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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최면술사
작가 : HUNHUNHAN
작품등록일 : 2016.9.13

당신의 '○○'은 '○○'됐습니다.(!!)

강력한 최면 능력을 이용해 타인의 ○○을 ○○할 수 있는 '술사'와 이에 맞서 추리를 통해 그 ○○된 ○○을 깨뜨리는 '탐정' 간의 대결을 다룬 이색 스릴러.


서른을 갓 넘긴 여성 '일애'는 남편과의 사이에서 오랫동안 아이가 없자 별거하여 혼자 사는 중이다. 홀로 살기엔 집이 크다고 생각한 그녀는 동생이 소개시켜준 '라영'이라는 여자에게 집을 팔려고 한다. 동생과 함께 온 라영에게 집 안을 안내하고 아무 일 없이 집 구경이 끝날 즈음, 라영 그녀가 일애에게 뜻밖의 얘길 꺼낸다.

"사실 저는 당신이 숨기고 있는 진실을 밝히러 왔어요. 그런데 그 진실이란 게 지금의 당신은 모르는 거죠. 당장은 이해가 안 되시겠지만, 일애 당신 스스로가 자기 자신에게 그 진실을 감춘 거예요."

일애는 라영의 말이 이해가 안 됐지만, 이후 라영은 그녀가 알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사실들을 속속들이 밝혀낸다. 새로운 진실들에 혼란스러워하는 일애 앞으로 라영의 파트너로 보이는 남자가 새로이 등장하고, 그 남자는 그녀에게 이 혼란스런 상황을 정리할 결정적인 말 한마디를 건넨다.

"당신의 ○○은 ○○됐습니다."

 
누군가의 거짓말 六 서순하
작성일 : 16-10-22 17:02     조회 : 574     추천 : 0     분량 : 6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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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당 안. 한저녁 때라선지 사람이 많은 한식당 안 테이블에서 화와 라영이 마주 앉아 곰탕을 먹는 중이다.

 

 남녀가 서로 식사하는 모습이 그들의 외양과는 전혀 반대다. 라영은 우걱우걱 냠냠 쩝쩝 선머슴처럼 날래게 먹어댄다. 고운 외모나 아담한 몸과는 딴판이다. 화도 우람한 체구와 달리 조금조금 천천히 음미하듯이 먹고 있다.

 

 의외로 대식가인 라영의 뚝배기 그릇이 뚝딱 비었다. 반면에 화는 국도 남았고 밥그릇도 절반 정도 남겨져 있다.

 

 “다 먹은 건가요? 입맛이 없는 건가요?”

 

 라영이 음식물을 아직 입에 문 채로 묻는다.

 

 “당신은 그렇게 먹어대고도 살이 안 찌는군.”

 

 “저는 암만 먹어도 살이 안 쪄요.”

 

 햄스터마냥 양 볼이 불룩한 채 깜찍하게 끄덕끄덕하는 라영.

 

 “나와 반대군. 난 조금만 먹어도 살이 쉽게 찌거든. 그래서 보통 절반만 먹지.”

 

 “겉보기와 다르네요. 요새 입맛이 없어서 그런 건줄 알았는데.”

 

 “겉과 속이 똑같으란 법은 없지. 이 몸보다 이 머리가 더 유별난 것처럼.”

 

 건장한 어깨를 힘주어 펴고 손가락 끝으론 이마를 대면서 의기양양하게 말한다.

 

 “그럼 그 머리로 퍼즐은 다 맞춰졌어요?”

 

 “이미 다 맞췄어.”

 

 “정말요? 고발자가 누군지도 알아냈고요?”

 

 “응. 그것도 알아냈지. 아까 그 집에서 모든 결론이 나왔거든. 눈치 채지 못한 건가?”

 

 화의 당당한 태도에 심술이 난 건지, 그래서 굳이 말을 하지 않으려는 건지 답변 대신 우선 물컵을 들이킨다.

 

 “좋아요. 거짓말하는 건 누구예요? 세 남매 중에.”

 

 “그건 차차 알려 드릴께. 셜록은 작품 마지막에 진상을 밝히잖아. 오히려 당면 문제는 무슨 방법으로 진실을 밝힐 것인가야. 어떤 식으로. 만에 하나 그 녀석이 때맞춰 확 나타나 준다면 딱 좋겠는데 말야. 그 녀석이.”

