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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묘지기 아가씨 달리아
작가 : WATERS
작품등록일 : 2020.9.26

#능력녀 #감동물 #묘지기 #악령퇴치 #악마퇴치 #헌신남 #다정남


죽음의 신은 외눈을 잃었고, 왕국은 삼백 년 전부터 망자들이 저승에 들어가지 못해 기어다니는 황야가 되어버렸다. 머스그레이브 일가의 묘지기인 달리아 머스그레이브는 인간을 배신하고 악령의 편에 붙은 자신의 아버지를 처단하러 황야를 건너 왕도로 향한다.

표지 일러스트 : Waifu Labs
추신 : 좌하단의 붉은 로고는 Waifu Labs의 로고입니다. 인공지능 기반의 캐릭터 포트레이트 작성 사이트로, 출판사가 아닙니다...

 
서약 (1)
작성일 : 20-09-26 19:48     조회 : 319     추천 : 1     분량 : 56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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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달리아 머스그레이브는 가장 오래되고 유서깊은 묘지기 가문인 머스그레이브 일가의 아가씨이다. 그리고 신비롭고도 거룩한 묘지기의 가업을 잇는 사람이기도 했다.

 

 오로지 그녀만이 오래된 묘지에 깃든 온갖 신비하고 때론 부정하며 가끔은 경이로운 것들을 달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묘지기의 핏줄을 타고난 것은 장남이 아니라 막내딸인 그녀였다.

 

 ‘어젯밤에는…대체 뭐였지?’

 

 달리아는 옷을 갈아입으며 눈살을 찡그렸다. 그녀의 하루 일과는 묘지 순찰로 시작하고 다시 묘지 순찰로 끝난다. 아버지와 동생은 마차를 타고 수도로 떠나버려서 한 달은 있어야 돌아올 것이었다.

 

 어머니는 일찍이 돌아가셨고, 이 근처에는 오로지 머스그레이브 저택이 전부라 말동무할 또래가 있을 리는 만무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아가씨. 오늘도 묘지 순찰을 나가십니까?”

 

 집사 오코넬 로빈슨이었다. 다 늙은 그는 여느 때처럼 갈색 머리에 기름을 잘 발라 뒤로 싹 넘겨놓은 상태였다. 그의 왼손에는 반쯤 녹아내린 밀랍초가 꽂힌 은촛대지팡이가, 오른손에는 낡고 헤진 까맣고 긴 망토가 들려있었다.

 

 “아, 네. 이게 제 일이니까요.”

 

  달리아 머스그레이브는 그에게서 은촛대지팡이와 망토를 받아들었다. 달리아의 희고 얇은 검지와 검지로 지팡이의 맨 끝을 장식하고 있는 은촛대에 꽂힌 밀랍초의 심지를 살짝 잡아 비볐다. 불꽃은 금방 타올랐다. 샛노란 색의 따스한 빛이었다.

 

 “아가씨는 언제 보아도 타고난 묘지기십니다. 큰주인님마저도 이렇게 능숙하게 은촛대지팡이를 다루진 못하셨습니다.”

 

 달리아가 어깨를 으쓱였다. 허벅지까지는 족히 풍성하게 흘러내리는 그녀의 찬란한 금발이 반짝였다.

 

 “뭐, 제가 좀 잘하긴 해요.”

 

 그녀의 머쓱한 자기자랑에 늙은 집사는 웃고 말았다. 그리고 코를 벌름거렸다.

 

 “그보다 어제…심야 순찰 때 묘지 바닥에 구르시기라도 하셨습니까? 몸에서 흙 냄새가 지워지질 않고 계시는군요. 옷을 갈아입고 주무신 것 맞으시겠지요?”

 

 달리아는 눈살을 조금 찌푸리곤 제 어깨어림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아보았다. 집사의 말이 맞았다. 싱그러운 흙내음이었다. 어제 누군지도 모를 남자가 자신을 끌어안았을 때 그에게서 났던 냄새였다. 분명히 옷을 갈아입었는데도 제 몸에 깊게 배어있었다.

 

 “어…맞아요. 일단 다녀올게요. 해가 뜨기 전에 출발해야 하니까요.”

