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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최면술사
작가 : HUNHUNHAN
작품등록일 : 2016.9.13

당신의 '○○'은 '○○'됐습니다.(!!)

강력한 최면 능력을 이용해 타인의 ○○을 ○○할 수 있는 '술사'와 이에 맞서 추리를 통해 그 ○○된 ○○을 깨뜨리는 '탐정' 간의 대결을 다룬 이색 스릴러.


서른을 갓 넘긴 여성 '일애'는 남편과의 사이에서 오랫동안 아이가 없자 별거하여 혼자 사는 중이다. 홀로 살기엔 집이 크다고 생각한 그녀는 동생이 소개시켜준 '라영'이라는 여자에게 집을 팔려고 한다. 동생과 함께 온 라영에게 집 안을 안내하고 아무 일 없이 집 구경이 끝날 즈음, 라영 그녀가 일애에게 뜻밖의 얘길 꺼낸다.

"사실 저는 당신이 숨기고 있는 진실을 밝히러 왔어요. 그런데 그 진실이란 게 지금의 당신은 모르는 거죠. 당장은 이해가 안 되시겠지만, 일애 당신 스스로가 자기 자신에게 그 진실을 감춘 거예요."

일애는 라영의 말이 이해가 안 됐지만, 이후 라영은 그녀가 알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사실들을 속속들이 밝혀낸다. 새로운 진실들에 혼란스러워하는 일애 앞으로 라영의 파트너로 보이는 남자가 새로이 등장하고, 그 남자는 그녀에게 이 혼란스런 상황을 정리할 결정적인 말 한마디를 건넨다.

"당신의 ○○은 ○○됐습니다."

 
난 평범한 사람이다 (中) - 삶
작성일 : 16-10-26 13:16     조회 : 746     추천 : 0     분량 : 9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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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내가 평범하지 않다고. 내 기억이 조작됐다고. 난 그저 평범한 중년 가장일 뿐인데. 그런데 그자들이 내 기억을 조작해서 날 평범한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거야? 그럼 나는 누구지? 내가 내가 아닌 건가?

 

 사실은 두렵다. 난 평범하게 살아왔다. 별 탈 없이, 사고 없이, 아무 죄 없이. 굳이 이 여자의 말을 순순히 따를 필요가 있는 건가? 이 여자를 신뢰해도 되는 건가? 일단은 물어보자.

 

 “어떻게 아시죠? 혹시 그자들과 아는 사입니까?”

 

 “아뇨. 사실 저희들은 그들을 쫓고 있어요.”

 

 ‘쫓고 있다고, 그리고 저희들이라고 했나?’

 

 “어쨌든 우선은 성훈씨는 진실을 알아야 해요. 진실을 깨달으면 모든 게 이해가 될 거예요.”

 

 근데 진짜로 조작이 된 걸까? 그들을 만난 건 맞지만, 지금의 내 기억은 문제가 없다. 기억상 나는 평범하게, 순탄하게 살았다. 딱히 문제가 될 만한 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조작된 기억이 애초 없는 건 아닌 건가? 아니면 내가 뭔지 전혀 짚어내지 못할 만큼 그자의 최면이 완벽한 건가?

 

 “두려워마세요. 언젠간 드러날 일이니깐요. 제가 도와드리겠어요. 당신의 삶에서 조작된 게 무엇인지, 그들이 왜곡한 게 무엇인지를 파헤치는 거예요. 저와 당신이 함께요.”

 

 “어떻게?”

 

 “당신의 삶을 들려주세요.”

 

 근데 진짜로 기억이 바꿔진 거라면, 내가 원해서 한 거 아닌가? 굳이 해놓은 걸 건드릴 이유가 있을까? 조작했다면 그렇게 한 당위(當爲)가 있는 게 아니겠나?

 

 아냐. 어차피 내 기억이 잘못된 걸지 모른단 걸 안 이상, 언젠가는 그 기억을 찾으려 들꺼다. 우연히 발견될 지도 모르지. 앞에 예쁘고 젊은 여자가 도와주겠다 하는데, 어디 한번 응해보자.

 

 그녀 말마따나 머릿속 기억을 하나하나 검토해보자. 태어나서 지금까지. 현재 기억하는 모든 걸.

 

 “내 삶을 얘길 하는데, 정확히 어떤 식으로 해야 되죠?”

