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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묘지기 아가씨 달리아
작가 : WATERS
작품등록일 : 2020.9.26

#능력녀 #감동물 #묘지기 #악령퇴치 #악마퇴치 #헌신남 #다정남


죽음의 신은 외눈을 잃었고, 왕국은 삼백 년 전부터 망자들이 저승에 들어가지 못해 기어다니는 황야가 되어버렸다. 머스그레이브 일가의 묘지기인 달리아 머스그레이브는 인간을 배신하고 악령의 편에 붙은 자신의 아버지를 처단하러 황야를 건너 왕도로 향한다.

표지 일러스트 : Waifu Labs
추신 : 좌하단의 붉은 로고는 Waifu Labs의 로고입니다. 인공지능 기반의 캐릭터 포트레이트 작성 사이트로, 출판사가 아닙니다...

 
서약 (4)
작성일 : 20-09-26 21:34     조회 : 307     추천 : 0     분량 : 5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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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화

 

 

 “하얀색….”

 

 불꽃은 마치 갓 내리는 첫눈처럼 새하얬다.

 

 — 머스그레이브는 오래된 역사의 산 증인, 일흔 아홉 영혼의 이름과 묘지기로서의 의무, 그리고 전통을 걸고 그대를 우리의 소중하고 여린 후손과 함께할 의무의 대행자로서 지켜볼 것이다. 금촛대를 두고 떠나, 둘의 목숨이 함께 사그라들 때까지 돌아오지 말라.

 

 브리택은 조심스럽게 금촛대를 내려놓았다. 그의 손이 떨어지자, 금촛대의 불꽃은 다시 붉은색으로 타올랐다. 하지만 달리아가 들고 있는 은촛대지팡이는 여전히 새하얀 불꽃을 피우고 있었다.

 

 “갈까요, 브리택?”

 “…그래.”

 

 이번에는 브리택이 먼저 발을 내딛었다. 달리아가 그를 따라갔다. 새까만 문은 다시 닫혔고, 달리아의 하얀 불꽃이 횃불보다도 더 밟게 지하통로를 밝혔다.

 

 “이 지하통로에는 뭐가 있는거야?”

 

 브리택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이곳에요? 선조분들의 영혼이 모인 이 ‘금촛대 공동’하고, 다시는 지상에 나오면 안될…괴물들이 있어요.”

 “…괴물들?”

 

 달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지나친 억울함을 품고 묻혀서 악령으로 돌변해버린 영혼들, 나기를 악하게 태어나 죽기도 악하게 죽어 죽어서도 악행을 되풀이하는 영혼들…. 그런 것들이요. 한 번 지상에 발을 내딛으면 수십의 목숨은 족히 거꾸러뜨릴 만한 것들.”

 

 브리택이 달리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묘지기라는거, 위험하구나.”

 “많이요. 미리 말 안해줘서 미안해요.”

 

 자신을 끌어안는 그의 품은 언제나 따뜻했다.

 

 “아니야.”

 

 달리아가 어깨를 으쓱였다. 지하통로 저 너머에선 간간히 기괴한 울음소리와 비명이 들렸다. 브리택은 급히 주변을 돌아보았지만, 달리아가 그를 달랬다.

 

 “너무 그러지 마요. 원래 이런 곳이에요.”

 “이곳도…순찰을 돌아야 하는거야?”

 

 달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 사실 저 위보다 이 밑이 더 중요해요. 하나 하나가 끔찍하게 강력하니까.”

 “그럼 지금까지는 혼자, 혼자서 이곳을…?”

 

 달리아는 입술을 삐죽 내밀곤 대꾸했다.

 

 “지금까지는 당신이 없었잖아요. 내 곁에.”

 

 말해놓고도 스스로 소스라치게 놀랐다.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아니, 이건 진짜 연인끼리나 하는 말이잖아.

 

 “그, 그, 그게, 그러니까, 그게….”

 

 브리택은 말 대신 그녀의 이마에 입술을 맞추었다.

 

 “맞아. 지금까진 내가…네 곁에 없었지….”

 

 달리아는 브리택의 마음이 슬픔에 저며지는 것을 모를 수 없었다. 그 목소리에는 기나긴 비통함과 깊은 그리움이 짙게 묻어있었다. 그가 달리아의 몸을 부서져라 끌어안았다.

