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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묘지기 아가씨 달리아
작가 : WATERS
작품등록일 : 2020.9.26

#능력녀 #감동물 #묘지기 #악령퇴치 #악마퇴치 #헌신남 #다정남


죽음의 신은 외눈을 잃었고, 왕국은 삼백 년 전부터 망자들이 저승에 들어가지 못해 기어다니는 황야가 되어버렸다. 머스그레이브 일가의 묘지기인 달리아 머스그레이브는 인간을 배신하고 악령의 편에 붙은 자신의 아버지를 처단하러 황야를 건너 왕도로 향한다.

표지 일러스트 : Waifu Labs
추신 : 좌하단의 붉은 로고는 Waifu Labs의 로고입니다. 인공지능 기반의 캐릭터 포트레이트 작성 사이트로, 출판사가 아닙니다...

 
원정 (4)
작성일 : 20-09-30 17:40     조회 : 300     추천 : 0     분량 : 6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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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화

 

 

 실비아 영지는 그셀바처럼 삼엄한 경비에 두터운 벽을 가진 대영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도 그들 나름의 성벽을 갖추고 있었고, 내려닫는 창살문으로 출입을 관리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경비병의 수는 그셀바보다 많지 않아도, 군기만큼은 제대로 잡혀 있었다.

 

 다만 그들은 오면서 아무 소리도 외치지 않았다.

 

 “…?”

 

 브리택이 전신에 긴장을 돋웠고, 달리아도 괜히 등의 칼자루를 만지작거렸다. 그들은 충분히 다가온 다음에야 입을 열었다.

 

 “너무 경계하지 마십시오. 지금 저희 영지가 그리 밝은 분위기가 아닙니다.”

 “그게 무슨 뜻이죠?”

 

 달리아가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이 영지 또한 살아는 있지만 정상적이진 못한 모양이었다.

 

 “…실비아 영지에 ‘배반자’의 영혼이 잠들어 있다는 걸 아십니까?”

 

 안토니오 그레이스톤의 영혼이 실비아 영지에 묶여 있다는 것을 달리아는 이제서야 기억해냈다. 그리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 영지에서도 무사히 지나가진 못할 것 같았다.

 

 “배반자 안토니오 그레이스톤의 영혼이 깨어나기라도 했나요?”

 “아뇨, 그건 아닌데….”

 

 달리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때 끝내지 못한 매듭을 끊겠다면서, 그레이스톤 가문의 묘지기께서 와 계신 상태입니다.”

 “…네?”

 

 악마의 영혼을 영구히 소멸시키는 영면 의식을 거행하기 위해 왔다고? 달리아가 아무리 바깥의 소식에 대해 무지하다지만 그것은 한 명의 묘지기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언제나 묘지기는 그 가문에 단 한 명 뿐이다.

 

 “…혼자 와 계신가요?”

 “그렇습니다만…?”

 

 불길한 바람이 영지 쪽에서 확 불어왔다. 브리택도, 달리아도 미간을 찌푸렸다. 경비병들은 느끼지 못했겠지만, 묘지기견과 묘지기는 알 수 있었다. 이건 위험했다. 위험해도 너무 위험했다. 아니, 위험한 걸 넘어 불가능한 일을 무모하게 덤비고 있는 것이었다.

 

 “혹시 지금 의식을 거행하시나요?”

 “그렇…습니다만…?”

 

 달리아는 등자로 브리택의 옆구리를 툭 찼다. 그는 바로 알아들었다. 브리택은 쏜살같이 내달렸고, 경비병이 뭐라고 소리칠 겨를도 없었다. 두 번째 경비병이 문 앞에서 얼른 내리닫이 창살문을 떨구라고 외쳤지만 의미는 없었다.

 

 “브리택!”

 

 그녀의 외침과 동시에, 브리택은 용수철처럼 위로 튀어올랐다. 모두가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 높은 곳에서 보자 실비아 영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보였다. 한 남자가 창을 들고 주문을 읊고 있는 것이. 화이트우드 주교가 거들고 있었고, 분명 배반자 안토니오 그레이스톤의 악마가 되어버린 영혼은 오랜 시간동안 묶여 약해져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다.

