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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최면술사
작가 : HUNHUNHAN
작품등록일 : 2016.9.13

당신의 '○○'은 '○○'됐습니다.(!!)

강력한 최면 능력을 이용해 타인의 ○○을 ○○할 수 있는 '술사'와 이에 맞서 추리를 통해 그 ○○된 ○○을 깨뜨리는 '탐정' 간의 대결을 다룬 이색 스릴러.


서른을 갓 넘긴 여성 '일애'는 남편과의 사이에서 오랫동안 아이가 없자 별거하여 혼자 사는 중이다. 홀로 살기엔 집이 크다고 생각한 그녀는 동생이 소개시켜준 '라영'이라는 여자에게 집을 팔려고 한다. 동생과 함께 온 라영에게 집 안을 안내하고 아무 일 없이 집 구경이 끝날 즈음, 라영 그녀가 일애에게 뜻밖의 얘길 꺼낸다.

"사실 저는 당신이 숨기고 있는 진실을 밝히러 왔어요. 그런데 그 진실이란 게 지금의 당신은 모르는 거죠. 당장은 이해가 안 되시겠지만, 일애 당신 스스로가 자기 자신에게 그 진실을 감춘 거예요."

일애는 라영의 말이 이해가 안 됐지만, 이후 라영은 그녀가 알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사실들을 속속들이 밝혀낸다. 새로운 진실들에 혼란스러워하는 일애 앞으로 라영의 파트너로 보이는 남자가 새로이 등장하고, 그 남자는 그녀에게 이 혼란스런 상황을 정리할 결정적인 말 한마디를 건넨다.

"당신의 ○○은 ○○됐습니다."

 
난 평범한 사람이다 (下) - 사람
작성일 : 16-10-27 17:12     조회 : 563     추천 : 0     분량 : 7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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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려준다고? 내 무의식이 숨긴 기억을, 이 여자가. 그녀가 정말 알고는 있는 건가? 내 조작된 기억이 무엇인지, 내 기억 속 생애 중에 감춰진 게 어떤 건지.

 

 애초 그들에 의해 내 기억이 바뀌었단 사실이 실감이 안 간다.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닌가? 아니, 이렇게 생생한데. 이건 꿈이 아닌 현실이다.

 

 이제 그녀가 밝힐 거다. 지금의 내가 모르는 진실을, 과거의 내가 어떠했는지를, 혹은 내가 진정 누군지를.

 

 무섭군. 그런데 그 사실이란 게 설마 나쁜 걸까? 그녀가 풍기는 뉘앙스가 불안불안하긴 하지.

 

 하지만……, 어쩌면…… 반대일 지도 몰라. 드라마에서 출생의 비밀이 드러나는 것처럼, 히어로 영화에서 주인공이 특별한 능력을 갖게 되거나 아니면 초인적 힘이 나타나는 것처럼.

 

 하긴 평범하지 않다는 건 비범하다는 것 아니겠어. 나름 기대를 해보면, 이 지긋지긋한 평범한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단초가 튀어나올 수도 있지. 그녀의 입에서.

 

 그녀가 뜸을 들이네, 마음 졸이게. 똘망똘망한 눈으로 나를 지켜보기만 한다. 내 반응을 고대하는 건가?

 

 어? 머릿속에 또 그 장면이 떠오른다.

 

 깜깜한 방 안. 한복판에 서 있는 나, 내 앞에 드러누워 흐느끼고 있는 딸아이.

 

 근데 방바닥에 딸이 온통 발가벗고 있다. 이게 뭐야?

 

 게다가 내 맞은편에는 꼿꼿이 선 채로 날 지그시 바라보는 아들놈이 있다. 나와 똑바로 눈을 마주치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현재보다 키가 더 큰 거 같다.

 

 막내만 있는 게 아니다.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남자아이들이 방을 울타리처럼 둘러치고 있다. 족히 스무 명은 넘어 보이는 녀석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한데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조명 없는 방 안에 실루엣만 눈에 띈 채 우두커니 유령처럼 있다.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다.

 

 왜 이때에 이런 이미지가 불현듯 연상되는 거지?

 

 난 딸을 알몸으로 눕힌 적도, 그것도 저 많은 남자아이들과 함께 있은 적은 없다. 더욱이 내 아들과 같이 말이다.

 

 도대체 무슨 기억이야? 아니, 이건 환상이겠지. 실제일 수가 없잖아.

