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돈간에 경쟁하지 마시고 손을 잡으시죠.”
백년가약을 맺는 순희와 수리의 결혼식 날 나온 이 한마디는 TS건설의 우두머리 정보수와 사도유화의 차기 우두머리 송영석 공장장의 끈끈한 인연을 맺어주는 언약이 됐고 이들과 이들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연이은 잔치를 벌일 날이 돼 버렸다.
또한 순희 오빠도 건설회사로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되는 날이기도 했다. 사도유화의 증설과 사도그룹의 공장 증축과 관련한 공사는 공장장의 약속대로 진행이 되었고, 이 공사를 계기로 TS건설도 순희 오빠 회사도 흔한 말로 장족의 발전을 했다. 세월이 지나면서도 이들의 인연은 끈끈하게 이어 졌고 송영석이 그룹의 회장이 될 때 정보수가 물었다.
“회장님! 퇴직 후 하고 싶은 게 무엇입니다”
“그 참! 형님! 어제 회장 됐습니다. 허허!!”
“그러니 얘기하는 거 아닌가! 허허허!!”
그렇게 얘기가 오가다가 송영석은 편안하게 시도 쓰며 자식들에게 손을 벌리지 않게 돈도 벌면서 조용한 데서 살고 싶다는 했다는 말을 했다. 정보수는 그들 세계에 딱 하나 내세울 의리를 지켰다.
여기서 되짚어 볼 문제가 하나 있다면, 그룹 회장까지 지낸 사람이 자식에게 손 벌릴 일이 뭐가 있겠는가? 거두절미하고 자신의 미래를 누가 알겠는가?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송영석은 겸손이 몸에 베인 사람이었다. 주변에서 흔히 보는 돈푼 꽤나 있다고 나부대는 소인배들과는 격이 다른 사람이었다. 특히 물려 받은 재산과 어쩌다 시대를 잘 만나, 앞으로 나란히 해 입사한 회사에서 시간만 채우고, 하는 일에 비해 과분한 대가를 받는 사람들과 비교 대상을 시키면 그에 대한 모독인 사람이었다. 같은 물에 있다고 같은 어류로 취급 당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의 주머니는 여느 월급쟁이와 같았다. 그는 그의 지위에 맞게 살았다.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격에 맞게 살았다. 후배들과 술자리나 하다못해 차 한잔 하는 자리에서도 구질구질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귀가 길에 그의 발걸음은 언제나 가벼웠다. 지갑이 텅 비워서. 처자식이 너덜너덜한 옷을 입고 다니게 놔두지도 않았다. 가장으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했다.
강인호나 박한철처럼 정보수에게 뒷돈이라도 받았으면, 술자리에서 법안 카드만 썼더라면, 정보수에게 이런 자존심 상한 질문은 받지 않았을 것이다.
빈손으로 입사해 빈손으로 정년 퇴직한 송영석에게 남는 건 그처럼 반듯하게 성장한 자녀들이었다. 그의 자녀들은 어학연수 한번 다녀 오지도 않고 지금 이 나라를 떠나 외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이들이 떠난 이유 중 하나는 수리의 술 주정이 가장 큰 몫을 차지했지만 뿌리는 순희에게 있었다.
“형님! 어이 18! 이 더러운 나라.”
이 말은 악성 바이러스로 송영석 뇌 속으로 파고 들어 그대로 자녀들에게 전이돼 버렸다. 송영석은 그가 꿈꾸던 소년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그러나 주머니 사정으로 돌아갈 처지가 되지 못했다. 이를 악물고, 자존심을 버리고 그는 정보수에게, 퇴직하고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입사 전에 꿨던 꿈을 얘기했다. 한적한 곳에게 자연과 함께 책을 보면서, 자연을 표현한 시를 쓰고 싶다는 말을 했다.
한적한 곳에서 배에서 꼬르륵 소리를 들으며 하루만 책을 읽으며 글만 써봐라. 송영석의 별명인 영감이 떠 오르는 가? 떠올랐던 영감(靈感)도 기하급수적으로 영감(令監)이 돼 화장터로 가버리지. 그래서 돈도 벌고 시도 쓸 수 있는 펜션을 곁들여 말을 했다.
