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청혈
그래도 말도 안 해주고 보낸 괘씸함에 골려먹을까 했다. 내 표정을 읽은 건지 그는 바로 양손을 흔들어대면서 나를 말렸다.
“그, 그보다 괴도에 대한 일을 알고 싶다며. 알려줄 테니까 변해 봐.”
“말을 돌리는 건 신도 똑같구만?”
들킬 수도 있으니 커튼을 치고 문을 잠그고 어플리케이션을 눌렀다. 지난번과 같은 모습으로 변한 것을 확인하며 말했다.
“지난번에 확인 차 대충 써봤지만 어떤 식인거야?”
“급하긴, 하나씩 알려줄 테니까.”
알토가 알려준 것은 의복과 귀걸이의 활용법이었다. 귀걸이는 기본적으로 단거리 순간이동이 가능하고, 괴도로 변했을 때 딱 한번, 랜덤하게 제한시간을 두고 능력을 부여해준다고 한다. 케이프는 더미나 섬광탄과 같은 장치들을 보관하다가 꺼내는 용도, 안에 입은 기장이 긴 재킷은 외견을 바꿔주는 용도, 머리끈은 로프나 와이어 대신이라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괴도일 때는 나와 요기의 권능을 이용하는 거라서 네가 바라는 인간적인 능력 한도 내면 괴도 일에서 활용할 수 있어.”
“손에서 거미줄을 뿜는다던가? 상대 정신을 조종한다든가?”
“진짜 이상한 거부터 생각하네. 그래, 육체적, 정신적 모두 가능해. 단 이것도 너하기 나름이야. 말했다시피 네 생명력을 사용하는 거니까. 된다면 직접 준비할 수 있는 건 직접 하는 것이 좋아.”
알토의 말대로라면 가히 최강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생명력을 소진한다는 리스크, 이는 육체만이 아니라 정신 쪽도 그럴 거였다. 기능은 알았으니 남은 건 숙련도, 이는 시간이 해결해줄 테지. 알토는 이런 생각을 하는 나를 보며 말했다.
“그리고, 괴도로써 너를 숨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네 일상이야.”
그는 일상에서 인연을 만나고, 취미와 건강을 지키는 것. 이게 생명력과도 관계되고 즐거운 괴도 활동을 위해선 꼭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었다. 친구는 모르겠지만 뒤에 두 개는 지킬 수 있을 듯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 후 다음으로 넘어갔다.
“그럼 내가 찾아야 하는 신물에 대해서 알려줘, 어떻게 찾아야하는지도.”
“그건 쉬워.”
손가락을 튕기자 휴대폰 화면에서 나온 빛이 홀로그램의 형태를 띠며 눈에 비춰졌다.
“전에도 말했듯, 신과 인간이 소통하던 시절에는 신의 힘을 빌리거나 신을 직접 강림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이 신물이야. 불가침 조약이 있는 현재에는 힘을 잃은 물건이고.”
또 한 번 더 손가락을 튕기자, 붉은 색 보석 같은 게 떠올랐다.
“그리고 이게 내가 아주 오래 전에 인간에게 주었던 신물. 하지만 그 녀석의 사후, 인간들이 이걸 조각내서 제 욕심에 맞게 쓰기 시작한 거야.”
조각나서 각종 그림, 보석, 귀한 물건 등에 퍼져나간다. 이걸 본 난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그러면 애초에 안줬으면 되는 거 아니야?”
“너라면 네 눈길을 잡아끄는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지, 안 보이고 싶겠냐?”
이건 또 말이 되네. 내가 입을 다물자 알토는 다시 입을 열고 말을 이어갔다.
“아무튼, 신물이 조각난 것을 알게 된 난 동식물, 인간의 모습을 빌려 내려가서 거두기도 하고, 인간 영웅이나 역사 속 유명한 괴도들을 통해 수거해왔지만 일부는 수거하는 데 실패했어.”
시간 흐름에 따라 조각들이 모이고 일부는 물음표로 처리되는 게 보였다. 물음표인걸 보면 행방을 찾을 수 없었다는 걸까.
