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두두두두!
요란한 총성과 함께 기관총과 소총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
하나같이 방독면을 뒤집어쓰고 정장을 입고있던 의문의 사내들이 갑판 위로 총탄을 퍼부었고 그 사이에 우뚝 서있던 큰 키의 사내 '명호'는 간지럽지도 않다는듯 피식 웃어보였다.
"큭! 신체강화계인가?! 전신 강철화라니 무슨..!"
"뭐하냐 늬들? 벌써 탄환 쫑났냐? 그럼 이젠 이쪽 차례지?"
더욱 살벌하게 웃어댄 명호가 방독면을 쓴 괴한들에게 정면으로 돌진했다.
총알도,칼도 통하지 않는 그의 몸에 괴한들이 휘두른 무기들은 맥없이 부러져나갔다.
- 서걱! 서걱! 스겅!
명호가 괴한들에게 돌진하기 무섭게 쌍검을 꼬나쥔 명희가 쏜살같이 뛰쳐나왔다.
가차없이 사내들의 몸을 베어가른 그녀는 듬뿍 피가 묻은 두자루의 검을 더욱 매섭게 휘둘렀고 그 사이 그녀의 뒤로 각각 튀어나온 유사범과 나현이 패닉에 빠진 다른 괴한들을 모조리 날려버리거나 때려눕혔다.
"대충 위는 정리된 것 같은데? 반장은 대체 어디 갇혀있는거야?"
"제가 수아랑 같이 살펴보고 올께요! 언니는 명호 아저씨랑 사범님하고 같이 여기서 기다려주세요!"
막 괴한의 멱살을 붙들고 어퍼컷을 먹인 나현이 곧바로 고개를 돌렸다.
단호하기 짝이 없는 그녀의 표정에 명희는 잠시 칼에 묻은 피를 허공에 떨쳐내며 나현에게 대꾸했다.
"상관은 없는데..너랑 수아만으로 괜찮겠어? 니가 무식하게 쎄다는건 알지만 여기있는 놈들 죄다 총기로 무장하고 있다고?"
"걱정마세요.이래뵈도 태성 오빠한테 단련받은 몸인걸요? 수아도 자기 몸 정도는 스스로 지킬 수 있으니까 괜찮을꺼에요!"
"쩝.뭐, 그럼 최대한 빨리 데리고 나와.암만 나라도 무한정 기다려줄순 없는 거 알지?"
"알고 있다니까요? 금방 다녀올테니까 그때까지만 버텨주세요!"
짐짓 미소지은 나현은 곧장 수아의 손을 붙잡고 좌측의 계단을 향해 달려갔다.
유조선을 개조한듯한 거대한 배였기에 계단을 타고 아래로 내려가는 것만도 꽤나 시간이 걸렸고 이내 한가운데 선실을 박차고 들어간 나현의 앞에 방독마스크를 쓴 사내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 투두두두두!!!
순식간에 퍼부어진 총탄들이 나현의 사방으로 날아들었다.
그러나 나현에게 총알이 채 닿기도 전에 반투명한 물방울이 그 앞을 막아섰고 이내 총알을 모두 받아낸 물방울이 펑 터지며 흡수했던 총알들을 온통 바닥에 흩뿌렸다.
"초..총알은 걱정말고 어서 가 나현아!"
한 손을 펼치고 소리치는 수아의 말에 나현은 곧장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바짝 낮추었다.
복싱 선수마냥 지그재그로 움직이던 나현은 현란한 풋스텝과 펀치로 단숨에 괴한들을 때려눕혔고 그녀의 펀치에 슝슝 날아간 괴한들이 복도와 선실 내부에 처참하게 널브러졌다.
'오빠한테 손 끝 하나라도 건드려봐!! 아예 배를 통째로 침몰시킬테니까!!'
거세게 속으로 일갈한 나현은 그야말로 불도저마냥 괴한들을 쓸어버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쏟아지는 수십번의 펀치 세례에 미처 방아쇠조차 잡지 못한 이들이 수두룩했고 겨우 총을 쐈다하면 수아가 단숨에 워터 실드로 가로막아버렸다.
선실과 내부 복도엔 금세 괴한들의 시체(?)가 쌓여나갔고 잠시 후 몇 사람의 괴한을 더 쓰러뜨린 나현은 가장 안쪽 복도에 자리잡고 있던 철문을 있는 힘껏 주먹으로 후려쳤다.
