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잠든 달리아 머스그레이브의 이불 속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달리아는 몸을 움찔거렸지만 깨지는 않았다. 그녀의 앞으로, 한 남자의 상체가 솟아오른 것은 다음 순간이었다.
그는 날카로운 턱선에 더없이 푸른 눈동자, 그리고 새까만 머리카락을 지니고 있었다. 탄탄한 몸에 키는 그녀보다 머리통 하나는 더 컸다.
그가 달리아 머스그레이브의 녹인 황금과도 같은 긴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들어올렸다. 흐르는 것처럼 그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오는 머리칼을 코에 가져다 대고 그 향을 들이마셨다.
“…달리아.”
그의 손이 천천히 달리아의 허리를 향하고, 천천히 끌어당겨 안았다. 그녀의 작고 하얀 이마가 그의 가슴팍에 와 닿았다. 그 보드라운 뺨을 어루만지고, 턱을 살짝 잡아 올려선 그 입술을 탐하려던 그 순간이었다.
“…?”
달리아의 맑은 청회색 눈동자가 번쩍 뜨였다. 그리고 얼어붙었다. 그는 얼어붙은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고, 달리아는 영문 모를 이 상황에 그저 몸을 바르르 떨었다.
‘이, 이, 이게 무슨…?’
정신을 차린 그녀가 남자의 가슴을 힘껏 밀어버리고, 작은 탁자 위의 성냥을 그어 켰을 때는 이미 방 안에 아무도 없었다. 땅으로 꺼졌는지 하늘로 솟았는지는 몰라도, 그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누구세요?”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달리아는 잊을 수 없었다. 그 큰 키, 그의 몸에서 짙게 흘러나오던 싱그러운 흙내음, 살짝 까칠하던 입술, 단단한 팔과 몸까지도. 잊을 수 없는 수준이 아니었다. 분명히 어디선가 본 것만 같았다. 그럴리가 ㄹ없는데도.
달리아는 주변을 매섭게 노려보다, 다시 침대에 기어들어갔다. 한참을 눈을 부릅뜨고 있다가 겨우 다시 잠든 그 때, 그녀의 이불 속에서 다시 그가 나타났다. 그리고 다시 달리아를 껴안았다.
밤새, 밤새 그저 껴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