“네가 못 찾은 걸 내가 어떻게 찾으라는 거야?”
“가능해. 도윤이와 너는 특이한 체질이거든.”
그렇게 말한 알토는 손가락을 튕기며 화면을 끈 후 거울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신물은 에테르라고 불리는 생명 특유의 기운을 모이게 만들어. 이걸 너희는 영력 또는 신기 같은 걸로 부르는 모양이지만.”
그러고는 내 모습을 비추며 말하는 것이었다. 아, 이놈의 괴도 모습 적응 안 되네.
“그런데 아주 가끔 이 에테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애들이 태어나곤 해.”
알토는 내 주변에 불길한 색의 기운을 조금 풀어두며 말했다.
“이게 보여? 보인다면 아마 아카식 레코드에 있을 때, 내 분노에 몸이 찢기는 기분을 느꼈을 거야.”
확실히 그랬다. 그의 분노를 느꼈을 때, 전신에서 피를 쏟아내고 살이 찢기는 감각을 받았으니까. 아주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긍정을 표현했다. 알토는 기운을 갈무리 하며 입을 열었다.
“에테르에 민감한 아이일수록 타인이 못 보는 걸 보거나 느끼게 돼서 성격이 날 서거나, 내성적으로 변해. 도윤이가 그랬고, 너도 상당히 예민한 편이야.”
거울을 놓고 계속 이어서 말했다.
“하지만 밤에 에테르가 모일만한 곳이 아닌데도 비정상적으로 모이는 곳이 있으면 어떨까? 예를 들어, 밤이면 문을 닫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이라면? 그걸 네가 잡아낼 수 있다면?”
아, 대충은 이해한 거 같았다. 그렇게 비정상적인 곳에 있는 물건이 신물일 수 있으니 수거해오면 된다는 거구나. 알토는 내 얼굴을 보자 만족한 듯 은은하게 웃고 있었다.
“하지만 쉽지는 않을 거야. 팬텀 프리스트는 인지도가 높고, 알다시피 도윤이를 죽음으로 몰아간 녀석들도 주시하고 있을 거니까.”
형을 죽인 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형을 죽인 사람들의 얼굴 기억해?”
“아니, 신의 권능을 쓴 건지 아카식 레코드에도 기록이 제대로 되지 않았어.”
알토의 말에 한숨이 나와 고개를 저었다. 이래선 괴도짓을 하면서 직접 알아갈 수밖에 없는 건가. 알토가 걱정된 듯 말했다.
“너는 복수자이기 이전에 그들을 수면으로 떠오르게 할 미끼기도 해. 우리가 도와준대도 차이가 있을 거니까. 조심, 또 조심해.”
알토의 몸이 흐려지고 있는 게 보였다. 피 몇 방울로는 이정도가 한계인 모양이구나. 그가 완전히 사라지자, 동시에 괴도의 모습도 풀어지고 말았다. 그때보다도 빠르게.
“이래서 내일 온다는 거였나 보네.”
이거, 시기를 생각하는 것도 필요할 듯 했다.
쉬는 날이 지나, 다시 학교 가는 날이 돌아왔다. 오늘도 괴도 이야기로 소란하구만....... 잠시라도 쉬어두려는데 다른 이야기가 들려왔다.
“들었어? ㅇㅇ박물관에 전시된다는 청혈이라는 목걸이.”
“들었어 과거 어느 귀공자가 쓰던 건데, 그 귀공자가 죽기 전 ‘죽어서도 가문을 지키는 상징이 되겠다’라며 이 목걸이에 주술을 걸었다고 해. 그 힘이 건재해서 형태부터 온전한 상태로 유지되고 있다나 봐.”
“그래서 청혈인가?”
“이름부터 귀족을 상징한다는 푸른 피잖아? 한 번이라도 보러갈까 해.”
그러면서 다른 쪽에서도 이것과 관계되어서 이야기가 오고 갔다.
“팬텀 프리스트가 청혈을 노릴까?”
“귀한 장물부터 가치 없는 것까지 훔치곤 했으니 그러지 않을까?”
..........푹 쉬기는 그른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