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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최면술사
작가 : HUNHUNHAN
작품등록일 : 2016.9.13

당신의 '○○'은 '○○'됐습니다.(!!)

강력한 최면 능력을 이용해 타인의 ○○을 ○○할 수 있는 '술사'와 이에 맞서 추리를 통해 그 ○○된 ○○을 깨뜨리는 '탐정' 간의 대결을 다룬 이색 스릴러.


서른을 갓 넘긴 여성 '일애'는 남편과의 사이에서 오랫동안 아이가 없자 별거하여 혼자 사는 중이다. 홀로 살기엔 집이 크다고 생각한 그녀는 동생이 소개시켜준 '라영'이라는 여자에게 집을 팔려고 한다. 동생과 함께 온 라영에게 집 안을 안내하고 아무 일 없이 집 구경이 끝날 즈음, 라영 그녀가 일애에게 뜻밖의 얘길 꺼낸다.

"사실 저는 당신이 숨기고 있는 진실을 밝히러 왔어요. 그런데 그 진실이란 게 지금의 당신은 모르는 거죠. 당장은 이해가 안 되시겠지만, 일애 당신 스스로가 자기 자신에게 그 진실을 감춘 거예요."

일애는 라영의 말이 이해가 안 됐지만, 이후 라영은 그녀가 알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사실들을 속속들이 밝혀낸다. 새로운 진실들에 혼란스러워하는 일애 앞으로 라영의 파트너로 보이는 남자가 새로이 등장하고, 그 남자는 그녀에게 이 혼란스런 상황을 정리할 결정적인 말 한마디를 건넨다.

"당신의 ○○은 ○○됐습니다."

 
누군가의 거짓말 七 박은수
작성일 : 16-10-24 19:44     조회 : 498     추천 : 0     분량 : 9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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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가 추리를 재개한다.

 

 “먼저 대빈씨.”

 

 큰형을 지목한다.

 

 “네?”

 

 대빈이 흠칫 놀라며 응답한다.

 

 “대빈씨는 십일(11)월 삼십(30)일날 여기 오셔서 분리수거를 했다고 하셨죠?”

 

 “네에.”

 

 대빈의 순진한 대답에 화가 빙긋 가볍게 웃는다.

 

 “이상하군요? 이 아파트 단지는 분리수거가 화목토일에만 가능하거든요. 참고로 오늘은 십이(12)월 이십이(22)일로 화요일. 분리수거가 가능한 날이죠. 저희들이 만난 여기 경비가 분리수거장에 정리를 한다고 했고, 바로 옆집 여자 분은 만났을 때 분리수거를 하러 가더군요. 제가 그때 옆집 여자에게 물어봤죠. 분리수거날이 계속 그랬냐고. 바뀐 적은 없냐고. 그러더니 내내 똑같았다고 하더군요. 근데 서순하씨가 돌아가시기 직전 날, 여러분이 여기 모였다고 하는 십일(11)월 삼십(30)일입니다. 바로 월요일이죠. 월요일이면 분리수거장이 문을 안 열 텐데 어떻게 분리수거를 할 수가 있었죠? 참 이상하단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이에 대빈이 당혹해 하지만 차근히 답변한다.

 

 “제 기억은 분명 그날 분리수거를 했습니다. 수거장이 열려 있었다구요.”

 

 “당신의 기억만이 그런 거죠.”

 

 화가 간단히 논박(論駁)한다.

 

 “그리고 하나 더. 그때 난에 물을 줬다 했죠? 당장 화단에 가보시죠?”

 

 화의 지시에 따라 대빈이 자리서 일어나 화단이 있는 베란다 앞으로 가본다.

 

 보니 화단에 꽃들이 한가득하다. 정확힌 꽃만으로 가득하다. 화와 라영이 이전에 대주와 들어와 봤던 것처럼 난은 화단에도 그 앞 화분들에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난이 없죠. 오늘 제가 처음 들어왔을 때도 그 상태였습니다. 당시 같이 들어 온 동생에게 물어봤죠. 어머니가 죽은 이후 집 안에 바뀐 게 있냐고. 그러더니 바뀐 건 하나도 없다고 하더군요. 분명하게 말이죠. 아마도 어머니는 투신하시기 전에 난들을 주변 이웃에게 처분하셨을 겁니다. 그녀와 친하게 지냈던 할머니가 본인이 관리하기 힘든 물품들을 정리했다고 얘기해주시더군요. 즉, 대빈씨가 그날 저녁 분리수거를 했고 난에 물을 줬다는 건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된다. 이거죠.”