 

 “그냥 기억나는 대로요. 그리고 순서대로요. 어릴 때부터. 찬찬히 생각나는 대로 천천히 말해주세요. 성훈씨가 기억하는 당신의 생애를.”

 

 “그러면……”

 

 어릴 때부터 기억나는 대로 해야 되는데, 나이를 먹으니 아이였을 때가 잘 떠오르지가 않는다. 거기다 어젯일이나 최근일도 아니고 오래 전 기억들은 파편처럼 흩어지고 불분명한데, 그것들 중 무엇부터 혹은 어떤 것만 선별해서 이 여자한테 전해야 하는 거지?

 

 “우선은 당신이 누군지부터 말해 보세요.”

 

 잠시 머뭇대는 나를 위해 그녀가 코치를 해준다.

 

 “내가 누군지부터?”

 

 “당신은 누구죠?”

 

 “나야 김성훈이죠.”

 

 그래. 그렇게 하자. 기본적인 것만. 애매하고 추상적인 건 빼고.

 

 “생년월일은 천구백칠십육(1976)년 칠(7)월 일(1)일이고, 여기 서울에서 태어났고, 여기 서울에서만 거의 계속 살아왔죠.”

 

 “자, 그렇게 차근차근 하시면 돼요.”

 

 여자가 내게 힘을 주려는지 미소를 지어 보인다. 진짜 미소다. 정말로 황홀한 미인의 미소. 난해하고 불안한 이 상황에서, 아이스크림이 살짝 녹아 가듯 내 기분이 좀 풀어지는 것 같다.

 

 “지금은 직장은 한무상사라는 중견기업에서 과장으로 근무 중이죠. 한 가족의 가장으로 아직은 초등학생인 남매의 아버지. 이게 현재의 접니다.”

 

 “잘 하셨어요. 이제 앉아서 해볼까요?”

 

 

 ***

 

 

 소파에 젊은 여자와 단둘이 앉아있다. 이런 흐뭇한 상황이 얼마만인지. 다만 서로 기다란 소파의 끝과 끝에 비스듬히 마주보며 앉아 있지만.

 

 슬금슬금 다가가서 가까이 붙어 앉아볼까? 그러면 좋겠는데.

 

 아니, 아니. 지금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지! 내 머리 속 메모리 중 날조된 게 있다는 데. 기자라는 이 처자와 그게 뭔지를 캐내야 한다.

 

 “저는 보통 회사원인 아버지와 일반 주부 어머니 사이에서 두 형제 중 맏이로 태어났죠. 아버지, 어머니 두 분 다 경기도 출신이고요. 참고로 동생은 두 살 밑이고, 지금은 치킨집 자영업을 하고 있죠. 장사가 고만고만한데 자릿세 때문에 접을까 고민 중입니다.”

 

 여자가 요구한 대로 내 생애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한다. 매혹적이지만 오늘 처음 본 이 여자에게.

 

 “보통 평범한 가정 애들이 그렇듯, 일곱 살 때 유치원에 일 년 정도 다녔죠. 유치원 이름은 한별이었고요. 몇 년 전 거기를 우연히 가본 적 있는데 그때 기억이 더 선명하군요. 그게 최근이니까. 당시 이곳이 이렇게 작았었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꼬맹이일 때는 세상이 참 커 보였죠. 작은 집도, 좁은 골목길도, 그닥 크지 않은 유치원도 어릴 때는 큰 세계였죠.”

 

 어린이였을 때는 회상하니 나름 감상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국민학교는 ‘천일’을 다녔습니다. 아, 내가 다닐 땐 초등학교가 아니라 국민학교였죠. 아마도 아가씨가 다닐 때 중간에 초등학교라 바뀌었을 거예요. 그쵸? 하여튼 낭만이 있던 즐거운 시절이었죠. 육년이라는 긴 시간이었고. 너무 오래 전이라 단편적인 일들만 기억나지만. 근데 일일이 다 얘기를 해야 됩니까? 떠오르는 갖가지 여러 일들을.”

 

 정확힌 일들이라기 보단 단편적인 이미지들로만 떠오르는 당시의 기억들이지만.

 

 “아뇨. 시간이 너무 길어질 테니까 그것까진 됐어요. 성훈씨가 지금껏 어떻게 살아왔나를 간략하게 소개해주세요.”

 

 “그렇죠. 그럼 되겠죠.”

 

 여자가 긍정적인 낯으로 끄덕여 준다. 내 부담을 덜어준다.