 

 “앞으로는…그럴 일 없을거야.”

 “…그래요.”

 

 달리아가 피식 웃어버렸다. 브리택은 그제서야 그녀를 놓아주었다. 달리아와 브리택은 손을 잡고 다시 지하계단을 걸어올라갔다. 그녀의 은촛대지팡이에서 켜진 불꽃이 계단을 환히 밝히고 있었다.

 

 “근데, 달리아.”

 “네?”

 

 브리택은 몇 번 헛기침을 한 다음에야 다시 말을 꺼냈다.

 

 “네…아버지와 남매는 어디갔어?”

 “아, 아버지와 오라버니요? 수도의 사교 모임에 가신다고 해서…한 달은 있어야 오실걸요.”

 

 그가 싱긋 웃었다. 달리아는 왠지 모를 불안감에 눈을 가늘게 떴다.

 

 “…나한테 뭘 할 건 아니죠?”

 “날 뭘로 보는 거야?”

 “어…늑대개?”

 

 브리택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달리아는 방금 전까지 느꼈던 불안감도 잊어버리곤 깔깔 웃었다. 둘은 금방 지하계단의 위까지 올라왔고, 창문 사이로 파고드는 햇살을 마주한 그는 다시 커다란 늑대개의 모습으로 변했다.

 

 “늑대개 맞네.”

 “…문다?”

 “물어봐요. 어디 물 수 있나 보자.”

 

 브리택은 차마 그녀를 진짜 물어뜯을 수 없었고, 달리아는 그런 그를 보며 즐거워했다. 그의 속에 와락 올라오던 분함도 달리아의 웃는 얼굴 앞에 사그라들었다. 그 미소는 너무도 찬란했다.

 

 “근데 브리택은 늑대개 치고 꼬리가 좀 많이 기네요.”

 

 그의 꼬리길이는 거의 몸길이였다. 크기부터가 비범한 그는 보통 늑대개가 아니라는 것을 뽐내듯이 꼬리를 이리저리 휘둘렀다. 그의 꼬리는 땅에 끌리지도 않았고, 마치 흘러가는 구름처럼 부드럽게 떠 있었다.

 

 “늑대개 아니라니까.”

 “늑대개 모습으로 그 말 해봐야 믿음이 안 가거든요.”

 

 브리택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리곤 제 긴 주둥이로 그녀의 배를 툭툭 밀었다. 달리아는 간지러워하며 그의 머리를 끌어안았고, 둘은 한참이나 장난치다 해가 저물어가는 것을 보았다.

 

 “저녁 먹고 한번 더 묘지를 둘러보고 와야겠어요.”

 “저 밑은…?”

 

 브리택이 흘끗 저 밑을 바라보며 물었다.

 

 “저곳은 새벽 두 시에.”

 “혼자 가면 안 돼.”

 

 달리아가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럼요. 같이 가요.”

 

 

 -

 

 

 “아가씨, 이….”

 

 사람은? 늑대개는? 영혼은? 오코넬 집사는 아가씨의 곁에 있는 저 커다란 무언가를 뭐라고 불러야 실례가 되지 않을지 감조차도 잡히지 않았다.

 

 “이쪽은 브리택이에요, 집사. 방금 내려가서 묘지지견으로서의 서약을 맺고 왔어요.”

 “…의무의 동반자 서약을 말씀이십니까?”

 

 집사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브리택은 그를 보며 웃고 있었고, 달리아는 왠지 두 사람이 서로 알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요?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아, 아닙니다. 그래서 저녁 식사는 바구니에 따로 싸 달라는 말씀이십니까?”

 

 달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브리택과 나가서 먹을거에요. 저 앞의 센드릭 언덕에서 먹고 묘지를 한 바퀴 돌고 올 테니까, 해가 지더라도 걱정은 하지 말고 있어요. 알았죠?”

 

 집사는 난감하다는 표정이었지만, 그녀를 말릴 명분이 없었다.

 

 “…알겠습니다. 샌드위치 바구니는 조금만 기다리시면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좋아요.”

 

 집사는 주방장에게 말을 전하러 갔고, 달리아는 로비의 의자에 앉았다. 가만히 그를 쓰다듬으며 바구니가 오길 기다렸다.

 

 “그러고보니 브리택, 샌드위치 먹을 수 있어요?”

