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분도 채 지나지 않아 태성을 비롯한 모두는 백화점 입구에 당도했다.
이미 먼저 도착해있던 학생회 집행부의 부원들이 건물 주위를 통제하고 있었고 그 중심에는 하나같이 심각한 표정을 지은 청호와 유정이 우뚝 서있었다.
"아, 태성 씨! 태성 씨가 여긴 어쩐 일이세요?"
금세 태성을 향해 고개를 돌린 청호가 단박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앞으로 다가왔다.
"망할 교장이 도우라고 시켰거든.대체 뭐가 어떻게 된거야?"
"교장선생님께 사정은 들으셨겠죠? 보다시피 백화점 전체의 셔터를 전부 걸어닫고 농성중이에요.전원 총기로 무장한데다 인질도 붙잡고 있는 상황이라 저희도 주변을 봉쇄하고 민간인 출입을 차단하는게 할수있는 전부에요."
"뭐, 그건 딱봐도 알겠고..내부로 진입할 방법은 찾은거야?"
곧바로 반문하는 태성에게 청호는 잠시 턱을 괴고 고민하더니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봉쇄된 통로 중에 지하주차장을 통해 들어가는 출입구가 있어요.다희를 시켜서 미리 조사해봤는데 망보는 사람 두명을 제외하면 아무도 없는 걸로 알고있어요."
"망보는 놈 두명이라..그외에 신경써야 될건?"
"강도들이 확성기로 얘기한거에 따르면 백화점 곳곳에 C4를 설치해놨다고 해요.어차피 자기들은 크게 한탕하러 온것 뿐이고 인질 협상이 결렬됐을때 일제히 터뜨리겠다고 했어요."
"그..그럼 지금 저 안에는 전부 폭탄천지란 소리에요?"
흠칫 경악한 나현이 미간을 찌뿌리며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네.조금이라도 허튼 짓을 하거나 요구대로 몸값을 준비해주지 않으면..분명 인질이 된 분들은 전부 무너지는 건물에 파묻혀 끔찍하게 돌아가시겠죠."
"쳇! 잘도 귀찮게 일을 벌여놨네.그냥 지하로 몰래 침투한 다음에 싹다 조지면서 올라가면 안되나?"
"말이 되는 소릴해라 좀.아까 폭탄 설치되있다고 한거 못들었어? 게다가 암만 우리가 능력을 지녔다지만 총 앞에 무적은 아니야."
"하핫.진명호 공이라면 무적이겠지만 말일세.하지만 폭탄까지 터져버리면 암만 명호 공이라도 무사하진 못할 것이네."
짐짓 입을 여는 명희와 명호,유사범의 말에 태성은 곧바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뭐, 아무튼 그럼 그놈의 폭탄부터 어떻게 해야겠네.층 전체에 깔아놨다고 그랬었지 분명?"
"네.저도 정확한 위치파악은 하지 못했지만 일단 대부분의 백화점 내부 기둥에 거의 다 C4가 설치되있을 가능성이 커요."
"그야 그렇겠지.그럼 현재 폭탄을 해체할수있는 능력이나 기술을 가진 사람은 있고?"
"아주 없진 않아.다희는 이래뵈도 숨는 거랑 폭발물에 대해선 준전문가거든.C4 정도면 나름 잘 알려진 폭탄이기도 하니 아마 몇분만 주면 금방 해제할수 있을거야."
문득 대화에 끼어든 유정이 그때까지 자신의 뒤에 서있던 다희를 슬쩍 앞으로 밀었다.
여전히 호기심 가득한 표정이던 다희는 태성과 나현의 얼굴을 보자마자 곧바로 쪼르르 달려가안겼고 이에 잠시 다희를 쓰다듬어주던 태성이 다희에게 슬쩍 입을 열었다.
"그래 꼬맹아.너 폭탄에 대해서 무지 잘 안다는데..사실이냐?"
"응! 폭죽놀이할때 많이 써봤어! 한나 언니랑 유정 오빠한테 혼날까봐 얼른 치우는 것도 잘 안다!"