 

 화가 손으로 턱을 괴고 잠깐 생각에 잠긴다. 그러다 라영을 빤히 바라보면서 뭔가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띠우더니 벌떡 일어난다.

 

 “이만 일어나자고. 먹성 좋은 우리 먹보 왓슨 양.”

 

 라영이 지지 않고 대꾸한다.

 

 “그럴까요? 소식(小食) 하시는 소갈머리 좁은 셜록 씨.”

 

 

 ***

 

 

 띠리리리리, 스르륵, 철컥. 현관문이 또 열리고 화, 라영이 들어온다. 거실에서 대주와 함께 재용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소파에 앉아 있는 재용 앞 좌탁에는 흰 김이 오르는 잔이 놓여 있다. 이걸로 그가 온지는 얼마 안 된 걸로 추정할 수 있다. 옆에 간격을 두고 앉아 있는 대주 손에도 잔이 들려있다.

 

 캄캄한 밤하늘이 보이는 창을 두고 TV도 꺼둔 채 고요한 분위기에서 뭔지 모를 긴장감이 흐른다.

 

 재용이 다시 만난 화를 보고 말을 건넨다.

 

 “좀 늦었군요.”

 

 “준비할 께 있다 보니.”

 

 그러면서 라영과 눈빛을 교환한다. 라영이 계속 들고 다니던 숄더백을 꼭 쥔 채, 화장실을 가는 건지, 말없이 들어왔던 쪽으로 되돌아가 남자들의 시야에서 모습을 감춘다.

 

 그사이 화는 상석 소파에 홀로 태연히 앉는다. 대주는 화가 편찮은 건지, 잔을 놓고는 아무 말도 없이 일어서 반대편 벽 쪽으로 걸어간다.

 

 “자, 진실은 알아내셨습니까?”

 

 재용이 묻는다. 화가 답은 않고 이젠 창 근처서 서성이는 대주의 얼굴을 빤히 살핀다. 대주는 의도적으로 시선을 돌린다. 창 너머로.

 

 “알아냈죠.”

 

 좀 늦게 답하는 화.

 

 “그럼 얘기 해주실 수 있습니까?”

 

 “그건 아직입니다. 무대가 갖춰지지 않았어요. 증인들이 와아죠. 증인이면서 피의자일 수도, 아니면 피해자일 수도 있는 그들이 와야죠. 한 명은 이미 여기 있지만.”

 

 화가 대주 한 번 더 보나 아예 몸마저 돌린 채 있다.

 

 심지어 창에 비치는, 자신 쪽을 보는 화의 얼굴마저 눈을 흘기면서 외면한다. 한편, 재용은 초조한지 입술을 옹송그린다.

 

 “말로 남과 우릴 속일지라도 사실을 숨길 수는 없는 법이죠. 우리는 말에 속아 넘어간 것뿐입니다. 말이 주는 기본 전제에. 꾸며진 기억이 만든 거짓의 말에.”

 

 듣는 재용 입장에선 도통 알 수 없는 독백 같은 말이다.

 

 삑삑삑삑. 때마침 락도어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어 문이 여닫히는 소리, 발소리가 잇따르더니 이번엔 대빈과 경미가 함께 등장한다.

 

 앞장선 대빈이 거실을 차지한 세 남자들을 둘러보며 말한다.

 

 “다 온 겁니까?”

 

 “예.”

 

 재용이 답한다.

 

 “너도 왔구나.”

 

 대빈이 동생을 발견하고선 말을 건넨다. 대주는 굳이 응답하지 않고 목만 까딱한다. 경미는 본체만체 그저 눈인사만 한다.

 

 대빈과 경미가 재용이 앉은 긴 소파에 옆으로 나란히 앉는다.

 

 화가 두 남매가 앉자마자 바로 본론을 개시한다.

