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말하자, 그들은 무언가 중얼거리며 집중하기 시작했다. 눈앞에서 형의 회중시계가 모습을 바꾼다. 액체 같은 고체에서 액체로, 액체에서 기체로, 기체에서 빛의 형태로. 그리고 그 빛은 검의 형상을 하고 내 심장 쪽으로 꽂혀왔다.
아플 것이라 생각했는데 통증이 없어서 몸을 이리저리 살폈다. 이런 나를 쳐다보던 둘은 웃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렇게 무서워할 것 없어. 이게 원래 도윤이에게 맞췄던 거라 조율이 필요해서 그래.”
“옷 사이즈 잰다 생각하면 편하니까 가만있어봐.”
너희들 뭔데 이렇게 느긋하세요...... 누구라도 이런 경험을 하면 놀라서 뒤집어질 게 뻔한데. 아, 맞네. 이 꼬맹이들 신이랬지. 느긋할 만하구나. 두 사람(?)에 의해 꽂힌 빛은 몸속을 한참동안 돌아다니다가 빠져나와선 내 모습을 바꾸어 놓았다
“오, 도윤이 때랑은 느낌이 다르네.”
“형제라도 다른 법이니까.”
요기가 가져온 거울을 통해 비춰진 내 모습은 놀란 것을 넘어 경악스러웠다.
흑갈색의 머리카락과 눈은 은은한 물색으로 보석마냥 반짝였고, 입고 있던 교복은 어디가고 가톨릭 계열의 사제들이 입을 법한 검은색 의상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손에는 하얀 장갑, 발엔 검은색 구두. 길어진 머리카락은 붉은 끈이 묶어 내렸고, 귀에는 붉은색 보석을 기괴하게 감싼 귀걸이가 걸려있었다.
마치, 10년 전 한국을 뒤집어놓은 괴도 사제의 모습 그대로.
“이게 뭐야, 이게 나라고?”
“어때? 도윤이 동생이라 나름 신경 써준 건데”
요기의 말이 귀에 안 들어온다. 변한 건 둘째 치고 먼저든 생각은 이거였다.
“이 모습으로 학교를 어떻게 가라는 거야!!!!? 이 모습을 선생님에게 뭐라고 설명하고!”
어쩔 수 없는 만 16세 대한민국의 고등학생이었다. 지금까지 들은 충격적인 것들에 의한 거보다, 이걸로 정신이 나갈 거 같은 상황에 알토의 차분한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진정해. 그건 괴도일 때의 모습이니까.”
“괴도일 때?”
그러면서 가볍게 박수를 치니 원래의 내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약한 둔탁한 소리를 내며 떨어진 건
“스마트폰?”
얇고 가벼워서 들고 있는 거 같지도 않은 스마트폰이 손에 쥐어졌다.
“알토의 장난감치곤 진짜처럼 감쪽같지? 어지간한 충격이나 물에도 끄떡없어. 평소에는 그냥 휴대폰으로 쓰면 되고, 괴도가 되고 싶다면 여기.”
쳐다보던 요기가 손으로 가리킨 것은 뭔가 기괴한 별모양이 그려진 어플리케이션이었다. 시험 삼아서 누르자마자, 휴대폰은 사라지고 아까 전 그 모습으로 변해버리는 것이었다. 알토가 다가와서는 옷매무새를 정리해주면서 입을 열었다.
“이것저것 방식을 알려주고 싶지만, 지금은 시간이 아닌 거 같네.”
“왜그러는데?”
“이곳, 아카식 레코드는 시간과 공간 사이에 존재하고 모든 세계에 대한 정보가 모이는 곳이라서, 이곳의 시간은 세계와는 시간의 흐름이 전부 달라. 특히 유성, 네가 있는 곳의 시간은 벌써 밤이거든.”
“뭐라고!?”
아직 숙제며, 청소며 아무 것도 못했는데 이게 무슨 개가 짖는 말인가. 열심히 하겠다고 해놓고 처음부터 망치게 생겼다. 이런 나를 한심하게 보던 요기가 입을 열었다.
“원하면 네가 바라는 시간으로 돌려보내줄 수 있어. 하지만 그렇게 해도 되겠어?”