송사장은 시인답게 펜션을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GIVE ME SOMETHING TO LOVE)’의 의미를 함축한 이름을 짓기로 했다. Something 을 벌일 곳, 남녀 사이 썸씽의 사회적 관념에 뭐가 있겠나? 너무 야하다! 여기가 성 매매 업소냐? 며칠 동안 수리가 음흉한 눈으로 송사장을 쳐다봤다. 아무에게도 방해 받지 않은 둘뿐인 곳에서 사랑을 나눈다. 배타고 무인 섬으로 가자. ‘배타’는 야해 ‘섬 타’. 그러나 이런 로맨스는 수리가 순희를 감금해두고서라도 하고 싶어했던, 결혼 전에 대망(大望)이었고 못해본 천추(千秋)의 통한(痛恨)이었다.
이 와중에 순희를 곁눈질로 힐끔 쳐다본다. 단 둘뿐인 섬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손대면 미끄러질 것 같은 뽀얀 순희 속살, 계곡처럼 숨어 있는 허리춤, 살짝 들어 올려도 선녀처럼 하늘도 날아갈 것 같은 가녀린 몸매. 껴안아, 음모가 눈 앞에 닿을 때까지 번쩍 들어 올리고 싶었던 옆구리. 피둥피둥하게 변해 있다. 때는 늦었다. 기회도 잃었다. 하나 다행인건 애무할 필요는 없다. 번쩍 올리자 말자, 무거워서 바로 주르르 흘러 내릴 것이다. 허벅지를 스쳐 음모를 스쳐 배 구멍을 스쳐 젖꼭지를 스쳐 목덜미를 스쳐 입술을 스쳐 딱 마주 친 눈. 수리 가슴에 주먹이 꽂혔다.
“지금 뭐해? 뭘 그렇게 훑어봐.”
침이 꼴깍 삼켜졌다. 서너 차례 애무를 끝내고 빳빳하게 선 거시기가 들어 갈 장소에 눈이 떨어질 때 가슴에 꽂힌 순희 주먹이었다. 숨이 턱 멎어 삼켜진 침이었다. 숨을 가눈 수리가 고함을 질렀다.
“야! 쑤신다고 사전에 얘기하고 쑤셔야지. 아이고 아파!”
이런 상상을 가지고 찾아 온 펜션. 그래서 원래 어음을 넣어 ‘썸타’로 도장 꽝꽝.
수리가 여기를 자주 찾는 이유 중 가장 핵심은 수리하려 오는 것이었다. 건물을 올릴 때 수리도 TS건설 직원들, 즉 동생들과 같이 공사를 했기 때문에 이 건물의 구조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비만 오면 새는 부분을 찾아, 이름에 어울리게 정확히 수리를 해주려 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는 수리가 총각 때 TS건설의 컴퓨터가 고장 날 때, 주먹이 필요할 때 한걸음에 달려가던 짓과 똑같았다. 또 똑 같은 게 있다면 그때는 어머니 몰래 쫓아갔다면 지금은 순희 몰래 쫓아오고 있었다. 이유는 어머니는 자식의 장래 걱정이었고 순희는 수리를 해줬으면 수리비를 받아와야지 라며 수리를 닦달하기 때문에 수리는 늘 몰래 와서 수리를 해주고 갔다. 더 어이가 없는 건 자기 오빠의 부실공사로 손을 볼 때가 많은 데 그 점에 대해서는 순희는 일체 함구하고 있었다.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밥벌이 터전이 돼버린 바다. 아무데서나 볼 수 없는 푸른 바다에 쏟아 오르는 붉은 태양. 두 손 모아 가슴에 품은 야망을 비는 붉은 태양. 그러나 거긴 화려함 뒤에 감춰진 어두운 조직들이 있었다. 그들은 바다를 존중했다. 바다는 ‘아무데나’ 가 아니라고, 함부로 근접 못하게 족쇄를 채워버렸다. 푸른 바다와 붉은 태양의 존엄에 모독을 우려했던 것 같았다.
풍운의 뜻을 품고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을 보면서 주먹에 힘을 불끈 쥐자마자, 바다에 해를 끼치는 인간이란 사실을 알고도, 불끈 쥔 주먹을 풀지 못한 채 벌써 20년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수리는 이제는 떠나고 싶어 했다. 그 사이 입사했다가 퇴사한 젊은 청년들이 대략 1,000명은 됐을 것이다. 해마다 반복되는 자격증 실사. 변하지 않는 법. 그러면서 외치는 일자리 창출. 최저임금 인상. 변하지 않은 검정 용역 비. 수리도 어느 정도 터줏대감이 되었지만 열악한 환경을 버티지 못한 자격증이 있는 젊은 친구들의 퇴사. 붙잡지 않았다. 그래서 그때나 지금이나 자격증 충족이란 족쇄가 가져다 주는 정신적 통증은 여전했다. 수리도 순희도 떠난 그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 원망은 하지 않았다. 간단한 이유 중 하나는 세 명의 자식들에게 세뇌라는 말이 딱 맞을 정도로 이 업종에 대해 설명을 하며 발도 붙이지 못하게 했다. 만약에라도 사도유화 같은 회사에 입사 하더라도 강인호나 박한철 같은 인간은 되지 마라는 말을 덧붙여 당부도 했다.
