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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3023년: 두번째 판게아
작가 : 윤그루
작품등록일 : 2018.11.2

100년전, 세상은 망했다. 지구 대재앙이 일어나 지구상의 모든 걸 집어삼켰고, 동물과 식물과 무생물을 한낱 잿더미로 만들어버렸다. 그런데도 인간은 그 속에서도 살아남더라. 살아남아서, 그나마 지구에 남은 그 작은 땅덩어리에 다섯 나라를 짓고, 또 다시 사회를 시작하더라. 그런데 오늘, 3023년, 그 다섯 나라 중 우리나라가 망했다. 나라가 망하는거야 딱히 상관없다만, 그것 때문에 다쳐서는 안되는 아이가 죽게 생겼다. 그래서 싸워야겠다. 이 끝이 어떻게 날지는 모르겠다만, 일단은 이대로 흘러가게 두지는 못하겠다.

 
#3. 판게아절 (2)
작성일 : 18-12-25 19:59     조회 : 237     추천 : 0     분량 : 4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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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댄스 파티에 가기에 앞서 우리는 기숙사에 잠깐 들려 옷을 갈아입기로 했다. 방으로 돌아가 빌려온 드레스를 한 번 입어본다. 몸에 달라붙는 천의 촉감이 영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손목이 꽤나 훌륭하게 가려져서 이 정도로 만족하기로 했다.

 유진이는 화장까지 하느라 나보다 더 시간이 오래 걸릴테니, 유진이의 방으로 가기 전에 테라스로 잠깐 나가 본다. 시원한 바람과 함께 학교의 풍경이 내 눈동자에 맺힌다.

 학교 여기저기서 멋있게 꾸미고서 짝끼리 손을 잡고 가는 아이들이 눈에 띈다. 댄스 파티에 구경 왔는지 아까 드레스 가게에서 본 울랜인 군인들 역시 그런 아이들을 보며 웃음 짓고 있다. 노을과 어우러져 더욱 아름답고 행복한 광경이었다. 나도 저들과 함께 순수하게 행복할 수 있다면 좋을텐데. 나는 오랫동안 그곳에 서서 얽힐 대로 얽힌 생각들을 하다 유진이를 데리러 발걸음을 옮긴다.

 완벽하게 치장을 한 유진이는 정말 다른 사람 같다. 예쁘게 장식한 머리, 붉게 칠해 생기가 도는 입술, 그리고 노을 빛 아래서 더 빛나 보이는 드레스. 그야말로 완벽했다.

 나는 태훈이가 기절할지도 모른다며 유진이를 보며 온갖 찬사들을 한다. 유진이는 절대 아니라며 고개를 도리도리 젓지만, 보조개가 슬쩍슬쩍 올라가는 게 뻔히 보인다.

 “너도 진짜 너무 예쁜데? 이러고 있으니까 진짜 숙녀 같아!” 유진이가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한다. “그런데 진짜 화장도 안 하고 그냥 갈 거야? 화장까지 하면 진짜 완전 이쁠 거 같은데.”

 “됐어. 난 거기 그렇게 오래 있지도 않을 건데 뭐.” 내가 말한다.

 “그래도. 뭔가 더 해주고 싶단 말이지.” 그렇게 말하고서 유진이는 잠시 고민하다, 자신의 머리에 꽂은 삔 하나를 빼 내 머리에 꽂아준다. 하얀 크리스탈이 박힌, 아카시아 잎 모양의 삔이다.

 “짠! 이쁘다! 이쁘다!” 유진이가 폴짝폴짝 뛰며 좋아한다.

 “난 진짜 이런 거 필요 없어! 너-”

 “떽!” 유진이가 내 코를 살짝 누른다. “거절은 거절한다. 내가 해주고 싶어서 그래. 제발 해주라. 응?”

 그런 유진이의 모습에 난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알았어, 알았어. 이제 빨리 가자. 태훈이 기다리겠다.”

 

 태훈이는 파티장이 있는 별관 앞에서 벌써 기다리고 있었다. 태훈이를 보자 유진이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진다.

 나는 피식 웃는다. “왜? 떨려?”

 “아.. 아니거든! 그, 그냥.. 더워서 그런 거야!”

 “아, 예, 예. 빨리 가봐, 이제. 곧 파티 시작하겠다.” 내가 유진이의 등을 두드려준다.

 “휴.. 그럼 나 갈게. 너도 심심하면 꼭 나 찾아와! 알았지?”

