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하핫! 이거 정말 걸작이군! 정말로 대단해! 과연 성연이 뻐길만한 이유가 있었어!"
자신의 등을 팡팡 두들기는 썬의 거친 손길을 태성은 묵묵히 받아내었다.
스컬 마리아치 처단 후 곧바로 귀환한 그의 일행은 미리 비행장에서 대기하고 있던 성연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고 이후 성공 보고를 받은 썬에게서도 거창한 칭찬을 듣게되었다.
"내가 말했죠? 이 녀석이 성격은 좀 그래도 맡은 일은 끝장나게 해낸다고!"
"하하핫! 누가 아니라고 그랬나? 설마 무사히 구출한 것도 모자라 아예 빌런을 제거해버릴줄이야.자네 학생이라지만 정말 탐나는 인재일세!"
"으하핫! 뭐 청출어람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안 그렇냐 이하생략?"
기고만장한 얼굴로 돌아보는 성연을 태성은 잽싸게 외면했다.
당장 칭찬해주는거야 고마웠지만 페르난데스에게서 받은 수모(?)가 계속해서 떠올라 영 기분이 꿀꿀하기 그지없었다.
"그건 그렇고..그 페르난데스인지 하는 사람은 어떻게 됐습니까? 기지로 복귀한 뒤에 뒤도 안보고 어디로 가는 것 같던데?"
"아, 그 작자라면 바로 자기네 숙소로 간다고 그랬어.뭔가 중얼대면서 지나가던데 그 작자랑 뭔일있었냐 너?"
"있기는 무슨..신경끄십쇼.당장 그 작자 면상을 다시 보게되면 한대 후려쳐버릴것 같거든요."
짜증섞인 태성의 대답에 성연은 곧 뭔가 이해한듯 슬쩍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이 잠시 대화하는 사이 썬은 준비할 것이 있다며 어디론가 내려가버렸고 잠시 후 다시 본부장실로 돌아온 썬의 손에는 짙은 검은색을 띄는 사무용 가방이 들려있었다.
"우와.그게 뭐에요 본부장님? 갑자기 왠 가방을..?"
슬쩍 가방을 바라본 나현이 썬의 사무용 책상 앞으로 바짝 다가왔다.
곧바로 피식 웃어보인 썬은 재빨리 가방을 열더니 몇장의 서류와 신분증처럼 보이는 카드 6장을 차례로 꺼내들었다.
"성연과 맺은 내기대로 자네들을 정식 히어로로 인정하기로 했네.서류뭉치는 정식 히어로로 등록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안내서고 카드들은 자네들이 히어로임을 증명할때 사용할 국제 히어로 자격증일세."
"구..국제 히어로 자격증?! 그럼 여기있는 전원이 오늘부터 죄다 정식 히어로란 소리에요?"
화들짝 놀라는 나현의 반문에 썬은 물론이라는듯 호탕하게 껄껄 웃어보였다.
"축하하네 제군들.자네들은 금일 부로 모두 정식 히어로로 히어로 랭킹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네.향후 전세계 어디에 가든 자네들은 특별대우를 받을 것이고 어떠한 나라의 국경이건 자유로이 넘나들수 있게 되었네.히어로 학교도 금일 부로 졸업하게 됐으니 다들 그렇게 알도록!"
"마..말도 안돼.정식으로 졸업하려면 못해도 4년이나 남았는데..지금 농담하는거죠?"
"자네들은 이미 웬만한 정식 히어로들도 처리하기 어려운 일을 수월히 해냈네.그것만으로도 졸업자격을 얻기엔 충분하지.안 그런가 성연?"
"그야 물론이죠.뭐 나랑 내기해서 진게 한몫했지만..어쨌든 금일 부로 너희가 졸업인건 확실해.애초에 정식 히어로가 되려고 공부하는 학교인걸?"
곧장 맞장구를 친 성연이 바로 앞에 늘어선 태성과 모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예상치 못한 조기졸업에 명희와 명호는 어처구니가 없다는듯 실소를 지었고 유사범은 팔짱을 낀채 특유의 사람좋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손으로 입을 가린 나현과 수아는 잠시 서로를 바라보더니 양손을 잡고 폴짝대며 뛰었고 그들의 중심에 서있던 태성은 그저 무미건조한 얼굴에 슬쩍 미소를 띄울 뿐이었다.
