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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묘지기 아가씨 달리아
작가 : WATERS
작품등록일 : 2020.9.26

#능력녀 #감동물 #묘지기 #악령퇴치 #악마퇴치 #헌신남 #다정남


죽음의 신은 외눈을 잃었고, 왕국은 삼백 년 전부터 망자들이 저승에 들어가지 못해 기어다니는 황야가 되어버렸다. 머스그레이브 일가의 묘지기인 달리아 머스그레이브는 인간을 배신하고 악령의 편에 붙은 자신의 아버지를 처단하러 황야를 건너 왕도로 향한다.

표지 일러스트 : Waifu Labs
추신 : 좌하단의 붉은 로고는 Waifu Labs의 로고입니다. 인공지능 기반의 캐릭터 포트레이트 작성 사이트로, 출판사가 아닙니다...

 
황무지 (7)
작성일 : 20-09-29 16:19     조회 : 321     추천 : 0     분량 : 5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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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화

 

 

 

 아무 일도 없을 것만 같은 밤이 아니라, 아무도 없는 밤이었다. 거리는 지나칠 만큼 조용했고, 길가의 가스등만이 고요하게 누런 빛을 내뿜고 있었다.

 

 “지팡이와 장검은 왜 들고 나온 거야?”

 “혹시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브리택이 어깨를 으쓱였다. 달리아의 손을 잡았다. 깍지를 끼자 그의 손가락이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파고들었다.

 

 “음…예를 들면?”

 “보호받는 도시 안이라고 해서 악령이 아예 없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언제든 망자들의 원념은 뭉칠 수 있으니까….”

 

 왼손은 그의 손을 잡았고, 오른손에 잡힌 은촛대지팡이는 은은한 불빛을 비추었다. 너른 거리는 깨끗했지만, 밤이 되면서 나온 노숙자들의 터전이기도 했다. 이곳 저곳의 벤치에, 가스등의 따스한 불빛 아래에 사람들이 누워 있었다.

 

 “그런가….”

 

 머스그레이브 영지라고 해서 다른 건 아니었지만, 그셀바 영지는 도시화가 진행되어서인지 더더욱이나 노숙자가 많았다. 사실 영지운영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달리아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그녀나, 혹은 그녀의 아버지나 그 위의 선조들도 묘지기의 업을 이어나가는 것에 급급할 뿐 영지의 운영은 따로 집사에게 일임해뒀으니까.

 

 “브리택, 그, 있잖아요.”

 “응? 말해.”

 “내가 기억을 되찾으면…그 이후엔 어떻게 할 거에요?”

 

 브리택이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브리택?”

 “청혼할거야.”

 

 달리아는 그 자리에서 선 채로 굳었다. 방금 뭘 들은거지? 놀람에 커진 눈을 겨우 깜빡였다. 하지만 브리택의 표정은 진지했다. 그러니까,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할 때만큼이나.

 

 “…정말이에요?”

 “응.”

 

 마음이 묘했다. 설레이기도 하고, 조금 긴장되기도 했다. 싫진 않았다. 분명 그와 자신은 제 사라진 기억 속에서…무언가 각별한 관계였을 것은 분명했다.

 

 “나, 나, 묘지기에요.”

 

 묘지기가 된 15살 이후부터는 아버지께서 사교 연회에도 데려가지 않을 정도로 신부감으로는 나락이었다. 애시당초에 칼과 지팡이를 들고 악령이 들끓는 지하감옥과 망자가 걸어다니는 묘지를 돌아다니는 여자와 결혼하고 싶은 남자가 있을 리가 없었다.

 

 “난 영혼이야.”

 “…그렇네요.”

 

 브리택의 입가엔 미소가 가시지 않았다. 달리아는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묘지기견이 묘지기에게 청혼하겠다니, 이게 무슨 소리람.

 

 “네가…기억을 되찾으면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거야.”

 “그랬으면…좋겠네요.”

 

 달리아가 피식 웃어보였다. 브리택은 가만히 그녀를 내려다보다, 천천히 달리아의 허리를 잡고 끌어당겼다.

 

 “브, 브리택, 사, 사람들 있어요.”

 “다 자잖아.”