선택은 자유라며 바라보는 요기의 눈빛에 망설임이 생겨났다. 여기서 돌아가는 것을 택하면 다른 기회를 잃어버릴 것이고, 돌이킬 수 없겠지.
“......만약 지금의 시간으로 간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선택하기 나름이지.”
생각을 거듭하다가 문득 가짜 팬텀 프리스트의 예고장이 기억났다. 지금 시간이라면........입술이 바짝 말라왔지만 둘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냥 이대로 보내줘. 확인할 게 있어.”
“하하! 잘 선택했어, 이래야 재미있어지지!”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요기가 손가락을 튕기자, 아까 여기로 오기 전에 본 나무와 반대의 형상이 그려진 문이 나타났다. 아까와 같은 빨려드는 반응이 느껴졌지만, 이번엔 왜인지 보호받는 느낌이 들었다. 신비한 그 하얀 장소가 멀어져 가는데, 뒤에서 요기와 알토의 말이 들려왔다.
“무사히 끝나고 보자고!”
“알려줄 것이 산더미거든. 뭐, 너라면 하나씩 알아낼 거 같지만.”
참 이상하다고 느끼면서도 그대로 주변이 캄캄해지는 것을 받아들였다.
문이 열리고 뱉어지는 느낌으로 튕겨져 나와 침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혔다. 무진장 아팠지만 아파할 틈 없다. 바로 창문을 열고 뛰어내렸다. 가벼워지고 날래진 몸 상태에 놀랐지만, 지금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이란 기분이 들어 미소가 지어졌다.
“우선은 확인이 먼저야.”
가짜의 의도를, 그리고 형이 걸은 길을 확인하기 위해. 도심의 불빛과 네온사인 사이사이를 내달렸다. 예고장에 적혀있던 곳은 L빌딩의 특별전시장. 집에선 꽤나 거리가 있건만 빠르고, 그리 지치지도 않았다. 오히려 속이 뻥 뚫려서 상쾌하다 느낄 정도면 할 말 다한 거 아닌가?
“후우.......”
L빌딩 근방 건물 옥상에 도착하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건물 주변과 상공은 경찰이 쫙 깔려있다. 하긴 근 10년 이상 나라를 발칵 뒤집어놓은 도둑놈인데 눈이 안 돌아가면 그 사람이 보살이지.
“일단 들어가기는 해야 하는데.....”
이래 감시가 살벌해서는 갈 수 있을지 문제였다. 생각을 해보았다. 마법이나 마술 마냥 순간 이동할 수 있다면 어떨까, 변장을 해서 경찰들 사이에 숨어든다면? 이런 생각하다가 죽은 형의 버릇이 떠올랐다.
‘유독 귀를 만져댔지. 안 풀리던 것도 풀리는 기분이라며’
만약 그게 괴도였을 때 남은 버릇이었다면? 해볼만하다는 생각에 손이 귀걸이에 올라가고 장식부분을 천천히 매만졌다. 한번, 두 번, 세 번.
뭔가 달라졌다는 느낌에 손을 보니 모습이 흐려져 있었다.
‘투명인간?’
감각이 있는 것을 봐선 유령이 된 것은 아니었다. 그럼 일시적으로 몸이 흐려진 거라 보는 게 맞겠지. 이거라면 경찰들에게 걸리지 않을 것이었다. 왜인지 여유로운 미소가 얼굴에 지어졌다.
“좋아, 게임 시작이다.”
경찰들과 부딪히지 않게 조심해서 입구의 회전문을 이용해 들어서고, 설치되어있는 감시대는 조심히 피해 빌딩 내부로 진입했다. 올라가면서 확인하니 감시카메라도 많고 사람들도 꽤 있어서 잘못하면 들킬 염려도 있었다.
침착하게 주의에 주의를 기울여서 특별전시관에 도착했다. 딱봐도 날 훔쳐달라는 식으로 유리관에 보관된 보석들이 보였다.
“아주 훔쳐가라고 쇼를 해놨네. 재벌이라는 사람들은 다 이런가”
내가 당장 할 말은 그거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