- 쾅!!
괴력이 실린 펀치 한방에 합금으로 된 철문이 플라스틱 캔처럼 찌그러졌다.
단숨에 안으로 들어선 나현의 사방으로 먼지가 자욱히 일어났고 이내 뒤따라 안으로 들어선 수아가 콜록거리며 황급히 입을 감쌌다.
"아! 태성 오빠! 저기 누워있는 사람 태성 오빠 아냐?!"
"뭐? 말도 안돼..이런 먼지구덩이 속에 있을리가..?"
짐짓 주변을 둘러보던 나현의 눈동자에 잿빛 수술대와 그 위에 누워있던 태성의 모습이 선명히 비춰졌다.
잠시 반신반의하던 수아도 이내 태성의 모습을 확인하며 놀라워했고 이내 태성의 옆으로 달려간 나현이 단잠에 빠져있던 태성을 거세게 붙들고 흔들었다.
"태성 오빠! 정신차려요! 살아있는거죠?! 뭐라고 말 좀 해봐요!"
"지..진정해 나현아.숨은 쉬고 있는 것 같아.특별히 상처도 없는 것 같고."
애써 자신의 어깨를 붙잡으며 만류하는 수아에게 나현은 금세 고개를 돌리며 울상지었다.
마음이 급해진 나현은 아예 태성의 멱살을 붙들고 계속 흔들어댔고 그 순간 부릅 눈을 뜬 태성이 냅다 나현의 이마에 박치기를 가했다.
"꺗?! 태..태성 오빠? 정신이 들어요?"
"끙..원래부터 깨있었거든?! 그보다 머리 울리잖아! 작작 좀 흔들어!"
잔뜩 퉁명스러운 태성의 어조에도 나현은 감격에 찬 표정으로 금세 태성의 목을 끌어안았다.
"으아앙! 다행이에요 오빠!!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요?! 권총만 뚝 떨어져있었을때 가슴이 철렁했다구요!"
"얘가 왜 이래..숨 막히니까 얼른 떨어져 인마!"
"어디 다치거나 부러진데 없죠?! 이상한 약같은거 투여받은 거 아니죠?! 조금만 기다려요.이깟 쇳조각 당장에 뜯어내줄께요!"
호들갑을 떨며 태성을 살피던 나현이 금세 태성의 팔다리를 구속하던 구속구를 양손으로 움켜쥐었다.
못으로 단단히 고정된 구속구였지만 나현이 힘을 조금 주기가 무섭게 구속구는 쩌적하며 통째로 뽑혀져나갔고 이내 다리의 구속구도 모두 제거되자 태성은 못 이기는척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후우..하여튼 힘 하나는 무식하게 쎄다니까.PDA 위치추적보고 찾아온거 맞지?"
"네.오빠가 사라진 뒤에 바로 교장선생님한테 말씀드렸더니 여기까지 날아올수 있게 헬기도 준비해주셨어요.여기 오빠가 두고 간 권총이요."
잠시 태성에게 대답한 나현이 태성의 쌍권총 두 정을 주머니에서 꺼내보였다.
마취탄을 맞았을때 떨어뜨린 것이 분명했고 곧 피식 웃으며 권총을 건네받은 태성이 나현의 머리를 부드럽게 어루만져주었다.
"짜아식.잘해줬다.다른 사람들은 어디에 있냐? 설마 너랑 수아 밖에 쳐들어온건 또 아닐테고."
"그..그야 당연하죠! 그렇잖아도 지금 갑판에서 명희 언니랑 명호 아저씨,유사범님이 버티는 중이에요! 얼른 여기서 나가야되요!"
"워워.진정해 인마.확실히 나가는거야 나가는건데..조금 신세진 양반이 있어.그 작자한테 돌려받을 물건도 있고 날 묶어둔 빚도 갚아야해.탈출하는건 그 뒤야."
이어지는 태성의 말에 곧바로 나현이 엑하며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곁에서 얘기를 경청하던 수아도 곧장 고개를 갸웃거렸고 이내 두 사람의 사이로 나선 태성이 권총을 든채 두 사람에게 말을 이어나갔다.
"닥터라고 하는 양반이야.그 작자가 강도들을 사주해서 날 잡아오도록 지시했다고 들었어.당장 내 PDA가 아직 그 양반 주머니에 있으니 당연히 돌려받아야겠지."