 

 달리아의 휘두르는 은촛대지팡이 끝에서 불꽃이 베일처럼 휘날렸다. 그레이스톤의 청년이 자신을 바라보았다. 그 녹색 눈동자, 갈색 머리칼. 달리아는 잠시 그의 녹색 눈동자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보인 것만 같았다.

 

 그의 창에는 녹색 불꽃이 감겨 있었다. 하지만 정말이지 턱없이 부족했다. 달리아는 배반자 토벌전에 참가했던 선조의 일기장을 읽어본 적이 있었다.

 

 ⌜배반자 안토니오 그레이스톤의 망집은 대단해서, 세 묘지기 가문 중 가장 역사가 짧은 그레이스톤 가문의 신물인 그림자잡이창으로는 제대로 죽일 수 없었다.⌟

 

 그레이스톤의 악마인 그 배반자는 그레이스톤 혼자서 절대 소멸시킬 수 없었다. 하지만 이미 그들은 횟바닥에 분필로 온갖 도형들을 그려놓고, 그 교차점에 뼈와 보석을 올려둔 상태였다. 땅에서는 시커먼 연기가 스멀스멀 기어올라왔다.

 

 저 뒤에서 경비병들이 소리치는 소리가 멀게 들렸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브리택은 그녀의 마음을 알았고, 달리아가 고함을 지르기도 전에 이미 그의 그림자에서 수십 가닥의 가시나무 줄기가 뻗어나갔다.

 

 “안돼!”

 

 그레이스톤의 청년 묘지기가 외쳤다. 하지만 달리아도, 브리택도 멈추지 않았다. 새카만 그림자 가시나무 줄기가 바닥을 세차게 긁었고, 배치된 보석과 뼈들을 쓸어 어그러뜨려놓았다. 그제서야 바닥에 새하얀 분필로 그려놓은 기괴한 기하학 도형들로부터 튀어나오던 새카만 연기가 흩어져 사라졌다.

 

 브리택은 사뿐히 영지 가운데의 공터에 내려앉았다. 그레이스톤의 묘지기가 달리아의 은촛대지팡이를 보곤 얼굴을 찡그렸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머스그레이브?”

 

 달리아는 헝클어진 머리를 귀 뒤로 넘겼다. 브리택의 등 뒤에서 내려왔다. 주변의 경비병들이 그녀를 에워싸려하자, 브리택이 그림자 가시나무 줄기를 휘둘러 모두를 비키게 만들었다.

 

 “그것이야말로 제가 묻고 싶습니다, 그레이스톤. 당신은 그레이스톤에 대대로 내려오는 그림자잡이창으로 배반자 안토니오의 영혼을 소멸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나요?”

 

 그는 입을 다물었다. 달리아는 미간을 찌푸렸다.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시도했다니, 그건 실비아 영지를 몰살의 길로 이끌고 가는 행위였다.

 

 “당신은…그가 왜 배신했는지 아십니까?”

 

 달리아가 그걸 알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그녀가 장서관에 있는 모든 책을 다 읽진 않았지만, 제법 많이 읽어댔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다만 하나 확실한 건, 당신은 방금 감당 못할 짓을 하려 했다는 거에요.”

 “….”

 

 그레이스톤의 묘지기는 입을 다물었다. 그의 붉은 갈색 머리카락이 녹색 눈동자를 가렸다.

 

 “…아브라함 머스그레이브가 배반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알아요.”

 

 담담하게 말했지만 그건 달리아에게 큰 상처였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어땠건 간에.

 

 “그가 왜 배반한지는 알고 있습니까?”

 

 달리아가 고개를 내저었다. 그레이스톤의 묘지기는 고개를 숙인 채로 나지막한 목소리를 이어나갔다.

 

 “죽음의 눈동자에 대해서…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들어본 적 없었다. 달리아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게 뭐지요? 귀하의 가문을 욕보이려는 것은 아니나, 저희 가문의 장서관에서도 읽어본 적이 없는 물건이에요.”

 

 그레이스톤의 묘지기는 음울한 표정으로 자신의 가죽 자루에 널브러진 보석과 뼈들을 주워담았다.