 

 로빈슨 집사가 허리를 깊게 숙였고, 달리아는 총총총 복도를 뛰어 그를 지나갔다. 망토를 뒤집어쓰고, 영원히 녹지 않는 밀랍초와 한번 꽂힌 초를 절대 떨어뜨리지 않는 은촛대로 만들어진 지팡이를 가볍게 휘둘렀다.

 

 피어오른 촛불은 불 꺼진 복도를 환하게, 고작 하나의 촛불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환하게 밝혔다. 그것은 달리아가 지팡이를 놓을 때까지 꺼지지 않는 불꽃이었고, 머스그레이브의 묘지기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신물이었다.

 

 ‘…따뜻해.’

 

 저택의 뒷문으로 나선 그녀의 구두가 묘지의 순찰로에 깔린 대리석 바닥을 밟았다. 딸깍이는 단화 소리가 들쑥날쑥한 묘비들 사이로 퍼져나갔다.

 

 묘비 사이로 무언가가 지나갔다. 검은 것이었다.

 

 “…?”

 

 달리아가 그곳을 향해 지팡이를 겨눴다. 따스한 빛이 주변을 비추었다. 망토를 감싸 여몄다. 제물로 바쳐진 검은 양의 털로 짠 망토는 어지간히 부정한 것들의 공격으로부터는 묘지기를 보호해준다.

 

 그녀가 보았던 그 무언가 검은 것이 달리아의 등을 덮쳤다.

 

 “…!”

 

 달리아는 어떻게 무엇이라도 해보려 했지만, 그대로 대리석 바닥에 나뒹굴고 말았다. 지팡이는 손에서 떨어져선 저 멀리 굴러버렸다. 그녀가 일어나려는 그 참에, 그 정체 모를 검은 것이 다시 달리아 몸을 깔아뭉갰다.

 

 “흐윽, 악….”

 

 그건 정말이지 말도 되지 않는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커다란 늑대개였다. 검은색 늑대개. 이제는 몇 남아있지도 않은, 늑대의 외모가 남아있는 오래된 품종이다. 달리아는 재빨리 망토의 앞섶을 여몄다. 그녀의 맑은 청회색 눈동자가, 그 개의 더없이 푸른 눈동자와 마주쳤다. 녀석의 앞발이 달리아의 두 어깨를 강하게 짓누르고 있었다.

 

 “아, 아, 아파….”

 

 달리아의 눈에서 찔끔 눈물이 나온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 늑대개가, 그 늑대개가 어젯밤의 그 남자로 바뀌었다. 눈도 깜빡하기 힘든 찰나였다. 허리 위에 타고 앉아선, 달리아의 두 어깨를 그 큼지막한 손으로 쥐고 있었다.

 

 “달…리아….”

 

 싱그러운 흙내음이 가득 흘러들어왔다. 더없이 익숙한 따스함이었다. 어딘가, 분명 어딘가 그에 관한 기억이 남아있었던 것만 같았다. 하지만 정작 달리아의 기억 속에는 그가 없었다.

 

 “누구…세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를 와락 껴안았다. 달리아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자세가, 자세가 조금 그런 자세였으니까.

 

 “자, 자, 잠깐만요, 다, 당신….”

 

 그의 코가 달리아의 목덜미에 파묻혔다.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달리아의 귓가에까지 들려왔다. 그의 팔이 그녀의 가냘픈 몸을 세게 옥죄어 안았다. 달리아는 얼어붙은 것처럼 꼼짝도 못했다. 블라우스와 망토 너머로 그의 코가 제 쇄골에 처박혀 있었다.

 

 달리아의 손이 한껏 그를 밀어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의 팔힘은 말 그대로 대단했다. 아니, 대단한 수준이 아니라 초자연적이라고 보아도 좋았다. 달리아 머스그레이브는 본능적으로 이 남자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당신, 어젯밤에 내 방에 온 적 있죠.”

 

 남자의 몸이 딱 멈췄다. 달리아의 쇄골에 처박던 얼굴을 들고,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달리아는 침을 꼴깍 삼켰다. 머스그레이브 저택에 갇혀살다시피 하면서 본 남자가 많진 않았지만, 그는 그녀가 다시 볼 수 없을 정도의 미남이었다.