 

 여자가 맘에 든다. 십년 동안 실망만 쌓여 초창기 사랑을 식혀버린 아내가 아니라 새롭고 싱싱한 그녀가 차라리 짝이었으면 어떨까 또 망상을 한다.

 

 “계속 얘기해 주시겠어요?”

 

 그 딴생각에 뜸을 들였다. 내 맘속을 들켰나? 음흉한 속마음을. 여자는 우두커니 지그시 나를 지켜보고 있다. 이 여자, 꽤나 차분하다.

 

 “국민학교 다음은 중학교죠. 중학교 입학할 때는 먼저 두려웠었죠. 작은 동심의 세계에서 준어른이 되는 세계. 어른이 됐다 착각하는 시절. 그런 게 요새 말하는 중이(2)병인지도. 당시 무서워 보이는 아이들이 나타났고, 같은 학우들 사이에서 서열이 정해졌죠. 어른들한테만 아니라 반동기들에게도 드센 것 같은 녀석들에게 찍히지 않고 순응을 해야 했죠.”

 

 “그게 무슨 얘긴가요? 반 안에서 서열이 생겼다는 게”

 

 “여자시니까 잘 이해가 안 갈 수도 있겠군요. 남자들의 세계가 좀 그렇습니다. 나름 짚어 보자면, 어른이 됐다 착각한 소년들의 세계죠. 어리숙한 것들이 어설프게 사회를 만드는 것. 그게 청소년들의 학교죠.”

 

 중2병에 관한 내 의견은 됐고, 중학생이던 당시 사실을 전달해야지.

 

 “어쨌든 그런 시기에 마침 전학을 갔습니다. 아버지가 회사에서 발령이 나 본래 다니던 학교에서 한학기도 못 채우고 지방으로 갔죠. 남쪽으로 말이에요. 이후 이년 뒤에 다시 돌아왔지만. 처음엔 금광중에 다녔고, 다시 여기 돌아와선 영흥중을 새로 다녔죠. 되돌아온 건 삼학년 끝무렵이군요. 서울서 초중고를 다 졸업했지만, 중학생 시기는 실상 오래 있지 못했죠.”

 

 여자가 녹음기를 만지작댄다. 내가 생애 소개를 하기 전에 우리 사이 소파 위 쿠션에 덩그러니 놓아둔 녹음기를 말이다. 손을 대는 모습이 나름 애지중지하는 듯하다.

 

 ‘내 얘길 정말 듣는 건가?’

 

 얼핏 봐선 어느새 시큰둥해하는 게 아닌가 싶다.

 

 내가 잠시 말을 끊어서인가? 고갤 들어 나를 본다. 둘이 눈이 마주친다. 그녀의 눈빛에서 이어서 하라는 신호를 감지한다.

 

 “고등학교는 서덕고를 다녔죠. 그때서야 비로소 입시를 준비했습니다. 놀기만 하다 드디어 공부지옥을 체험했죠. 나 때는 아직 조기교육이 그닥 많지 않았죠. 지금은 아내가 제법 극성을 부립니다만, 그래도 경제적 여건은 넉넉치 않고 애들 성적도 평범하니 그닥……. 어쨌든 그 시절 공부를 열심히 해봤는데, 그 시기면 열심히 안 하는 애가 없겠지만, 특출나게 잘하는 과목도 없고 성적은 딱 중간이었죠. 1, 2등은커녕 반에서 10등 안에 든 적도 없었습니다. 시험을 보면 반에서 두 자리 등수. 전교에선 세 자리로 나왔죠.”

 

 고등학교 다음은 대학이겠군. 미성년에서 성년이 된 때기도 하지.

 

 “성적이 어중간하니 좋은 대학이나 학과는 어림없었고, 눈치를 봐서 되는 대로 갔죠. 지잡대까진 아니고 다행히 인(in)서울은 했어요. 다만 잡대긴 했지만. 지잡대는 아니고 서울잡대. 이사대라고, 거기 경영학과를 나왔습니다.”

 

 “어른이 되신 거네요.”

 

 “네, 그렇죠. 성년이 되고서 처음엔 자유를 만끽했습니다. 그 기분 알죠? 근데 그것도 잠시였죠. 일이(1,2)학년 때 놀러 다니기만 하다 삼(3)학년 되고부터 부랴부랴 학점 관리하고, 취업할려고 아등바등하게 됐죠.”