 

 “성훈씨 본인이 크게 잘못하거나 실수해서 남한테 너무 미안하거나 후회되는 일은 없었나요?”

 

 뭔 얘기지? 아는 사실이나 바로 알려 줄 것이지.

 

 “아까 성훈씨 얘기를 돌이켜 볼 때, 당장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요.”

 

 뭐라 답을 못하고 입술만 뭉그적거린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크게 후회하는 일이 있죠. 가령 저의 경우, 얼마 전 친한 선배한테 알리지 말아야 할 사실을 알려서 그녀를 크게 상심하게 만든 적이 있어요. 꽁꽁 덮어둔 과거 일을 괜히 끄집어내서요. 그 일로 인해 제가 여기까지 온 셈이군요.”

 

 무슨 애기지? 이 여자도 사연이 있는 건가? 하긴 기억을 조작하는 것들을 쫓는다는 게 여간 범상한 일은 아니지.

 

 “평범한 이라면 한두 번은 크게 실수를 하고 후회를 해요. 사람은 어느 이건 완벽하지 않으니까. 그런데 성훈씨는 그런 게 없어요. 자기는 도덕적으로 흠 없는 인간이라고 여기고 있달까요?”

 

 “미안하지만 아가씨 말에 좀 비약이 있는 듯하군요. 저도 살아오면서 후회가 없진 않습니다. 부모님이나 아내, 자식들에게 미안하다 생각한 적들은 많죠. 단, 인생에서 바로 얘기할 만한 큰 후회거리가 없긴 하지만. 그렇다고 절 평범하지 않다고 매도하는 건 사리(事理)에 맞지 않다고 판단되는군요.”

 

 내 나름 조리 있는 논박(論駁)에 그녀가 순순히 끄덕끄덕댄다.

 

 “어쩌면 성훈씨 의견이 옳을 수도요. 그렇지만 애석하게도 당신은 거기 해당하지 않아요. 당신은 큰 죄를 지었어요.”

 

 죄? 내가 죄인이라는 건가? 아무리 기억을 조작했다고 해도 죄라고 할 정도의 사안(事案)이면 내가 기억을 못해낼 리가.

 

 “그런 큰 죄도 지워버리는 게 그들이죠. 그게 그들의 힘이에요.”

 

 그녀가 자세를 고쳐 잡는다.

 

 “하나하나씩 짚어 볼까요? 진실을.”

 

 드디어 시작이군.

 

 “먼저 당신이 당연히 말해야 했는데, 하지 않은 것부터.”

 

 “난 내 삶을 남김없이 말했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차례대로.”

 

 “다닌 학교를 순서대로 언급했었죠.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일일이 명칭도요. 한별 유치원, 천일 국민학교, 금광 중학교와 영흥 중학교, 고등학교는 서덕, 대학은 이사대.”

 

 그것들을 낱낱이 잘도 기억을 하는 군. 아니면 사전에 알고 있던 건가?

 

 “그런데 한 가지를 공교롭게 말하지 않고 그냥 넘어갔죠. 언급했어야 마땅한 것을요.”

 

 “해서 제가 뭘 빼먹었다는 거죠?”

 

 그녀가 나를 곧게 보며 답한다.

 

 “중학교요. 전학을 가서 외지에서 다닌 중학교의 이름을요. 왜 일양이란 지방도시에서 세성중을 다녔다는 걸 말도 않고 넘긴 거죠? 한학기도 안 채운 서울의 중학교들은 꼬박꼬박 챙겼으면서. 그리고 군 근무를 양구에 했다면서 지역도 얘기를 했는데, 전학을 간 곳이 일양이라는 것은 왜 설명에서 제외했죠?”

 

 뭐야? 내가 그냥 깜빡한 거 아닌가?

 

 가만, …… 근데 말야. 그런데 말이지. 그녀 말대로 내가 고작 2, 3개월만 다닌 금광, 영흥중은 얘기했으면서 전학 간 도시와 중학생 시절 대부분을 보낸 그곳 학교 이름을 왜 지나친 거지? 너무 과민반응인가? 그녀의 지적질에 좀 지나치게 고민하는 건가?

 

 “그렇게 무의식적으로 태연히 넘겨버렸겠죠. 그 시절, 성훈씨가 아까 말한, 본인이 어른이 된 거라 착각한 중학생이던 때에 그곳에 자신이 있었단 걸 묻어 둘려고.”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조금 흔들린다.

