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폰과 함께 마을을 둘러보기 위해 장로의 집을 나오고 거리로 나왔고 얼마 안 가 근처 강변에서 수다를 떨고 있던 세 명의 부녀자들을 만났고 우리들을 보자마자 달려오더니 우리의 주위를 둘러쌌다.
"저기 시폰, 옆에 남자애는 누구니?"
"어머, 보니까 인간 아니야?"
"그러네? 인간이 여기에는 어쩐 일로 온 거야?"
나를 이리저리 관찰하면서 부녀자들은 말했다.
"아, 소개할게요. 이름은 레브라고하고 여기로 오게 된 계기는.."
시폰이 내가 지어낸 지금 내가 숲에 홀로 있는 이유를 말해주었고
"어머.. 안타까워라"
"걱정 말거라, 너의 부모님은 어디선가 살아계실 거야"
"흑.. 혹시 필요한 게 있다면 이 누나에게 말하렴"
엄청 걱정해주셨다.
"그런데 시폰, 지금 어디 가는 거니?"
부녀자들 중에 한 명이 시폰에게 행선지를 물어보았다.
"레브에게 여기 마을을 안내해 주려고요"
"어머! 그런 줄도 모르고 우리가 방해했구나. 나는 또 둘이 데이트하는 줄 알았지"
"ㄷ..데 데 데 데이트?!"
시폰이 엄청 동요하면서 말까지 더듬었다.
"그러게 말이야~ 멀리서 봤을 때는 시폰이 신랑감이라도 데려온 줄 알았다니까?"
"아..아니 우리는 아직 그런사이는 아니고..."
시폰의 얼굴이 새빨개지고 손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아니라고 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입을 보니 웃고 있었다.
"레브라고 했었니?"
"네"
"시폰을 잘 부탁한다? 울리면 이 누나들이 용서 안 할 테니까"
"네?!"
그렇게 부녀자들에게서도 자연스럽게 시폰을 떠넘겨 받았다.
"그, 그만! 자, 가자 레브! 다른데도 봐야지"
"으, 응.."
시폰이 내 등을 밀면서 걸음을 재촉했다.
"그럼 나중에 봬요. 아주머니들"
"그래~ 나중에 또 레브랑 같이 오너라, 식사 한번 대접하마"
"우리 집도 찾아와!"
"우리 집도!"
그렇게 부녀자들을 뒤로하고, 나는 시폰에게 마을 안내를 이어서 받기 시작했고, 얼마 안 가서 처음 마을에 들어왔을 때 보았던 꼬마 아이들을 만났다.
"어! 시폰 누나다"
"언니, 옆에 오빠는 누구야?
처음 경계하던 모습은 어디 갔는지 모두 시폰을 보자마자 달려들기 시작했다.
"응, 옆에 이 오빠는 레브라고 해"
어린아이들에게 자세한 사정은 말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아이들에게는 이 정도의 인사로 충분할 것이다.
"오빠랑 언니는 무슨 사이야?"
우리를 유심히 지켜보단 한 여자아이가 질문을 던졌다.
"으, 응? 우리가 어떤 사이냐고?"
시폰이 당황하며 그 여자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마을에 들어왔을 때도 여기 형이랑 같이 있었어!"
그리고 처음에 봤던 아이들 중에 한 명이 증언을 하기 시작했고
"나도!"
"나도 봤어!"
한두 명씩 증언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 그건.."
시폰이 나를 잠깐 바라보고는 고개를 숙였다.
"시폰 언니, 레브 오빠를 좋아하는 거야?"
"히끅!"
처음에 질문했던 여자아이가 또 하나를 질문하자 시폰이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딸꾹질을 했다.
"언니 얼굴이 새빨개졌다! 와~ 시폰 언니는 레브 오빠를 좋아한대요~"
그리고 시폰의 새빨개진 얼굴을 보고는 시폰을 노래 부르듯이 놀리기 시작했고, 옆에서 같이 서있던 아이들까지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으으으... 너희들!!"
시폰은 어쩔 줄 몰라 하며 그저 아이들을 말리려고 다가갔지만, 아이들은 시폰이 가까이 다가오자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피하기 시작했다.
"하하.."
그리고 그런 모습을 나는 가만히 지켜보고있었다.
"뭐.. 기분이 나쁘지는 않네"
시폰은 한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연한 노란 머리가 잘 어울리는 미인에, 심지어 스타일도 좋아서 상의 위로 보이는 볼륨감은 실로 대단했다. 그런 그녀에게 반했냐고 물어본다면, 아마 나는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툭 툭〕
"응?"
내 다리 쪽에서 무언가가 툭하면서 건드리는 느낌이 들어, 나는 아래를 내려봤다. 그러자 그곳에는 한 어린 남자아이가 내 다리를 주먹으로 툭툭 치고 있었다.
