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등에서 내리 비취는 빛이 망연자실한 혹은 절망 비슷한 모양의 우리의 그림자를 꼭 그 모양 같이 보이게 했다. 그림자 마저 도 처량한 나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내가 비누에게 말했다.
“어떻게 해?”
“글쎄?”
참 무책임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 무책임함은 그나 나나 어쩔 수 없는 상황에 할 수 있는 마지막 방패와 같은 것이었다. 구원은 어디에도 없다.
나는 핸드 폰을 꺼내 한번 봤다. 눈 한번 꽈 감고 전화를 해보자 그래서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것이고 된다면 천운이라고 그렇게 핸드 폰을 노려봤다.
“왜 어디 전화 할 때 라도 있어?”
“그건 아니고 꼭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렇게 말을 줄이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구원 요청은 모르스 부호와 같은 통화 음으로 변해 창식의 핸드폰으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 날 그러니까 내가 비누와 싸움을 하던 술 집에서 이후로 창식과는 연락이 되고 있지 않았다. 내 쪽에서 인지 아님 창식 쪽에서 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창식과 연락이 없어도 답답하지 않았으니까 그랬겠지만 이런 일만 아니면 내 쪽에서 면이 없어서 절대 연락 따위는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기 좋은 꽃 놀이도 한 두 번이지 벼룩도 낯 짝이 있지 하는 식의 비유를 서너 개 들 수 있는 그런 상관 관계 나는 늘 미안해 하는 입장이고 창식은 늘 관용을 베풀어 주는 식의 관계가 올 바른 지는 모르지만 그런 관계가 얼마나 지속 될까 하는 물음을 하고서도 만나지는 만남이 의야 해 하면서도 이번은 아니지 그래 한번은 괜찮겠지 하는 만남 이번이 어쩌면 그런 관계성을 명확히 해줄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고 여섯 번 째 정도 전화벨이 울릴 때 생각을 했다. 전화는 끊어 졌다. 그럴 수도 있겠다 내가 지겨울 수 도 있겠다 하다가도 머리에 열이 확 뻗쳤다. 하지만 이내 다시 전화하는 것을 그만 두었다. 그래 그럼 그렇지 하는 식의 체념
비누가 말했다.
“왜? 안 받아?”
“어”
“어쩌냐?”
“그러게”
나는 집에 한번 전화를 하려고 집 번호를 누르다 통화 버튼에서 엄지 손가락이 허공을 맴돌았다.
눈을 질금 감고 집으로 전화를 했다. 그래도 아들이 한데서 자다 입 돌아가는 것을 바라진 않겠지 하며 모성애 기대를 걸어 보기로 했다.
하지만 전화를 받은 것은 형이었다.
“형”
나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형의 목소리가 구원이 될 줄이야 그래도 형은 어떤 해답을 줄 것 같았다. 형은 그래도 돈이 많으니까
“야 너네 사고 쳤다며? 집이 개판이다. 엄마는 울고 불고 난리 났어.”
“그래? 엄마는?”
“엄마 평창동 이모네 갔다.”
“그래 잘됐네. 나 갈데 도 없고 완전 우리 부랑자 꼴 못 면하게 생겼어. 형 집에 좀 들어갈게 엄마 오기 전에 나갈게 내일 하룻 밤만”
“야 안돼 엄마가 절대 너 문 열어주지 말라고 했단 말이야. 문 열어주면 나도 아들로 생각 안 한다고 했어. 너도 알잖아 엄마 독한 거 한 다면 하는 분이잖아. 나도 엄마 무서워”
장난인지 농담인지 목소리에 웃음기가 섞여 있었다.
이런 쓰벌 새끼 욕지기가 입 밖으로 나올 것 같았지만 꾹꾹 눌러 넣고 다시 형을 불렀다. 그래도 세상이 이 모양이라도 형제간의 애정 그러니까 겨자씨만한 것이라도 남아 있을 거라고 그 것에 희망을 걸었다. 겨자씨 만한 것도 심으면 나무가 된다지 않는가?
“아 형 그럼 돈이라도 빌려 줘. 어디 이슬 피할 때라도 있어야지 이러다 정말 공원에서 노숙할 판이야”
“야 돈 하니까 생각 났는데 너 내 책상에 삼 만원 빼갔냐? 나 엄마 줄라고 챙겨 놓은 돈인데 나 더러 십칠만 원 만 줬다고 엄마한테 욕 얻어 먹었어. 이 도둑 놈의 새끼야”
형이 그제서야 생각이 났는지 웃음기 사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을 하는 순간 형에게 건 기대의 겨자씨는 볶은 씨앗이라는 것이 판명이 났다. 아무리 좋은 씨라고 볶으면 싹이 든 나무든 뭐든 될 수 없는 거니까
이씨 그깟 삼 만원이 그렇게 중요 하냐? 나는 이 가족에게서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이 둘이 똘똘 뭉쳐서 나 하나 죽여 보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고 그런 외로움이 사무치며 살아오면서 받았던 잘난 형과 못난 나 그래서 받아 왔던 차별 그리고 지들만 잘났다고 히히덕 거리던 왕따의 서러움이 한 순간 밀려 왔다.
“에이 씨발 잘 먹고 잘 살아라 너는 개 새끼야 동생이 불쌍하지도 않냐? 너네들끼리 잘 먹고 잘 살아라 끊어”
전화를 끊었다. 그것도 확 그것도 분이 차지 않아 핸드 폰 밧데리를 뽑아 버렸다. 손이 부르르 떨려서 전화기를 던져 버리고 싶은 것을 참았다. 이것은 내가 세상과 이어주는 마지막 끈이 될지도 모르는 것이니까 참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