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호처럼 허리가 또 굽힐 때 정중하게 사양을 하고 있었다.
“형님! 세관에 걸립니다. 마음만으로도 감사합니다. 허허!!”
무너지는 하늘 아래의 순희이었다. 되돌려주기 싫어 환장한 표정으로 돌려 줄 때 항해사가 ‘아차!’ 잊어버린 게 있는 것처럼 손바닥을 쳤다. 그때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순희 얼굴에 벌써 밝아진 화색이 보였다.
“참! 자연은 제대로 해석되어가?”
대답대신 어깨를 으쓱하며 입술만 툭 내밀었다.
“열심히 해봐. 아직 젊잖아.”
“예!”
통 선을 탈 때 줄사다리에 매달린 채 아등바등 대가가 또 5분을 버리고 말았다. 육지에 발을 딛고 회사로 가는 내내 순희는 구시렁거렸다.
“난 또 현찰 주는 줄 알았지. 배를 그렇게 오래 탄 사람이 세관에 걸리는 것도 몰랐을까? 영악한 영감탱이! 자기도 웃기더라. 자랑할 거 놔 두고 글 쓰는 게 뭐 자랑이라고 전세계에 떠벌리고 다녀. 창피하게..”
언제부턴가 뒤탈을 대비에 항상 약을 준비하는 경향을 보인 안순희가 수리 자존심을 마구잡이로 밟아놓고 사진 기술로 처방을 내리고 있었다. 붙일 때 없어서 여기다가 붙이냐며, 어불성설이라고 순희는 난리를 치겠지만 이게 남자의 비애가 아닐까? 천만다행히 순희는 바다에 빠지지 않았고 수리는 건져줘야 할 불편도 덜고, 2002년 12월 25일, 이들은 부부가 되었다고 만천하에 알렸다.
골수 유교집안인 수리 집안과 골수 천주교 집안인 순희 집안 어른들이 마주 앉았다. 유교 집안의 돌연변이인 정보수 아재와 얼떨결에 유교집안이 된 이근호도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이 집안도 아닌 한 분이 아직 귀가하지 않고 있었다. 송영석 공장장님.
공장장은 같은 업계에 있는 정보수와 이근호와 순희 오빠가 이산가족 상봉이나 한 것처럼 주거니 받거니 하는 자리에, 같이 휩쓸려 거의 초 죽음이 돼 있었다. 술이 들어가면 당연히 나와야 될 현시대의 필수품인 자기피알(Public relation)이 공장장 귀속으로 파고 들어갔지만, 피알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다음 날이면 같이 앉아 있었는지 조차 모를 지경에 도달해 있었다.
이 사람들을 밤늦게까지 붙잡은 시작은 순희와 수리였지만 많은 이유 중 하나는 공장장도 가지고 있었다.
“앞으로 우리 순희 떼 부자 될 겁니다.”
전부 귀가 솔깃했다. 반드시 확인이 필요한 말이었다. 연륜은 무시할 수 없었다. 보수 아재의 촉을 찔렀다.
“왜요? 공장 증설이라도 합니까?”
비틀거리는 공장장 손이 보수 아재를 향하며 아재의 위신을 세워주었다.
“역시! 대단하십니다. 바로 알아 맞추시네요. 예! 우리 회사에서 생산할 화물이 엄청나게 많아질 겁니다.”
수리 집안이 골수 유교 집안이라고 했다. 구시대적 자존심만 버리면 눈 앞에 황금이 무더기로 쏟아지는 이 시점에서도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혀가 꼬여 있었다.
“무슨 소리! 안씨 문중이 아니고 우리 문중에 떼 부자가 나와야지. 조카 며느리는 출가외인이야. 우리 문중에 족보를 올리니 당연히 우리 수리가 떼 부자가 돼야지.”
출가하면 남이 될 순희의 서글픈 운명. 이 탓이 제일 컸다. 다음으로는 종교의 문제였다. 가톨릭신자인 순희 오빠는 이단아인 순희와는 달랐다. 술을 절제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예! 맞습니다. 우리 순희 잘 부탁 드립니다. 허허허! 혹시 저 같은 작은 회사도 들어갈 틈이 있겠습니까?”
겸손하게 공장장에게 물었다. 그때 고함소리가 들렸다. 안씨 문중에서 나왔다.
“왜 틈새로 들어가. 우리 순희가 그 회사 직원인데. 공장장님! 우리 순희 한번 밀어주십시오.”
그 다음부터는 각 집안의 조상이름이 나오면서 안순희 친정이, 구석기시절부터 시작해 나오는 수많은 이야기가 수집된 역사 박물관이 돼 버렸다. 그렇게 시작한 순희와 수리는 광속의 세월 속에서 만 16년째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들은 지금 박물관이 있는, 울산에서 가까운 도시인 경주로 향하고 있다. 더 엄격히 구분하자면 불국사 근처로 가고 있었다. 여기서 구분하는 이유는 기차역이 경주역도 있고 불국사 역이 있어서였다. 거기에는 사도유화 대표이사를 직장 생활의 마지막으로 점을 찍고 제 2의 인생. 생계를 위해 미뤄뒀던 꿈에 매진하는 송영석 시인이 머무는 곳이 있어서 이들 부부가 찾아 가고 있었다.