 

 그건 맞았다. 그래도 브리택은 그녀를 데리고 조금은 외진 골목으로 들어갔다. 그의 입술이 따뜻하고 까칠하게 와 닿았다. 달리아의 턱이 가늘게 떨렸다.

 

 달콤했다. 다른 표현은 필요치 않았다. 그저 달콤했다. 달리아는 자신이 그의 입술을 달콤하게 느끼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부정할 순 없었다.

 

 “브리택은…내가 당신을 기억하지 못하는데도 나를 좋아하는 거에요?”

 “그런 건 방해가 안 돼.”

 

 달리아가 그 자그마한 손으로 브리택의 뺨을 어루만졌다. 제 등은 벽에 가볍게 닿아 있었고, 그의 손이 벽을 짚고 있었다. 달리아는 그에게서 벗어날 생각이 없었다.

 

 사실 솔직히 말해서 그가 조금은 대단해보였다. 그에게 입을 맞추어주고, 껴안아주긴 했지만 그건 자신도 원해서 한 것이었다. 하지만 한 번도 지금까지 그에게 사랑한다고, 좋아한다고 말해준 적은 없었다. 그의 청혼 예고에 확실한 답을 줄 수도 없었고, 제 사라진 기억에 대한 확신도 없었다.

 

 ‘아버지를 만나뵈면, 그래도 무언가 실마리가 잡힐까?’

 

 달리아는 가만히 그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생각했다. 둘이 서로 껴안고 있는 벽의 바로 옆 문이 거칠게 열린 건 바로 그 때였다.

 

 “아니, 돈 없이 찾아오지 말라니까! 외상값이 벌써 얼마인줄 아쇼? 그린엘 금화 일곱 닢이야, 일곱 닢! 당신 모가지를 따서 팔아도 그만큼 안 나와!”

 

 앙칼진 삼십대 여성의 목소리였다. 아무래도 술집의 앞이었던 것 같았다.

 

 “아이, 고작 금화 일곱 닢! 어! 내가 말이지, 옛 친구들만 따악 만나면—.”

 “—닥치고 꺼져요!”

 

 문은 열렸을 때처럼 거칠게 닫혔다. 반쯤 비워진 싸구려 위스키 병을 들고 비틀거리는 사내는 오십대가 조금 못 되어 보였다. 그의 거나하게 취한 눈동자가 달리아와 브리택을 바라보았다.

 

 “…뭘 보슈? 젊은 남녀가 이런 데 있으면 좋은 꼴 못 봐, 얼른 나가게.”

 

 시비성 가득한 말투에 브리택이 발끈할 뻔 했지만, 달리아는 그의 가슴팍에 가볍게 입술을 가져다 대는 것으로 그 화를 가라앉혔다.

 

 그 중년 사내의 복장은 어딘가 기묘한 구석이 있었다. 분명 셔츠는 싸구려였으나 튼튼하게 만들어진 조끼는 고급 비단을 아낌없이 사용한 물건이었다. 구두는 한껏 헐었지만 구하기도 힘든 고급 가죽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굉장히 오래되었고 관리나 수선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았다.

 

 “나, 참, 내가, 어, 한때는 요 앞에 있는 달튼 마을의 촌장이었던 넬시온 도르네아였단 말이지, 어….”

 

 술에 한껏 꼴아있는 목소리는 중간중간 단어가 뚝뚝 끊겼고, 그 발걸음은 휘청였다. 하지만 그의 이름에 브리택과 달리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람에 서로를 바라보았다.

 

 달리아는 제 지위가 높은 것이 이럴 때 가장 쓸모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넬시온 도르네아 씨?”

 “왜 부르쇼, 아가씨?”

 

 코가 뻘개진 넬시온 도르네아가 둘을 돌아보았다. 달리아는 은촛대지팡이를 흔들어보이며 말했다. 술에 꼴아있는 그 모습을 보자니 속이 뒤집혔다. 그의 가족은 저 황무지에서….

 

 “나는 묘지기 달리아 머스그레이브입니다. 당신의 가족에 대해서 당신이 행할 의무가 남아있을텐데요.”

 “…!”