 

 “그것만이 아니에요. 당신의 설명엔 모순도 존재했어요.”

 

 “그건 대체 뭡니까?”

 

 시들하게 묻는다.

 

 “첫사랑이 대학교 때라고 했죠. 씨씨(CC)였다고. 그런데 첫키스를 한 건 중학생일 때라고 했어요. 대관절 누구와 첫키스를 한 건가요? 게다가 마침 중학교에 다닐 적이네요.”

 

 응? 진짜로 괴이하네. 따지고 보면, 그녀의 말이 일리가 있다. 내가 여자와 사귄 게 대학생 때부턴데, 어떻게 중학생 때 외간 여자와 키스를 할 수가 있지? 어떻게? 그걸 처음 한 게 중학교 다닐 때인 건 분명한데, 기억이 안 난다. 누구와 언제 어떻게 했는지가. 그런데 그걸 까먹어 버릴 수 있나?

 

 내 의문이 어떻건 그녀의 파훼는 계속된다.

 

 “그리고 정상적인 ‘남성’이 다른 여자의 실제 알몸을 처음 본 상황하고 첫 성관계 경험을 제대로 기억 못한다는 게 말이 되나요? 혹여 경험이 많다 해도, 맨 처음 한 건 어느 누구든 쉽게 잊혀질 수가 없죠. 그런 건 여자라도 당연히 떠올릴 수밖에 없는 거구요.”

 

 그녀가 한층 더 고삐를 조인다.

 

 “자 그럼 당신의 첫키스, 첫관계는 도대체 언제 어떻게였을까요?”

 

 불쾌한 적막이 흐른다. 지금껏 아름다운 외양으로 날 흡족하게 한 그녀가 이젠 그 누구보다도, 또 어느 때보다도 날 텁텁하게 한다. 가슴이 턱 막히고 뇌가 띵해진다.

 

 “이제는 한 여자에 대해 이야기를 할께요. 당신과 동갑인 여자죠.”

 

 여자 얘기라고? 왜 난데없이.

 

 “당신이 중학교를 보낸 일양 외곽에 살던 여자였죠. 친구집에 놀러갔다 우연히 재수 없게 동네 일진들에게 꼬여 불행히도 강간을 당해버렸어요. 아니 윤간이란 표현이 더 정확하겠군요.”

 

 어린 딸을 키우는 입장에서 참담한 단어들이 들린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한 번만이 아니었다는 거예요. 이후에도 협박받고 구타당하면서 수시로 불려가 한두 명, 대여섯 명도 아닌 수십 명의 중학생 남자 아이들에게 여관이나 부모가 없는 집 등에서 성폭행을 당했죠. 참 끔직하죠? 실제로 일어난 일이에요.”

 

 쓸쓸한 낯으로 날 응시하며 괜스레 물어본다.

 

 “나중에 어떻게 됐는지 알아요? 그녀가.”

 

 내가 응답하건 말건 그녀의 서술은 쉼 없이 진행된다.

 

 “일 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서야 추악한 사실들이 밝혀졌지만, 처벌은 미미하기 그지없었죠. 수십의 가해자들 중 주동자로 지목된 세 명만이 법정에 섰고, 열 명 남짓만이 겨우 자원봉사와 교화라는 가벼운 벌만 받았어요. 그 외는 훈방 조치만 있을 뿐이었죠.”

 

 그녀가 잠깐 호흡을 가다듬는다. 그리고는 마저 이어간다.

 

 “모두가 쉬쉬했어요. 평판이 떨어지는 걸 염려하는 학교 측과 자기 아이들을 어떻게든 감싸려는 학부모들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피해자인 여자아이와 그 가족이란 소수를 학교와 가해자 부모들이란 다수가 억눌러 버린 거예요. 정의가 제대로 실현되지 않았죠. 씁쓸하게도.”

 

 그녀가 나의 얼굴을 살피며 반응을 본다. 나는 이 난감한 이야기에 아직은 묵묵히 있을 뿐이다.