평생을 돈 걱정 없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있는 사람이 가장 복 많은 사람이라는 데 이견을 내놓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또한 평생은 아니더라도 말년. 법이 정한 말년을 넘긴 사람이 돈 걱정 없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나머지 인생을 사는 것도, 복 받았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는 이견이 많을 것이다. 송사장은 그런 자질구레한 이견에는 속해 있지 않았다. 수리처럼 월세나 전세도 주지 않고 본가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하는 복도 없이, 대부분이 그렇듯이 월세부터 신혼생활을 시작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지금. 법적인 말년에 그는 펜션을 운영하며 거기에서, 소년시절부터 꿈꿨던 시인으로써 당연히 할 짓. 시 쓴다고 쌍 코피가 터지고 있었다.
“형님! 저 왔습니다.”
수리는 송영석의 시집을 사보면서 항상, ‘참 배부른 놈이네. 나도 주머니 여유가 필수로 따르는 마음의 여유만 있으면 이 정도 시는 쓴다’ 배부른 영감의 넋두리라며 입을 삐죽거렸다.
송영석의 얼굴. 기생 오라비 같았던 뺀질, 뺀질 했던 얼굴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날이 갈수록, 태어나면서부터 초췌한 홀아비 모습으로 이 세상에 나온 듯한 얼굴. 껍데기 따로, 소갈머리 따로인 수리는 이런 송영석을 볼 때마다 ‘대~~~한 민국! 짜자~~자 짝짝’. 가슴이 터질듯한, 불알이 터지는 절정의 오르가슴이 폭발하는 순간 같은 짜릿한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영원은 없다는 걸 증명해주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이트클럽에 갈 때마다 귀를 잡아 당겨 자리에 가만히 앉혀 놓았다.
‘네가 나부대면 술 취해 비몽사몽으로 오는 고객도 기겁을 하고 걸음아 날 살려라 하니 가만히 앉아 차려주는 밥이나 먹어라.’ 라고 면박을 줬기 때문이었다. 수리는 지금 이순간만큼은 거울을 보지 않았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좌절을 할게 불을 보듯이 뻔하니까.
겉과 속이 철저히 다른, 불변의 법칙을 철저히 수행하는, 험상궂은 인상인 수리와 달리 영석은 젊었을 때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흔한 말로, 폭삭 늙어있었다. 수리 입장에서는 엄청 화가 낼 수도 있을 얼굴로 변해져 가고 있었다. 송영석의 얼굴은 수리에게 무기였고 소재거리를 가져다 둘 양식과도 같았다. 꽁무니만 따라 다녀도, 힘도 들이지 않고, 여성분들에게 미안하지만, 그건 또 어찌 보면,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 일 없듯이, 여성분들과 많은 대화를 나눌 수가 있었다. 송영석이 여성들에게 손을 내밀면 그녀들은 잠시 멈칫하다가 손을 잡고 그 다음부터는 서로 알아서 했다. 그 끝이 어디인지 수리는 영석에게 듣지 못했다. 단지 자신의 끝은 모른다면 그건 치매다. 영석을 흉내 내 수리도 ME TOO 했다. 일부는 먼저 ME TOO했다. 그렇게 수리는 소재거리를 얻게 되었다.
세월을 되돌릴 수 없듯이 영석의 얼굴도 되돌릴 수 없다는 알고 있는 수리는 가슴이 찢어지고 있었다. 너무 빨리 활용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는 위기감에 수리가 영석의 손을 잡고 말했다.
“형님! 얼굴이 왜 이래? 복잡한 도시가 뭐 그리 좋다고 형수님은 아직도 서울만 고집하고 있어요. 아이고! 이러다가 급보로 내려 오신 형수님이 망인 얼굴이나 알아볼는지. 내 신랑 아니라며 바로 올라가겠습니다. 허허허!!”
영석은 수리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염장이 뒤틀리고 있었다. 그런데 순희!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고 싶게 하는 말을 하고 있었다. 돌아간다면 바로 잘랐을 것이다.
“엎어지면 코 닿을 때 갖고 싶은 거, 사고 싶으면 거 다 있는 동내 놔 두고 어느 여자가 여기서 살고 싶어 하겠어. 한 며칠 여행 삼아 머문다면 몰라도. 언니도 내 마음하고 똑 같을 거야. 내 말 틀렸어. 오빠! 그 면도나 좀 하고 계세요. 나! 시인이오! 으스대고 싶은 거죠? 안 그래도 오빠는 세계 최고의 시인이에요.”