"뭐 좋습니다.까짓 거 조기졸업시켜준다는데 뭐라 그러겠어요? 졸업식을 제대로 못 치른 건 조금 아쉽지만."
"에헤헷.그래도 꿈에 그리던 히어로로 인정받았잖아요! 이제 매일 수업받는 것도 안해도 되고 숙제도 안해도 된다구요!"
"그치만 마냥 좋아할만한 일은 또 아닐 걸? 당장 학교를 졸업하게 되면 지금 지내고있는 기숙사도 당연히 비워줘야되고 매달 지급되는 생활지원금도 더 이상 못 받게 돼."
"에엑?! 그..그런 거에요?!"
"당연한 거잖아.애초에 히어로가 되려고 입학하는 학교인데 히어로가 되고나서도 학교에 남아있을 필요가 없잖아? 당연히 니가 그렇게 좋아하는 학식도 더 이상 못 먹게 되고 최악의 경우엔 각자 살길 찾아 뿔뿔히 흩어질수도 있어."
황홀해하는 나현에게 명호가 뼈가 시릴만큼 서늘한 찬물을 끼얹었다.
확실히 여태껏 학생이란 이유만으로 받았던 모든 혜택은 히어로로 인정받는순간 못 받는게 당연지사였고 이를 진작에 눈치채고 있던 태성은 여전히 시큰둥한 표정으로 힐끗 교장을 돌아보았다.
"뭐..그런 리스크들이 있다고 하는데 그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당장 선생님이 억지로 짜준 AH인가 하는 팀도 졸업해버리면 도로아미타불인데요?"
"후후훗.다들 걱정하지 말라고.확실히 너희가 졸업생 신분이 되는 건 맞지만 그걸 알고있는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나랑 썬 선생님 뿐이지.다시말해…."
"우리끼리 입 싹 닫고 함구하면 계속 학교에 남아있게 해줄수 있다 뭐 그런 겁니까?"
단숨에 의중을 꿰뚫어본 태성이 성연의 말꼬리를 자르며 불쑥 치고 들어왔다.
"아하핫! 바로 그거야.학교 측의 모두에게는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일절 비밀로 해주도록 하겠어.여전히 너희는 학생 신분으로 학교에 남아있을수 있고 혜택도 계속 받을 수 있게 조치해두지."
"아싸! 그럼 돌아가자마자 방 안 빼도 되는거죠?! 신난다아!"
"휴우..정말 다행이네요.하마터면 태성 오빠랑 생이별하나 했는데…."
잠시 안도하는 명희와 나현에게 성연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뭐 어디까지나 너희의 진짜 신분은 나랑 선생님만 아는 셈이니까.대신 겉으로는 계속 학생 신분이니까 당연히 수업도 그대로 받고 교칙도 준수해야 돼.괜히 대놓고 수업 다 빠지고 헛짓거리하면 정체 뽀록내는건 물론이고 얄짤없이 능력자 교도소에 보내버릴테니 그런 줄 알아."
"쳇.그래도 나름 정식 히어로도 됐는데 수업 좀 빠지는건 눈감아주면 안되요?"
"급하게 해결할 일이 있을 때는 내 권한으로 눈감아주지.하지만 마구잡이로 빼는 건 용납못해.명색이 학생이면 학생답게 구는 편이 괜히 오해사지도 않을테고 말이지."
"저..그럼 저흰 앞으로 뭘 해야되는건가요? 선생님이 말씀한대로 그..위급한 상황이 벌어지면 출동해서 해결해야하는 건가요?"
조심스레 손을 들어올린 수아가 넌지시 성연에게 반문했다.
수아의 곁에 서있던 나현 또한 마찬가지로 궁금했던지 성연을 뚫어져라 바라보았고 이에 짐짓 턱을 괴고 생각하던 성연은 빠르게 두 사람을 비롯한 모두에게 다시금 입을 열었다.