 

 대빈이 혼란스러운지 눈이 처지고 긴 숨을 힘없이 내뱉는다.

 

 “그럴리가요? 제 머릿속은 확실하게 그렇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날 분리수거를 하고 난에 물을 줬습니다. 제 기억은 분명 그렇습니다.”

 

 “그거야 그 기억은 당신 께 아니니까요. 그 녀석이 만든 거니까요.”

 

 “그럼 대빈씨인 겁니까? 거짓말을 한 그 누군가가, 기억이 조작된 당사자가.”

 

 재용이 끼어든다. 이에 화가 담담히 답한다.

 

 “아닙니다.”

 

 “아니라니요?”

 

 “기억을 조작한 이는 대빈씨만이 아닙니다. 그 누군가는 사실 혼자가 아닙니다.”

 

 “혼자가 아니라니요. 그럼 더 있다는 겁니까?”

 

 “예. 기억이 조작된 이는, 아니 거짓말을 한 이는 여기 세 사람 전부입니다.”

 

 “뭐라구요!”

 

 재용이 놀람에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크게 외친다. 반면에 당사자인 세 남매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돼 묵묵부답이다. 라영이 촬영하는 카메라 화면으로 거실에 있는 모든 이가 충격 때문인 건지 순간 정지된 것처럼 보인다.

 

 “경미씨.”

 

 다음은 경미를 추궁하려 한다.

 

 “네에? 저요?”

 

 경미가 흠칫 놀라 답한다. 화가 추궁을 시작한다.

 

 “제가 낮에 찾아뵜을 때 어머니 얼굴이 인상적이었다고 하셨죠? 주름살과 흰머리 때문에.”

 

 “네. 그랬죠.”

 

 화의 추리에 나름 설복된 건지, 그 내용의 임팩트 때문이지 방금 전 기세는 어디가고 고분고분해졌다.

 

 “그것 참 괴상하군요. 아까 언급한 정명진 할머니가 사고 날 그제에, 여러분이 만났다는 날에는 어제가 되겠죠, 당신 어머니하고 미용실에서 같이 염색을 하셨다는 군요. 그것도 검은색 흑발로.”

 

 얘길 듣는 경미의 눈이 초점을 잃어간다.

 

 “어떻게 해야 검은색 머리가 하루 만에 흰색으로 바뀔 수 있죠? 마술이라도 부린 거랍니까? 아니면 굳이 검게 염색한 걸 다음날 바로 흰색으로 바꿔 염색을 한 겁니까?”

 

 경미뿐 아니라 화를 제외한 거실 안 모든 이가 그의 추리를 경청(傾聽)한다.

 

 “이것만이 아닙니다. 하나 더 있습니다. 어머니 얼굴에서 주름살과 흰머리 빼곤 다른 특이점은 없다고 했죠. 근데 역시 정할머니가 얘기해주시더군요. 여러분이 만났다는 당일 점심에 죽을 가져다주면서 얼굴을 봤는데, 광대 부위에 상처가 생겨 큰 밴드를 붙였다고요.”

 

 화가 자신의 광대를 직접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그것도 그날 아침에 얻은 상처라고.”

 

 그리고 아무 반응 없이 멍해 있는 경미에게 결정타를 날린다.

 

 “그날 어머니의 얼굴을 정말 보긴 했습니까?”

 

 경미가 망연한 얼굴에서 입만 벌린 채 미동도 안하는 상태서 대답 대신 눈물을 한줄기 주르륵 흘린다.

 

 “이건 경미씨만 아닙니다. 대주씨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도 이상이 없었다고 했죠. 어머니의 얼굴이.”

 

 화가 그러면서 굳어 있는 경미는 냅두고 대주에게 시선을 돌린다. 대주는 그 어떤 말도 부인(否認)도 않고 그저 두 눈을 질끈 감는다.

