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식사가 끝나고 거실에서 차를 마시면서 쉬고 있을 때, 시로프 영감님께서 나에게 말을 걸었다.
"마을은 어떠더냐?"
"정말 평화롭고, 다들 친절했어요"
"그렇지? 우리 마을 사람들은 정말 착하단 말이야, 그보다 시폰은 어땠느냐?"
"네? 무슨 말씀이세요?"
"마을을 돌아다닐 때 시폰의 기분 말이다"
"아아, 상당히 즐거워하던 거 같았어요"
"그래... 다행이구나"
시로프 영감님과 이야기를 하던 중에 설거지를 마친 시폰이 부엌에서 나왔고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잠시 뒤 나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레브 잠시 된다면 나랑 어디 가지 않을래?
"이 시간에? 밤이라 밖은 어두울 텐데.."
"너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도 있고 그리고.. 하고 싶은 말도 있어서"
"하지만 영감님이 허락을.."
나는 밖에 어둠이 깔린 늦은 시간에 나가는 것을 영감님이 반대할 것 같았지만
"너무 멀리는 가지는 말고, 일찍 들어오너라"
간단하게 허락했다.
"그럼 준비하고 올게~"
시폰이 준비하려고 위로 올라가고
"너무 쉽게 허락한 거 아니에요? 위험한 상황이 생기면 어떻게 하려고"
"너도 남자 아니더냐, 남자라면 여자 한 명쯤은 몸을 던져서라도 지켜야지, 그리고 아마 시폰이 매번 가던 장소로 가려는 게지 "
"매번 가던 장소? 아무리 그래도.."
"혹시, 시폰이랑 같이 나가는 게 싫더냐?"
"그럴리가요!"
"그럼 다녀오거라"
"..네"
그렇게 시폰은 나를 이끌고 밤길에 나섰다.
"저.. 시폰?"
"왜 그래?"
"여기는 숲 아니야?"
"응, 숲인데 왜?"
"이런 늦은 밤에 숲 속은 위험한 거 아니야?"
"걱정마 곧 도착해"
나는 시폰의 뒤를 따라가면서 맹수를 만날까 봐 계속 걱정했지만 얼마 안 가 시폰이 발걸음을 늦추었다.
"자, 여기야!"
시폰이 가리킨 장소에는 조금 큰 동굴이 있었다.
"여긴 그냥 동굴 아니야?"
"자자~ 우선 들어가봐"
나는 시폰의 뒤를 따라 동굴로 들어갔고 역시나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앞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손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걸어가던 그때
"슬슬 저기.."
물컹
"히얏!"
내 손에 무언가 물컹 거리는 감촉이 느껴졌고 직후에 작은 신음소리가 들렸다.
'이 촉감은.. 설마'
시폰의 가슴이였다.
"ㅁ, 미 미 미안!!!"
"으, 으응 나는 괜찮아 이렇게 어두운데 그럴수도 있지 그보다 거의 다 왔어"
"응.."
'겉모습과는 다르게 확실히 컸어...'
나는 손을 쥐었다 피며 방금 전의 촉감을 다시 생각해보려 했다. 그리고 조금 더 앞으로 가자 시폰이 다시 말했다.
"여기야, 잠시만 기다려줘"
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동굴에서 무엇을 보여줄지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폰이 숨을 크게 들이마시더니
"여기에 한줄기의 희망의 빛을《라이트》"
영창 같은 것을 외치자, 그녀의 손에서 조금씩 빛이 생기기 시작했고, 이내 동굴 안을 밝게 비췄다.
"이건.."
"마법이야, 할아버지의 서고에서 마법에 관한 책이 있어서 조금 훔쳐봤어"
그리고 밝게 비춰진 동굴 내부는 마치 큰 돔같은 형태였고, 나는 내부를 보고 눈을 크게 뜨며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와~ 이것들 전부 수정이야?"
가지각색의 동굴 내부의 벽에 촘촘하게 붙은 수정들이 시폰의 마법에 빛을 서로 반사시켜 반짝거렸다.
"응, 내가 몇 년 전에 우연히 발견한 장소인데, 나 말고는 아무도 몰라"
"그런데 나한테는 왜 여기를 보여주는 거야?"