 

 “…그래.”

 “그럼 일단 이걸 놓고 이야기를….”

 “안돼.”

 

 그의 밑에 깔려있는게 영 불안하고 불편했다. 심장은 곧 터질 것처럼 뛰고 있었다. 분명 이 오래된 묘지에 깃들었던 수없이 많은 신비롭고 거룩한 영혼들 중 하나일 것이었다.

 

 달리아 머스그레이브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길래 오래된 망자를 깨웠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럴 때의 대처법은 알고 있었다.

 

 “…제가 당신의 평온한 휴식을 방해했다면, 머스그레이브의 적통을 잇는 묘지기로서 정중하게 사과하나니 다시 본래의 편안한 곳으로….”

 “안 가.”

 

 일단 그녀가 아는 방법은 틀린 모양이었다. 이 남자한테는.

 

 “…아니 왜요? 망자에게 관과 흙 속보다 더 편안한 곳은 없을텐데?”

 

 그 남자는 갑작스럽게, 정말이지 갑작스럽게 눈물을 흘렸다. 떼구르르 흐르는 눈물이 그의 뺨을 타고 내려와 턱에서 떨어져선, 달리아의 뺨에 닿았다. 그가 다시 달리아를 끌어안았다. 그의 코가 다시 제 목덜미에 닿았다.

 

 “이제, 이제 겨우 찾았는데….”

 

 달리아의 눈이 갈피를 잃고 흔들렸다.

 

 ‘뭐, 뭐, 뭘 찾아? 이 남자 뭐야?’

 

 저 멀리서 해가 뜬 것은 그 무렵이었다. 머스그레이브 공동묘지의 동쪽에서 붉은 태양빛이 번득이며 지상을 덮었다. 달리아와 남자는 길게 늘어진 묘지의 그림자에 아직 파묻혀있었다.

 

 “시간이….”

 “시, 시, 시간이요…?”

 

 달리아를 완전히 끌어안은 그가, 눈물 젖은 입술로 입을 맞추었다. 달리야는 머릿속이 새하얗게 비워지는 것을 느꼈다. 5센티미터도 안되는 거리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그 눈동자. 달리아 머스그레이브는 그의 시퍼런 눈동자에 더없는 행복이 깃드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리고 어딘가 이 입맞춤이 너무 익숙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건 마치 기억이 비워져있는 것만 같은, 알 수 없는 그리움이었다.

 

 곧 햇살이 그를 비췄고, 그는 다시 그녀의 등을 덮쳤던 새까만 늑대개가 되었다. 그녀의 옆으로 자리를 비켜선, 달리아가 놓쳤던 은촛대지팡이를 물고 돌아왔다.

 

 “…고맙긴 한데요.”

 

 이게, 방금의 그 모든 것들이 싫지 않았다는 게 더 달리아를 혼란스럽게 했다. 은촛대지팡이를 잡자 다시 심지에서 따뜻한 불꽃이 피어올랐다. 사실 평소라면 지팡이를 휘둘러 일단 쫓아냈을 것이다. 이 묘지에 있는 것들은 그게 무엇이라도 묘지기를 저승으로 끌고 들어갈 만한 힘을 갖춘 것들이었다.

 

 “그런데….”

 

 늑대개는, 아니 남자는, 아니 늑대개는…달리아는 대체 그를 늑대개라 불러야 할지 당신이라고 불러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브리택.”

 

 일단 개의 구강구조를 갖추고 어떻게 말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달리아는 알고 있었다. 그는 사람도 늑대개도 아니다. 다만 사람과 늑대개의 모습을 갖춘 무언가의 강력한 영혼이다.

 

 “그래요. 브리택은 왜….”

 

 그가 한 발자국 다가오자, 일단 달리아는 한 발자국 뒤로 움직였다. 그 늑대개의 길이는 꼬리를 제외하고서라도 어지간한 성인 남성의 키보다 컸다. 달리아는 제 어깨가 빠지지 않은 것을 감사히 여겼다.

 

 “가만히 있지 않으면 달려들겠어.”