 

 “거짓말을 한 거죠. 대빈씨만 아니라 경미씨, 대주씨. 세 남매 모두가 거짓말을 한 겁니다.”

 

 “그럼 어떻게 된 겁니까?”

 

 재용이 채근(採根)한다.

 

 “무슨 의미일까요?”

 

 화가 되묻는다. 그러고는 자기가 곧장 답한다.

 

 “분리수거, 난에 물주기, 어머니의 흰머리와 밴드 없는 얼굴. 앞서 설명했지만, 십일(11)월 삼십(30)일 당시 저녁에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죠. 그렇다면 조작된 건 어떤 걸까요? 여러분들의 기억에서. 바꾸어진 건 무엇일까요?”

 

 모두가 주시한다.

 

 “조작된 건 ‘시간’이죠. 여러분들이 모이고 만난 시간. 여러분들이 그날 했다고 기억한 건 사실 이전의 일들입니다. 즉, 첫 번째 모임이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여러분 세 남매와 당신들 어머니가 여기서 모였습니다. 바로 그 때의 기억을 두 번째 모임으로 옮긴 겁니다. 그 첫 때는 십일(11)월 오(5)일로 목요일이니 분리수거가 가능하죠. 난을 처분하기 전이었을테니 물을 줄 수가 있죠. 어머니가 염색을 하기 전이었으니 흰머리가 보였을 것이고, 다치기도 전이니 얼굴에 생채기 하나 없었겠죠. 그래요, 이제는 알아챘겠지만, 두 번째 모임 같은 건 없었습니다. 십일(11)월 삼십(30)일 그날 저녁에 여기엔 아무도 없었어요. 오직 어머니 서순하씨만 있었죠. 그녀가 그날 여기서 마주한건 여러 번 전화를 걸 만큼 보고 싶은 자식들이 아니라 자기만 홀로 여기 있다는 고독이었죠. 싸늘한 고독. 남편의 죽음으로 심적으로 힘든 그녀에게 자신을 위로해줄 자식들이 없었습니다. 그게 그녀가 한밤에 옥상으로 올라간 이유입니다. 이렇게 앞뒤가 맞아떨어지죠. 이게 진상입니다.”

 

 또다시 적막이 흐른다. 녹화 중인 라영도 화의 추리를 듣느라 정신이 없었는지 캠코더의 초점이 엉망이 됐다. 전원이 뭐라 말하지 못하고 침묵하는 가운데, 머잖아 경미가 이를 깬다.

 

 “그럴 리가 없어! 절대로! 내 기억은 확실해. 너무도 선명한 기억인데. 그 때 마지막으로 본 어머니의 얼굴. 그건 조작된 게 아냐! 조작된 것일 수 없어. 지금도 또렷하게 떠오르는데.”

 

 경미가 히스테리 부리듯 흐느끼면서 부르짖는다.

 

 “얼굴이 조작된 건 아니죠. 단, 그 얼굴을 본 건 그날이 아니었던 거죠. 그날 당신은 여기 없었습니다. 어머니만 이곳에 쓸쓸히 있었죠.”

 

 울컥한 경미가 화에게 덤벼들어 멱살을 잡는다. 재용이 그녀를 제지한다.

 

 “다 꾸며낸 말이야! 우리가 거짓말하는 게 아니라 니 말이 거짓이야! 그래야 해!”

 

 전혀 주눅 들지 않은, 덤덤한 화가 반격한다.

 

 “그러면 첫 번째 모임과 두 번째 모임에서 조금이라도 다른 게 있었나요? 두 번째 모임이 실제로 있었다면 약간이라도 달랐던 게 있을 텐데. 재방송도 아니고 말이죠. 있다면 지금 당장 얘기해 보세요. 왜 말이 없죠? 어머니 얼굴은 달랐나요? 아니면 다 똑같았나요? 마치 복사한 것처럼?”

 

 경미가 입은 못 열고 상기된 두 눈으로 노려만 볼 뿐이다.

 

 “그만해, 경미야.”

 

 대신 대빈이 입을 연다. 차분하게.

 

 “맞아. 그의 말이.”

 

 “오빠?”

 

 대빈이 서글프지만 찬찬하게 얘길 꺼낸다.