"그으래? 폭죽놀이가 뭔지 신경쓰이지만 일단 넘어가고..아무튼 그럼 C4라는 건 몇분만에 치워줄수 있어?"
태성의 질문에 다희는 잠시 골똘히 생각하더니 곧바로 손가락 10개를 펼쳐보였다.
"10분? 아하~ 하긴.그럼 그렇지.암만 폭탄에 도사라도 역시 그 정도는 걸리겠지?"
"아니! 10초! 10초면 C4 하나는 충분히 해체한다구!"
"시..십초?"
"시..십초만에?! 진짜로?!"
금세 입을 쩍 벌리는 태성과 나현에게 다희는 히힛 웃으며 V자를 내밀었다.
당장 10살 전후로 보이는 여자애가 어른들도 쩔쩔매는 폭탄을 마치 장난감처럼 여기는 것부터가 굉장했다.
하다못해 거짓말이었다면 진작에 티가 났겠지만 다희의 표정은 자신만만함을 넘어서 당당함 그 자체였다.
"뭐어..그럼 폭탄해체에 관한 건 그 다희란 애한테 맡기고..문제는 어떻게 안에 들어가냐로군."
슬쩍 헛기침을 내뱉으며 끼어든 명호의 말에 곧바로 수아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그렇네요.암만 다희가 폭탄을 잘 다뤄도 건물 안에 들어갈수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잖아요?"
"흠..이미 알려진 통로 외에 비밀 통로를 찾아보는건 어때? 나름 백화점이니까 분명 잘 알려지지 않은 비상구도 많을테고 거기까지 죄다 강도새끼들이 알고 있을리는 없잖아?"
"일리는 있지만 기각이야.애초에 그런 통로가 어딘가에 있다고 해도 찾을 때까지 시간이 걸리는데다 외부에서 그런 걸 전부 파악하는건 한계가 있어.게다가 이런 대형 건물을 타깃으로 삼은 놈들은 내부 구조를 미리 숙지하고 오는게 정석이다."
짐짓 의견을 내놓는 명희에게 태성이 곧바로 날선 반박을 내뱉었다.
기껏 머리를 굴려 의견을 냈던 명희는 이내 치이하며 토라져버렸고 이에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나현이 뭔가 생각하더니 모두에게 나지막히 입을 열었다.
"저기..그럼 이런 건 어때요? 누군가 가짜 미끼가 되서 가장 들어가기 쉬운 통로의 경비들을 유인하는 거에요.그럼 그틈에 다른 사람들이 다희랑 같이 들어가서 폭탄을 해체하는거죠."
"미끼라고? 애초에 어떻게 강도 놈들을 꾀어내겠다는건데? 그놈들은 죄다 너처럼 먹보도 아니라고?"
짐짓 비아냥대는 태성에게 나현은 금세 볼을 부풀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우씨! 저도 그 정도는 안다구요! 제가 말하는건..그러니까 미인계를 쓰자는 거에요.막말로 당장 저나 수아,명희 언니도 있잖아요?"
"글쎄..니 입으로 니가 미인이라고 하니까 조금 재수없게 들린다만..대체 뭐 어쩌겠다는건데?"
곧바로 반문하는 태성에게 나현은 짐짓 모두를 앞으로 불러모아 차근차근 작전을 설명했다.
우선 자신과 수아,다희가 미끼가 되어 가장 침투하기 쉽고 감시인원도 적은 지하주차장 방면 출입구로 향한다.
자신들이 강도들을 출입구에서 멀리 유인하는 사이 뒤로 접근한 유사범이 그들을 제압하고 그 사이 태성과 명희,명호가 다희를 데리고 내부로 진입해 강도들을 제압하면서 폭탄을 해체하며 올라간다는 꽤나 단순명료한 계획이었다.
"흐음..나름 일리는 있어보이는데..근데 애초에 왜 너랑 수아 둘이만 미끼가 되는거냐?"
"그..그야 명희 언니는 당장 옆구리에 칼도 차고있으니 오히려 의심받을게 뻔하잖아요.그나마 저나 수아는 둘다 아무런 무기도 없고 입고있는 옷도 교복이니 민간인으로 생각할게 뻔하고요."