 “….”

 

 달리아는 주저앉은 채로 굳었고, 그는 천천히 다가와선 그녀의 몸을 빙 둘렀다. 등에 닿는 털가죽이 보드라웠다.

 

 “기대도 돼.”

 “그, 그, 그래요….”

 

 짐승이라 말이 안 통하나, 하는 생각이 잠시 덧없이 지나갔다. 그럴 리가 없지.

 

 “…나는 너를 사랑하고 있다.”

 “아니 그러니까 대체 그게 무슨 뜬구름잡는….”

 “그러니까 너와 함께할거야.”

 “아니 잠깐만요, 당신 자꾸 당신 마음대로….”

 

 달리아가 눈살을 찌푸리고 그의 머리를 내려다보자, 늑대개의 모습을 한 브리택이 그 시퍼렇게 빛나는 눈동자로 그녀를 쏘아보고 있었다. 달리아는 바로 꼬리를 내렸다.

 

 “…그러니까 낮에는 늑대개의 모습으로 날 쫓아다니고, 밤에는, 밤에는…내 침실에 들어오겠다 이거에요?”

 “싫어?”

 

 거기서 싫다고 말했어야 했다. 사실 싫은게 정상이었다. 하지만 달리아는 왜, 왜 싫지 않은지 알 수가 없었다. 제 마음이라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의 눈빛은 왠지 모르게 익숙했고, 체온은 왠지 모르게 그리웠다. 그 흙내음도 그랬다. 정말 모든 것이 왜인지 알 수 없었다.

 

 “…싫진 않아요.”

 

 달리아는 영혼들에게 솔직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묘지기의 본분이기 전에 영혼들을 대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었다. 그들은 한낱 인간의 진실과 거짓을 쉽게 가려낼 수 있었다.

 

 “…근데 좀 이상한게, 왜 밤에는 사람의 모습이었다가 낮에는 늑대개의 모습이 되는 거에요?”

 

 솔직히 달리아는 이 정도는 자신에게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생판 처음 보는 영혼, 그것도 남자에게 침실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을 허락해준 것 아닌가.

 

 “묻지 마.”

 

 달리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일단 마음을 진정시켜야 했다. 달리아의 어깨와 가슴이 바짝 올라가고, 날숨에 다시 추욱 늘어진다. 그녀의 작고 하얀 손이 그녀 자신보다 더 큰 늑대개의 머리 위에 올라갔다. 그리고 가만히 쓰다듬었다.

 

 “그러니까 당신은 저, 묘지기 달리아 머스그레이브와 묘지기견의 서약을 맺고 싶은 건가요?”

 

 양치기에게 양치기견이 있듯, 묘지기에게도 묘지기견이 있다. 한 영혼이 묘지기견이 되는 이유는 여러가지였다. 묘지기와 사랑에 빠져서도 있었고, 그 묘지를 너무나도 소중해했기 때문도 있고, 묘지에 묻힌 다른 누군가를 너무 사랑해서 그 묘비를 지키기 위해서도 있었다.

 

 “…그래.”

 “…보통은 인간의 영혼이 묘지지견의 서약을 맺고 개의 모습도 갖추게 되는데 당신은…원래 개였나요?”

 

 브리택이 달리아의 손을 가볍게 깨물었다.

 

 “아야! 아, 아니라면 아니라고 하면 되지! 너무하잖아요!”

 “피도 안나는데 무슨. 사람을 개 취급하면 얼마나 기분나쁜지 알아?”

 “아니 개 취급하는게 아니라 개잖아요! 개가 아닌데 왜 낮에는 개 모양이야! 사람이 죽은 영혼이면 정반대여야지!”

 

 다시 깨물었다.

 

 “아, 아야!”

 “한번만 더 개라고 해 봐.”

 

 브리택이 으르렁댔고, 달리아는 히끅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았어요, 알았으니까 이빨 좀….”

 

 그는 그제서야 송곳니를 집어넣곤, 상처도 나지 않은 달리아의 손등을 핥아주었다. 달리아는 아무래도 무는 힘을 조절하는 것이 능숙한게, 죽은지 오래되어 지성을 얻은 개의 영혼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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