 

 넬시온 도르네아는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부들부들 떨었고, 이내 괴성에 가까운 고함을 지르며 달리아에게 위스키 병을 내던지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나, 나, 난 다시는, 다시는 황무지로 돌아가지 않아!”

 

 그 위스키 병은 브리택이 허무하게 쳐냈다. 살짝 고개를 숙인 달리아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앨리스 도르네아는 오로지 아들의 안위를 걱정했고, 그윈 도르네아는 오로지 아버지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넬시온 도르네아는 이 도시 안에서 술이나 쳐 마시고 있었다니.

 

 “브리택. 잡아와요.”

 “기꺼이.”

 

 그가 순식간에 거대한 늑대개의 모습으로 변했고, 단 두 번의 달음박질만에 그를 밀어서 엎어뜨렸다.

 

 “아, 아악! 괴, 괴물이다! 괴물이야!! 도시 안에 괴물이 들어왔어!”

 

 브리택은 그 고성에도 아랑곳않고 넬시온 도르네아의 발목을 물어 질질 끌어왔다. 그 소란에 도시의 야간경비대가 몰려오고 주변의 건물에 불이 켜졌다. 사람들이 창가에 모여 수군대며 세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괴물은 당신일지도 몰라요. 나는 이곳에 오면서 당신의 처와 아들을 보았으니까.”

 “앨리스와 그윈을…? 그, 그럴리가 없어, 그네들은 이미 이십년도 전에….”

 

 달리아의 표정이 더 일그러졌다. 칼을 뽑아든 야간경비대 세 명이 달려온 것은 그때였다.

 

 “이, 이게 무슨 소란이냐! 으악!”

 

 ‘으악!’은 브리택을 보고 내지르는 소리였다. 달리아가 미처 말리기도 전에 그 경비대 중 선두의 장교가 칼을 휘둘렀는데, 브리택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그 칼날을 물어선 비틀어 깨트려버렸다.

 

 “쓸 만한 칼을 갖고오지 그래.”

 

 경비대는 침묵했다. 넬시온 도르네아도 침묵했다. 달리아만이 입을 열었다.

 

 “밤에 고생들 많으십니다. 저는 머스그레이브 가문의 적통을 잇는 묘지기, 달리아 머스그레이브입니다. 황무지에서 악령으로 발견된 이 남자의 처에 대해서 행할 조사가 있습니다.”

 

 경비대 세 명은 바로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왕국 망자들의 영면을 인도하시는 묘지기를 뵙습니다. 혹여 저 거대한…늑대개에 대해 여쭈는 것을 허락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법적 지위는 백작위에 준하지만, 머스그레이브를 필두로 한 묘지기 가문들에 대한 왕국 신민들의 존경은 그보다 더했다. 역설적이지만 묘지기가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저의 묘지기견입니다. 평생 제 의무를 함께 짊어진 동반자입니다.”

 “…잘 알았습니다. 저희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그들은 올 때 만큼이나 신속하게 사라졌고, 넬시온 도르네아의 눈동자에서는 그나마 남아있던 희망조차 사라졌다. 브리택은 넬시온의 뒤를 가로막았다. 앞에는 묘지기요, 뒤에는 늑대개니 그가 도망칠 자리라곤 땅으로 꺼지거나 하늘로 솟는 것 외에는 없었다.

 

 “넬시온 도르네아. 왜 아들에게 돌아가지 않고 이곳에 남아 술을….”

 

 달리아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있는 힘껏 그가 떨어뜨려 조각난 위스키 병을 걷어찼다. 달리아의 각력이 강한 편은 아니었지만, 바로 앞에 있는 넬시온의 머리 옆을 쏜살같이 지나가게 할 정도는 되었다.

 

 “…쳐 마시고 있나요?”

 

 그녀의 앙다문 이빨 사이에서 분노가 드러났다. 그는 바로 바닥에 납작 달라붙어 엎드려선 용서를 구했다.

 

 “저, 정말 죄송합니다, 묘지기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정말로 큰 죄를….”

 “나한테 빌 게 아니잖아요?”

 

 달리아는 은촛대지팡이의 반대쪽 끝으로 그의 턱을 들어올렸다.