"뭐, 확실히 그렇겠지.니 주제에 제법 머리 좀 굴렸는데?"
"저..저라고 마냥 바보는 아니라구요! 이래뵈도 나름 고등학생인데…."
금세 힝하고 울상을 짓는 나현에게 태성은 곧장 피식 웃으며 머리를 손으로 부벼주었다.
"누가 뭐래? 아무튼 말은 잘해줬다.확실히 그 방법이라면 출입구를 굳이 찾을 필요도 없을테고 성공할 확률도 커.그 방법으로 한번 해보자고."
"흐음.눈속임 작전이라..근데 작전이 성공해서 어찌저찌 1층은 제압해도 위층에 있는 놈들이 내려올 가능성도 있지 않아?"
문득 반문하는 명희의 말에 곧장 옆에 서있던 명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음.확실히 그렇네.암만 1층을 빨리 제압한다고 쳐도 폭탄은 1층에만 있는 게 아니니까."
"그것도 그렇소만..애초에 폭탄은 차치하더라도 인질들이 어디있는지를 모르면 결국 반만 성공한 작전이 되지않소? 당장 강도들도 강도들이지만 우두머리인 두목을 찾아 기폭장치를 빼앗는 것도 생각해봐야 하오."
명호에 이어 유사범까지 이의를 제기하자 태성은 짐짓 턱을 괴고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확실히 두 사람의 말대로 암만 유인이 무사히 성공한다해도 근본적으로 폭탄이 아예 터지지 못하게끔 해야만했다.
강도들이야 자신들의 능력으로도 충분히 제압한다쳐도 폭탄은 다희가 해체하기 전까진 여전히 작동할게 뻔했고 암만 다희가 재빨리 움직인다한들 거대한 백화점 전체의 폭탄을 전부 해체하기란 무리한 노릇이었다.
'당장 인질도 인질이지만..최우선은 기폭장치부터 빼앗는거다.내가 놈들 두목이라고 가정했을때 백화점 전체를 통제하기 쉽고 유사 시엔 빠져나가기도 쉬운 곳에 있어야한다.그렇다면..'
잠시 생각을 이어가던 태성은 슬쩍 고개를 돌려 백화점 윗부분을 바라보았다.
대체로 백화점의 위쪽 층계에는 옥상주차장이나 직원들의 휴게실,사무실 등이 자리잡고 있기 마련이었다.
백화점 전체의 보안을 담당하는 시큐리티실도 대부분 고층에 있었고 옥상과도 곧바로 연결되어 유사 시엔 미리 준비해둔 탈출용 차량을 타고 빠르게 도주할수도 있었다.
'두목도 대가리가 굴러가는 놈이라면 아마 비슷한 생각을 하겠지.만약 아니라고 해도 최소한 자기 한 몸 정도는 충분히 내뺄만큼 분명 조치를 취해뒀을거다.'
곰곰히 생각을 이어가던 태성은 잠시 끙하고 이마를 부여잡았다.
두목의 위치를 특정했다고 쳐도 위층으로 올라가려면 그만큼 시간이 필요했고 뭣보다 올라가는 도중에 이미 보안실 카메라에 걸릴 확률이 높았다.
- 투두두두두두.
"뭐야 이 소린 또? 누가 어디서 기관총 갈기냐?"
"그..그게 아니라 멀리서 헬기들이 오고있어요! 방송사 헬기 같은데요?"
문득 뒤통수로 들려오는 요란한 소리에 태성을 비롯한 모두는 동시에 하늘을 올려보았다.
희대의 강도 사건을 현장 취재하기 위해 먼 곳에서 요란한 프로펠러 소리와 함께 서너대의 방송사 헬기가 날아오고 있었다.
각양각색의 색과 로고로 점철된 헬기들은 백화점 주위를 빙빙 선회하기 시작했고 이내 그런 헬기들을 눈여겨보던 태성이 문득 뭔가 떠올랐는지 청호를 돌아보았다.