 

 “당연히 군대도 가셨고요?”

 

 “졸업 직전에 갔죠. 강원도 최전방 북쪽 추운 곳으로 갔습니다. 양구라고 거기서 일반 보병으로 근무했죠.”

 

 “아내 분은 언제 어떻게 만나셨을까요?”

 

 “요즘은 일반 연애로 결혼하는 경우가 많은 듯한데, 저는 아내를 선자리를 통해 만났습니다. 취직 이후에 친척분의 소개로 알게 됐죠. 사랑이란 게 티비나 영화처럼 낭만적이지 않을까 기대도 했고, 아내를 만나기 이전에 열정적인 연애들도 해봤지만 사랑이란 게 현실은 녹록치 않더군요. 아내도 당시 보고 반했다기보다는, 이후 좀 만나 보면서 그냥 같이 지내면 괜찮다고 생각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거죠.”

 

 “결혼 이후는요?”

 

 “열심히 살았죠. 나를 위해서도, 아내를 위해서도 ‘아닌’, 자식들을 위해서. 사실 와이프와의 사랑은 몇 년 지나 금방 식었죠. 근데 그사이에 자식이 생기니 거기에 묶여서 서로를 용인하며 살아가게 됐죠. 지금까지. 아가씨는 아직 미혼인 듯한데, 나중에 결혼하고 애를 낳아 보면 무슨 말인지 수긍이 갈 겁니다.”

 

 긴 날숨과 함께 장황한 내 생애 얘기를 일단 접는다. 침을 삼키고 목젖을 매만지며 호흡을 가다듬는다.

 

 내 생애를 어찌 됐든 개략적으로 푸념하듯이 혹은 자조(自嘲)하듯이 풀어냈다. 참 만족스럽지 않은 삶이다. 근데 내가 한 얘기 중 잘못된 게 있다는 건가? 아니면 감춰진 게 있다는 건가? 내가 부른 ‘기억을 조작하는 이들’에 의해. 이 여자는 어떤 해답을 줄까? 아니 해결을 해줄 수나 있나?

 

 “질문들을 좀 해도 될까요?”

 

 “그렇게 하세요.”

 

 그녀가 수첩을 꺼낸다. 나를 향한 쪽으로 펼쳐 들어 본다. 수첩이 그녀의 눈 밑 얼굴 하부(下部)를 가린다. 내 시야에서. 이 나쁜 수첩.

 

 근데 수첩으로 인해 복면을 한 듯 보이는 얼굴 상단도 매혹적이다. 눈매도 사근사근한 게 남정네 가슴을 사로잡는다.

 

 눈과 그 주위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 그녀의 시선은 종이들에 향해 있어 빤히 감상하기 좋으니, 다시 보니 이젠 참 좋은 수첩이다.

 

 “인상적인 기억이 있나요?”

 

 수첩을 그렇게 들여다보고 한다는 게 모호한 질문이다. 거기 써 있는 건 뭐지?

 

 어쨌든 사람의 기억이란 게 불분명하지만 방대하기도 하다. 내 살아온 날이 사십년. 일수로 쳐도 365에…… 아니 계산이 힘드니까 사백으로 치고 곱하면…… 어…… 16,000일이네. 여지껏 만 번 넘게 일어나고 자고, 그 중 절반 이상은 이른 아침에 등교하고 출근해왔다. 그런 가짓수 많은 삶에서 인상적인 거라니.

 

 “가령 어렸을 때 큰 사고를 겪었다거나? 다들 한 번 이상은 사건사고를 경험하잖아요?”

 

 구체적으로 집어는 준다.

 

 어릴 때라…… 2~30년 전인데. 그 시절에……

 

 “국민학교 일이학년 정도 때, 미아가 될 뻔한 적이 있었죠. 휴일에 가족끼리 놀이공원에 놀러갔는데, 당시 인파가 너무 많아 가족들을 놓쳐버리고는 길 한복판에서 엉엉 쉬지 않고 울어댄 적이 있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수근수근하는데 어찌나 무섭던지, 어린애일 때라 별의별 생각이 들더군요. 이러다 영영 못 보는 건 아닐까? 엄마아빠가 날 버린 건 아닌가? 이렇게 혼자 있다 나중에 누가 날 납치하지나 않을까? 그러다 공원 직원으로 보이던 남자분이 절 사무실에 데려다주셨죠. 거기서도 계속 울고만 있다 아마 한두 시간 정도 후에야 가족들을 다시 만났죠. 이년 전에 막내아들을 쇼핑몰에서 잠깐 잃었던 적이 있어 그 일이 근래 자주 생각나더군요. 참고로 막내는 금방 찾았습니다. 지금은 제 때와 달리 미아 찾기 시스템 잘되어 있으니깐요.”

