는 월드컵 주제곡인 [Waka waka]였다. 음악이 인상적이어서 나는 샤키라의 다른 노래도 들어보았는데, 그러다 [Dia de enero]를 알게 되었다. 처음 들었을 땐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스페인어와 낯선 라틴계 반주로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하지만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음악을 들으니, 한 구절 한 구절이 내 가슴속 깊숙이 꽂혔다. 흡사 끝이 뾰족한 다트로 깊숙한 환부를 도려내는 느낌이었다. 모닝콜과 전화벨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오는 건 당연한 처사였다.
오후 강의가 시작되었다. 피부과 교수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전두 탈모증 강의를 매듭지었다. 머리카락이 결핍된 나는 멀쩡한 척 앉아 있었지만 머리 내부에선 찌개의 거품 같은 게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다음으로는 털의 기능에 대해서 알아볼게요. 털은 젊음과 건강의 지표이자 성적 매력의 수단이에요. 머리카락은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이 되기도 하는데, 불만을 표하기 위해 단체 삭발을 하는 게 예시가 될 거예요. 털 중에서 눈썹과 속눈썹은 화, 놀람 등의 비언어적 의사소통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지요. 하지만 털은 이런 미적, 사회적 기능 외에 생물학적으로도 중요한 기능이 있어요.
머리카락은 해로운 자외선으로부터 두피를 보호하고, 뜨거운 햇볕으로 인한 머리의 화상을 방지하고, 추위로부터 두피를 보온하고, 충격을 완충하여 뇌를 보호하는 역할을 해요. 눈썹과 속눈썹은 빗방울을 비롯한 이물질이나 땀을 눈으로부터 걷어내는 역할을 담당하지요. 속눈썹의 경우 이물질이 눈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지각하게 하여 반사적으로 눈을 감게 해줘요. 코털은 먼지나 잔해를 걸러주고요. 팔과 다리의 털은 체온 조절에 관여하고 겨드랑이나 성기의 털은 움직일 때 마찰을 줄여서 피부를 보호해 줘요.”
털의 기능을 설명한 피부과 교수는 다시 마우스를 부지런히 움직였다. 다른 파워포인트를 하나 켜더니 사진을 몇 장 보여주었다. 아까 보았던 전두 탈모증 환자처럼 머리카락이 전무한 뒤통수 사진이었다. 마이크에 입을 가져다 대며 피부과 교수는 계단식 강의실을 올려다보았다.
“그런데 말이죠... 만약 우리 몸에 있는 모든 털들이 한 올도 남김없이 다 빠져 버리면 어떨까요? 전두 탈모증처럼 머리카락만 빠지는 게 아니라 눈썹, 속눈썹, 코털, 음모, 팔과 다리의 털, 겨드랑이 털, 심지어는 항문 털, 손가락과 발가락의 털까지 말이에요. 원형 탈모증이 악화되면 그렇게 될 수도 있어요. 전신 탈모증(alopecia universalis)이라는 병인데, 원형 탈모증의 가장 심각한 아형이지요. 지금부터는 그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게요.”
전신 탈모증. 한마디로, 탈모의 궁극적 형태였다. 마침내 전신 탈모증이 나타나자 심장과 두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교감신경이 바짝 졸아붙었고 양 손은 땀의 범벅이었다. 전신 탈모증이 등장한 이상, 나에게 있어 피부과 강의는 스릴러 영화와 다를 바 없었다.
스크린의 화면이 뒤바뀌었다. 얼굴을 정면에서 촬영한 사진인데 눈, 코, 입이 모자이크 처리된 상태였다. 사진 속 인물은 머리카락은 물론 눈썹도 없었다.
“원형 탈모증 중에서 5~10퍼센트 정도는 언젠가 전두 탈모증과 전신 탈모증으로 진행하게 되요. 전신 탈모증의 유병률은 10000명당 1~5명 정도로 추정되는데, 전두 탈모증도 이와 비슷할 걸로 생각되어요. 그런데 혹시 주변에서 그런 사람들 한번이라도 본 적 있나요?”
2. 파파게노 효과(papageno effect)
누르스름한 빛이 엷게 스며든 하굣길을 따라 나는 8차선 신호등으로 왔다. 빨간불이라 나는 멈춰 섰다.