 

 “여자는 그 뒤에도 오랫동안 후유증에 시달렸어요. 성인이 돼서도 정신과 치료를 끊임없이 받아야 했죠. 애초 가정환경도 안 좋아 커서도 기초생활 수급을 받아야 했어요. 수사나 처벌이 유야무야됐으니 피해 보상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죠. 그나마 받은 합의금도 알콜 중독자인 아버지와 그쪽 친지들이 쓱싹 챙겨가 버려서, 정작 피해 당사자에겐 아무 돈도 가기 않았어요. 상급 학교 진학이나 학교를 계속 다니는 것도 쉽지 않았고요. 어디서든 소문이 퍼져서 전학과 이사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녀가 불쌍한 여자의 장황한 사연 줄거리를 마치고 내 눈을 똑바로 쏘아본다.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알아요?”

 

 내가 알 도리가 있나? 답은 애당초 그녀의 몫이다.

 

 “아예 실종됐어요. 이십대 중반에 갑자기 홀로 사라져버렸죠. 어머니와 동생을 두고서. 십년도 넘었네요. 현재는 어디서 잘 살고 있는지는커녕 살아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이죠.”

 

 어째 됐든 실종을 했다니 안쓰러운 인생이군.

 

 “그녀는 중학생 때 겪은 일 이후론 평범하게 살 수가 없었어요. 한데 가해자들 중 처벌 받은 세 명은 소년원에서 일이년 있다 나오고, 나머지 가담자 대다수는 어떤 벌도 아무 반성도 없이, 흘러가는 세상에 묻혀가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었죠. 근데 이제는 그 추악한 기억마저 지워서 자신의 삶을 평범했던 것처럼 위장하려 하더군요.”

 

 결정타다. 이게 그녀가 알고 있던 나의 삶인가? 더럽기 짝이 없는. 즉, 내가 그 못된 가해자들 중 하나였고, 그 사실을 ‘그들’의 최면을 통해 내 머릿속에서 없애버렸다는 건가?

 

 어이가 없다. 왜 굳이 그런 기억을 최면까지 걸어가며 없앨 필요가 있단 말인가? 20년도 훨씬 넘은 오랜 과거의 일인데. 기억 조작이 실지(實地)라도 그 일이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그녀의 설명이 정말 진(眞)일까? 내 머리 안엔 이 여자가 얘기한 당시의 기억이 존재하지 않는다. 기억이 바뀐 게 아닐 수도 있고, 설사 조작된 게 있더라도 다른 걸 수도 있다.

 

 어? 여자의 얼굴이 떠오른다. 아직 덜 자란 미성년의 여자. 눈물을 얼마나 흘린 건지 얼굴이 눅눅하고, 초췌하기 그지없다.

 

 나는 그녀를 만났다. 딱 한번. 그것도 중학교 시절 일양에서. 친구를 따라 간 집의 방 안에서, 부모가 여행을 가 어른들이 없는 집에서 말이다.

 

 그곳엔 스무 명 가까운 또래 아이들이 있었고, 그녀는 어둑한 방에서 나신(裸身)로 방치되어 있었다.

 

 그날 생판 남인 여자의 알몸을 처음으로 봤다. 다른 여자와 첫키스를 했다. 그리고 ‘관계’를 최초로 경험했다.

 

 퍼즐이 맞춰진다. 그녀가 진실을 밝히기 전, 떠올랐던 이상한 이미지들. 딸의 얼굴 대신 그녀의 얼굴이, 막내가 아닌 당시 어울리던 아이들의 얼굴이, 죄의식 따윈 없는, 키드키득거리고 실실대며 희희낙락대는, 양심 따윈 없는…….

 

 현실의 내가 어느 틈에 눈을 번쩍 뜨고, 한 손으로 이마를 짚고 있다.

 

 “마침내 돌아오는 건가 보군요.”

 

 “설령 당신 말이 사실이라 쳐도, 이십년이 훨 지난 현시점에서 당시 기억을 바꿔 무슨 득이 있는 거죠?”

 

 발악한다. 부질없는 걸 이젠 아는 상태에서.

 

 “죄책감…… 아니 부끄러움 때문이죠. 당신은 지금 가장이니까. 그것도 곧 그때 그 여자와 같은 나이가 되는 딸을 가진. 당신의 딸을 보면 그 여자아이가 떠오르게 됐으니까. 딸이 커서 곧 중학생이 될 만큼 성장하면서.”

 

 설마? 그래서 망상 속 여자의 얼굴이……

 

 “어쩌면 부모의 입장이 그 많은 세월이 지나 이제서야 이해가 된 걸까요? 아니, 그 반대인가? 오히려 받아들이기가 두려웠던 걸까요?”