 

 “죽음은 외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합니다. 다만 죽음 앞에 선 이 중 하나가 자신의 죽음을 납득하지 못하고, 그 외눈을 뽑아 죽음을 죽여버렸다고 하지요. 뽑혀나온 죽음의 눈동자는 두 가지 용처를 지닙니다.”

 “두 가지…?”

 

 그는 모두 주워담은 자루를 잘 묶어 옆으로 치워두었다. 그리고 창을 두 손으로 잡아 달리아에게 겨누었다.

 

 달리아는 뒤에서 선조의 장검을 뽑아들었다. 제아무리 같은 묘지기라도 해도 순순히 당해줄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그건 브리택도 마찬가지였다.

 

 “애송아, 네가 여기 있는 모든 경비병을 동원한다 해도 우리를 이기지 못한다.”

 

 그레이스톤의 묘지기는 창을 세게 움켜잡았고, 그 끝에서 녹색 불꽃이 맹렬하게 타올랐다. 브리택은 달리아를 슬쩍 보았고, 달리아는 고개를 끄덕여 허락해주었다. 그의 본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사실 달리아도 아직까지 본 적은 없었다. 브리택은 앞으로 한 발자국 나섰다.

 

 곧 모인 모두의 눈이 커졌다. 브리택의 보드랍던 털이 마치 가시처럼 길게 뻗어 솟구쳐 돋고, 발톱이 네 배는 더 길어졌으며, 송곳니와 이빨은 보다 더 날카로워졌고, 눈동자는 초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시퍼렇게 불타올랐다. 꼬리는 새까만 안개의 덩어리가 되어 아홉 갈래로 갈라졌고, 온몸에서 시커먼 가시나무가 줄기줄기 뽑혀나왔다.

 

 — 나는 은촛대의 사냥개, 머스그레이브의 묘지기견이다.

 

 그레이스톤의 묘지기는 그제서야 전의를 상실했다. 눈 앞에 있는 저 묘지기견은 어지간한 수준의 영혼이 아니었다. 전력을 다한다면 어지간한 악귀와도 쌍소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청년은 아직 제 실력이 악귀 수준의 영혼과 붙어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 죽음의 눈동자라는 물건과 당신이 깨우려는 배반자 안토니오, 그리고 배반한 내 아버지가 대체 무슨 상관이죠?”

 

 그가 창을 세워 잡고, 힘겹게 말했다.

 

 “왕도에는…묘지기들이 모르는 묘지기들의 비밀이 하나 있습니다. 그리고 그걸 본 거의 모든 묘지기들은 배반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 비밀이 뭔데요?”

 “…그걸 알게 되어도 배반하지 않겠다고 서약할 수 있습니까?”

 

 달리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당신도 이미 그 비밀을 알고 있잖아요.”

 “그레이스톤 가문의 묘지기는 배반의 그 날 이후로 모든 묘지기들이 이 비밀을 압니다.”

 “그런데 어떻게 지금까지 멀쩡했지요?”

 

 그레이스톤의 묘지기는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왔다. 브리택이 송곳니를 드러냈지만, 달리아는 그가 자신을 해치러 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윽고 두 사람의 거리가 아주 가까워졌다. 속삭이면 서로만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저는…그레이스톤 가문의 예순 세 번째 묘지기인 테오도르 그레이스톤입니다. 일곱 번째 묘지기 후보였고, 제 위의 여섯 명의 남매들은 모두 아버지의 손에 죽었습니다. 우리는…이 비밀을 알고도 탐욕을 지니지 않은 후손만을 묘지기로 선택합니다.”

 

 달리아의 눈이 커졌다. 배반의 이유였던 죽음의 눈동자에 대해 유일하게 알고 있는 것도 그레이스톤이고, 때문에 그것을 알고 있어야만 하는 것도 그레이스톤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알게 되면 거의 대부분의 확률로 타락하고 마니, 그걸 듣고도 타락하지 않은 자식만을 살려놓고 묘지기로 만든다는 것이 아닌가.

 

 “그런 끔찍한….”

 “…그것이 그레이스톤의 속죄입니다.”