 

 여자가 별 반응이 없다. 응답만 없는 게 아니라 얼굴 표정도 뭔가 안 풀린다는 듯 다소 꽁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다른 질문을 할께요. 처음 사랑을 나눈 사람, 기억하세요?”

 

 처음? 사랑?

 

 “당연한 걸 수 있지만, 지금 아내는 제 첫사랑이 아닙니다.”

 

 “그거야 알죠.”

 

 그녀가 여유롭게 맞장구를 친다.

 

 “성훈씨가 어렸을 때, 다른 여자와 사랑을 나눈 경험을 묻고 있는 거예요.”

 

 이번에도 어렸을 때네.

 

 “고등학생일 때 짝사랑을 한 적이 있죠. 같은 반에 얼굴도 예쁘고, 공부도 잘하고, 집이 돈도 많은 퀸카가 있었죠. 무엇보다도 예뻤죠. 반할만큼. 당신처럼. 근데 저는 급이 안 됐어요. 평범했으니까. 당장도 그렇지만. 그 시기면 입시 공부로 여유가 없을 때기도 했지만, 평범한 이에게 연애는 어차피 사치였죠. 짝사랑만 하다 진짜 사랑을 할려면 눈을 낮춰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깨달음 덕인지 몰라도 대학교는 때 씨씨(CC)로 실제 연애를 했습니다. 같은 동기를 사귀는데 성공한 거죠. 그때가 진짜 첫사랑이었죠. 하아, 돌이켜 보면 참 좋은 때였습니다. 하지만 한때고 추억일 뿐이죠. 아가씨는 동의할런지는 모르지만, 사랑이란 게 티비,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낭만적이지 않더군요. 낭만으로 사랑을 시작했지만, 그런 사랑은 나중에 현실에 가로막히더군요. 일 년 정도 지나 서로 간의 불만이 계속 쌓여가더니, 한번 크게 대판 싸우고는 완전히 헤어졌죠. 첫 연애다 보니 각자 간의 기대가 컸던 게 문제였다고 봅니다. 이후에는 기대도 낮춰가면서 교제를 했고, 지금에 이르게 됐죠. 뭐, 그렇다고 지금의 아내와 결혼한 걸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불만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어쩌면 더 안 좋은 여자랑 결혼했을지도 모르잖아요.”

 

 “남에게 상처를 준 기억은 없나요?”

 

 쉴 틈도 없이 질문을 또 갖다 붙인다.

 

 근데 왜 이런 질문들을 계속하는 거지? 도대체 무슨 꿍꿍이지? 이런 질문들로 내 기억 속에 꾸며지거나 감춰진 진실이란 걸 찾을 수 있나?

 

 “상처라……. 우선 부모님이죠. 제가 커서 직장생활도 해보고, 자식들도 직접 길러보니 아버지, 어머니가 절 기를 때 얼마나 힘들었을지 실감이 되더군요. 어렸을 때 말썽들을 피워 고생시킨 게 너무도 죄송스럽더군요.”

 

 “잠깐만요. 가족이 아니라 타인이요. 가족 아닌 다른 사람에게 크게 피해를 준 기억이요?”

 

 질문이 노골적인데, 이 여자 혹시 아는 게 있나?

 

 “굳이 그렇게 물어보면……, 군대에 있을 때군요. 지금은 군대가 관련 예능도 나올 만큼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제 때는 여전히 구타가 심했어요. 이병, 일병일 때 상병 고참들에게 시시때때로 얻어맞아서, 제가 고참이 되면 내 후임한테는 손찌검을 절대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죠. 근데 막상 고참이 되니 말입니다. 고문관이라고 알죠?”

 

 그녀가 끄덕인다. 여자인데도 그걸 아는군. 나름 기자라선가.

 

 “윗사람 입장이 직접 돼보니 멍청하게 구는 후임들이 한심하게 보이더군요. 저도 자제한다 자제하자 했지만, 빡돌면 어쩔 수 없이 구타를 하게 됐죠. 그래도 살살했습니다. 절 패다시피한 고참들이나 다른 동기들에 비하면 말이죠. 그래도 때린 건 때린 거니까. 울리기도 했고.”