 

 “이제 기억이 나군요. 그 남자가. 너도 기억나잖아? 여기서였어. 그 남자가 있었고 같이 온 안경 쓴 중년 남자도 있었지.”

 

 대빈이 입술을 깨물면서 고개를 푹 숙인다. 이어 경미가 풀썩 바닥에 주저앉으며 울음을 터뜨린다.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그래선 안 되는 건데. 우리는 화목했어. 부족할 게 없었다고. 그러니까…… 그러니까 어머니가 그렇게 죽었다는 건 말이 안 돼. 자살을 했다는 건 안 돼. 그것도 우리 때문에.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어. 그게 사실이면 안 되는 거라구!”

 

 대빈과 재용이 경미를 부축해 소파에 다시 앉힌다. 그런 누나의 풀죽은 모습을 멀찍이서 보는 대주의 눈에서도 물줄기가 흘러나온다.

 

 “그게 문제였던 거군요. 화목해 보이는 가정이었기에. 모자람이 없어 보이는 가정이었기에. 그랬기에 그런 비극을 지우고 싶었던 것이죠. 이전에 가족끼리 어떻게 지냈든 살아왔든 어머니의 죽음은 지워지지 않을 멍에로 남을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러니 지워버리고 싶었겠죠. 어머니가 자살을 택했단 진실을. 하지만 이 세상에 완벽한 건 없습니다. 완벽한 삶도, 완벽한 가족도, 그리고 완벽한 기억도.”

 

 화가 침통과 침묵에 잠긴 거실 안 이들을 한명씩 둘러보며 긴 얘기를 마무리 짓는다.

 

 “진실을 부인하면 안 됩니다. 진실은 영원히 덮을 수 없어요. 언젠간 돌아오게 되니까요. 이렇게.”

 

 대빈이 경미를 끌어안아 보듬으면서 위로한다. 대주는 양 눈에서 새어나오는 물들을 주체하지 못하고 한 손으로 틀어막는다. 재용은 근심스런 얼굴로 잠자코 기다리며, 이제야 말을 다 마친 화는 나름 지쳤는지 깊은 한숨과 함께 소파 등받이에 뒷목을 푹 기댄다. 이 모든 걸 찍던 라영이 이제야 다 끝났다 판단한 건지 캠코더 모니터를 접으면서 녹화를 종료한다.

 

 

 ***

 

 

 까만 창공에 별들이 잘 보이는 겨울 밤. 너무 늦은 시간인지 아파트에는 불 꺼진 집이 훨씬 많다.

 

 그 아파트 뒤 산책로. 화, 라영이 낮에 경비와 얘길 나눴던 곳이자 서순하가 추락한 지점인 그 곳. 근처 벤치에 라영과 화가 함께 앉아있다. 늦은 밤이라선지 둘을 제외하고는 주위에 누구도 없다.

 

 한밤에 둘만 있는 남녀라서일까? 서로 서먹서먹 말없이 있을 뿐이다.

 

 아파트를 마주한 산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하도 어두워 산의 능선만이 실루엣처럼 비쳐질 뿐.

 

 그나마 산등성이 너머로 보이는 고가도로가 가로등과 달리는 차들의 빛들로 눈에 선히 들어온다. 체증 따윈 없는 야밤 도로를 지나치게 속 시원히 내지르는 차체들의 굉음도 간간히 이 멀리까지 퍼진다. 밤이라서 소리가 더욱 잘 전달되는 것이리라.

 

 “이렇게 나와 있어도 괜찮을까요?”

 

 이윽고 라영이 입을 뗀다.

 

 “뒷수습은 임과장과 그들 남매에게 맡겨도 충분해. 밤바람이나 쐬면서 머리나 좀 식히자고.”

 

 화가 드문드문 불이 켜진 고층 아파트 호실 중 높이 있는 곳 하나를 가리킨다. 아마도 그들이 방금까지 있었던 집일 것이다.

 

 “담배는 안 피워요?”

 

 라영이 대뜸 묻는다.

 

 “담배 연기 싫다며.”

 

 화가 툭 뱉은 그 몇 마디에 라영이 화색을 띠며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그의 얼굴을 뚫어지게 본다.