 “알았어, 알았어. 빨리 가봐.”

 유진이는 숨을 깊게 들이쉬더니 손을 한 번 흔들어주고는 태훈이에게 성큼성큼 다가간다.

 긴장된 게 너무 뻔히 보여서 나는 뒤에서 그 모습을 보며 튀어나오는 웃음을 겨우 참는다. 긴장한 건 태훈이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더니 함께 별관으로 들어간다. 문을 통과하기 딱 마지막 순간에 보니까 손도 잡은 것 같더라. 귀엽긴.

 그러나 유진이가 내 시야에서 사라진 순간, 내 표정은 도로 어두워진다. 다시 현실을 직시해야 할 시간이다. 스티븐 그 자식에게 종속되어 있는, 내 현실을.

 이를 빠득 갈며 별관으로 들어선다. 별관은 예쁘게 차려 입은 아이들로 가득하다. 우선은 최대한 스티븐의 눈에 띄지 않는 쪽으로 가보기로 한다. 스티븐의 눈에 띄지 않고 이 별관에만 머물면, 어쨌든 난 내 약속을 지킨 것은 맞으니까.

 아이들 쪽으로 등을 돌리며, 파티장 구석 쪽으로 가 준비된 탄산음료를 한 모금 들이킨다. 이대로 등을 돌리고 서있으면 아무도 날 눈치채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그 순간 뒤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눈을 살짝 돌려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훔쳐보니, 역시나 스티븐과 그 양아치 친구들이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딱히 나를 보고 오는 건 아닌 것 같았지만, 어쨌든 이대로 있다가는 곧 마주칠 게 뻔했다.

 애써 얼굴을 가리며 우선 자리를 떴지만, 마땅히 숨을 곳은 없다. 다들 짝 지어서 춤을 추는 아이들 사이에서 홀로 멀뚱히 서 있는 나는 누가 보기에도 겉돌았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먼저 스티븐과 끝을 볼까, 하고 생각하던 참에, 갑자기 누군가 내 팔을 잡더니 자신 쪽으로 잡아당긴다. 그러곤 춤추듯 자연스럽게 나와 스티븐 사이를 자신의 등으로 가로막아 준다.

 순간적으로 카를의 얼굴을 기대하며 내 팔을 잡은 이를 올려본다. 그러나 그곳엔 웬 낯선 한아린인 남자 애가 날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다.

 “안녕?” 그 애가 싱긋 웃으며 말한다.

 “뭐야.” 짜증을 내며 그 애의 팔을 뿌리치려 하지만, 그는 만만치 않은 힘으로 내 팔을 잡고서 놓아주지 않는다.

 “이봐, 잠깐만.” 그 애가 다급하게 말한다. “난 그냥 우리 둘 다 누군가 피하고 있는 것 같아서, 서로에게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널 잡은 거야. 이상한 의도는 아니고.”

 그는 능숙한 솜씨로 내 팔을 이끌어 스텝을 밟으며 춤추는 아이들 속으로 묻혀 들어간다. 나 역시 일단은 스티븐을 피하는 게 우선이니, 그가 이끄는 대로 발걸음을 옮겨준다.

 “뭘 피한다는 건데? 너 우리 학교도 아니잖아.” 내가 눈썹을 치켜 올리며 말한다. “복도에서도 너 같은 얼굴은 단 한번도 본 적 없어.”

 “오, 어떻게 알았대.” 그 애가 말한다. “그냥 말 못할 사정이 있다고 치자. 보아하니까 너도 그런 사정 하나 쯤은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하며 그는 내 왼쪽 손목을 응시한다. 시스루 손목 아래로 둔탁한 철제 팔찌가 어렴풋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거 전기 충격 팔찌잖아. 수감자들이나 정신 병자들한테 채우는.”

 언짢음과 놀람이 얽혀 순간 눈썹을 일그러지게 한다. 수감자들이나 정신 병자들이 전기 충격 팔찌를 찬다는 걸 아는 사람은 꽤 있어도, 이 팔찌를 보고 바로 이게 전기 충격 팔찌임을 알아챈 사람은 이 애가 처음이었다.

 그런 내 표정을 읽었는지, 그 애가 다시 입을 연다. “많이 봐서 아는거야. 그런 팔찌, 지겹도록 많이 봤거든.”

 생각을 간파당하니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표정 읽어내는 건 나도 꽤 자신이 있기에, 나 역시 슬쩍 질문을 던져본다. “그러는 너도 죄를 꽤 많이 지었나 봐? 이 팔찌가 뭔지도 알고, 지금도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는 거면.”