 “…그럼 나한테 개사료라도 챙겨줄 생각이었어?”

 “어떻게 알았어요…?”

 

 그가 그 크고 기다란 주둥이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제 덩치보다 두 배는 큰 늑대개가 한숨을 쉬는 걸 보고 있노라니 참 기분이 묘했다.

 

 곧 시녀가 샌드위치 바구니를 들고 왔다.

 

 “그, 혹시 개사료 챙겨넣진 않았죠?”

 “…어, 아니요…? 챙겨넣어드릴까요, 아가씨?”

 

 브리택이 으르렁거렸고, 시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아니에요, 필요 없대요. 고마워요.”

 “벼, 별말씀을요, 아가씨…저, 저는 가봐도 될까요…?”

 

 그녀는 달리아가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쏜살같이 도망갔다. 브리택은 바닥에 내려놓은 샌드위치 바구니 손잡이를 물어서 들었다.

 

 “내가 들게요.”

 “으브브….”

 

 브리택은 자신이 그걸 물어서 들고 있는 동안은 달리아와 대화를 할 수 없다는 걸 뒤늦게 알아채곤 그녀에게 바구니를 맡겼다.

 

 “대신 내가 센드릭 언덕까지 태워다 주지.”

 “그건 좋네요. 근데 계속 이렇게 올라타려면 안장이라도 얹어야 할 것 같은데….”

 

 늑대개 안장이란 게 있을 리가 없었다. 애시당초 늑대개라는게 이렇게 사람을 태울 정도로 커지는 품종도 아니었다. 여러모로 그는 죽은 늑대개라고 하기에도, 죽은 사람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했다.

 

 “많이 불편한가?”

 “사실…불편하진 않아요. 그냥 왠지 안장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해서.”

 “안 불편하면 굳이 필요없지.”

 

 그는 먼저 정문을 향해 총총총 걸어나갔다. 달리아는 어깨를 으쓱였고, 샌드위치 바구니를 들고선 그의 뒤를 따랐다.

 

 저 멀리 붉게 타오르는 햇살이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었다. 그 뒤에는 차가운 밤이 기다리고 있고, 차가운 밤이 다 지난 다음에야 다시 희미한 불꽃을 동쪽에서 피울 것이었다.

 

 “브리택!”

 

 브리택은 다리를 곱게 포갠 채로 몸을 낮춰 달리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덕분에 달리아는 편하게 그의 위에 올라탈 수 있었다. 달리아는 그의 갈기를 잡으려다 목을 끌어안았고, 브리택은 천천히 일어섰다.

 

 “꽉 잡아.”

 “그럼요.”

 

 사실 꽉 잡을 필요도 없었다. 그는 바람처럼 빠르게 달렸지만 거의 흔들리지 않았다. 한 번 발을 디디고 박찰 때마다 땅이 접힐 것처럼 풍경이 변했다. 서늘한 바람이 폭풍처럼 그녀의 머리카락을 흔들어놓고, 달리아는 얼굴을 그의 뒷목에 파묻었다.

 

 싱그러운 흙내음이었다. 사라져버린 기억이 깊게 남기고 간 자국이 조금씩 추억으로 차오르는 것만 같았다. 기억하지 못하는 추억을 느낀다는 것은 참으로 묘한 기분이었다.

 

 “브리택, 있잖아요.”

 “응?”

 

 달리아가 가만히 그의 목덜미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혹시 오코넬 집사님을 알아요?”

 “….”

 

 그의 침묵에 달리아는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말했다.

 

 “아직 나에게 말해줄 수 없는 거에요?”

 “…미안해.”

 

 달리아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가만히 속삭였다.

 

 “아니에요. 기다릴게요. 음…왠지 기다려줄 수 있을 것 같아요.”

 

 브리택이 조금 더 속도를 올렸다. 땅을 거세게 박차곤 바람을 갈랐다. 마치 저녁노을의 다가오는 빛무리마저 갈라버리려는 것 같았다. 달리아는 조금 더 그의 목을 세게 껴안았고, 센드릭 언덕까지 고작 2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속도를 줄였고, 언덕의 가장 높은 곳에서야 완전히 멈춰섰다. 저 멀리서 붉은 태양이 느릿느릿하게 저물고 있었다. 달리아는 그의 등 뒤에서 내려 가만히 노을을 바라보았다.

