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삭발(shaving)
“지현아. 머리카락은 다 빠진다니까 그냥 깎자.”
집으로 돌아와 비니를 벗으니 적지 않은 머리카락이 고여 있었다. 단지 비니를 벗었을 뿐인데도 수십 올이 빠져 버린 터였다. 머리에서 분리된 머리카락을 보며 나는 눈물을 흘렸고, 엄마는 애처로운 눈빛으로 삭발을 권유했다. 머리카락이 다 빠지리라는 사실을 나도 직감했기에 눈물을 머금고 엄마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다음 날, 겨울 방학이었지만 엄마는 이른 아침부터 나를 깨웠다. 머리를 자르러 미용실에 가기 위해서였다. 워낙에 이른 아침부터 갔기에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외투 모자와 비니를 벗고 머리를 보여주니 미용실 아저씨는 많이 놀란 기색이었다.
“머리가 왜 이럽니까?”
“우리 애가 탈모가 생겼거든요.” 엄마가 말했다.
“어떻게 잘라 드릴까요?”
“다 잘라주세요.” 떨리는 음색으로 내가 말했다.
고맙게도 별다른 내색 없이 미용실 아저씨는 잠자코 머리를 잘라주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는 듯했다. 여기저기 초토화된 내 머리는 오로지 바리캉 하나로 손질되었다. 십팔 밀리 컷의 남중생보다도, 칠 밀리 컷의 군인보다도 더 짧게 이발되었다. 머리를 깎는 내내 눈을 질끈 감았지만, 바리캉 소리와 살갗을 스치며 떨어지는 머리카락의 감촉은 가슴속으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머리는 감고 가시겠습니까?”
따뜻한 침묵을 지켜주던 미용실 아저씨의 말에 나는 눈을 뜨고 거울을 바라보았다. 나는 곧바로, 거의 반사적으로 눈을 질끈 감아야 했다.
“아니에요. 집에서 감을게요.”
머리를 깎은 나는 모자를 쓰고 고개를 푹 숙이며 종종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한 해의 마지막 날, 나는 머리를 삭발했다. 집으로 돌아와 화장실 거울 속의 나와 눈이 마주치자 심장이 멎을 듯이 아려왔다. 16년 동안 봐 왔던 한지현이 아니라 낯선 사람, 아니 사람이라고 조차 할 수 없는 외계 생명체가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출처-3) 나는 거울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외계인의 얼굴을 덧없이 바라보았다. 머리털이 사라진 외계인의 얼굴과 내 눈은 불협화음을 일으켰다. 검은 수풀이라는 배경이 사라지자, 홀로 남은 눈썹과 옆으로 툭 튀어나온 귀는 지워 버리고 싶을 정도로 어색했다.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았다. 거울 속의 형상과 머릿속에 각인된 나 자신의 모습은 악마와 천사처럼 상반되었다.
잠 못 이루는 밤이었다. 모두가 잠들었을 늦은 밤, 나는 책상에 걸터앉아 민머리를 어루만졌다. 왜 하필 나일까, 싶었다. 내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내가 다니는 중학교에도,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에도, 동네 사람들 중에서도 단 한 명도 없었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을 떠올려 보아도,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내 또래 중에서 나 같은 사람이 또 있을까, 싶었다. 다른 사람들 중에도 이런 사람이 있을까, 싶었다.
이제 내가 믿을 수 있는 건 오직 하나 뿐이었다. 대학병원 의사가 처방해 준 알약만이 내가 움켜쥔 한 줄기의 빛이었다.
11.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
식후 30분이면 나는 여러 개의 알약을 물과 함께 식도로 집어삼켰다. 아침과 저녁에는 네 알이었고 점심때만 세 알이었다. 한 번에 집어삼키기엔 너무 많아서 한 알씩 먹어야 했다. 한 알, 한 알마다 나는 간절한 염원을 담아 목구멍으로 쑤셔 넣었다. 그러면서, 두 달의 방학 동안 머리카락이 다 나는 기적이 일어나길 간절하게 기원하였다. 비록 종교는 없지만 몇 번이고 마음속으로 기적을 읊조리면서 하느님, 부처님, 예수님, 공자님께 나는 기도했다. 배 아플 때 화장실에서 하는 기도와는 차원이 다른 엄숙한 태도로 나는 간절하게 빌고 또 빌었다.
달력은 어느덧 1월 첫 번째 월요일을 가리키고 있었다. 대학병원 가는 날이었고, 시계는 오후 1시를 가리켰다. 예약 시간이 3시라 슬슬 나가야 했다. 살색 민머리 상태의 나는 비니와 야구 모자, 그리고 두툼한 외투에 딸린 모자를 차례대로 눌러쓴 채 죄수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집을 나섰다. 일주일 만이었다. 정확히 일주일 만에 신발을 신은 나는 마찬가지로 일주일 만에 콘크리트의 감촉을 느낄 수 있었다. 창문으로 걸러지지 않은 외부의 공기를 직접 들이마시는 것도 딱 일주일 만이었다.