 남자 아이의 한 쪽 입꼬리가 올라가며 그가 씩 웃어보인다. “뭐, 그렇다고 볼 수도 있지.”

 순간 섬뜩한 느낌이 든다. 느껴지지 않는다. 저 표정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거짓인지 진실인지.

 정신 병원에서 거의 십년간 생활하며 나는 사람들의 표정의 진위를 판별하는 법을 익혀왔다. 떄문에 웬만해서는 누군가가 거짓으로 표정을 짓고 있는지 진심으로 표정을 짓고 있는지 바로바로 알아낼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정말 모르겠다. 아무런 느낌도 오지 않는다.

 그러고보니 아까부터 이 애 표정이 이상하다. 겉으로만 봐서는 평범하고 진실된 표정 같아 보이지만, 이 애 눈빛 깊은 곳의 어딘가가 이 애의 표정이 죽어있다는 직감을 들게 한다. 그리고 내 직감은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

 “왜 그래?” 남자 애가 묻는다. 되려 내가 표정을 간파당한 모양이다.

 “너.. 이상해.” 내가 홀린듯 말한다.

 그 말에 남자 애가 픽 웃는다. 여전히 진위가 판별되지 않는, 죽어있는 듯한 웃음이다. “너도 이상해. 난 처음에 너가 울랜인인 줄 알았다고. 갑자기 한아린어로 말해서 얼마나 놀랬는지 몰라.”

 나는 대꾸 없이 심각하게 남자 아이를 쳐다보기만 한다. 그렇게 우리 둘 사이에 적막한 기류가 흐를 때, 갑자기 스피커에서 방송 알림음이 나오더니 방송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학생들에게 알립니다. 한아린인 학생들을 제외한 울랜인 학생들은 지금 바로 본관의 대강당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20분 내에는 꼭 보내줄 테니 빨리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한아린인 학생들은 댄스 파티를 계속해서 즐기셔도 좋습니다.]”

 방송이 끝났을 때의 알림음과 함께 마이크가 꺼진다. 엄청난 불만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울랜인 학생들은 스피커를 향해 욕을 날리면서 투덜투덜 별관을 나가 본관으로 향한다.

 고개를 돌려 스티븐 쪽을 쳐다본다. 스티븐 역시 언짢은 표정으로 파티장을 나가고 있었다. 스티븐이 별관에서 사라지자마자 나는 남자 애의 팔을 놓고는 별관 밖으로 향한다.

 “뭐야, 어디 가?” 남자 애가 묻는다.

 “너 알 바 아니야. 아직도 숨어야 되면 다른 여자애나 찾아봐.”

 “그쪽보다는 나 따라서 이쪽으로 가는 게 더 좋을 텐데.” 남자애가 별관 뒤쪽 문을 가리키며 말한다.

 “신경 꺼.”

 뒤쪽에서 “뭐, 그러시던가.”하며 중얼거리는 듯한 소리가 들리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파티장 밖으로 나온다. 어젯밤부터 계속 기분 나쁜 일들만 반복된다. 기분 나쁜 연설에, 기분 나쁜 남자 아이에... 이럴 바에는 아예 스티븐이 다시 별관으로 돌아오는 걸 기다렸다가 빨리 끝을 보고 기숙사로 돌아가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 섰다.

 음료수 상자를 옮기고 나오는 듯한 울랜인 군인들을 피해 별관 문을 열고 나온다. 하늘이 전보다 더 붉게 물들어 있었다. 울랜인 학생들은 벌써 다 본관으로 들어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다들 빨리 끝내고 다시 파티장으로 돌아오려고 바쁘게 들어간 모양이다.

 불편한 드레스 자락을 붙잡으며 계단을 내려간다. 계단 아래에 서서 스티븐이 올때까지 아예 기다려버릴 작정이다. 파티장에서의 웃음 소리와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공기가 차가운 이 바깥과는 달리 파티장 쪽을 향한 내 등은 왠지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

 그 온기는 내가 파티장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오히려 더 따뜻해진다. 아니, 뜨거워진다. 조금 심각할 정도로. 몸이 타 들어갈 것 같은 만큼.

 비정상적인 열기에 홱 뒤를 돌아 별관 쪽을 본다. 순간 엄청난 붉은 빛이 나를 덮친다. 그리고 나는 고막을 내리찍는 폭발 소리와 함께 공중으로 날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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