 

 “나 참 이상하죠, 브리택.”

 “…뭐가?”

 

 달리아가 그를 돌아보고 말했다.

 

 “이상하잖아요. 분명히…처음 본 남자인데. 갑자기 믿고, 받아들이곤, 의무의 동반자 서약까지 하루만에 덜컥 맺고. 아무리…내 영혼 어딘가에 아로새겨진 것 같다지만….”

 

 달리아가 가만히 주저앉았고, 브리택이 그런 그녀를 감싸며 앉았다. 그녀는 그의 몸에 등을 기댔다.

 

 “…오늘은 뭔가 정신없었던 날이에요. 어젯밤부터.”

 

 그의 목덜미를 쓰다듬어주었다. 바구니에서 샌드위치를 꺼내 한 입 베어물곤, 그에게도 샌드위치 하나를 종이 포장을 벗겨 내밀었다. 그는 능숙하게 샌드위치를 씹어삼켰다.

 

 “근데 이걸로 배가 차겠어요?”

 “배가 고파서 먹는 게 아니야. 영혼이 배가 고프겠어?”

 

 생각해보니 그랬다.

 

 “…그럼 왜 먹는거에요?”

 

 브리택이 그녀를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저녁, 같이 먹고 싶어서.”

 

 달리아가 눈을 깜빡였다. 그런 이유일줄은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그저 함께 저녁을 먹고 싶어서라니. 그의 파란 눈동자에 붉게 물든 하늘이 비추었다. 해가 멀찍이 저물었고, 이내 밤의 하늘이 찾아왔다.

 

 “브리택…?”

 

 그의 커다란 몸뚱이가 황금빛으로 빛났다. 마치 마지막 타오르는 노을처럼…. 그리고 그 빛무리가 흩어졌을 때, 한없이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그가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고 있었다. 달리아는 그의 무릎 위에 앉아서, 그를 마주보고 있었다.

 

 “늑대개보다 이게 낫지?”

 

 달리아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그는 대답도 듣지 않은 채, 마치 개 시절의 버릇을 못 버렸다는 것처럼 그 얼굴을 그녀의 목덜미에 파묻고 부볐다. 입술과 코의 감촉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흐윽, 자, 잠깐만요….”

 “왜?”

 

 달리아의 어깨가 바짝 오므라들었다.

 

 “…그, 그 모습으로 이러니까 부끄럽잖아요.”

 “뭐 어때서?”

 

 그의 팔이 달리아의 작은 등을 더 억세게 끌어안았다. 달리아는 도저히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그가 힘껏 숨을 들이켰다. 달리아의 달콤한 체향을 빨아들였다.

 

 “…숨 그렇게 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거 좀 되게, 되게….”

 “부끄럽다고?”

 

 달리아는 말을 다 잇지 못하고 고개만 겨우 끄덕였다. 브리택은 그녀의 목덜미에서 얼굴을 빼내곤, 가만히 달리아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익숙해지면 안 부끄러울거야.”

 “그게 무슨….”

 

 달리아는 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의 입술이 나란히 달리아의 입술과 포개졌다. 그의 키스가 달콤하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고, 머리를 종 치는 망치로 한 대 후려맞은 것 같았다. 몸에 힘이 사르르 풀렸다.

 

 ‘브, 브리택….’

 

 자신도 모르게 눈이 감겼다. 그의 새파란 눈동자가 자신을 사로잡아버린 것만 같았다. 그의 코가 제 코에 닿아 간질이고, 서로의 숨이 가깝게 교차했다. 그는 그렇게 몇 초나 더 달리아의 입술을 탐닉했다. 그러고서야 놓아주었다.

 

 “…흐으.”

 

 달리아는 목덜미까지 새빨개져있었다.

 

 “이런 건 처음이야?”

 “그, 그걸, 그걸 말이라고 해요? 이 근처에 좀 평범한 마을이라곤 삼십 분은 걸어야 나온단 말이에요. 그리고 난 이 저택에서 나온 적이 몇 번 없고….”

 

 그의 손가락이 제 머리칼 사이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달리아의 새하얀 목을 어루만졌다.

 

 “그럼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인걸로 해.”

 “…브리택, 진짜….”

 

 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짜 뭐?”

 “…진짜 못말려요. 완전 막무가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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