"P..PDA를 빼앗겼다구요? 닥터라니..대체 뭐하는 사람인데요?"
"몰라.빌런 연합 쪽 사람이라고 들었는데..아, 애초에 너희 둘은 잘 모르겠군.아무튼 별로 좋은 작자는 아니야.갑판 위로 올라간것 같은데 아마 지금쯤이면 한바탕 깽판치고 있을걸?"
"빌런 연합이라니..대체 그건 또 뭐하는 조직이에요? 태성 오빠를 대체 왜 잡아간건데요?"
"낸들 아냐? 눈깔파내려고 그랬다는 것 밖에는 모른다고.뭣하면 직접 만나서 물어보던가 해!"
빠르게 말을 마친 태성은 곧바로 선실을 빠져나와 통로 안을 내달렸다.
잠시 태성을 의아하게 쳐다보던 나현과 수아도 다급히 그의 뒤를 따라 내달렸고 잠시 후 막 바깥으로 빠져나온 태성의 귓가에 쉬익하는 의문의 울음소리가 흘러들었다.
"이건 또 뭔 소리야? 갑판 위에서 들렸는데?"
"모..모르겠어요.그보다 명희 언니랑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된거죠?"
"그야 올라가보면 알게 되겠지! 서두르자!"
짐짓 의아해하던 태성은 곧바로 고개를 돌려 갑판으로 이어진 계단을 달려올라갔다.
- 취익! 취익!!
찰나의 순간 막 갑판 위로 올라선 태성의 머리로 무색투명한 점액들이 날아들었다.
반사적으로 몸을 숙인 태성은 한바퀴 앞으로 구르며 쌍권총을 전방에 겨눴고 그 순간 태성의 머리 위로 간드러지는 닥터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아하하핫! 역시 빠져나왔군! Bravo! 어때 Boy? Me가 직접 Create한 베놈 히드라의 모습이?!"
난데없이 들려온 닥터의 음성에 태성은 곧장 고개를 들어 머리 위를 쳐다봤다.
온통 반투명한 색을 띄는 거대한 액체 뱀이 수십개의 머리를 치켜든채 태성을 노려보고 서있었다.
마치 살아있는 뱀처럼 꿈틀거리던 액체는 쉭쉭하는 리얼한 소리와 연기까지 내뱉고 있었고 그 중심에 있는 머리 위에는 팔짱을 낀 닥터가 이를 드러내며 조소를 짓고 있었다.
"뭐하자는 거야 이건 또? 그쪽 혹시 소환 능력같은 거라도 가지고 있는거냐?!"
"우후훗.안타깝게도 No야 Boy.Me의 능력은 basilisk(바실리스크)! 현존하는 모든 Poison(맹독)을 자유롭게 뽑아내고 마음대로 control할수 있지.Boy에게도 마침 보여주고 싶었는데 정말 Good timing이야!"
한바탕 떠들어댄 닥터가 곧바로 양팔을 벌리며 자지러지게 웃기 시작했다.
여전히 허공에서 휘청대던 수십개의 뱀머리들은 일제히 태성을 노려보고 있었고 이에 짐짓 미간을 구부리던 태성은 잠시 주변을 둘러보더니 별안간 피식 조소를 지었다.
"흐음..그렇단 말이지? 독이라..뭐 좋아.까짓 거 물리거나 닿지만 않으면 되는 거 아니겠어? 어디 한판 붙어보자고."
"자..잠깐만요 태성 오빠! 대체 뭘 어쩌려는 거에요? 저건 딱봐도 그냥 액체잖아요! 태성 오빠가 만든 총알이라도 통할 리가 없다구요!"
짐짓 어깨를 잡으며 만류하는 나현에게 태성은 심드렁히 대꾸해갔다.
"누가 그걸 모른대? 다 생각이 있으니까 넌 가만히 있어! 지금 나한테 필요한건 니가 아니라 수아니까."
"수아..요?"
곧장 고개를 갸웃하는 나현에게 태성은 빠르게 등을 돌렸다.
그가 등을 돌리기 무섭게 수십개의 뱀머리가 일제히 독액을 분사했고 이를 순식간에 전부 피해낸 태성이 곧바로 수아에게 대뜸 일갈했다.
"수아야! 재난영화 한편 좀 찍어보자! 테마는..쓰나미다!"
- 다음 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