 

 침묵한다. 입을 굳건히 닫아버린다. 뭐라 말하고 싶지 않다. 나를 압박하는 그녀의 장단에 맞춰주기 싫다.

 

 “당신이 강간한 건 당신 딸 만한 여자 아이였어요. 그걸 알고 있는데도 진실을 계속 거부할 건가요?”

 

 단도직입적으로 날 몰아세운다.

 

 “그래서요?”

 

 이에 맞서 당돌히 한마디를 뱉어낸다. 그녀 입장에선 뻔뻔하게. 아니, 솔직히 누가 봐도 후안무치나 다름없는 짓이지.

 

 “난 여러 가해자들 중 일부였을 뿐이었어요. 그것도 딱 한번뿐이었습니다. 게다가 너무도 오래 전 일이고요. 지금은 평범한 가장일 뿐입니다, 전.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는 평범한 인간이죠.”

 

 솔직히 낯 뜨거운 변명이다.

 

 “아뇨. 당신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에요.”

 

 그녀가 바로 반박한다.

 

 “그렇다고 비범한 사람도 아니죠. 도덕적으로 완전한 사람인 것처럼 굴려고 한 파렴치한이죠. 당신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쓰레기에요. 죗값을 받지도 않았는데, 죄의식은커녕 죄에 대한 기억마저 지워버린 당신은 최악의 인간이에요.”

 

 “당신이 뭐라든 다 필요 없어. 내가 뭘 했든 과거는 과거일 뿐이야.”

 

 “과거가 과거라도, 사실 또한 사실이죠. 사실은 어차피 돌아와요. 지금처럼. 설령 기억을 조작할 수 있다 해도, 진실은 변치 않으니까.”

 

 불끈 쥔 내 주먹이 덜덜 떨린다. 아니다. 몸 전체가 주체할 수 없이 부들부들 진동한다.

 

 “이제 다 끝났네요. 제가 할 일은.”

 

 녹음기를 챙기고는 일어나 성큼성큼 현관으로 향한다. 나란 인간은 이제 안중에 없는 듯하다.

 

 “아, 이미 되돌아 온 기억은 다시 조작할 순 없어요. 알고 있죠? 한번 파훼됐다는 이순간의 기억이 각인될 테니까요. 게다가 이젠 당신만 아는 게 아니에요.”

 

 뭐라고? 아는 게 나만이 아니라고?

 

 “아내분이 이미 알고 있어요. 그랬기에 내가 당신을 이렇게 만날 수 있었던 거죠.”

 

 망신창이가 돼 풀죽은 채 앉아만 있는 내게, 그녀가 떠나기 전 최후의 몇 마디를 건넨다.

 

 “자, 이제 제대로 대면하시죠. 당신의 죄를.”

 

 그녀가 시야서 사라지고 현관문이 여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그녀가 퇴장했다. 이 집에 남은 건 나 혼자뿐이다.

 

 여자의 활약(?) 덕에 지금은 다 떠오른다. 그 기억이. 도저히 인정하고 싶지 않은 당시의 광경이.

 

 어쩌면 지금 돌아온 기억이야말로 실은 조작된 게 아닐까? 내가 그들을 불렀지만, 이 기억이야말로 꾸며진 가짜는 아닐까?

 

 더 추해지는군. 아니, 더 더러워질 데도 없는 건가? 내가 이렇게 생각해봤자 현실이 바뀌나? 심지어 아내가 알았다는데. 최악이군. 어떻게 아내를 보지? 딸은 어떻게 대해야 하지?

 

 난 악질까진 아니었어. 수십 명 중 한 명일뿐이었고 처벌을 받지도 않았다. 먼저 죄가 있는 건 나 이전에 날 부추긴 친구들이이야. 한 순간 실수 같은 걸 범했다지만, 난 이후에 열심히 살아왔어.

 

 근데 이런 내 생각을, 치졸한 자기 합리화를 아내가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줄까? 이제부터 난 어떡해야지?

 

 가족들이 머지않아 돌아올 거다. 가족들을 어찌 보지? 아내를 제대로 쳐다볼 수 있을까? 내 딸의 눈을 이전처럼 바라볼 수 있을까? 언젠간 문이 열릴 거다. 그리고 그들이 들어올 거다. 이제는 평범할 수 없는 나에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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