신호등의 불이 바뀌자 눈앞의 자동차들이 슬로 모션으로 멈춰 섰다. 군중의 틈에 섞여 든 나는 횡단보도를 건너 곧바로 원룸으로 돌아왔다. 가발을 벗고 거치대에 씌운 후 나는 목과 어깨, 그리고 허리를 돌려서 피로를 풀었다.
약속 시간이 되자 나는 씻고 옷 입고 그리고 가발을 쓰려 했다. 학교 갈 때는 새 가발을 쓰는 한 가지 선택만이 유효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오페라를 보러 가는 건 불특정 다수와 스치듯이 만나는 행위였다. 이런 일에 새 가발을 착용하는 건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쓰는 것과 매한가지였다. 여러모로 모자 2개에다가 헌 가발을 추가하는 선택이 가장 합리적이었다. 나는 헌 가발에다 비니 모자와 외투에 딸린 모자를 착용하고 원룸을 나섰다.
원룸을 나와서 나는 바로 앞집인 301호 벨을 눌렀다. 아파트 현관문에 비해 원룸 현관문은 방음 기능이 불량했다. 잠깐만, 이라고 외치는 청명의 목소리가 작지만 또렷한 형체로 다가왔다. 현관문이 열리자 라벤다처럼 그윽한 체취가 나를 정겹게 맞아주었다. 하얀 외투를 입은 청명은 헌 가발에다 검은색 비니를 착용한 상태였다.
“거의 다 됐으니 조금만 기다려.”
청명과 나는 원룸촌을 빠져나와 문화회관으로 향했다. 오페라 상영 장소인 문화회관은 원룸에서 도보로 20분 거리였다. 휴대폰 시계는 월요일 오후 6시 30분을 가리켰고, 저녁을 맞이한 대학로에는 사람들이 개미 떼처럼 자글거렸다.
나는 총 세 개의 가발을 보유하고 있다. 사용 빈도로 볼 때 첫 번째는 대학교 3학년 겨울 방학 때 구입한, 반창고가 8개 붙어 있는 새 가발이었다. 강의를 들으러 갈 때처럼 모자를 쓸 수 없는 공적인 영역에서 착용하는 가장 중요한 가발이었다. 이게 없다면 나는 학교를 다니는 게 불가능했다. 때문에 나는 철저하게 새 가발을 관리했다.
지금 쓰고 있는 헌 가발은 두 번째였다. 1년 반 전인, 대학교 3학년 여름 방학 때 구입하여 6개월 동안 착용한 가발이었다. 워낙 오래되었다 보니 지금은 전두부와 측두부의 모발만 남은 상태였다. 정수리와 뒤통수의 머리털이 없는, 40퍼센트가량의 머리털만이 남은 가발이었다. 때문에 모자와 같이 착용하는 게 필수였고, 모자를 못 쓰는 강의실 같은 공적 장소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헌 가발에다 비니와 후드 모자를 뒤집어쓴 내 모습을 다른 사람이 보면, 정수리와 뒤통수는 모자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앞머리와 옆머리는 드러났다. 때문에 머리털이 멀쩡히 있는 것처럼 위장할 수 있었다. 운동할 때 혹은 영화관, 서점, 슈퍼를 갈 때 모자와 함께 착용하는 가발이었다. 새 가발처럼 철저하게 관리할 필요가 없기에 가장 부담 없이 쓸 수 있는 가발이었다.
세 번째 가발은 대학교 2학년 겨울 방학 때 구입하여 작년 여름까지, 마찬가지로 여섯 달 동안 착용한 가발이었다. 머릿결이 많이 손상되었기에 반창고와 테이프가 무수히 붙은 상태였다. 그 때문에 착용감이 아주 불쾌했고, 또한 정수리 부근은 아예 뻥 뚫려 있었다. 단독 착용은 당연히 불가능했고 반드시 모자를 끼얹어서 써야 했다. 나에게 있어 이 가발은 여름용이었다. 반팔, 반바지를 입어도 땀으로 흥건해지는 무더운 여름철에 헌 가발은 무용지물이었다. 너무 더워서 비니에다가 후드를 걸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 옆, 뒷머리가 모두 온전한 가발이 필요한 여름철에는 여름용 가발에다가 야구 모자를 쓰는 방법을 사용했다.