내가 살던 6층짜리 빌라는 등산로가 있던 오르막길에 위치한 곳이라 육지, 그러니까 버스정류장이 있고 자동차들이 쌩쌩 달리는 큰 길로 나가기 위해선 5분 정도 내려가야 했다. 빌라를 나온 나는 조밀하게 이어진 주택가를 지나서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버스에 탑승한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맨 뒤쪽 깊숙한 자리에 처박히듯이 앉았다.
대학병원까지는 1시간 30분이 소요되었다. 해산시는 인구 40만의 작은 도시지만 우리 집과 대학병원은 각각 버스의 시작점과 종점 가까이에 위치했기 때문이다. 대학병원에 가는 내내, 하루 중 가장 젊은 햇빛이 창으로 스며들었다. 눈살을 한껏 찌푸리게 만들 정도로 햇빛은 활기가 넘쳤고, 체를 통과하는 순수한 액체처럼 틈이란 틈마다 가뿐하게 파고들었다. 햇살의 손길은 무질서하게 건축된 빌딩의 높낮이와 면적에 따라 정해졌다. 창으로 스며든 햇빛은 야구 모자의 챙에 덮이지 않은 왼쪽 뺨과 턱을 불규칙적으로 쓰다듬었다. 조용한 햇발의 시끄러운 연주에 따라 나는 눈살을 찌푸리거나 펴는 동작을, 1시간 30분 동안 반복했다.
엄마가 말한 대로 나는 4층 피부과로 가서 간호사에게 접수증을 내밀었다. 그러고 나서 대기석에 앉아, 처박는다는 표현이 적합할 정도로 고개를 깊숙이 수그렸다. 나는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며 시간을 때웠다. 다섯 판이나 하고 나서도 내 앞에서 두 명이 대기 중일 정도로 환자들이 많았다. 머릿수가 많은 만큼 연령 분포도 다양했다. 어른들이 주류를 이루었지만, 열 살에 못 미치는 어린 애들도 더러 있었다. 어디가 아파서 대학병원까지 왔는지 궁금해질 정도로 아이의 얼굴은 천진난만했다. 눈길은 상호적이었다. 다른 환자들 역시 나를 의심스런 눈초리로 대했다. ‘중, 고등학생쯤 되는 여자애가 왜 모자를 덕지덕지 쓰고 대학병원 피부과에 온 걸까’ 라는 눈치였다. 그럴 때면 나는 고개를 수그려 머리카락이 없다는 사실을 최대한 숨기었다. 한 시간이라는 시간은 그런 식으로 흘러갔다.
“한지현, 1번 진료실로 들어오세요.”
대학병원 진료는 두 번째였지만, 혼자 온 건 처음이었다. 후들거리는 심장을 다스리며 나는 진료실문을 열었다. 백발의 의사에게 인사를 한 뒤에 나는 의자에 앉았다. 의사가 앉아 있는 책상은 직사각형 모양이었는데 의사는 넓은 쪽에, 나는 좁은 쪽이었다.
“머리 한번 보자.”
의사의 말에 나는 세 개의 모자를 하나씩 벗었다. 착용할 때와 반대 순서였다. 살색 민머리를 보고도 의사는 눈도 꼼짝하지 않았다. 이지적인 얼굴에서는 그저 중후한 중저음의 목소리가 울려 나올 뿐이었다.
“머리를 깎았구나. 그리고 지난주 피검사에서는 아무 이상 없었어.”
살색 머리를 흘겨본 의사는 모니터를 바라보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기계적인 마찰음이 그치자 의사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약발이 나타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거야. 그리고 다음 주에 내가 전문의 시험을 감독하러 가야 하거든. 그래서 진료를 하루만 늦추려고 하는데 괜찮을까?”
“네. 괜찮아요. 그러면 다음 주에는 화요일에 올게요.”
의사에게 인사를 하고 나는 비니, 야구 모자, 외투에 딸린 모자를 다시 착용하고 진료실을 나왔다. 문을 닫기가 무섭게 곧바로 또 다른 환자의 이름이 호명되었다. 접수대의 간호사에게 다음 주 예약을 확인한 뒤에 1층 원무과로 내려갔다. 엄마가 준 카드로 진료비를 납부하고서야 나는 대학병원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밖으로 나서자 채찍처럼 매서운 겨울바람이 나를 맞아주었다. 병원 근처의 약국으로 걸어가는 내내 맞바람에 얻어맞은 코끝이 새빨개졌고 콧구멍도 따끔거렸다. 약국에 들어갈 무렵엔 눈가가 습해질 정도였다. 약국에 들어간 나는 외투 주머니에 넣어 둔 처방전을 내밀었다. 지난주처럼 모자 세 개를 눌러쓰고 고개를 푹 숙이고 약국에 온 나를 내려다보며 약사는 하루에 세 번, 식후 30분에 복용하라고 말했다. 엄마가 준 카드로 약값을 지불한 나는 약봉투를 집어 들고 약국을 빠져나왔다. 또다시 시작되는 바람의 채찍질에 눈가가 다시 아려왔다. 버스의 따스한 열기에 파묻혀서도 눈물은 그치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예약날짜가 하루 밀린 게 내 인생의 변곡점이 되리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어차피 두더지처럼 집에 콕 처박혀 있을 텐데, 월요일이나 화요일이나 아무런 상관도 없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