 

 그러나 화는 정면에 캄캄한 아파트 1층 창들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다. 아니면 일부러 그녀와 눈 맞추는 걸 피하려 그러는 걸지도.

 

 “절 위해서예요?”

 

 라영이 또 묻는다.

 

 “뭔 개소리야? 당신 잔소리 듣기 싫어서지.”

 

 성내듯이, 굳이 큰소리로 답하는 화.

 

 그렇지만 라영은 전혀 기분 나빠하지 않는다. 아마도 저 말은 거짓이리라.

 

 ‘이 인간은 나한테 거짓말하는 게 서툴러. 재밌게도.’

 

 그렇게 속으로 생각한다. 고개를 살짝 숙여 살그머니 웃는 걸 숨긴 채.

 

 “기자 양반이 부끄럼을 타시나봐. 얼굴이 빨개지는 게.”

 

 느닷없이 화가 말을 내뱉는다. 이번엔 그가 라영의 얼굴을 뻔히 보면서.

 

 “뭔 개소리예요? 추워서 그런 거예요!”

 

 화가 그랬듯 소리 높여 되받아치는 라영. 하지만 더 벌게지는 얼굴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러셔요?”

 

 화가 실실 쪼갠다.

 

 “근데 아직도 고발인은 오리무중이네요.”

 

 난감한 라영이 얘깃거리를 교묘히 돌리려 한다.

 

 “혹시 대주씨를 만나기 전 아파트 주민들 중에 있던 건 아닐까요?”

 

 자기가 던진 질문을 그가 제발 물어라 맘속으로 간곡히 빈다. 다행히도 그가 문다. 결정적인 해답과 함께.

 

 “아니. 고발자는 방금 전 우리와 함께 있었어. 저 집에서.”

 

 “네? 그럼 설마 재용씨?”

 

 예기치 못한 대답에 놀란 라영이 눈을 끔벅끔벅댄다.

 

 “아니지. 일개 보험사 직원이 뭘 알겠어? 그가 기억을 조작하는 녀석을 알 일이 있겠어?”

 

 “그럼 설마 남매들 중에 있었다는 건가요?”

 

 “그래. 난 아까 전에 진상을 밝힐 때 남매 전부가 기억이 조작됐다고 하진 않았어. 정확히는 모두가 ‘거짓말을 했다.’고 했지. 모르고 거짓말을 한 자 말고도 알고도 거짓말을 한 이도 있었어. 그 남매들 중에. 그렇죠? 심대주씨.”

 

 화가 마지막 마디를 또렷이 말하며 고갤 크게 옆으로 돌린다. 라영이 화의 시선을 따라서 거의 뒤쪽을 돌아보면, 언제 온 건지 대주가 벤치 뒤편에 그들 몰래 가만히 서 있다. 잔디밭 위에서 양손을 주머니에 집어넣은 채로.

 

 “대주씨는 당시의 어머니 얼굴은 몰랐지만. 그날 밤 이곳 아파트에서 벌어진 일들을 알고 있었거든. 정씨 할머니가 전해준 전복죽이라든가, 경비가 야간 순찰 중에 봤던 요란한 외제차라든가. 그 차를 자신이 집을 떠나면서 봤다지만 아마도……”

 

 “실은 집에 왔을 때 본 거죠.”

 

 대주가 화의 설명을 대신 매듭지으며 자신의 위치를, 벤치의 그들이 쉽게 볼 수 있는, 산책로 위로 옮긴다.

 

 “실제 집에 들어온 건 새벽 한두 쯤이었을 거예요. 어머니가 죽기 전이었는지 아니었는지조차도 모르겠군요. 당시에 잔뜩 취해서 시간관념이 전혀 없었으니까. 동거녀와 헤어지고 난 뒤라 제정신이 아니었죠.”

 

 말 곳곳에 적적함이 묻어나지만, 사실을 알리면 알릴수록 그의 마음이 한편으론 홀가분해지는 듯도 하다.