 

 “또 다른 건 없나요?”

 

 “글쎄요? …… 큰 건 아니고 자잘한 건 많지요. 근데 살면서 남한테 피해를 안 주고 살긴 어렵지 않습니까? 적어도 전 큰 피해를 준적은 없습니다.”

 

 “정말인가요?”

 

 “예.”

 

 음? 이 여자가 이걸 가지고 왠지 꼬치꼬치 캐묻는 것 같은 느낌인데.

 

 “남을 울린 기억은 없나요?”

 

 “흐음. 아버지, 어머니, 동생. 가족들을 울리기 한 적은 좀 있죠. 제가 못 되게 굴어서.”

 

 “가족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요?”

 

 이번에도 다른 사람 타령이네.

 

 “연애할 때 여자를 울린 적도 있고, 아내도 결혼 전부터 지금까지도 몇 번 울린 적 있습니다. 그치만 그만큼 저도 운 적이 많습니다.”

 

 “그 외에는요?”

 

 “아까 얘기한 군대 후임들이 있죠.”

 

 왜 이 여잔 이번엔 남 울린 걸 집요하게 파고드는 건지? 답변은 앞서 군대 후임까지로 멈췄지만, 머릿속으로 다른 이는 없었는지 되짚어본다.

 

 아, 애들을 혼내면서 울린 적이 있었지. 근데 지금은 나름 커서 근래에는 딱히 울린 적이……. 이젠 쉽게 울 애도 아니고.

 

 어라? 가만. 딸아이를 울린 적이 있었어. 최근인가? 그것도 방 안에서. 컴컴한데서. 딸은 바닥에 누워있고 질질 짜며 울고 있다. 근데 그런 경우는 없었는데……. 곧 중학교 들어갈 만큼 큰 딸을 누워 울릴 만한 일이 있나? 이건 제대로 된 기억이 아니야. 그냥 착각이나 망상 아니면 헛된 이미지인가?

 

 “첫키스는 언제 하셨죠?”

 

 고민을 정리할 새도 없이 이 여자가 또 치고 들어온다.

 

 “아내와의 첫키스인가요?”

 

 “아뇨.”

 

 “그렇다면 그건 언제였지. 아, 중학교 때였군요.”

 

 키스라는 말에 동해, 여자의 입술을 슬쩍 본다. 호리하고 훤칠한 게 제법 고혹적이다.

 

 “여자의 알몸을 처음 본 적은 언제인가요?”

 

 “네, 알몸이요?”

 

 “예. 여자의 나체요.”

 

 외간 여자의 입에서 그런 단어들이 너무 당당히 튀어 나온다.

 

 무슨 질문이 이러지? 여자의 눈을 본다. 물러섬이나 부끄러움은 없어 보인다. 오히려 의연한 그녀의 눈빛에 일단은 뭐라 답변을 해야 할 것 같다.

 

 “야동에서 본 거를 얘기 하는 겁니까? 아니면 갓난애일 때 목욕하면서 어머니 몸을 본 것도 괜찮나요?”

 

 솔직히 질문이 어이가 없기에 실실거리며 우선 반문한다.

 

 “영상이나 가족이 아닌 다른 여자의 실제 알몸이요.”

 

 그녀의 질문에 흔들림 같은 건 없다.

 

 “글쎄요?”

 

 “언젠지 기억이 안 난다는 건가요?”

 

 “네. 실은 한두 번이 아니니까요.”

 

 너무 뻔뻔한 대답인가? 여자가 부끄러워하거나 날 경멸하진 않을까? 아니, 이 여자는 철면피네. 낯빛에서 어떠한 수줍음도 없다. 떳떳함만 있을 뿐.

 

 하긴 나이가 들면 성적 농담을 자유롭게 할 수 있긴 하지. 이 여자도 나이가 있는데, 근데 지금은 그럴만한 자리는 아니잖아?

 

 “첫 성관계는요? 첫 관계를 한 여자의 모습 기억하나요?”

 

 아니, 보자보자 하니까. 근데, 이 여자 설마…… 날 유혹이라도 하는 건가?

 

 “질문이 좀 그렇군요. 그런 질문들이 꼭 필요합니까? 혹시 뭘 알고 이러는 겁니까?”

 

 “진짜로 기억 안 나나요?”