 

 “세 남매가 모였으니 곧장 시작하죠. 먼저 사건의 자초지종을 정리하죠. 가급적 간략하게. 두 달 전쯤 아버님인 심경호가 돌아가신 이후 여기 세 남매와 어머니 서순하씨만이 모인 모임이 있었죠. 십일(11)월 오(5)일 목요일이었죠. 편의상 첫 번째 모임으로 지칭하도록 하죠. 그 뒤 각자가 개인 사정 때문에 전부가 모일 시간이 없었죠. 대빈씨는 건설사 일로, 경미씨는 아들 수능과 입시 때문에, 그리고 막내는 동거녀 문제로 인해서. 자식들 모두가 어머니를 신경 쓸 시간이 부족했죠. 그런 가운데 십일(11)월 삼십(30)일 저녁, 이때는 월요일이었죠. 오랜만에 남매 전부와 어머님이 모인 두 번째 모임이 있었고, 이전 것에 이어 똑같은 문제로 의논을 나눴습니다. 유산 상속, 서순하씨의 거주 문제로. 그런데 그 뒤 다음날 새벽 한 두 시 경에 서순하씨는 이곳에서 추락사했습니다. 정황상 자살이 유력해 보이지만 유서가 발견되지 않았고, 저녁에 자녀분들이 뵈었을 때 그럴 조짐은 없었다고 했기에 자살이라 단정을 하기가 어려워졌죠. 이로써 서순하 씨의 죽음의 실체가 불분명해졌죠. 그러나 그것도 지금 여기까지입니다. 이제 여러분 앞에서 진실이 밝혀질 겁니다. 진실은 거짓으로 덮어도 되돌아오니까요.”

 

 “진실을 알았다고요? 참말입니까?”

 

 대빈이 묻는다.

 

 “네. 사실 아까 설명한 내용들엔 거짓이 있습니다. 아니, 방금 제가 말한 내용은 엉터리입니다. 논리적으로 말이 안 돼요. 그 설명에는 거짓이 있습니다. 그것도 너무도 큰 거짓이요.”

 

 “무슨 소립니까?”

 

 “보여주시죠.”

 

 화가 재용을 보며 지시한다. 재용이 가져온 서류가방에서 복사본 세 장을 꺼내, 직접 일어나 남매에게 일일이 건넨다. 바로 그 익명의 편지다.

 

 대빈과 경미가 글 내용이 충격적이어선지 눈을 끄게 뜨고 읽는다. 반면, 대주는 무슨 생각인지 읽는 둥 마는 둥인 듯하다.

 

 “이게 뭐죠?”

 

 요번엔 경미가 물어본다.

 

 “본대로입니다. 거기 적힌 내용이 우리가 지금 이곳에 모인 이유죠.”

 

 “우리들 중 거짓말하는 사람이 있다구요? 이해가 안 가는 군요. 저는 결단코 아닙니다.”

 

 대빈이 다소 당당하게 말한다.

 

 “거기 적힌 거짓말하는 사람도 자기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죠. 뻔뻔하게.”

 

 “도대체 무슨 얘깁니까?”

 

 “모두가 오면 설명을 시작하죠.”

 

 한동안 이어지던 말이 잠시 끊어지고 적막이 흐른다. 이윽고 그동안 별말이 없던 경미가 입을 연다.

 

 “근데 여기 모두가 온 거 아닌가요? 누굴 기다려야 한다는 거죠?”

 

 “아닙니다. 전부 온 게 아니죠. 아직 한 명이 남았습니다. 정녕 중요한 그가. 곧 모습을 드러낼 겁니다. 여기 여러분 앞에. 이제껏 꽁꽁 자신을 숨기던 그가.”

 

 화가 고갤 오른편으로 돌려 계속 일어서 있기만 한 대주를 지그시 쳐다본다. 대주가 어금니를 악물고는 이번에도 머릴 돌려 시선을 외면한다.

 

 딸깍. 빛이 사라지고 암흑에 잠긴다. 난데없이 전등불이 꺼졌다. 정전이 된 건지 거실뿐 아니라 아파트집 전체가 완전히 컴컴해졌다.

 

 헉! 숨 차는 소리들이 들려오고 모두가 당혹해하는 인기척들이 전해진다. 그러나 그들 중 오직 ‘화’만은 아무 동요 없이 가만히 앉아만 있다.

 

 “뭐죠?”

 

 “정전입니까?”

 

 “걱정 마십시오. 자리를 지키세요. 곧 그자가 나타날 겁니다.”

 

 화가 진정의 말을 한다.

 

 마침 말마따나 모퉁이에서 한 사람이 나타난다. 어두워 정확히는 볼 수는 없지만, 주변이 까맣기에 오히려 그자가 비슷한 흑색 복장을 온통 하고 있는 걸 짐작할 수 있다. 그것도 추리닝이다. 후드가 달린. 게다가 옷을 입은 이의 덩치가 작고 호리하다. 그자가 후드를 푹 눌러 써 얼굴을 가린 채 등장했다. 영락없이 화가 쫓는 ‘그 녀석’의 모습이다!