 

 그가 고개를 뒤로 젖혀 아파트 건물 위쪽을 올려다보는데, 형과 누나가 아직 남아있을 집을 보는지 아니면 옥상을 보는 건지는 분간할 수가 없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어머니는 자고 있을 거라고만 생각했죠. 그래서 나름 조용하게 들어갔는데, 취해서 제대로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이후 출출해서 먹을 걸 찾다 냄비에 죽이 담긴 걸 발견했었죠. 주방에만 불을 키고 가스레인지 불도 켜서 살짝 데워서 먹었습니다. 그렇게 죽을 먹는데 식탁 위에 종이가 한 장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게 눈에 들어오더군요.”

 

 “유서였군요.”

 

 “네. 그걸 읽고 나서야 사태를 파악했습니다. 취기가 단박에 깨더군요. 혹시나 하고 집 안을 뒤져보니 어머니가 정말로 안 계시더군요. 곧바로 건물 밖으로 뛰쳐나갔죠. 아파트 건물을 빙 둘러보는데 이미 늦었더군요. 바로 이곳에 경찰들이 둘러싸여 있더군요. 시신이 발견된 겁니다. 뭘 하기엔 너무도 늦어버린 거였죠.”

 

 “왜 그때 현장에서 바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셨죠?”

 

 라영이 묻는다.

 

 “당시 충격이 엄청 컸습니다. 무지 두려웠어요. 아버지처럼 일반적인 병사 같은 게 아니었으니까. 추락사에다가 투신자살이니. 게다가 제가 술에 취한 상태라는 것도 문제였습니다. 정신은 돌아왔지만 진동하는 술 냄새를 여전히 제가 직접 맡을 수 있는 정도였습니다. 그런 모습을 어머니 시체 앞에서 그것도 다른 사람들에게 내보인다는 게 너무 수치스러울 거란 생각이 들더군요. 어차피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술을 깨고 나서 나타나야겠다 판단하고는 우선 형, 누나에게 알리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자살이라는 걸 당장 밝히기도 그래서 유서를 챙기고 나중에 형과 누나에게만 몰래 얘기를 했죠.”

 

 “그 과정에서 세 남매가 어머니의 유서를 숨기기로 한 거군요. 어머니의 죽음이 자살이란 증거가 될 문서를.”

 

 “네. 형하고 누나 둘 다 우선 비밀로 하자고 하더라구요. 자살을 했다는 사실을 일단 숨기자. 드러내봤자 좋을 게 없으니까. 저도 마지못해 동의했죠. 딴에는 자괴감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희 모두.”

 

 “그러다 기억까지 바꿔버린 거군요.”

 

 “매형이 성형의(醫)지만 주변에 정신과 의사들을 알고 있었죠. 그들 중 누군가 박은수 원장을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그들’을 알려줬죠.”

 

 “화씨의 번호를 알고 있던 게 박은수 원장 때문이었군요. 그런데 왜 굳이 기억까지 뜯어고친 거죠?”

 

 “우선 누나 때문이었어요. 그녀가 가장 많이 동요했거든요. 누나는 어려서부터 어머니를 싫어했지만, 그렇다고 증오한 건 아니었으니까요. 마음엔 안 들었지만 사랑은 했으니까. 어쩌면 어머니를 닮아 여리거나 예민해서 일지도. 단, 어머니처럼 순하지는 않지만. 여하튼 어머니의 최후가 그리됐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하더군요. 그런 기억을 죽을 때까지 안고 가야 한다는 걸 계속 부인하려 하더군요. 그리해서 바꾸게 된 겁니다. 기억마저.”

 

 “그런데 그녀만 기억을 바꾼 게 아니라 큰형님도 같이 하셨네요?”

 

 “형도 처음엔 내키진 않았지만, 누나를 따라서 하기로 했죠. 형이나 저나 결과적으로 그자들의 위력을 과소평가한 셈이었습니다. 그 기억을 조작한다는 게 단순히 심리치료를 하는 정도로만 짐작했죠. 그들을 만난 이후에 상황은 마치 꿈을 꾸는 게 아닌가, 내가 딴 세상에 있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누나도, 심지어 형도 너무 태연하게 구는 게 아니겠습니까? 어머니가 자살을 했다는 진실을 지운 채. 그 전날 저녁에 우리가 다 모였다 착각하면서. 완전히 딴 사람들처럼 굴더군요.”

 

 “대주씨만 정상이었던 거네요.”