같이 늙어간다고 반 말까지. 병 주고 약주는 이 어휘력. 그것도 한꺼번에 둘을 싸잡았다. 이런 현상은 수리는 글을 쓰고 순희는 검토하고 수정하면서 늘어난 효과의 결과였다. 그런데 수리가 여태껏 공모전에 단 한번도 입상 못한 건 순희의 훼방 때문이었다. 검토하고 수정해주고 난 뒤 항상 요구하는 말. 공동작. 이유는 딱 하나. 사진은 인증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몰래 팔아도 되지만 소설은 달라서였다. 수리는 수정이 아닌 삭제를 해버렸다. 자격지심과 대리만족을 유발시키는 말 속에 경고. 만약에라도 소설가가 되면 저 꼴로 살지 말라는 경고. 본인은 멋있어 보일지 몰라도 보는 사람의 눈에는, 말이 필요 없는 추할 뿐. 송영석의 정신? 혼수상태.
“잘 지내셨죠?”
“너희들 오기 전까지만 잘 지냈다.”
동병상련 속에 살고 있었던 수리는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지금부터도 걱정을 하고 있었다.
안순희! 여기오면 늘 그랬듯이 겨울이 아니면 절대 가지 않는 뒤뜰을 오늘도 갔다가 돌아오면서 자화자찬을 하고 있었다. 어느 해 가을. 뒤뜰에 갔다가 굵은 지렁이를 뱀이라며, 기겁을 하며, 호들갑을 떠는 바람에 11개 방에 있던 손님들에게 환불은 둘째치고 주변 펜션에 투숙 비까지 지불하게 해주었던, 불행을 야기시킨 그 호들갑이, 지금 또 비웃음을 자처하고 있었다.
“역시 우리 오빠 집 짓는 실력은 인정해줘야 해.”
수리와 송사장은 늘 이렇게 순희의 공치사 선제공격에 씁쓸히 웃기만 했다. 수리는 수리대로 내 사진 때문이야! 영석은 영석대로 내 힘이었어! 순희는 순희대로 나의 빠른 판단력이었어! 결과로 보면 순희의 재치 있는 판단이 가장 큰 몫이 맞다. 만약에 공장장이 아닌 차장이었던 영석에게 먼저 전화를 했다면 공장장의 자존심이 어떤 결과를 가져 왔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가끔 우리는 비슷한 경우를 본다. 국가던 시골 동네 사랑방이던 이끌어가는 무리는 항상 있다. 그런데 아무리 작은 일이더라도 머리를 맞대 의논할 일을 가지고, 무리 중 한 명이 같은 무리지만 책임을 지고 이끌고 있는 사람이 아닌 무리 중 한 명에게 먼저 의논해, 그 입의 대변인이 돼 그의 의견을 강철 시키게 한다면, 책임질 무리도, 그런 오합지졸의 무리도 존재할 이유가 없다. 우리 주변에는 그런 후안무치가 예상과 달리 많이 득실대고 그들은 변명의 꼬리를, 가증스럽게도 우주까지 이어가려고 발버둥친다. 그 사이 조직은 반짝 빛을 내다가 같이 우주 속으로 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순희가 공장장에게 먼저 보고를 한 건 탁월한 선택이 아닌 당연한 선택이었다. 만약에 반대의 선택을 했다면 순희는 강인호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자신도 의식 못한 채, 또 하나의 파벌을 형성했을 것이다. 이 말은 순희는 영악한 사람도 우둔한 사람도 아닌 그냥 평범한 사람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조차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을 옹호할 변명에만 매달려, 이런 말을 원망하는 어리석은 이들이 너무 많다는 게 문제다. 강인호처럼 그런 비극을 맡아 흩어질 부류인 줄 뻔히 알면서, 약육강식에서 살아 남기 위해, 어떤 이가 진정한 도움을 주는 이라는 걸 알면서도 당장의 실익을 위해 외면하고, 강자의 변비 걸린 똥구멍이나 빨아주는 이가 많다는 것이 문제다. 그리고는 어쭙잖은 변명들.
그런데 순희도 순희 오빠도 그런 문제가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16년 전 TS건설을 대한민국의 국회 의사당이라고 하면, 순희 오빠 회사는 시골 경로당에 불과했다. 결혼식 날 안씨 문중과 정씨 문중이 사도유화 증설을 두고, TS건설의 규모도 그렇지만 정씨 문중의 기세. 이성을 잃으니 기질이 꿈틀. 패거리가 많은 쪽의 목소리가 큰 건 당연지사. 게다가 주먹 세계의 대부. 이런 잡다한 부분들을 모두 내 핑계치고 순희 오빠는 회사 규모에서 찌지고 볶을 상대가 아니었다. 대신에 두 회사가 손을 잡으면 좁은 도시에서는 경쟁 상대가 전무했다.
술에 똥 가루가 된 공장장이 분위기에 젖어 얼떨결에 낸 제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