족쇄에 묶여 살아온 20여 년. 악법도 법이기 때문에 수리는 법을 원망할 수 없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해왔다. 그러면서 찾아온 건 포기. 어느 새 꿈이 돼버린 자격증을 가진 직원들이 계속 같이 있었으면. 그러나 그들은 떠났다. 동종 업계가 아닌 진절머리를 치며 육지로 떠났다. 수리도 그들처럼 떠나는 게 꿈이 돼 버렸다.
꿈이 완전히 엉뚱한 데로. 단 한번도 생각하지 않은 대로 흘러 가렸다. 멀뚱하게 벽을 쳐다 본 수리가 말한다.
“형님! 우리가 와도 사진을 벽에 붙여 놓으세요. 집사람이 형님에게 족쇄인 것 같아 제가 미안하네요.”
송사장이 빙긋이 웃으며 시를 써놓은 사진들을 순희 앞으로 가져 왔다.
“자네 신랑이 찍은 사진에 내가 쓴 시를 넣은 거네. 자네 신랑이 시를 넣으려고 했는데 이 친구의 글은 아직 멀었어. 빛을 볼 날 기다리다가 못보고 저 세상에 갈 것 같아서, 이 친구가 여기 사진 하나, 하나 찍을 때 어떤 심정으로 찍었는지 들었던 말을 내가 시로 엮은 거네. 팔면 제법 돈을 받을 거다. 이 걸로 직원들 월급 주고 체납도 해결하고. 거절하지 말고 받아라.”
순희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완강히 흔들며 말했다.
“이 사진은 오빠게 드린 선물이에요. 시는 오빠가 썼지만 이 사람의 마음이에요. 저는 구질구질한 우리 살림을 밖으로 비춰가며 살기는 싫어요. 시 없는 이 사람 사진들 처분할게요. 그리고 시가 적힌 이 사진은 숨이 막혀요. 사진을 보는 사람들이 사진을 보면서, 그들만의 자유로운 상상도 하게 해주고 싶습니다. 사진 속에 시를 보면 보는 사람의 감성이 한정돼 그 속에서만 생각할 거잖아요. 보는 사람들의 감성을 자유롭게 해 주고 싶어요. 시를 올려 놓는 건 우리가 하고 있는 업종의 법과 같은 잔인한 짓이에요. 감정과 검량 자격증 각 6개가 있어야 창업할 수 있다는 족쇄. 저는 보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생각을 하게 해 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오빠 이름은 너무 알려져 있어요. 사람들이 사진보다 오빠 시를 보고 싶어 할거에요. 그러면 이 사람은 꿈도 이루기 전에 사진에 있는 시를 보고 도용해 소설을 썼다는 말이 나올 수 있잖아요. 터줏대감의 글을 흉내 냈다고 손가락질 당하겠죠. 저는 이 사람 글 재능을 믿어요. 꼭 소설가가 될 거란 걸요. 그 대신에 지금처럼 책 한 권 읽지 않고 사진만 찍고 글만 쓰면, 집에 있는 사진 오빠게 전부 드릴게요. 황금뿐인 땅 위에 살면 뭐하겠습니까? 저도 우리 신랑 사진을 시어머니, 시누이, 형님 눈치 봐가며 생활비로 보태 쓰는 거 이제 진절머리나요. 몰래, 몰래 훔쳐 파는 그 돈이면 회사 운영에 많은 도움이 되는 데 지금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기분입니다. 그나마 명작들은 오빠가 팔아줘 회사 운영이 되지만 다른 회사들은 임금이 체불 돼 난리에요. 게다가 최저 임금도 올렸죠, 저희들처럼 날씨와 선박 일정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회사들은 시간 외 수당도 눈 더미처럼 불어나서 곧 폐업하는 회사들이 줄줄이 나올 거에요. 그렇다고 배 위에서 마냥 기다렸던 직원들이 그 시간에 일은 하지 않았다고 수당을 안 줄 수는 없잖아요. 그 시간에 세상이 멈추면 몰라도요.”
여기서 수리는 송사장을 곁눈질로 노려보았다. 송사장이 어깨를 들썩하며 오리 발 흉내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