 

 “애초 조작이 불가능했지. 다른 남매는 기억을 어머니가 죽기 전날 세 남매와 어머니가 모였다는 암시를 전제로, 첫 번째 모임의 기억들을 실제론 존재하지 않은 두 번째 모임으로 치환하면 됐거든. 그렇지만 여기 대주씨는 그날 밤 진짜로 여기에 왔으니까. 바로 그날의 기억이 서로 상충해버릴 수 있으니 기억의 재구성이 어려울 수 있었겠지. 거기다 대주씨는 유서를 읽었을 테지만 다른 자식들은 읽지 않았겠지. 그렇죠?”

 

 정리를 한 화가 대주에게 확인 차 묻는다.

 

 “네. 맞습니다. 형하고 누나 둘 다 도저히 읽을 엄두를 못 내더군요.”

 

 “대빈과 경미가 어머니의 유서를 읽었다면 그 내용이 머릿속에 각인돼서 최면을 통한 기억의 재구성이 더 어려웠을 거야. 아니, 아예 불가능했겠지. 어떤 암시로도 어머니가 죽기 전 남긴 글의 내용을 덮을 순 없을 테니까. 그게 여기 대주씨가 기억을 조작할 수 없던 또 다른 이유고.”

 

 “그리고 만약을 대비해 정상적인 기억을 가진 이가 필요하기도 했죠.”

 

 대주가 부연(敷衍)한다.

 

 “그런데 대주씨가 그걸 깨뜨려 버린 거네요. 우릴 불러서.”

 

 “저만 정상이었으니까요. 더 이상 진실을 외면하고 있는 형과 누나를 보고 있을 수만 없더군요. 제 스스로가 너무도 창피하게 느껴졌어요. 해서 그들을 잘못된 기억에서 구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됐죠.”

 

 “당신은 진실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화가 보탠다.

 

 “왜 투서를 보낸 거죠? 직접 우리들한테 연락을 취하지 않고요.”

 

 “완전히 믿을 수는 없었으니까요. 그들이 한 짓을 파헤치고 되돌린다는 당신들이 실은 한패일 수 있지 않을까 의심이 되더군요. 그들의 능력을 실감한 뒤로는 누구도 쉬이 믿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은 그 의심이 진즉에 풀렸지만요.”

 

 자신이 아는 진상을 전부 풀어낸, 가슴 속 짐을 털어낸 그가 마지막으로 몇 마디를 덧붙인다. 진심을 담아서.

 

 “감사합니다. 두 분 다.”

 

 화와 라영이 입으로 답은 않지만 대신 눈빛과 미소로 듬직하게 회답한다.

 

 “이렇게 모든 게 풀렸군요. 박은수 원장은 저번도 그렇고 그녀 이름이 제법 언급되네요.”

 

 라영이 기지개를 펴며 말한다.

 

 “그녀가 녀석을 위해 뿌린 ‘씨앗들’이 많으니까.”

 

 “하지만 현시점에서 그녀는 우리 편이죠.”

 

 “그래. 지금은 우리를 돕고 있고, 또 우리로선 아주 중요한 조력자지. 그 녀석을 뒤쫓을. 조만간 그녀를 또 만나러 가봐야 할 것 같아.”

 

 “음, 그러게요?”

 

 “응. 그녀는 좋은 ‘매개’가 될 수 있으니까. 오늘처럼 가짜가 아닌 진짜 그 녀석을 눈앞에 마주하게 할 수 있는 ‘다리’가. 어쩌면 녀석은 그녀가 우리와 손을 잡았다는 걸 모를 지도 몰라. 그렇다면 녀석이 조만간 그녀 앞에 모습을 다시 드러낼지도 모르지. 꽁꽁 자신을 감춰 자취마저 숨긴 그 녀석이.”

 

 화가 말을 마치고 저 위를 올려다본다. 라영과 대주도 그를 따라 고개를 들어 바라본다. 그들 각자가 보는 게 방금 전에 함께 있던 그 집인지, 서순하가 마지막으로 발을 디딘 옥상인지, 아니면 별들로 가득한, 차갑지만 아름다운 겨울 밤하늘인지는 알 길이 없다. 어쩌면 모두 다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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