 

 달리아는 뒷걸음칠수밖에 없었다. 테오도르 그레이스톤의 눈동자는 죽어있었다. 빛을 잃고 텅 비어 있었다. 그것은 깊은 심연이나 무저갱과 같은 동공이 아니었다. 텅 비고 훤히 뚫려 허무하게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투명하게 반대편이 바라보이는…그런 허공 같은 눈동자였다.

 

 “당신은….”

 “약속해주십시오. 죽음의 눈동자를 탐닉하지 않겠다고.”

 

 그의 턱이 달리아의 눈 위치였다. 달리아는 고개를 빳빳하게 들어 테오도르 그레이스톤을 바라보았다.

 

 “…약속할게요.”

 

 테오도르 그레이스톤이 숨을 깊게 들이마쉬고 내쉬었다. 브리택은 그런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창을 들고 자신의 달리아 곁에 서있는, 어쩌면 적의를 띄고 있을지도 모르는 이였다.

 

 “죽음의 눈동자는 두 가지 용처를 가집니다. 하나는…죽어버린 죽음의 시신에 눈동자를 돌려주어 죽음을 되살리는 것. 나머지 하나는…사용자의 소망을 이루어주는 것.”

 

 달리아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소망을 이루어준다고요?”

 

 테오도르 그레이스톤의 눈썹이 들썩였다. 달리아는 황급히 덧붙였다.

 

 “갖고 싶다는게 아니에요. 그런 물건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에 대해 묻고 싶은 거에요.”

 “나도 모릅니다. 그건 말 그대로 죽음이 지니고 있던 하나뿐인 눈동자니까요. 충분히 그 정도의 힘이 있겠지요.”

 

 달리아는 ‘죽음’을 마치 살아있었던 무언가처럼 지칭하는 그것이 계속 신경쓰였다.

 

 “아까부터 계속 마치 ‘죽음’이라는 이름을 가진 살아있는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말씀하시는데, 저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아요. 역시 귀하의 가문을 비하하려는 의도는 없으나, 저는 머스그레이브의 장서관에서 그런 묘사를 본 적도 없고요.”

 

 테오도르 그레이스톤이 답했다.

 

 “당연할 겁니다. 저희도 배반자 안토니오에게 들었던 정보들이 비밀스레 저희 가문 안에서만 내려오는 것이었으니까요. 배반자 안토니오를 봉인했던 그의 아들, 프란시스 그레이스톤 선조님께서는 악을 쓰는 배반자에게서 꽤나 많은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었습니다. 혹시 봉인 이후 프란시스 그레이스톤 선조님께서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 아시는 바가 있습니까?”

 

 달리아가 고개를 내저었다. 테오도르 그레이스톤이 씁쓸하게 말했다.

 

 “소원을 이루어주는 그 물건에 탐욕을 보이지 않는 일곱 살 짜리 막내아들에게 묘지기의 업을 물려주고, 다른 자식 네 명의 목숨을 거둔 후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탐욕에 물들어간다는 것을 알아버린 거지요. 막내아들을 제외한 자신의 자식들도.”

 

 그 끔찍한, 그러나 반드시 필요한 전통은 그 때부터 이어져 내려왔을 것이다. 그것은 저주받은 물건에 대한 지식을 가진 이가, 그 지식을 후대에 전할 의무가 있을 때에나 할 수 있는 혐오스러운 관습이었다. 그리고 최초의 배반자인 안토니오를 배출한 그레이스톤 가문은 그 저주받은 지식을 후대에 전할 의무와 책임이 있었다.

 

 “그래서…좋아요. 이해했어요. 그런데도 난 아직 당신이 악마이자 최초의 배반자인 안토니오를 다시 깨우려는 저의를 모르겠네요. 생각했던 바가 있다면 설명해주세요.”

 

 테오도르 그레이스톤은 아무래도 그게 제법 꺼내기 힘든 이야기인 것 같았다. 그는 몇 번이고 뜸을 들였고, 쉬이 입술을 떼지 못했다.

 

 “아마…당신의 아버지는 왕성에 보관된 죽음의 눈동자에 관한 문서를 발견했을 겁니다. 하지만 죽음의 눈동자는 이미 그곳에 없지요. 죽음의 눈동자는…이 밑에 묻혀 있습니다. 배반자 안토니오와 함께, 아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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