"일단은 그렇다고 봐야지.원래도 너희 6명을 한 팀으로 묶은 건 학생회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큰일'을 맡기기 위해서였으니까.가령 저번과 같은 강도사건이라던지 이번처럼 히어로 리그에서 급히 지원이 필요한 일에는 너희가 전원 출동해서 해결해야해."
"뭐 굳이 비유하자면..119 구급대원같은 거군요.뭔가 심상치 않은 게 터지면 상황 불문하고 일단 나가서 어떻게든 해결해야하니까."
"빙고.역시 이하생략이네.좀더 추가하자면 119 구급대에 대테러 특수부대나 스페셜포스가 합쳐진것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거기다 비밀조직이라는 것까지 생각하면..스페츠나츠쯤 될까?"
슬쩍 농담 조로 대꾸하는 성연에게 태성은 마른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뭐 비유따윈 아무래도 좋잖습니까? 아무튼 뭔 소린지는 알았으니까 얼른 줄거 줄고 학교로나 보내주십쇼.그렇잖아도 피곤해 죽겠으니까."
"아하핫.하긴 그런가? 미안미안.그럼 카드는 지금 바로 모두한테 나눠줄께.서류는 임태성 너한테 넘겨줄테니 시간 날때마다 꼼꼼히 살펴보면서 숙지해두라고?"
능청스레 말을 마친 성연이 곧바로 서류 서너장과 히어로 카드를 태성의 손에 쥐어주었다.
빼곡하게 글귀가 적힌 서류들은 한국어와 영어로 번갈아 표기된 히어로 행동강령과 수칙 등이 적혀있었고 청색으로 빛나는 히어로 카드엔 태성의 이름이 각각 한글과 영문 이니셜로 번갈아 표기되어 있었다.
'이 한장을 받기 위해 5년 간 죽어라 공부하고 싸우는 곳이 히어로학교였다니..웃기지도 않는구만.'
짐짓 쓴 웃음이 흘러나온 태성은 재빨리 웃음을 거둔 뒤 카드를 바지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생전처음 받아본 히어로 카드에 나현을 비롯한 다른 이들도 새삼 감회가 새로운듯 다채로운 표정을 지어보였고 짐짓 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태성의 앞으로 슬쩍 일어선 썬이 악수를 청해왔다.
"앞으로도 성연을 잘 보필해주게 임태성 군.어려운 부탁이란건 알지만 버스트 퀸의 친아들인 자네라면 분명히 믿어도 될꺼라고 생각하네."
"거 남의 어머니 별명을 뭐하러 자꾸 들먹이세요? 최대한 할 만큼은 하겠지만 너무 기대하지는 마십쇼?"
"하핫! 어머니 성격을 쏙 빼닮았구만! 알겠네.아무튼 이젠 돌아가봐도 좋네.다른 제군들도 모쪼록 잘 부탁하네."
"헤헷.맡겨만 주세요!"
"귀찮은 것만 아니라면 딱히 상관없겠지.덤으로 방 안빼도 되니까 더 좋고."
"좀 뜬금없긴하지만..뭐 한번 해보죠."
"하핫.앞으로는 꽤 재밌어지겠구려."
"여..열심히 해볼께요!"
각자 나름대로 포부(?)를 밝히는 전원에게 썬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그럼 이제 진짜로 돌아가볼까? 앞으로 무지막지하게 부려먹을거니까 다들 각오 단단히 하라고?"
"네? 방금 뭐라고 했어요?"
"아무 것도 아냐! 자자! 그럼 출발! 나를 따르라!"
어물쩡 대답을 넘겨버린 성연을 태성은 짐짓 불안한 눈으로 돌아보았다.
'왠지 앞으로 더럽게 귀찮아질것 같은 예감이 드는데? 쯧..그냥 내 기분이 엿같아서 그렇게 느껴지는건가?'
짐짓 속으로 중얼대던 태성은 이내 뒤통수를 긁적대며 마지못해 등을 돌렸다.
자신의 예감이 거의 틀리지 않는다는 걸 잠시 잊어버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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