"에잇! 에잇!"
자신의 최대한으로 힘을 내어 내 다리를 때리고 있지만, 아직 어린아이라서 그런지 그렇게 아프지는 않았다.
"시폰 누나는.. 에잇! 내가 지킬 거야!"
점점 힘이 드는지 때리는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지고 있었고, 이내 숨을 가쁘게 내쉬며 나를 바라봤다.
"하아.. 하아.. 너 같은 남자한테 시폰 누나는 못 줘!"
"시폰을 많이 좋아하는구나"
"당연하지! 나만큼 시폰 누나를 좋아하는 남자는 여기에 없어!"
당당하게 가슴을 펴면서 자랑스럽게 말하는 꼬마 소년
"시폰 누나는 내가 지키겠다고 결심했단 말이야!"
그러고는 자세를 풀고 톤을 낮추며 말했다.
"그런데.. 형이랑 같이 있는 시폰 누나는 지금까지 내가 보아온 누나의 모습 중에서 제일 기뻐 보였어.."
"나도.. 누나를 저런 식으로 웃게 하고 싶은데.."
그리고 꼬마 소년은 조금씩 흐느끼기 시작했다.
"왜 갑작스럽게 나타나서는 누나를 뺐어가려고해?"
"나도 누나를 저렇게 웃게 하고 싶어서 엄청 노력했는데!"
"누나는 매일 나를 꼬맹이로 생각하고는 항상 웃어넘겼어!"
이것은 작은 소년의 사랑 이야기, 그리고 한 남자의 진실된 사랑 이야기였다.
겉모습은 그저 작은 꼬마지만, 속은 어엿한 사랑하는 남자였다. 그리고 나는 이 작은 소년이 더 이상 어린아이로 보이지 않았다.
"미안"
"..응?"
"누군가를 진심으로 그렇게까지 사랑해본 적은 없지만, 너의 지금까지 해왔던 노력들을 내가 부정하고 있다면.. 미안해"
나는 작은 소년에게 사과했다.
"그리고 말이야, 아직 시폰이 누구를 좋아한다고 정해진 것도 아니잖아?"
"그렇..지"
"그러니까 아직 기회는 있을꺼야"
나는 어째서인지, 그 소년을 응원하고 싶어졌다.
나이의 차이라는 벽이 소년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향하는 마음을 가로막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벽을 넘어 오르려는 그의 의지는 칭찬받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자 꼬마 소년은 눈물을 닦고는 나를 바라보고 말했다.
"흥! 내가 시폰 누나를 반드시 빼앗아 보일 거니까!"
그리고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때까지 시폰 누나를 울리면 안 돼!"
".. 그래 약속할게"
그렇게 꼬마 소년은 다른 아이들을 잡으려고 뛰어다니고 있는 시폰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에 섞여서 시폰의 술래잡기(?)에 동참했다. 그리고 처음에 시폰을 놀리기 시작한 꼬마 여자아이가 소년을 보고는
"..흥!"
".. 설마 아니겠지? 저런 초등학생과 비슷해 보이는 나이 또래에.."
나는 그렇게 조용히 주변에 있는 그늘 안에 들어가 시폰과 놀고 있는 아이들을 구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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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하아.. 미안.. 하아.. 레브.."
거친 숨을 내쉬며 시폰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아이들은 결국 부모님이 데리러 올 때까지 계속해서 시폰을 놀리며 도망 다녔고, 시폰은 엄청 느린 발걸음으로 계속해서 아이들을 쫓아다녔다.
"아니야, 덕분에 재미있는 걸 봤는데 뭐"
"으으.. 다음에는 두고봐.."
그렇게 시폰은 다음에 복수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아, 그러고 보니 마을을 안내해주기로 했었지, 정말로 미안해.. 지금 빨리 출발하자"
그렇게 시폰의 마을 안내가 다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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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마을을 점점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다들 좋은 사람들이었어"
"다들 나랑 레브가 사이가 좋아보인다니.."
"저.. 시폰?"
"그야 어느정도 호감은 있지만.."
아무리봐도 심각했다.
"시폰!"
"나도.. 어?"
그녀의 어깨를 흔들며 이름을 부르자 정신을 차렸는지, 말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어, 응, 왜 그래?"
"너 괜찮아?"
"다, 당연히 괜찮지!"
시폰은 나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해맑게 대답했다.
"그럼 이제 슬슬 저녁시간도 다 되니까 돌아가자"
"그러자, 오늘 저녁은 내가 실력 발휘를 좀 해야지!"
"그거 기대되는데?"
저녁노을이 지는 것을 뒤로하고 우리는 다시 시폰네 집에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