 

 이 여자에게 후퇴는 없다. 남자였으면 딱 장군감이네.

 

 “그것도 기억 안 납니다.”

 

 다소 정색하며 회피하듯이 답한다.

 

 알몸이라고 하니 그녀의 몸매를 가늠해본다. 체구가 크진 않지만 나름 볼륨감도 있어 보이고 허리도 들어가 있는 게, 들여다 볼 수 있다면 볼만 할 듯하다. 그럴 수는 없겠지만.

 

 나참, 이런 상황에서 처음 보는 여자 몸이나 생각하고 자빠졌으니 내가 한심한 건가? 아니, 남자라면 당연한 건가? 아내라는 한 여자에게 질린 중년 남자라면.

 

 “맞아요.”

 

 “맞다고요? 뭐가 맞다는 거죠.”

 

 “아까 물으신 질문이요. 사실 전 이미 알고 있어요, 진실을.”

 

 뭐야? 이미 다 알고 있었다고. 이 여자가 여태껏 날 갖고 논 건가?

 

 “당신이 스스로 떠올리길 바랐는데, 당신의 무의식은 그걸 감춰두고 싶어 하는군요.”

 

 뭐? 내가 감췄다고?

 

 “평범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말했을 정보를 당신은 교묘히 숨겼죠.”

 

 “제가 숨겼다고요? 제가 말하면서 일부러 숨긴 건 없습니다. 맹세코 말입니다.”

 

 “그래요. 어쩌면 당신 스스로는 인지 못했을 수 있어요. 그렇더라도 당신의 깊숙한 욕망은 조작된 기억을, 감춘 기억을 보호하려고 나름 우회를 했다고 할까요. 그러면서 당신은 스스로 모순을 드러내고 말았어요. 성훈씨가 말한 생애에는 모순이 있어요.”

 

 “뭐라고요? 감췄다고요? 모순이 있다고요? 제 삶에 무슨……, 그저 평범한 삶일 뿐인데.”

 

 “아니요. 그렇지 않아요. 지금부터는 제가 직접 알려드리죠. 본인마저 부인하고 싶어 하는 당신의 실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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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그 이름 (前) - 和 2016 / 10 / 28 571 0 6477   
20 난 평범한 사람이다 (下) - 사람 2016 / 10 / 27 640 0 7176   
19 난 평범한 사람이다 (中) - 삶 2016 / 10 / 26 747 0 9385   
18 난 평범한 사람이다 (上) - 하루 2016 / 10 / 25 596 0 8148   
17 누군가의 거짓말 七 박은수 2016 / 10 / 24 566 0 9808   
16 누군가의 거짓말 六 서순하 2016 / 10 / 22 575 0 6754   
15 누군가의 거짓말 五 심대주 2016 / 10 / 20 528 0 8377   
14 누군가의 거짓말 四 정명진 2016 / 10 / 18 686 0 8212   
13 누군가의 거짓말 三 심경미 2016 / 10 / 16 611 0 8954   
12 누군가의 거짓말 二 심대빈 2016 / 10 / 14 640 0 7538   
11 누군가의 거짓말 一 임재용 2016 / 10 / 12 484 0 8363   
10 그 사람이 숨기는 것 - 마지막 날, 亡人 (下) 2016 / 10 / 10 585 0 8803   
9 그 사람이 숨기는 것 - 마지막 날, 亡人 (中) 2016 / 10 / 7 593 0 7580   
8 그 사람이 숨기는 것 - 마지막 날, 亡人 (上) 2016 / 10 / 4 593 0 8392   
7 그 사람이 숨기는 것 - 둘째 날, 그녀 (後) 2016 / 10 / 1 527 0 9509   
6 그 사람이 숨기는 것 - 둘째 날, 그녀 (前) 2016 / 9 / 28 470 0 8676   
5 그 사람이 숨기는 것 - 첫째 날, 그 (後) 2016 / 9 / 25 453 0 6916   
4 그 사람이 숨기는 것 - 첫째 날, 그 (前) 2016 / 9 / 22 489 0 8498   
3 당신의 ○○은 ○○됐습니다 (下) - 전말 2016 / 9 / 19 499 0 11782   
2 당신의 ○○은 ○○됐습니다 (中) - 추리 2016 / 9 / 16 492 0 6133   
1 당신의 ○○은 ○○됐습니다 (上) - 단서 2016 / 9 / 13 1107 0 9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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