예정대로라면 지난 여름 방학 때 이미 몇 군데가 찢어졌던 새 가발을 교체했어야 했다. 하지만 고심 끝에 나는 가발 구매를 미뤘다. 겨울 방학 때, 정확히 말하자면 크리스마스 다음 날 아침에 떠날 내일로 여행을 위해서였다. 가발비를 아낀 덕분에 단숨에 경비의 두 배를 마련할 수 있었지만, 위태로운 가발 탓에 한 학기 내내 껄끄러운 나날을 보내는 중이었다.
무사히 문화회관에 도착한 우리는 길게 늘어선 줄의 꽁무니에 합류했다. 사람들이 길게 잇따른 줄은 파마를 한 머리카락처럼 구불구불했다. 사실 청명도, 나도 오페라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영화는 종종 봤지만 오페라나 뮤지컬에는 일모의 흥미도 없었다. 8차선 신호등에서 청명이 받은 50퍼센트 할인쿠폰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그 유명한 모차르트의 마술피리가 아니었다면 틀림없이 보러 오지 않았을 터였다. 만 원을 지불하고 표 두 장을 받은 우리는 화장실에 들렀다가 극장에 입장했다. 비교적 앞쪽인 F열의 가운데 자리에 앉은 후 청명은 팜플렛을 펼쳤고 나는 휴대폰을 켰다.
"오페라는 2막 2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가장 중요한 인물은 파파게노래. 집중이 안 되거나 재미가 없으면 파파게노만 쳐다봐. 그리고 하이라이트는 2막 2장에 있대."
팜플렛을 유심히 읽던 청명이 나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중학교 때 마술피리 오페라를 두 번이나 관람한 나와 달리 청명은 처음인 듯했다. 몇 번 본 적 있다고 말하려던 나는 그냥 알겠다고 대답했다. 제법 오래전에 관람했던 터라 2막 2장에 등장하는 하이라이트를 제외하곤 기억이 가물가물했기 때문이다. 잠시 뒤 불이 꺼지자 은근한 어둠이 극장을 뒤덮었다. 떠들썩거리던 극장은 잔잔한 호수의 표면처럼 고요해졌다.
극장의 어둠과 대조적으로 중앙의 무대가 밝아졌다. 극장으로 울려 퍼지는 서곡과 함께 오페라가 시작되었다. 경쾌한 음악소리는 몇 분간 지속되었다. 밝은 음악소리가 잠잠해지고 타미노 왕자가 뱀과 마주치면서 1막 1장이 시작되었다. 뱀과 타미노 왕자, 그리고 여자 3명이 등장했다.
“저 초록색 옷이 파파게노야.” 다소곳한 목소리로 청명이 속삭였다.
무대에는 팬플루트 소리와 함께 초록색 옷을 입은 파파게노가 등장했다. 타미노와 파파게노는 대화를 나눴다. 무대 조명과 함께 배경이 바뀌었다. 1막 2장의 시작이었다. 노예들과 파미나, 그리고 모노스타토스가 등장하더니 곧이어 파파게노가 들어왔다.
이때까지만 해도 오페라는 다소 무미건조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한참 동안 미지근한 대화와 아리아가 오갔고 무대가 여러 번 바뀌었다. 그러면서 밤의 여왕이 출현했다.
마침내 2막 2장이 펼쳐졌다. 어리석은 행동으로 파파게나를 놓친 파파게노는 고뇌한다. 끝없는 번뇌에 휩싸이고 스스로를 자책한다. 괴로워하던 파파게노는 모든 것을 포기하려고 한다. 그 순간, 세 아이들이 파파게노를 도와준다.
이 장면을 볼 때마다 나는 역설적으로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떠올리곤 한다.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려 인간성을 잃고 갖가지 힘을 침식당한 베르테르는 마침내 회복이 불가능해지자 생활의 궤도에서 완전히 벗어난다. 파파게노와 베르테르의 운명을 가른 건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세 아이들을 보던 나는 곁눈질로 옆자리의 청명을 바라보았다. 동시에 머릿속 박물관에서 일화 기억에 관한 자료들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시간의 중력에 반하여 6년 전, 얼어 죽을 듯이 추웠던 1월로 되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