 

 꺄악! 경미가 외마디 비명을 지른다. 경미만 놀란 게 아닌지 소파가 들썩들썩이는 소리가 들린다. 대주도 충격을 받았는지 신체가 가구에 부딪힌 듯한 둔탁한 소음도 들려온다.

 

 ‘후드’가 거실과 주방의 경계쯤에서, 앉아 있는 화를 정면에서 마주하며 우두커니 멈춰 선다.

 

 “누굽니까?”

 

 화 바로 옆에 있는 재용이 묻는다.

 

 “그 녀석이죠. 여기 ‘누군가’가 저 자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저 자가 그 ‘누군가’의 기억을 조작했죠. 그렇게 그 ‘누군가’가 우리 모두에게 ‘거짓말’을 하게끔 했습니다. 자기는 진실이라고 믿는 거짓말을.”

 

 화가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 ‘후드’에게 다가간다. 미동 없이 뻣뻣이 서 있는 ‘후드’. 화가 여유롭게 두 손을 양주머니에 집어넣고는 한 걸음 한 걸음 거실을 가로질러 그자와 바로 한 발짝 앞까지 당도한다.

 

 얼굴이 보일만한 거리지만 깜깜한 조명에 고개마저 숙이고 있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다만 후드 밑으로 그나마 드러난 턱선이 여자마냥 갸름하다.

 

 화가 한쪽 입꼬리를 씨익 올린다. 지켜보는 이들이 숨을 완전히 죽이고 기다리는 가운데, 마침내 화가 남은 한 발을 내딛는다.

 

 근데 휙 그냥 지나쳐 가버린다. ‘후드’의 옆을 그대로. 그자가 온 현관 쪽으로 뚜벅뚜벅 걸어가 거실에 있는 이들의 시야에서 모습마저 감춰진다. ‘후드’는 아무 소리 없이 하염없이 서 있기만 한다.

 

 저 너머로 뭔가가 열리고 스위치 움직이는 소리가 전해진다. 아마도 현관에 있는 두꺼비집을 손대는 듯하다.

 

 딸깍. 불이 돌아오고, 후드를 뒤집어 쓴 그자는 여전히 꿋꿋이 서 있을 뿐이다. 밝은 전등 빛 아래.

 

 어느새 화가 되돌아 와 ‘후드’ 곁으로 다가간다. 약간의 움직임도 없는 후드.

 

 지금껏 화가 후드를 대하는 게, 이전에 ‘그 녀석’을 언급할 때 드러냈던 격정적이던 반응들을 고려하면 그답지 않다.

 

 “기억 안 납니까? 이자가 여러분 중 누군가의 기억을 뒤바꿔서 이 모순된 상황을 만들었죠.”

 

 “도대체 저 치가 누구라는 겁니까? 기억나지 않습니다.”

 

 대빈이 단호하게 부인한다.

 

 “차차 떠오를 겁니다. 기억의 이면에서. 꽁꽁 싸매진 무의식 속에서.”

 

 “설마 그 사람이 직접 온 겁니까?”

 

 재용이 놀라며 질문한다.

 

 “아뇨. 이 사람은 그 녀석이 아니에요. 애석하게도 말이죠. 진짜 그 녀석이었으면 지금 두발로 서 있지도 못했을 겁니다. 내 눈 앞에선 말이죠.”

 

 “그럼 저 사람은 누구죠?”

 

 “누구냐면……”

 

 화가 말을 대충 흐리고 ‘후드’의 후드를 잡아 젖힌다. 후드에 덮여 있던 고운 얼굴이 드러난다. 백옥 같은 피부에 반드러운 얼굴 곡선을 소유한…… ‘여성’이다! 오늘 내내 화와 붙어 다니던, 방금 전 그와 같이 이곳에 들어와 곧장 모습을 감춘 여인. 라영이다.

 

 제 몫을 했다는 뿌듯함 때문인지 얼굴에 만족한 미소가 만연하다.

 

 “당신은 그……”

 

 경미가 웅얼거린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대빈이 불평한다.