 

 “내일 점심에 정문으로 와요.”

 “어, 어떻게 하시려고….”

 

 그녀의 미간이 엉망으로 찌그러졌다.

 

 “당신 아들을 보러 갈 거에요. 그래야 당신 아내가 편히 잠들 테니까.”

 

 넬시온 도르네아의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눈동자를 굴리는 것을 보고 있자니, 아무래도 도망갈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한 것 같았다.

 

 달리아는 집사가 건네주었던 벨트에서 조그마한 단도를 하나 꺼내어선 왼손 검지를 살짝 찔렀다. 피가 한 방울 배어나오자, 그걸 그대로 넬시온의 이마에 눌러 찍었다.

 

 “도망갈 생각은 하지 않는게 좋을거에요. 묘지기견은 묘지기의 냄새를 귀신같이 맡고 쫓아갈 수 있으니까.”

 

 그의 얼굴은 흙빛을 넘어선 핏기가 싹 가셔버렸고, 달리아는 브리택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는 바로 달려와선 달리아의 손가락을 핥았다. 사실, 그녀가 원한 건 그게 아니었다.

 

 ‘아, 아니 이 남자가 또….’

 

 일단 여기서 당황한 모습을 보이면 부려놓은 위엄이 한 방에 날아갈 것이 분명했다. 달리아는 겨우 표정관리에 성공하곤 모인 구경꾼들에게 입을 열었다.

 

 “일은 다 끝났습니다. 다들 돌아가세요.”

 

 사람들은 금방 사라졌고, 넬시온 도르네아도 몇 번이고 허리를 넙죽 굽히며 군중에 섞여 어디론가 가버렸다. 어차피 그래봐야 내일 아침이면 돌아오게 되겠지만.

 

 “…브리택, 거기서 내 손을 핥으면 어떡해요.”

 

 그는 늑대개였던 모습에서 사람의 형상으로 돌아오며 대답했다.

 

 “그치만 너, 손끝에서 피가 나는걸.”

 

 달리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빙긋 웃었다. 브리택도 웃고 있었다.

 

 “그래도 일이 잘 풀렸네.”

 “그러게요. 앨리스 도르네아의 집념은 생각보다…만족스럽진 않겠지만 쉽게 풀릴 것 같네요. 아버지를 만나면 그윈 도르네아는 영면에 들 테니까요.”

 

 브리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가만히 그녀의 어깨를 제 팔로 감아 안았다.

 

 “자, 그럼 돌아갈까?”

 

 달리아는 대답 대신 그의 품에 살짝 머리를 기댔다. 일부러 보폭을 작게 해 주는 그의 발걸음에 제 걸음을 맞추었다. 손끝의 피는, 마치 그의 침이 효험이 있었던 것처럼 금방 멎어있었다.

 

 돌아가는 길은 아무 일이 없었다는 것처럼 고요했다. 노숙자들은 이 길을 걸어왔을 방금 전처럼 아무데나 누워서 자고 있었고, 거리는 여전히 고요했으며, 가스등은 누런 불빛을 뿌렸고, 달리아의 은촛대지팡이는 온화한 흰 불꽃으로 반짝였다.

 

 그들이 아스포네 주교좌성당의 경비병을 지나 제공받은 귀빈실에 도착할 무렵, 달리아는 무언가 불길한 바람이 목덜미를 스치는 것을 느꼈다.

 

 “…브리택?”

 “왜?”

 

 달리아가 문을 닫고 제 목을 매만지며 말했다.

 

 “무언가…좋지 못한 기분이 들어요.”

 

 브리택이 미간을 찌푸렸다.

 

 “하루만에 내게서 벗어날 정도로 네 피냄새를 지울 수 있는 방법은 없어. 아무 일 없을 거고, 모든 건 계획대로 될 거야. 걱정 말고 자자.”

 “…그렇겠죠?”

 

 달리아는 검은 양털 망토를 코트걸이에 걸어놓곤 둘러멨던 선조의 장검과 은촛대지팡이를 벽에 기대어두었다. 그리고 그가 먼저 누워있는 침대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푹 자고 내일 보자.”

 “…브리택은 밤새 나 보고 있을 거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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