"어이 청호! 저 방송사 헬기 한대만 내려오라고 할수 있어?"
"네? 으음..아주 불가능한건 아니긴한데 갑자기 왜 그러세요?"
"쓸곳이 좀 있어서 말이야.저 중에 아무 헬기나 연락닿는대로 좀 끌어내려봐.저걸 이용해서 또다른 통로를 개척해야겠다."
"또다른 통로라구요? 잠깐..태성 씨 설마 옥상으로 진입할 생각은 아니겠죠?"
급히 놀란 얼굴로 반문하는 청호에게 태성은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청호의 옆으로 바짝 다가간 태성은 그녀의 귀에 대고 무어라 귓속말을 빠르게 중얼거렸고 이에 짐짓 그의 말을 경청하던 청호는 한숨을 푹 쉬며 태성에게 작게 빈정거렸다.
"정말..혹시나 잘못되도 제 책임 아니에요? 명희 양이랑 명호 씨도 같이 데려가겠다니 대체 무슨 생각이에요?"
"다 그런 게 있어.얼른 헬기나 내려오라고 그래.백마디 설명하는 것보단 직접 보여주는 편이 더 빠르잖아.안 그래?"
"그야 그렇지만..하아.알았어요.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일이 잘못되면 바로 저나 유정한테 연락하세요.알아들었죠?"
단단히 주의를 주는 청호에게 태성은 알겠다는듯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또 한번 한숨을 내쉰 청호는 곧장 스마트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고 곧 얼마 지나지않아 상공을 선회하던 헬기 한대가 급히 방향을 틀어 서서히 인근의 공원 풀밭에 내려앉았다.
"자, 그럼 지금부터 나랑 명희,명호 형님은 저 헬기에 탄다! 나현이랑 수아는 다희 데리고
바로 지하주차장으로 가고 사범 형씨는 적당히 따라다니면서 둘 좀 호위해줘."
"대..대체 어쩌려는 거에요 태성 오빠?! 저희는 그렇다치고 오빠는 어떡하실 건데요?!"
급히 자신을 바라보며 소리치는 나현에게 태성은 슬쩍 허리에 손을 얹으며 곧장 대꾸했다.
"넌 최대한 폭탄 해체하면서 위로 올라오라고.난 쫄다구들 상대하는건 영 성에 안차서 말이지! 두목 놈이랑 직접 면담하러 다녀오겠어!"
"두..두목이랑 직접요?! 어디있는지는 알고요?!"
"모르면 내가 이런 말하겠냐?! 얼른 지하주차장으로나 내려가! 좀 이따가 다시 보자고!"
빠르게 일갈한 태성은 곧장 명희,명호를 대동해 헬기에 냅다 탑승했다.
곧바로 세 사람을 태운 헬기는 문을 걸어닫고 다시금 상공으로 솟구쳐 올라갔고 이에 잠시 멍하게 헬기를 바라보던 나현의 뒤로 유사범이 나지막히 입을 열었다.
"불안하더라도 임 도령을 믿어보세나.어떤 상황이든 결국엔 방법을 찾아 해결하는게 바로 임 도령이 아니오? 우린 우리가 할수있는 일을 하는 게 최선일세."
"정말로..괜찮을까요? 두목이랑 직접 얘기하겠다니..태성 오빠는 도대체 무슨 생각인건지…."
불안한 어조로 중얼거린 나현은 빠르게 멀어지는 헬기를 바라보다가 마지못해 고개를 돌렸다.
'그래..지금은 늘 그랬듯 태성 오빠를 믿어보는거야.분명히 내가 생각못하는 방법으로 또 날 깜짝 놀라게 해줄테니까!'
애써 담담히 되뇌이던 나현은 곧바로 수아와 다희,유사범에게 무언의 눈짓을 보냈다.
이미 작전은 시작되었고 망설일 틈따윈 전혀 없었다.
"저희도 가요! 무작정 태성 오빠만 믿고 기다릴순 없잖아요?"
당차게 중얼거린 나현은 곧바로 지하로 뚫린 어두운 통로를 향해 거침없이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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