 

 “연극을 했죠. 여러분들 중 그 누군가가 떠올리라고, 녀석을. 당신들의 기억을 바꾼 자를. 여기 세 분 중 녀석을 본 사람이 있습니다. 분명히 말이죠.”

 

 “기억을 바꾼다니. 이게 계속 무슨 헛소리들인지. 영화를 찍습니까? 소설을 쓰는 겁니까? 당신 조사관이 맞기나 합니까?”

 

 “사실 조사관은 아니죠. 하지만 여기 임과장님의 의뢰로 진실을 밝히러 왔죠. 다시 강조하지만 당신들 중 기억이 조작된 이가 있습니다. 편지에 언급된 대로 꾸며진 기억을 믿고 거짓말을 하는 이가 말입니다.”

 

 “도저히 못 참겠어요!”

 

 경미가 날카로운 외침과 함께 벌떡 일어난다. 얼굴에 오만상과 혐오감을 잔뜩 드러내며, 그렇게 화를 한껏 쏘아본다.

 

 “이 사기꾼! 이 미친 놈!”

 

 발악하듯 악을 쏟아낸다. 그러곤 오빠에게 거칠게 역정(逆情)을 토해낸다.

 

 “더 이상 여기 못 있겠어. 가뜩이나 요새 힘들어죽겠는데. 이딴 헛소리나 들으러 어렵게 시간을 낸 게 아냐! 난 가겠어.”

 

 서둘러 백을 챙기고 뒤돌아 떠나려 든다.

 

 “잠깐!”

 

 카리스마 있는 목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진다. 그녀가 얼어붙듯이 멈춘다.

 

 “반응을 보니 당신의 머릿속도 동요하고 있는 듯하군요. 느끼고 있죠? 뭔가 수상하다는 걸.”

 

 경미가 고갤 돌려 그를 잡아먹을 듯이 째려본다. 화가 호기로운 표정으로 담담히 되받는다.

 

 “좋습니다. 가고 싶은 분은 가세요? 진상을 묻어버리고 싶으면. 그러고 싶어서 그들을 부른 거겠지만. 하지만 여러분 마음속엔 일말의 의혹이, 찝찝함이 있을 겁니다. 그것들이 느껴질 거구요. 전부 남겨두실 겁니까? 영원히요? 어차피 이 모순된 기억은 평생 지속되지 못해요. 언젠간 깨질 겁니다. 진실에서 계속 도망칠 수는 없습니다.”

 

 화의 지적이 세 남매에게 통했는지, 거실이 고요해진다. 이윽고……

 

 “일단 들어보자.”

 

 대빈이 경미를 진정시키려 말을 전한다. 오빠의 말에 동하는 그녀.

 

 “믿어도 되겠습니까?”

 

 대빈이 재용에게 묻는다.

 

 “당장 믿기지는 않으시겠지만 제가 보장하겠습니다.”

 

 “좋습니다.”

 

 대빈이 동의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인다. 누그러진 경미가 그의 옆 본래 앉았던 자리로 되돌아간다.

 

 한편, 라영은 어느 틈에 캠코더를 꺼내 와 거실 구석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꼼꼼히 촬영 중이다.

 

 좀 시간을 두고 분위가 가라앉았다고 판단한 화가 얘기를 다시 이어간다.

 

 “먼저 모순부터 밝혀야 되겠군요. 자기가 거짓말을 하고 있단 걸 깨닫게 해야겠죠. 결론부터 먼저 말하면, 서순하씨의 죽음은 우선 자살이 맞습니다. 이 사태는 모두 자살임을 숨기기 위한 데서 비롯된 겁니다. 이제 제가 그 ‘누군가의 거짓말’을 걷어내면 그날 저녁에 있던 진상이 나타날 거고 납득이 갈 겁니다. 왜 서순하씨가 그런 선택을 한 건지.”

 

 “그렇다면 거짓말을 하는 이가 누굽니까?”

 

 재용이 재촉한다.

 

 “서두르지 마세요.”

 

 화가 텀을 두고 대주를 한 번 더 본다. 이제는 피하지 않고 쌍심지를 켠 강렬한 눈빛으로 그의 눈을 마주한다. 눈망울에 어떤 열망이 있는 듯한데, 그게 어떤 것인지는 아직 분간할 수 없다.

 

 “자, 그럼 이제부터 파헤쳐볼까요? 진실을. 하나하나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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