"그, 그건..."
시폰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말을 계속했다.
"나는 5년 전에 4색의 마수 중 하나가 이전에 살던 마을에 들이닥쳐서 와서 내 부모님을 앗아갔어"
".. 응, 알고 있어"
시로프 영감님이 나에게 미리 말해준 이야기였다.
"알고있었어?! 누구한테 들었는데?"
시폰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시로프 영감님.."
"할아버지.. 왜 그런 말을 레브에게"
시폰은 한숨을 깊게 내쉬더니 말을 이었다.
"그래도 내가 너에게 말하고 싶어서 그런데, 계속 말해도 될까?"
".. 응"
나는 뜸을 들이고는 말했다.
"내가 침울해 있을 때, 할아버지가 나에게 다시 살아갈 희망을 주셨어, 그리고 그때, 할아버지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어"
"너까지 사라진다면 남겨진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냐고.."
"아버지와 아머니가 목숨을 바쳐서 지킨 나마저 사라지면 어떻게 하나고.."
시폰의 표정이 조금씩 풀어지기 시작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부모님의 목숨이 헛되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살아가기로 했어, 그런데 오늘 너를 만났어, 나와 같은.. 아니 너의 부모님은 살아 계실 수도 있겠구나"
시폰은 나를 보고는 작게 미소 지었다.
"어쨌든 내가 처음 너를 봤을 때, 이유는 모르지만 5년 전의 내 모습이 겹쳐 보였거든 그래서 너를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에 우리 마을에 데려온 거야"
"그리고 숲에서 만나 이야기하고, 우리 마을을 안내하는 도중에 너와 이야기를 했을 때는 정말 즐거웠어"
그리고 시폰은 나를 애틋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네가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가슴 안쪽에 막힌 것들이 시원하게 씻겨나가는 느낌이 드는 건 어째서일까?"
동굴 안에 선선한 바람이 들어와 시폰의 머릿결이 바람에 살랑이며 흔들렸다. 그리고 위에 수정들의 빛을 받아 시폰의 노란 머리가 조금씩 반짝이며 마치 보석을 수놓은 것 같았고, 그녀의 주변의 모든 것이 반짝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저기.. 레브"
에메랄드를 박아 넣은 듯한 그녀의 눈동자가 나를 응시했다.
"우리 마을에서 나와 함께 살지 않을래? 물론 너희 인간들의 생활과 조금 많이 다르겠지만, 그래도 충분히 감안할 수 있다고 생각해"
시폰은 자신의 가슴을 꾸-욱하고 누르며 고개를 숙였다.
"이런 감정은 처음이라 잘 모르겠지만"
그리고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레브, 나는 네가 필요해.."
그리고 그녀는 나의 손을 잡고
"갑자기 이런말 하는게 이상하다는건 알고 있지만, 레브 네가 좋아"
"나와 함께 우리 마을에 살아줘"
그녀의 깜짝 고백에 나는 대답을 못하고, 그저 그녀를 바라보았다.
'시폰이 나를?!'
"역시, 갑자기 이런 이야기는 싫지?"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아, 아니! 싫다는게 아니라.."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고백을 받아들이고 싶지만, 그녀의 진심 어린 마음을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나 자신이 미숙하고, 각오가 되지 않아 결정하기에 망설였다.
"조금 생각을 해봐도 될까?"
"응.."
"그.. 고마워, 나 같은 걸 좋아해줘서, 그리고 정말 기뻐"
나는 그녀의 앞에 다가가 눈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었다.
"대답은 내가 빠른 시일 내로 들려줄게"
"응, 약속이야!"
그리고 나는 시폰의 오른손을 잡아 올리며 내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그럼 증표로 새끼손가락 약속을 하자"
"새끼손가락 약속?"
"내가 살던 데에서는 약속을 할때는 이렇게 했거든"
시폰은 서로 걸친 손가락을 보고 활짝 웃더니
"그럼, 약속이야!"
나는 시폰의 웃는 모습을 보고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고, 우리 둘 다 한바탕 크게 웃었다.
그리고 나는 그때 대답을 하지 않은 것을 평생 동안 후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